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3년 10월 31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위해 입장하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인사를 나누고 있는 모습.
공동취재사진
윤 대통령이 '여소야대'라는 정치 상황을, '반헌법적 거대 야당 독재'로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은 12.3 비상계엄을 선포한 대국민 담화에서도 확인된다. 그리고 이번 최후진술에서도 역시 이런 인식을 반복적으로, 그리고 더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2024년 12월 초까지 무려 178회의 대통령 퇴진 탄핵 집회가 열렸습니다. 이 집회에는 민노총 산하 건설노조, 언론노조 등이 참여했고, 거대 야당 의원들도 발언대에 올랐습니다 (…) 거대 야당이 북한 지령을 받은 간첩단과 사실상 똑같은 일을 벌인 것입니다 (…) 제왕적 대통령이 아니라 제왕적 거대 야당의 시대입니다. 그리고, 제왕적 거대 야당의 폭주가 대한민국 존립의 위기를 불러오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의 주장은 너무 단순해서 오히려 비현실적이다. 사실 노동조합들과 거친 대치 구도를 먼저 형성한 쪽은 윤석열 대통령이다. 집권하자마자 화물노동자 안전운임제 폐지, 주 69시간제 등 반노동·반노조 정책들을 쏟아냈으니, 노동조합들이 정권 퇴진 구호를 걸고 저항하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을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반대하며 노동조합들과 연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정당의 정치 과정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이를 '거대 야당은 민주노총 옹호하기 바쁘다'라는 수준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여기에 지난 2024년 4월 22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단독으로만 175석을 얻어 임기 초반보다 여소야대 구도가 더욱 확고해졌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윤 대통령은 야당과 협상과 협치는 커녕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전세사기 특별법, 방송법 개정안, 채 상병 특별법, 노란봉투법에 대해 거의 자동 반사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윤 대통령은 '야당의 폭주'를 탓하지만 국회의 정당한 입법 정치를 폭주하듯 무조건 막아선 것도 결국 자신이다. 그러면서 정작 야당의 행정부 탄핵소추와 예산삭감에 대응하기 위한 적절한 협상 테이블 한 번 마련하지 못했다.
지난 임기 동안 이런 맥락으로 켜켜이 쌓여버린 통치의 난관과 정치적 실패의 결과를, 윤 대통령은 '반국가세력'이라는 정체불명의 가상 네트워크로 연결 짓는다. 그리고선 자신의 실패와 위기를 엉뚱하게 국가비상사태로 규정하고 있다. 물론 그의 머릿속 국가비상사태의 범인은 오로지 거대 야당을 앞세운 반국가세력뿐이다.
지지자들에게 감사, 직무 복귀 계획도

▲지난 1월 19일 윤 대통령이 구속되자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방법원(서부지법)에 침입해 외벽을 부수고 유리창을 깨는 난동을 부려 법원 청사가 심하게 파손됐다. 사진은 서부지법 외곽에서 바라 본 폭동 흔적.
남소연
윤석열의 최후진술은 비상계엄에 대한 정당화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탄핵 반대를 주장하며 응집한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탄핵 기각에 대한 희망과 향후 계획도 포함되었다.
"비상계엄의 목적이 망국적 위기 상황을 알리고 헌법제정권력인 주권자들께서 나서주시기를 호소하고자 하는 것이었는데, 이것만으로도 비상계엄의 목적을 상당 부분 이루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의 진심을 이해해 주시는 우리 청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직무에 복귀하게 된다면, 먼저 87체제를 우리 몸에 맞추고 미래세대에게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주기 위한 개헌과 정치개혁의 추진에 임기 후반부를 집중하려고 합니다."
윤 대통령은 최후진술 후반에 지난 비상계엄이 주권자들이 나서기를 호소하고자 함이었고 따라서 비상계엄의 목적을 대강 이뤘다고 자평한다. 그의 최후진술 중 가장 문제적 부분은 바로 여기다. 그렇다면 과연 그가 비상계엄을 통해 호소하려고 했던 것은 과연 무엇일까. 현재 비상계엄을 계기로 나타나고 있는 극우세력들의 대두와 응집, 그들이 표출하는 혐오, 그들이 실행하는 폭력인가.
윤 대통령은 직무 복귀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직무 복귀를 할 경우 임기와 관계 없이 개헌과 정치개혁을 마지막 사명으로 생각하고 신명을 다한다고 한다. 개헌과 정치개혁에 대한 구체적 내용이 진술에 나타나지는 않지만 '임기에 연연해하지 않겠다'와 국내 문제에 관해서는 '총리에게 대폭 권한을 넘길 생각'임을 밝힌 것으로 보아 심판 참작을 목적으로 한 나름의 반성을 '개헌'이나 '정치개혁'으로 표현한 듯하다.
진술을 마무리하며 윤 대통령은 자신의 '구속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청년들'이 생긴 것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아마도 서울서부지방법원 폭동으로 체포된 이들을 언급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는 그들에게 '옳고 그름에 앞서서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미안'하다고 밝혔다.
그런데 왜 이 문제에 대한 옳고 그름의 판단을 생략하는지 모르겠다. 사과 또한 폭도들에게만 남겼다. 그의 사고 구조에는 부상을 입은 경찰관·공무원·언론인, 그리고 폭력으로 법질서가 유린당하고 법원이 파괴되는 것을 목격해야 했던 수많은 시민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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