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2.27 11:45최종 업데이트 25.02.27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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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 '오마이뉴스 기자 박정훈'과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박정훈', 두 사람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연대를 모색해 나갑니다.[편집자말]
아이가 뒤집기를 했습니다. 뒤집고 나서 자기도 기뻤는지 씩 미소를 짓는데 아이 키우는 행복이 이거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20살이 되면 제 나이가 60, 환갑입니다. 뒤집기는 태어난 지 130일 정도 지나서 했는데, 경제적 자립은 25년은 지나야 할 것 같습니다. 노후가 걱정되는 이유입니다.

요즘 결혼 출산이 늦어져 저와 같은 걱정을 하는 부모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출산을 망설이는 이유 중의 하나도 경제적 부담과 노후걱정일 겁니다. 그러나 제가 믿는 구석이 있습니다. 바로 국민연금입니다. 소득대체율이 40%에 불과하고, 국민연금 재정고갈 문제가 걱정되기는 합니다. 그러나 국가가 공적인 목적으로 운영하는 국민연금이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민간보험보다는 우월할 거라는 최소한의 믿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치인들이 이 믿음을 흔들고 무너트리고 있습니다.

국민연금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이재명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국회-정부 국정협의회 첫 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공동취재사진

지난 20일 여야정 정책협의체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민연금 자동조정장치'를 국회승인을 전제로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자동조정장치는 윤석열의 대표적인 연금개악 공약으로, 우리가 내는 국민연금을 삭감할 수 있는 조항입니다.

2023년 국민연금연구원은 '국민연금 자동조정장치 도입 필요성 및 적용방안'보고서에서 자동조정장치 도입 시 총연금 수령액이 17% 감소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민주당도 알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2024년 9월 5일 국회에서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과 함께 '윤석열 정부 연금개혁 방안 분석 기자간담회'를 개최해 윤석열의 연금개악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한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연구원의 보고서를 토대로 1980년대생과 1992년생에게 자동조정장치를 적용하면 연금이 무려 20% 삭감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김 교수의 분석대로라면 자동조정장치 도입 시 청년들의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32%까지 떨어집니다. 월급 300만 원을 받는 청년 노동자의 경우 현행 제도하에서는 120만 원을 연금으로 받을 수 있는데, 자동조정장치도입을 하면 무려 24만 원이 깎인 96만 원을 받게 되는 겁니다. 한국의 공적연금 소득대체율이 OECD 평균 대비 74% 수준인 걸 감안하면 사실상 국민연금제도가 무너지게 되는 겁니다.

지난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이 '거대 양당 연금개혁 졸속합의 시도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5일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주최로 국회 앞에서 개최한 '거대양당 연금개혁 졸속합의 시도 규탄 기자회견'에서 오종헌 공공운수노조 국민연금지부 지부장이 "민주당이 내란정권 연금개악의 핵심인 자동조정장치를 계승한다면 연금에 있어서는 내란세력과 다를 바 없다"라고 강도 높게 비판한 이유입니다.

노동시민사회단체의 비판에 부담을 느낀 이재명 대표가 자동조정장치를 불수용했다는 언론보도가 나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가 자동조정장치를 불수용하기로 했다'는 언론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을 냈습니다.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한 거대 야당이 국민연금이라는 중차대한 문제 앞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

황당한 것은 이재명 대표가 자동조정장치를 언급하기 일주일 전인 지난 13일 민주당이 국회에서 국민연금 개혁방안에 대한 토론회를 개최한 것입니다. 민주당의 남인순 김남희, 김윤, 조국혁신당의 김선민, 진보당의 전종덕 국회의원은 '공적연금 강화 입법 방향 모색 토론회'라는 제목으로 공동토론회를 개최했습니다.

저도 이 자리에 참석해 특고 플랫폼 프리랜서 노동자들도 직장가입자처럼 사각지대 없이 국민연금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변했습니다. 자동조정장치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고 국민연금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소득대체율을 높여 모든 국민들의 노후를 보장하는 방안과 관련된 다양한 개혁 과제들이 토론되었습니다. 이 정도면 민주당이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더 내고 더 받는 안이 국민이 선호하는 개혁안

지난 1월 3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상담센터 모습.연합뉴스

국민연금 개혁은 국민의 인간다운 노후생활보장이라는 국민연금의 본래목적과 가입자인 국민의 뜻을 존중하면서 논의되어야 합니다. 2023년 국회가 연금특위 공론화위원회를 꾸려 500명의 시민대표단이 국민연금문제에 대해 토론할 수 있도록 한 이유입니다.

논의 초반 시민대표들은 국민연금 재정고갈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재정안정에 집중하는 개혁 안을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시민대표들이 충분한 자료를 제공받고 풍부한 토론을 이어가면서, 공론화위 최종 설문조사에선 '더 내고 더 받는' 개혁안에 대한 선호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보험료를 9%에서 13%를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자는 안입니다.

생각해보면 상식적인 결론입니다. 재정안정을 위해 보험료를 올리려면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와 효용 역시 올라야 합니다. 앞서 언급한 '공적연금 강화 입법 방안 모색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이점을 강조했습니다.

