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2.27 11:45최종 업데이트 25.02.27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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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탄핵심판 최종 변론에서 최후 진술을 하고 있다.헌법재판소 제공

"차마 듣기조차 민망한 '아무말 대잔치'라 몸이 오그라들 정도입니다."
"저런 사람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었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습니다."

지난 25일 저녁,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의 최후 변론을 함께 지켜본 지인들의 반응이다. 윤 대통령이 직접 출석해 제한 시간 없이 최후 진술을 한다고 해서 오후 4시경부터 줄곧 뉴스 영상을 띄워놓았다. 상대방과의 한 시간 대화 중 55분을 혼자 떠든다는 그의 '진면목'을 생중계로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아닌가.


솔직히 '12.3 내란 사태'에 대해 국민 앞에 용서를 구하거나 사과하리라는 기대는 애초 없었다. 앞선 열 차례의 변론을 통해 그의 '확고한' 인식을 온 국민이 확인한 터다. 불리한 증언은 모조리 부인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 해명으로 일관했지만, 여전히 탄핵이 기각될 것으로 확신한다는 그의 '믿는 구석'이 뭔지 궁금했다.

계엄령에 "계몽됐다"는 변호인...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피청구인인 윤 대통령이 재판정에 나타나지 않은 상태에서 '오픈 게임'이 시작됐다. 탄핵을 청구한 국회 측과 윤 대통령 측 변호인들의 날 선 주장들이 오갔다. 쟁점에 따라 제출된 증거물을 화면에 띄워놓고 서로 탄핵 청구와 기각 사유를 설명했다. 익히 들었던 주장인 데다 상호 토론이 아닌 변론의 자리여서인지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윤 대통령 측 변호인들에 의해 본격적인 '아무말 대잔치'가 시작됐다. 상식적 법 해석과 논리적 사고를 철칙으로 하는 변호인이 맞나 싶은 어처구니없는 주장들이 쏟아져 나왔다. 들으면 들을수록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한 지인은 최고 권위의 헌법재판소가 순식간에 '개그 콘서트장'으로 전락해 버렸다며 조롱하기도 했다.

지난해 7월 미국 연방대법원이 트럼프 대통령의 내란 선동 혐의에 대해 면책 특권을 인정했다는 점을 강조하면 변론이 시작됐다. 삼권분립 체제에서 계엄령 선포는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며, 대통령의 권한 행사는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같은 대통령 중심제 국가인 미국의 사례를 우리나라도 따라야 한다는 논리다.

이는 전형적인 견강부회다. 계엄령 선포가 대통령의 권한이듯, 삼권분립 체제에서 탄핵은 국회의 권한이다. 핵심은 헌법에 따른 정당한 계엄령 선포였는지 여부다. 지금 윤 대통령은 계엄령 선포의 조건과 조치 내용을 적시한 헌법 제77조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탄핵 심판을 받고 있다. 이를 교묘히 피해 가려는 변론인 것이다.

국회의장을 비롯한 의원들 다수가 계엄을 해제하기 위해 담을 넘어 본회의장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이 국회를 봉쇄할 의도가 없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주장엔 내 귀를 의심했다. 국회를 봉쇄하려 했다면, 문이고 담이고 모두 틀어막았을 거라는 이야기다. 시민들과 충돌을 피하기 위해 창문을 깨고 진입했다는 주장과 함께, 가히 아전인수의 끝판왕이라 할 만하다.

김계리 변호사가 2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 변론에 출석해 대화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압권은 스스로 "계몽됐다"고 말한 '변론인 듯 변론 아닌 변론 같은' 한 변호인의 고백이다. 논란이 되는 주장을 변호인이 헌법재판관들 앞에서 버젓이 설파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주장의 근거로 내세웠다. 그는 윤 대통령이 "임신·출산·육아를 하느라 몰랐던 더불어민주당이 저지른 패악을 확인하고 아이와 함께할 시간을 나눠 이 사건에 뛰어들게 됐다"고 밝혔다.

민주당의 패악과 일당독재의 파쇼 행위가 비상계엄 선포의 이유라고 주장하는 모습은 새삼스러울 게 없다. 다만 합리적 근거 없이 맹목적으로 야당을 비난하는 건 '변호사답지' 못하다. 아예 야당과의 대화와 타협을 거부한 윤 대통령을 두둔하려다 보니 변호인조차 대통령의 행태를 닮아가는 것일까?

