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탄핵심판 최종 변론에서 최후 진술 도중 물을 마시고 있다.
헌법재판소 제공
최후 진술 내용의 팔 할은 익히 들어온 이야기지만, 특기할 만한 것도 있다. 그중 '간첩' 발언은 그가 얼마나 심각한 망상에 빠져 있는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전체 내용 중 무려 25차례나 등장하는, 최후 진술의 '주제어'다. 해묵은 색깔론까지 끌어와 비상계엄 선포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근거랍시고 내세운 논리가 황당하기 짝이 없다. 취임 후 대통령 퇴진 집회가 계속됐고, 집회를 주관한 곳이 민주노총이며, 민주노총은 이적 단체로 북한의 지령을 받는다는 것이다. 해당 집회에 거대 야당의 국회의원들도 발언대에 올랐으니, 그들 역시 '반국가세력'이라는 주장이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로서, 가히 수능 시험에 출제될 만한 사례다.
심지어 윤 대통령은 '반국가세력'이 가짜 뉴스와 여론 조작, 선전 선동으로 우리 사회를 갈등과 혼란으로 몰아넣고 있다면서, 그들의 체제 전복 활동을 막기 위해 광범위한 대공 수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야당이 국정원과 검찰의 특활비 예산을 삭감하면서 국내의 간첩 활동이 급증하게 될 거라는 논리를 폈다.
특활비 예산 삭감이 증빙 자료 제출을 완강히 거부했기 때문이라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바다. 이는 비상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예산권을 가진 국회에 제대로 쓰였음을 증명하면 될 일이다. 특활비까지 거론한 게 멋쩍었는지, 생뚱맞게 야당이 과거 국가보안법 폐지를 추진했다는 이력까지 보탰다.
느닷없는 개헌과 정치 개혁 주장도 눈에 띈다. 진정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이다. 탄핵 심판이 마무리되는 날 변론 삼아 불쑥 던진 피청구인의 제안에 솔깃해할 사람은 없다. 파면 선고를 앞둔 마당에 임기에 연연하지 않겠다거나 총리에게 권한을 위임해 내정을 책임지도록 하겠다는 건 하나 마나 한 이야기다.
"대통령직에 복귀해 '87 체제'를 끝내겠다"고 호기롭게 말하는 그에게 반문하고 싶었다. 애먼 '87 체제'를 핑계 삼지 말고, 시민들의 피로써 군사독재정권을 몰아내고 일궈낸 '87 체제'의 역사적 의미부터 공부하라고. 민의의 전당인 국회를 침탈하고 시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눈 자가 감히 개헌을 입에 올려서는 안 된다.
"'12.3 윤석열 내란 사태'가 온 국민에게 민주공화국의 가치와 선거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계기가 됐다는 것에 위안 삼을 뿐입니다."
"상명하복과 동일체 원칙에 길들어진 검사와 군인들이 정치에 나서는 건 막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정치 검사'와 '정치 군인'을 발본색원하는 게 다음 정부의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최후 진술이 끝난 뒤, 귀를 씻었다거나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한탄을 쏟아내면서도 소감 삼아 '교훈'을 공유했다. 모든 변론기일이 끝나고 선고만 남았다. 지금부턴 오롯이 헌법재판소의 시간이다. '12.3 윤석열 내란 사태'가 일어난 지 어느덧 석 달이 다 되어 간다. 이 고통과 혼란의 시간을 하루빨리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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