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콩코드 광장에서 열린 2024 파리 패럴림픽 개막식에서 대한민국 선수단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더니. 통합 개최에 관한 의문을 가진 이는 나뿐만이 아니었다. <패러렐>(Parallel)은 2018년에 제작된 최창현 감독의 다큐멘터리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패럴림픽계 관계자의 다양한 인터뷰가 담겨 있다.
패럴림픽과 올림픽이 함께 열리지 않는 이유에 관해 자세한 내막이 나오진 않지만,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는 유추할 수 있다.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 미디어 매니저 크레이그 스펜스는 100년 후라면 패럴림픽과 올림픽 통합 개최 가능성이 있지만, 20년 후라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했다.
일본 패럴림픽 센터에 근무했던 남인모씨는 "패럴림픽 쪽에서 종사하는 입장으로서 정말 시스템적으로 통합되기에는 힘들다"라고 했다. 올림픽과 패럴림픽을 주관하는 단체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IPC로 구분되어 있기 때문에 행정적, 운영적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우사인 볼트가 100m 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날에 패럴림픽 경기 중 가장 큰 경기를 개최할 수도 있겠죠. 그다음 날 신문의 첫 번째 면을 장식하는 뉴스는 무엇일까요?"
다큐멘터리에서 스펜스가 던진 질문이 상징적이다. 이는 패럴림픽이 중계되지 않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지 않을까?
장애인 스포츠 중계를 지상파 채널에서 거의 본 적이 없다. 검색해 보니 중계가 아예 안 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전국장애인동계체전은 휠체어컬링 경기만 새벽 시간대에 방송되었다. 나머지는 인터넷으로 온라인 중계만 이뤄졌다. 패럴림픽도 마찬가지다. 올림픽 기간에 올림픽 경기 중계와 내용으로 방송이 도배되다시피 하지만, 패럴림픽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방송 중계 여부는 시청률이 결정하고, 시청률은 광고와 직결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기가 중계 여부의 열쇠다. 최근 이노우에 나오야와 김예준의 세계 4대 기구 복싱 챔피언전이 열린 바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복싱은 이미 비주류 종목이 된 지 오래다. 결국 세계 4대 기구 통합 챔피언전은 생중계되지 않고 녹화중계로 방송되었다. 패럴림픽과 복싱은 비인기 종목이기 때문에 생중계되지 않는다.
올림픽은 전 세계인의 축제 아닌가. 누군가를 배제한 축제가 있을 수 있는가. 현실적인 문제에도 패럴림픽은 지금보다 더 많이 중계되고, 더 나아가 올림픽과 통합 개최되어야 한다. 인식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대중교통을 비롯한 도시 환경이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함께 마주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패럴림픽 중계는 장애인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고 이는 결과적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는 사회에 이바지할 것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즐기고 경쟁하는 스포츠
현실이 너무 절망적이지만은 않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2023년에는 KBS배 '어울림픽'이 열렸다. 어울림픽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한 팀을 이뤄 양궁 대회를 치렀는데, 어울림과 패럴림픽의 합성어다. 장애인의 날을 맞아 이벤트성으로 열렸지만, 양궁이란 종목 특성상 충분히 함께 팀을 이루거나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독일 하노버 사격월드컵의 모습
다큐멘터리 <패러렐> 유튜브 갈무리
나아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경기를 치르는 종목도 있다. 독일 하노버 사격 월드컵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사격으로 경쟁한다. 함께 시합장에서 팀을 이루거나 경쟁하는 것도 아예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새로운 종목을 발굴하고 생활체육 문화나 교육 현장에 자연스레 깃들도록 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류은숙의 책 <아무튼, 피트니스>에는 '역통합'이라는 특수교육학 용어가 나온다. 역통합은 장애인을 위한 교육 환경에 비장애인을 배치하는 교육활동 모형이다. 예를 들면 휠체어 농구가 있다.
휠체어는 다리가 부자유해서 앉는 도구가 아니라 자유롭기 위해 쓰는 도구가 된다. 그렇게 휠체어 농구는 휠체어를 역동적으로 다루는 능력과 슛을 넣는 능력이 어우러진 운동이 된다. 이를 역통합이라 한다. - <아무튼, 피트니스> 139쪽
일본 장애인배구협회 회장인 마노 요사히사는 "좌식 배구 같은 경우, 비장애인이 함께해도 된다"라고 말한 바 있다. 배구, 사격, 양궁, 휠체어농구 등은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할 수 있는 종목이다. 교육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도입해서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올림픽이 '모두의 축제'가 되려면
패럴림픽은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지향하고 올림픽은 평화를 상징한다. 갈수록 갈등하고 분열하는 사회에서 '함께'라는 가치가 더욱 절실해진다. 스포츠에 힘이 있다고 믿는다. 복싱만 하더라도 링 위에서는 치열하게 싸우지만, 종이 울리면 포옹하며 인사를 나눈다. 누구보다 서로가 흘린 땀의 고통과 진실함을 알기 때문이다. 이 공감대는 링 위에 서는 둘뿐만 아니라 경기를 지켜보던 관객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우리가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 아닐까.
1896년 제1회 아테네올림픽에서는 단 한 명의 여자 선수도 없었다. 2024년 제33회 파리올림픽 여성의 비율은 정확히 50%가 되었다. 인종차별정책 철폐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넬슨 만델라는 1995년에 열린 럭비 월드컵을 통해 흑인과 백인의 화합을 도모했다.
인종 간 평등, 성평등 영역이 진보해 온 것처럼 올림픽과 스포츠 영역의 모습도 달라지고 있다. 당장 통합 개최가 되지 않더라도 패럴림픽 방송 중계를 통해 장애인 스포츠가 우리에게 조금 더 친숙하게 다가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결국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성화를 봉송하길 바란다. 시상대에 장애인 선수와 비장애인 선수가 함께 오르는 장면도 상상해 본다. 그때의 올림픽은 '모두의 축제'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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