25.03.04 12:04최종 업데이트 25.03.04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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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목을 매어 자살했습니다. 경찰이 고인의 시신을 발견했을 때, 이미 부패가 상당 부분 진행되어 사망한 시점을 정확하게 추정할 수 없었습니다. 고인의 가족은 관계 단절과 경제적 어려움을 이유로 시신을 위임했고요. 결국 '무연고 사망자'가 된 고인의 관은 가벼웠습니다. 셋이서 있는 힘껏 들어 올렸는데, 느껴지는 무게가 가벼워 휘청인 기억이 납니다.

고인의 이름이 적힌 지방을 태우고 있다나눔과나눔

고인은 원래 2023년에 방을 빼야 했던 사람입니다. 고인의 사정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던 집주인이 계약 연장에 동의해 주어 작년까지 지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꼬박꼬박 월세를 내오던 고인은 어느 시점부터 월세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집주인은 독촉하지 않았습니다. 상황이 나아지면 다시 내겠거니 하고 기다렸지요.

그렇게 수개월이 지났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굳게 닫힌 문 너머로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혹시 잘못된 것은 아닐까?' 집주인의 맘 속에 문득 걱정과 불안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경찰을 불러 문을 개방하고 나서야 집주인은 집에 깔린 침묵의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발견된 유서가 없어서 고인이 어떤 이유로 자살했는지 우리는 알 길이 없습니다. 고인의 장례가 치러지는 날, 저는 그저 지방을 태우며 이제는 편히 쉬고 계시기를 빌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죽음이 더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왜냐하면 올해 1월에만 거주지에서 자살한 '무연고 사망자'가 세 분이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모두 죽은 후 일정 시간이 흐른 뒤에 발견되었습니다. 자살인 동시에 '고립사 추정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연고 사망과 고립사의 비율이 다른 이유

범위를 자살에서 좀 더 넓히면 보다 안타까운 숫자가 나옵니다. 지난 1월에 거주지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 이른바 고립사로 추정되는 고인을 세어보면 모두 39명입니다. 2025년 1월 서울시 전체 '무연고 사망자'의 약 30퍼센트지요. 대부분 미납된 월세, 침묵, 냄새로 자신의 죽음을 알렸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뒤늦게 발견한 죽음 앞에서 우리는 사인에 추정이라는 부끄러운 단서를 달거나, 그보다 못한 '기타 및 불상(사인을 모른다는 의미)'이라는 변명을 붙였습니다. 고인의 생전 병력을 증언해 줄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서울시 '고립사 추정 무연고 사망자' 통계를 살펴보면 전체 '무연고 사망자' 통계와는 다른 양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연령대 통계입니다. 전체 '무연고 사망자' 통계에서는 65세 이상의 비율, 그러니까 어르신의 비율이 전체의 56퍼센트입니다. 반면 고립사한 '무연고 사망자'의 연령 비율을 따로 떼어보면 65세 이하의, 어르신이 아닌 청년과 중장년의 비율이 약 56퍼센트입니다. 비율이 반전되는 것입니다. 앞선 사례에서 이야기한 고인도 1970년대생의 젊은 나이였습니다.

고인의 분골을 산골(뿌리는 것)하는 모습나눔과나눔

왜 이런 양상이 나타나는 것일까요? 정확한 답을 해줄 수는 없지만 통계를 살펴보며 추론해보자면 이렇습니다. 2024년의 전체 '무연고 사망자' 중 기초생활수급자는 약 77퍼센트였습니다. 이 중 고립사한 '무연고 사망자'의 기초생활수급자 비율을 따로 떼어보면 71퍼센트로 줄어들고요. 연령 비율은 앞선 2025년 1월의 통계처럼 어르신과 어르신이 아닌 비율이 반전됩니다. 고립사한 '무연고 사망자'는 어르신이 아닌 경우가 더 많았어요.

65세 이하의 청년, 혹은 중장년이 수급비를 받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근로 능력을 상실할 정도의 중병이나 만성병이 아니라면 수급자가 될 수 없지요. 그에 비해 65세를 넘긴 어르신의 경우는 상황이 조금 낫습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인정받아 지자체의 돌봄 서비스를 받는 것이 조금 더 수월해지거든요. 수급자가 되면 사회복지사나 요양보호사 등 여러 사람들이 방문하기도 하고, 건강 상태가 악화 될 경우 필요하다면 요양병원에 입원하기도 하니까 고립의 위험에서 아주 조금은 더 나을 수 있습니다. 반면 수급자가 아닌 청년, 중장년의 사람들은 지자체의 안전망 속에 들어오지 못하고 고립되기 쉬워지는 것 같고요.

이웃끼리 서로 마주치지 않는 것이 미덕이 된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서로의 죽음을 알아챌 수 있을까요?픽사베이

종종 자신의 죽음 이후가 걱정인 사람이 '서울시 공영장례지원·상담센터'에 전화합니다. 그중에는 30~40대의 아직 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죽음과 장례에 대한 불안을 말합니다. 결혼 생각이 없고, 형제가 없거나 서먹하기 때문이지요. 그런 이들에게 죽음 이후 장례가 어떻게 치러지는지 설명하면, 그에 대한 불안은 일정 정도 해소되곤 합니다. 하지만 상담을 통해서 풀리지 않는 불안도 존재합니다. '나는 죽고 난 뒤 어떻게 발견될까?'

"그러니까 설령 가족이 없어도 장례를 치러준다는 것은 알겠어요. 근데 그것도 누가 절 발견 해줘야 가능한 것이잖아요. 저는 집에서 혼자 살고 있는데, 만약 그러다 집에서 죽게 되면 누가 절 찾아주죠? 너무 늦게 발견되면 저를 수습하는 사람들도 고생이고, 저도 그런 모습으로 발견되고 싶지 않아요. 특수청소하는 사람들 유튜브를 봤는데, 너무 끔찍했어요."

마땅한 해결책이 없어서 늘어놓는 불안을 들어주는 것밖에 할 수가 없는 저는, 언젠가부터 이웃의 인기척을 신경 쓰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동안 택배가 쌓여 있는 집의 문을 두들겨야 하나 고민하고, 고지서와 독촉장으로 가득 찬 우편함의 호수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웃끼리 서로 마주치지 않는 것이 미덕이 된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서로의 죽음을 알아챌 수 있을까요? 독촉장과 미납 요금, 침묵, 냄새처럼 너무 늦는 방법 말고, 서로의 불안을 없애줄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전까지는, 조금 더 사려 깊게 주위를 살피는 수밖에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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