윤석열, 개헌을 입에 올릴 자격 없어

견강부회와 아전인수로 점철된 '오픈 게임'이 끝나고 드디어 밤 9시를 갓 넘긴 시간 윤 대통령이 재판정 마이크 앞에 섰다. 자기 변호인들의 변론은 물론, 탄핵 소추위원단장의 발언이 끝날 때까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그다. '듣기 싫어하고 말하기 좋아하는' 그의 성정은 탄핵 심판이 종료되는 시간까지도 변함이 없었다.

예상은 한 치도 빗나가지 않았다. 한 시간 넘게 이어진 최후 진술 내내 윤 대통령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다는 듯' 당당했다. 확신에 찬 눈빛과 또박또박한 말투는 반성이나 사과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A4용지 77장 분량의 진술문은 앞선 변호인들의 황당한 주장에 대한 부연 설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망상에 기인한 그의 '유체 이탈' 화법은 계속됐다. 비상계엄은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대국민 호소였고, 내란은 야당의 선동 공작이며, 탄핵이야말로 헌정 질서를 파괴하는 이적 행위라는 기존의 주장을 이어갔다. 뻔히 들통날 거짓말과 몰상식한 변명을 늘어놓으면서도 헌법재판관들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는 말에선 가증스러움마저 느껴졌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탄핵심판 최종 변론에서 최후 진술 도중 물을 마시고 있다.헌법재판소 제공

최후 진술 내용의 팔 할은 익히 들어온 이야기지만, 특기할 만한 것도 있다. 그중 '간첩' 발언은 그가 얼마나 심각한 망상에 빠져 있는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전체 내용 중 무려 25차례나 등장하는, 최후 진술의 '주제어'다. 해묵은 색깔론까지 끌어와 비상계엄 선포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근거랍시고 내세운 논리가 황당하기 짝이 없다. 취임 후 대통령 퇴진 집회가 계속됐고, 집회를 주관한 곳이 민주노총이며, 민주노총은 이적 단체로 북한의 지령을 받는다는 것이다. 해당 집회에 거대 야당의 국회의원들도 발언대에 올랐으니, 그들 역시 '반국가세력'이라는 주장이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로서, 가히 수능 시험에 출제될 만한 사례다.

심지어 윤 대통령은 '반국가세력'이 가짜 뉴스와 여론 조작, 선전 선동으로 우리 사회를 갈등과 혼란으로 몰아넣고 있다면서, 그들의 체제 전복 활동을 막기 위해 광범위한 대공 수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야당이 국정원과 검찰의 특활비 예산을 삭감하면서 국내의 간첩 활동이 급증하게 될 거라는 논리를 폈다.

특활비 예산 삭감이 증빙 자료 제출을 완강히 거부했기 때문이라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바다. 이는 비상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예산권을 가진 국회에 제대로 쓰였음을 증명하면 될 일이다. 특활비까지 거론한 게 멋쩍었는지, 생뚱맞게 야당이 과거 국가보안법 폐지를 추진했다는 이력까지 보탰다.

느닷없는 개헌과 정치 개혁 주장도 눈에 띈다. 진정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이다. 탄핵 심판이 마무리되는 날 변론 삼아 불쑥 던진 피청구인의 제안에 솔깃해할 사람은 없다. 파면 선고를 앞둔 마당에 임기에 연연하지 않겠다거나 총리에게 권한을 위임해 내정을 책임지도록 하겠다는 건 하나 마나 한 이야기다.

"대통령직에 복귀해 '87 체제'를 끝내겠다"고 호기롭게 말하는 그에게 반문하고 싶었다. 애먼 '87 체제'를 핑계 삼지 말고, 시민들의 피로써 군사독재정권을 몰아내고 일궈낸 '87 체제'의 역사적 의미부터 공부하라고. 민의의 전당인 국회를 침탈하고 시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눈 자가 감히 개헌을 입에 올려서는 안 된다.

"'12.3 윤석열 내란 사태'가 온 국민에게 민주공화국의 가치와 선거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계기가 됐다는 것에 위안 삼을 뿐입니다."
"상명하복과 동일체 원칙에 길들어진 검사와 군인들이 정치에 나서는 건 막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정치 검사'와 '정치 군인'을 발본색원하는 게 다음 정부의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최후 진술이 끝난 뒤, 귀를 씻었다거나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한탄을 쏟아내면서도 소감 삼아 '교훈'을 공유했다. 모든 변론기일이 끝나고 선고만 남았다. 지금부턴 오롯이 헌법재판소의 시간이다. '12.3 윤석열 내란 사태'가 일어난 지 어느덧 석 달이 다 되어 간다. 이 고통과 혼란의 시간을 하루빨리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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