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2.26 06:43최종 업데이트 25.02.26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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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이 끝난 다음 날인 24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의 연방의회 앞에 독일 국기가 펄럭이고 있다. 연합뉴스

독일이 선택을 마쳤다. 23일 치러진 연방의회 총선에서 기독교민주연합(CDU/CSU)이 29.5%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다. 이는 독일 정치에서 전통적인 보수 정당이 다시 주도권을 잡았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번 선거가 남긴 큰 충격은 그 뒤에 있었다.

극우 정당 독일을위한대안(AfD)이 20.8%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원내 제2당으로 도약했다. 이는 독일 정치의 새로운 판도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반면, 집권당이었던 사회민주당(SPD)은 18.2%로 3위로 밀려나며 입지가 크게 흔들렸다. 그 외에도 녹색당(Grüne)이 8.9%, 좌파당(Die Linke)이 4.7%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좌파당에서 분리되어 나온 신생 정당 자라바겐크네히트연합(BSW)은 4.972%를 얻었으나, 연방의회 진입 기준인 5%를 넘지 못하며 문턱에서 좌절됐다. 단 0.028%p 차이로 원내 진입이 무산된 이 결과는 단순한 수치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번 선거에서 좌파 정당들은 분열했고, 그 사이 AfD는 유권자들의 불만을 흡수하며 강력한 대안 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과거 SPD가 장악했던 지역에서도 AfD가 돌풍을 일으키며 기존 정치 질서를 흔들었다.

반면, 새로운 대안으로 기대를 모았던 BSW는 끝내 원내 진입에 실패하며 좌파의 재편 기회마저 사라졌다. 현재 연립정부를 구성할 수 있는 조합을 보면, SPD와 녹색당, 좌파당만으로는 과반을 확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독일의 차기 정부는 'CDU/CSU - SPD 대연정(GroKo)'이라는 익숙한 조합으로 구성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 산술적으로는 몇 가지 시나리오가 더 가능하지만, 정치적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조합이다.

BSW의 진입 실패로 인한 변화

24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총선 후 자라 바겐크네히트 자라바겐크네히트연합(BSW) 대표가 기자회견을 마친 후 퇴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BSW가 연방의회에 진입하지 못한 것은 단순한 선거 패배가 아니다. 이는 좌파 정당들의 세력 재편을 어렵게 만들고, SPD의 정치적 힘을 약화시키며, 동시에 AfD의 성장세를 견제할 중요한 균형추를 잃었다는 뜻이다.

만약 BSW가 원내에 진입했다면, SPD는 CDU/CSU와의 연정 협상에서 보다 강한 진보적 입장을 내세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BSW가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SPD는 더욱 보수적인 연정 구도 속에서 정치적 유연성을 잃어버렸다. 결국 향후 몇 년 동안 독일 정치의 중심축은 점점 보수적인 방향으로 기울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BSW의 실패는 좌파 진영의 분열을 한층 심화시켰다. 이민자 문제에 민감한 노동자 계층이 극우 AfD로 이동하는 흐름도 더욱 뚜렷해졌다. 이는 BSW의 원내 진입 실패가 부른 중요한 결과들이다.

독일의 선거제도에서는 5%를 넘지 못한 정당에 투표된 표가 의석 배분에서 제외되므로, 결과적으로 원내 진입한 정당들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그 결과는 연정 과정에서 CDU의 협상력을 더 강화하고, SPD를 수세적 입장으로 내몰게 된다.

독일의 선거제도가 신생 정당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현실이 다시 한번 드러난 셈이다. 기존의 거대 정당들이 연정을 통해 영향력을 유지하는 구조가 확인됐으며, 결국 SPD는 다시 CDU와 손을 잡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드러냈다.

AfD는 왜 성공했나

24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독일을위한대안(AfD) 공동대표인 티노 크루팔라와 앨리스 바이델이 총선 후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연합뉴스

AfD의 급부상은 단순한 정치적 사건이 아니다. 이는 독일 사회 내부에서 오랫동안 쌓여온 불만과 불안이 폭발한 결과다. 경제적 불안, 전통 정당에 대한 불신, 그리고 이민 문제에 대한 우려가 AfD를 독일 정치의 중심으로 밀어 올렸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하는 대목은 과거 SPD의 강력한 지지 기반이었던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 지역에서 많은 유권자들이 AfD로 이동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미국의 러스트벨트에서 민주당이 노동자 계층의 지지를 잃었던 현상과 유사하다.

산업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면서 뒤스부르크와 같은 과거의 공업지대에서 실업률이 크게 늘었다. 일자리가 불안해지고 저임금 일자리만 늘어나는 상황에서 그들의 지지세를 등에 업고 있던 SPD도 특별한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여기에 이민 문제가 기름을 끼얹는다. AfD는 독일 정부의 이민 정책을 강력히 반대하며 '독일 우선' 기조를 내세웠다. 이는 특히 실업의 불안 속으로 내몰린 저소득층과 저학력층 유권자들에게 강하게 어필했다.

흥미로운 점은, 러스트벨트 지역이 최근 들어 갑자기 이민자가 급증한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독일이 경제적으로 부흥하던 시기부터 튀르키예와 이탈리아에서 온 이민자들이 철강 공업지대에서 많은 일자리를 차지해 왔다. 이는 당시 노동력이 절실히 필요했던 산업 구조를 반영한 결과였다.

그러나 일자리 경쟁이 심화된 현재, 이민자들은 노동력을 제공하는 존재가 아니라 복지 혜택을 받는 대상으로 내몰리고 있다. 산업 성장기에는 이민 노동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사회의 필수적인 구성원이 아닌, 비용으로 취급되는 현실에 직면한 것이다.

이는 근대의 산물인 시민정신과 자본주의가 불균형하게 발전한 결과다. 노동이 권리가 아닌 상품으로 취급되면서, 수요가 없는 노동은 무가치한 것으로 전락한다. 결국, 무가치한 상품으로 전락한 이민자들은 시민권마저 위협을 받는다.

노동할 기회를 잃은 시민들은 그 책임을 이민자에게 돌린다. 이는 노동권과 시민권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현대 사회의 단면이며, 그 불균형의 대가를 소수의 이민 노동자들이 떠안고 있다. 그리고 AfD와 같은 극우 정당은 이러한 불안과 분노를 흡수하며 정치적 입지를 넓혀간다.

이번 독일 총선은 경제적 불안과 사회적 단절이 어떻게 극우 정치의 토양이 되는지를 다시 한번 증명했다. 불평등이 심화되고 기존 정치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수록, 사람들은 더욱 급진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독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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