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3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상담센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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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개혁은 국민의 인간다운 노후생활보장이라는 국민연금의 본래목적과 가입자인 국민의 뜻을 존중하면서 논의되어야 합니다. 2023년 국회가 연금특위 공론화위원회를 꾸려 500명의 시민대표단이 국민연금문제에 대해 토론할 수 있도록 한 이유입니다.
논의 초반 시민대표들은 국민연금 재정고갈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재정안정에 집중하는 개혁 안을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시민대표들이 충분한 자료를 제공받고 풍부한 토론을 이어가면서, 공론화위 최종 설문조사에선 '더 내고 더 받는' 개혁안에 대한 선호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보험료를 9%에서 13%를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자는 안입니다.
생각해보면 상식적인 결론입니다. 재정안정을 위해 보험료를 올리려면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와 효용 역시 올라야 합니다. 앞서 언급한 '공적연금 강화 입법 방안 모색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이점을 강조했습니다.
남 교수는 국민연금법에 "국가는 연금 급여의 지급을 보장한다"는 내용을 기술해 국가책임을 명확히 하고, 급여 지급에 필요한 비용을 연금 재정으로 충당할 수 없는 경우 건강보험처럼 국가의 재정 투입이 이루어지도록 명문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연금특위 공론화위원회 시민대표단도 92.1%가 지급 보장 명문화를 찬성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공적연금제도를 신뢰하고 활용하는 것도 부자들입니다. 2022년 <한국경제>는 <"연금 수급액 35만→118만원"... '강남 사모님의 재테크' 정체> 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습니다. 강남에 거주하는 한 시민이 1억 150만 원을 추가 납부해 기존 35만원의 연금을 118만 원으로 받았다는 겁니다. 매달 83만 원씩 더 받게 되는 셈인데, 연금 수령 후 10년 3개월만 더 살면 이득입니다. 국민연금이 부자들의 재테크 수단이 된 것입니다. 문제가 되자 국회는 법을 바꿔서 최대 추납 기간을 10년 미만으로 제한했습니다.
반면, 최저임금 노동자나 단시간 노동자들은 안 그래도 적은 월급에서 국민연금을 떼어가는 걸 부담스러워합니다. 특고 플랫폼 프리랜서 노동자들은 국민연금 전액을 납부해야 해서 경제적 부담이 더 가중됩니다. 이런 와중에 언론과 일부 정치인들은 국민연금이 사라질 것처럼 떠드니 국민연금을 내는 게 더 불안합니다.
최저임금 일자리와 플랫폼 일자리를 전전하던 저 역시 불안한 마음이 컸는데, 한국경제 기사를 보고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가 높아졌습니다. 부자들이 믿고 투자하는 연금을 국가나 정치인들이 함부로 건드리지는 못할 거라는 믿음이 생긴 겁니다. 학자금대출을 갚고 목돈이 생길 때마다 조금씩 추가 납부를 해서 겨우 95만 원 정도의 연금을 맞춰놓았습니다. 정치인들이 무너뜨리고 있는 건 바로 공적연금과 공동체에 대한 국민적 신뢰이고 붕괴된 공동체에서 피해를 보는 건 부자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입니다.
윤석열 이전과 윤석열 이후의 세상이 다르지 않다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상속세 개편과 관련해 진성준 정책위의장과 대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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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표의 이해하기 어려운 행보는 국민연금뿐만이 아닙니다. 이 대표는 상속세 공제한도를 현행 10억 원에서 18억 원까지 확대하자고 제안하면서 이를 중산층 정책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보증금 7000만 원짜리 임대아파트에 사는 저 같은 부모는 꿈도 꿀 수 없는 자산입니다.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이 혜택을 받는지 찾아봤습니다. 현행 제도에서는 전체 아파트의 6.3%가 상속세 납부 대상입니다. 18억 원 짜리 아파트가 많지는 않겠지요. 이재명 대표의 안대로 상속세제도가 바뀌면 상속세 납부 대상 아파트는 1.9%로 감소하게 됩니다. 그런데 민주당은 최고상속세율을 인하하자는 국민의힘을 비판합니다. 현행 최고상속세율인 50%를 내는 국민이 955명에 불과하다며 국민의힘의 상속세안은 초부자들을 위한 정책, 자신들의 정책은 중산층을 위한 정책이라고 합니다.
노동을 하든 장사를 하든 사업을 하든 경제활동으로 소득을 얻는 국민은 모두 세금을 냅니다. 그런데 거대 양당이 나서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에는 세금을 면제해 주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국민연금에는 한 푼의 세금도 지원할 수 없으니 연금보험료는 올리고 연금수령액은 삭감하자 합니다.
다음 대통령으로 거론되는 이 대표가 흑묘백묘론을 들고 나왔습니다. 민주당은 중도보수라고도 했습니다. 아마도 진보좌파라고 규정되면 대선에서 불리하다는 판단 때문에 실용적이고 중도적인 면모를 강조하기 위한 행보일 겁니다. 그런데 빠진 게 있습니다. 이재명과 민주당이 만들고 싶은 세상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과거 이재명은 억강부양을 이야기하고 대동세상을 이야기했습니다. 그가 만들고 싶은 세상을 쉽게 설명한 단어들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재명이 만들고 싶은 세상은 보이지 않고 표를 얻기 위해서는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이재명의 입만 보입니다.
윤석열이 파면되어도 윤석열이 뿌린 정책이 파면되지 않는다면 헌법재판소의 파면인용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내란정당과 헌법수호 정당의 정책이 다르지 않고 윤석열 이후의 세상이 윤석열 이전의 세상과 다르지 않다면 국민들은 민주주의도 광장도 신뢰하지 못할 겁니다. 3월 15일 공공운수노조가 윤석열 탄핵 투쟁을 넘어 사회대개혁을 위한 투쟁을 준비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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