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제11차 긴급 특별 회기 결의안 초안 회의에서 투표 결과가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더 심각한 문제는 트럼프의 이런 발언이 구체적인 외교 조치로 구현되고 있는 점이다. 지난 2월 24일 유엔 총회에서 미국은 러시아, 북한, 벨라루스 등과 함께 러시아의 전쟁 책임을 묻고 즉각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이 결의안은 93개국(대부분 유럽 및 아시아 동맹국)의 찬성을 받아 채택되었으나, 미국은 반대표를 던지며 다른 행보를 보인 것이다.
트럼프가 제안한 '평화협상'의 내용은 더욱 우려스럽다. 우크라이나를 배제한 채, 러시아의 점령지(크림반도, 돈바스 지역 등 약 18% 영토)를 사실상 인정하고, 해당 지역의 광물자원(리튬, 희토류 등) 개발에 미국 기업이 공동 참여하는 방안이 논의되었다. 우크라이나는 자원 수익의 50%를 미국에 양도하라는 압박을 받았고, 트럼프는 젤렌스키를 "선거 없는 독재자"로 비난하며 협상을 압박했다.
나토 동맹국들 역시 심각한 위기에 놓였다. 트럼프는 회원국들이 국내총생산(GDP)의 5%를 국방비로 쓰지 않으면 탈퇴하겠다고 압박하며, "계층화된 동맹(tiered alliance)" 개념을 제안하고 있다. 즉, 방위비 지출 2% 미달 국가들은 나토 헌장 5조인 집단방위 보장에서 제외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나토를 '조건부 동맹' 관계로 전환하겠다는 확실한 의도다.
트럼프의 가자지구 계획도 충격적이다. 약 210만 명의 팔레스타인 주민을 이집트와 요르단으로 재정착시키고, 미국이 그 지역을 장악해 휴양지로 개발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이스라엘 극우의 팔레스타인 추방 전략을 닮은, 보다 확대된 버전이다. 레바논과 시리아에 대해서도 미국 주도의 재건을 제안했다. 이는 이스라엘과 협력해 중동 패권을 강화하려는 전략으로, 한때 영국과 프랑스가 중동을 분할 통치하던 방식과 다를 바 없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런 일련의 외교정책 기조는 19세기 제국주의식 강대국 정치의 부활을 예고하는 불길한 징후다. 영토 불가침과 침략전쟁 불법화라는 근대 외교 원칙도 유엔헌장이나 제네바 합의 등 국제법도 무시하고 있다. 동북아 지역에서도 유사한 행보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동북아 질서에 미칠 파장
트럼프의 이런 제국주의적 팽창 정책은 역설적으로 미국 패권의 쇠퇴를 반영한다. 이는 단순히 트럼프 개인의 스타일이나 일시적 현상이 아닌 구조적이고 역사적인 문제다. "미국우선주의"는 이 패권 쇠퇴에 대한 대중과 엘리트층의 불안이 응축된 결과다. 더 늦기 전에, 이 패권 쇠퇴 흐름을 막아야 한다는 초조함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향후 더 공격적인 양상을 띨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트럼프의 시대착오적 발상을 제어하고 견제할 세력이 마땅히 없다는 점이다. 그의 참모진, 내각, 공화당 지도부, 심지어 사법부까지 그의 권위에 도전하지 못하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민주주의 회복을 낙관하던 이들도 독재나 3선 개헌을 통한 장기 집권을 우려할 지경이다. 따라서 친트럼프와 반트럼프 진영 모두 2026년 중간선거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이런 미국 내 정치 상황은 동북아 지역에서 '강대국 정치'의 부활로 이어질 위험성이 있다. 트럼프는 자기 지지층에 자랑할 만한 가시적 성과가 필요하고 이에 따라 압박 수위도 점점 세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중국과의 빅딜에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높다. 이미 우크라이나와 나토, 중동 사례에서 보여주듯, 강대국 간의 흥정과 거래로 세계 질서를 재편하겠다는 트럼프의 생각은 거의 확고해 보인다. 동북아에서도 '조건부 동맹' 기조를 강하게 밀어붙일 것이라는 얘기다.
특히 중국과의 빅딜을 위해 대만이나 한반도 문제가 흥정거리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러시아와의 빅딜을 위해 우크라이나를 희생양으로 삼았듯이 말이다. 트럼프가 중국과의 대결 구도에만 집중할 것이라 가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최대 압박 이후의 양보와 타협을 염두에 둔 행보임을 늘 경계하고 대비해야 한다. 게다가 미중 간 협상에 러시아와 북한이 개입할 경우, 주한미군 (일부) 철수나 재편이 그 거래 카드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우크라이나에 일어난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얘기다
동맹이라고 예외는 없다. 트럼프 미국의 대외정책 기조가 확실히 견지하는 일관된 입장이다. 이는 우리에게 안보와 경제가 얽힌 '이중 압박'으로 나타날 수 있다. 안보 지원을 빌미로 무역 양보를 요구하거나, 경제적 이익으로 안보 동맹을 재조정할 가능성이 크다.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월 2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과 화상 면담을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한국은 무엇보다도 '위기 총사령탑'을 구축해 안보, 경제, 기술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 과거에는 군사동맹과 무역협정을 별개로 다뤘지만, 트럼프의 미국은 안보 동맹조차 무역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한다. 따라서 안보와 경제를 분리해 사고하는 낡은 틀을 넘어, 통합적 전략으로 전환하는 것이 시급하다.
"모든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원칙을 외교·안보·경제 전 분야에 적용할 필요가 있다. 안보 측면에서는 한미동맹을 기본 축으로 삼되, 쿼드(미·일·호주·인도), 아세안, 유럽연합 등 다자외교와 파트너십을 확대함으로써 "조건부 동맹"의 위험을 분산해야 한다. 물론 시간이 걸리는 일이지만, 현재의 혼란 속에서도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한다.
이 모든 대책의 전제는 내란 사태와 탄핵정국의 조속한 수습이다. 내부 정국이 불안정하면, 외교와 경제도 제자리를 찾기 어렵다. 조기 대선이 가시화되고 있는 지금, 정치권·언론·시민사회가 건설적 경쟁을 통해 위기 극복의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능력, 그것이야말로 국가와 사회의 진정한 경쟁력이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힘, 그것이 우리 국민의 유전자에 도도히 흐르고 있음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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