남 교수는 국민연금법에 "국가는 연금 급여의 지급을 보장한다"는 내용을 기술해 국가책임을 명확히 하고, 급여 지급에 필요한 비용을 연금 재정으로 충당할 수 없는 경우 건강보험처럼 국가의 재정 투입이 이루어지도록 명문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연금특위 공론화위원회 시민대표단도 92.1%가 지급 보장 명문화를 찬성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공적연금제도를 신뢰하고 활용하는 것도 부자들입니다. 2022년 <한국경제>는 <"연금 수급액 35만→118만원"... '강남 사모님의 재테크' 정체> 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습니다. 강남에 거주하는 한 시민이 1억 150만 원을 추가 납부해 기존 35만원의 연금을 118만 원으로 받았다는 겁니다. 매달 83만 원씩 더 받게 되는 셈인데, 연금 수령 후 10년 3개월만 더 살면 이득입니다. 국민연금이 부자들의 재테크 수단이 된 것입니다. 문제가 되자 국회는 법을 바꿔서 최대 추납 기간을 10년 미만으로 제한했습니다.

반면, 최저임금 노동자나 단시간 노동자들은 안 그래도 적은 월급에서 국민연금을 떼어가는 걸 부담스러워합니다. 특고 플랫폼 프리랜서 노동자들은 국민연금 전액을 납부해야 해서 경제적 부담이 더 가중됩니다. 이런 와중에 언론과 일부 정치인들은 국민연금이 사라질 것처럼 떠드니 국민연금을 내는 게 더 불안합니다.

최저임금 일자리와 플랫폼 일자리를 전전하던 저 역시 불안한 마음이 컸는데, 한국경제 기사를 보고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가 높아졌습니다. 부자들이 믿고 투자하는 연금을 국가나 정치인들이 함부로 건드리지는 못할 거라는 믿음이 생긴 겁니다. 학자금대출을 갚고 목돈이 생길 때마다 조금씩 추가 납부를 해서 겨우 95만 원 정도의 연금을 맞춰놓았습니다. 정치인들이 무너뜨리고 있는 건 바로 공적연금과 공동체에 대한 국민적 신뢰이고 붕괴된 공동체에서 피해를 보는 건 부자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입니다.

윤석열 이전과 윤석열 이후의 세상이 다르지 않다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상속세 개편과 관련해 진성준 정책위의장과 대화하고 있다.연합뉴스

이재명 대표의 이해하기 어려운 행보는 국민연금뿐만이 아닙니다. 이 대표는 상속세 공제한도를 현행 10억 원에서 18억 원까지 확대하자고 제안하면서 이를 중산층 정책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보증금 7000만 원짜리 임대아파트에 사는 저 같은 부모는 꿈도 꿀 수 없는 자산입니다.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이 혜택을 받는지 찾아봤습니다. 현행 제도에서는 전체 아파트의 6.3%가 상속세 납부 대상입니다. 18억 원 짜리 아파트가 많지는 않겠지요. 이재명 대표의 안대로 상속세제도가 바뀌면 상속세 납부 대상 아파트는 1.9%로 감소하게 됩니다. 그런데 민주당은 최고상속세율을 인하하자는 국민의힘을 비판합니다. 현행 최고상속세율인 50%를 내는 국민이 955명에 불과하다며 국민의힘의 상속세안은 초부자들을 위한 정책, 자신들의 정책은 중산층을 위한 정책이라고 합니다.

노동을 하든 장사를 하든 사업을 하든 경제활동으로 소득을 얻는 국민은 모두 세금을 냅니다. 그런데 거대 양당이 나서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에는 세금을 면제해 주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국민연금에는 한 푼의 세금도 지원할 수 없으니 연금보험료는 올리고 연금수령액은 삭감하자 합니다.

다음 대통령으로 거론되는 이 대표가 흑묘백묘론을 들고 나왔습니다. 민주당은 중도보수라고도 했습니다. 아마도 진보좌파라고 규정되면 대선에서 불리하다는 판단 때문에 실용적이고 중도적인 면모를 강조하기 위한 행보일 겁니다. 그런데 빠진 게 있습니다. 이재명과 민주당이 만들고 싶은 세상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과거 이재명은 억강부양을 이야기하고 대동세상을 이야기했습니다. 그가 만들고 싶은 세상을 쉽게 설명한 단어들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재명이 만들고 싶은 세상은 보이지 않고 표를 얻기 위해서는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이재명의 입만 보입니다.

윤석열이 파면되어도 윤석열이 뿌린 정책이 파면되지 않는다면 헌법재판소의 파면인용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내란정당과 헌법수호 정당의 정책이 다르지 않고 윤석열 이후의 세상이 윤석열 이전의 세상과 다르지 않다면 국민들은 민주주의도 광장도 신뢰하지 못할 겁니다. 3월 15일 공공운수노조가 윤석열 탄핵 투쟁을 넘어 사회대개혁을 위한 투쟁을 준비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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