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빌 워 : 분열의 시대>의 한 장면.
(주)마인드마크
<시빌 워>의 주인공이 언론인이라는 것은 내전이나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에서 언론은 어떤 관점을 취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는 혼란과 내전 속에서 언론이 취해야 할 태도가 무엇인지 정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언론의 역할은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권력과 진실의 갈등 속에서 윤리적 선택을 해야 하는 존재라는 걸 관객이 고민하게 만든다. 내전 같은 참담한 상황의 진실을 전달해야 하는 기자에게는 기록하는 것이 곧 행동이며, 역사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양비론이나 기계적 중립을 언론이 지켜야 할 가치라고 착각하는 언론인이 적지 않은 한국 사회에도 울림이 있다. <시빌 워>의 기자들은 처음에는 내전 상황에서 어느 쪽을 편드는 태도를 정하지 않고, 중립적으로 내전 상황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려는 것으로 보인다. 주인공 리는 제시에게 기자의 역할에 대해 "우린 묻지 않고 기록하지. 다른 사람들이 묻도록"이라고 말한다. 언론이 직접적인 정치적 입장을 내세우기보다는 객관적인 기록자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태도를 강조하는 것이다.
하지만 처음에는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하려 했던 영화 속 기자들도, 전쟁의 참상을 목격하면서 점점 감정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결국에는 분리동맹 군대와 함께 백악관으로 가게 되는데, 이런 구도는 이들이 독재와의 싸움에서 더는 중립의 위치를 지킬 수 없으며, 독재와 저항 사이에서 입장을 정해야 한다는 걸 보여준다.
기계적 중립이나 양비론은 듣기에 그럴싸하지만, 민주주의 시스템을 무너뜨리려는 세력이 명확히 드러난 상황에서 그런 태도는 언론도 민주주의의 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섬세하고 신중한 판단은 언론이나 문학계, 문화계에서 꼭 필요한 태도이지만, 그런 섬세함이 민주주의 토대를 무너뜨리거나 헌정질서와 법치주의를 파괴하려는 시도를 방관한다면, 그때 섬세함과 신중함은 미덕에서 악덕으로 바뀐다. 단호할 때는 단호하게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쪽에 서는 것이 언론과 지식인의 역할이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히 쓸 수 없지만, 영화 후반부에서 리, 조엘, 제시가 분리동맹 군인들이 백악관으로 진입하는 것을 목격하고, 그 이후의 사태를 대하는 모습은 언론이 어떤 관점을 취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영화에서 리와 제시는 백악관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마주치는 상황을 사진으로 찍는다. 리는 제시에게 어떤 사진을 찍어야 하는지를 가르친다. 그런 모습은 연방 정부의 독재와 반군 세력의 실태를 기록하는 것이며, 언론이 진실을 알리는 것이 곧 권력과의 충돌을 의미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영화에는 내전이 전개되면서 더는 거창한 명분이 아니라, '저들'이 '우리'를 죽이려고 했기 때문에 저들을 죽여야 한다는 전투 상황을 또렷하게 드러내는 장면이 있다. 그렇게 내전에서 인간은 살기 위해 죽여야 하는 짐승으로 변모한다.
보기에 따라서는 통쾌할 수도, 불쾌할 수도 있는 충격적인 마지막 장면은 언론이 단순한 중계자가 아니라 역사적 순간을 기록과 이미지로 남기는, 남겨야 하는 존재라는 걸 표나게 강조한다. 조엘은 대통령에게 묻는다. "마지막으로 할 말은?" 그리고 그 말을 기록한다. 제시는 그 장면을 찍는다. 언론인의 역할은 기록할 것을 정확히 기록하고, 찍어야 할 것을 정확히 이미지로 담는 것이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글과 말로 먹고사는 언론인과 지식인은 혼란의 시대에 어떤 존재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시빌 워>는 그런 질문을 제기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