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2.28 11:29최종 업데이트 25.02.28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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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정이 9일 중국 하얼빈 헤이룽장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쇼트트랙 여자 1000m 결승에서 선두로 질주 하고 있다. 최민정은 이 경기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연합뉴스

소복이 쌓인 하얀 눈을 밟는 건 내 겨울 취미다. 눈 덮인 지면을 발로 디딜 때마다 사박사박 나는 소리가 묘하게 마음을 안정시키기 때문이다. 아내와 취미를 함께 즐기고자 강원도 평창 오대산 자락에 있는 월정사로 향했다.

평창은 2018 동계 올림픽을 개최한 지역이다. 우리가 묵은 숙소 1층 로비는 마치 올림픽 전시관 같았다. 김연아 선수가 신은 스케이팅 신발과 우사인 볼트가 신은 신발이 전시되었고 올림픽의 역사 이야기가 적혀 있다. 이게 무슨 우연일까. 들어가 TV를 켜자마자 2025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쇼트트랙 경기가 방영되고 있었다. 의도치 않은 동계스포츠 콘셉트의 여행인가.


여행에서 돌아올 즈음, 전국장애인동계체전이 평창에서 2월 11일부터 14일까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전국동계체전은 2월 18일부터 21일까지 강원특별자치도를 중심으로 열렸다. 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전국체전, 나아가 패럴림픽(장애인이 참가하는 올림픽은 패럴림픽이라고 부른다)과 올림픽은 따로 열리는 걸까? 통합해서 열 수는 없는 걸까?

패럴림픽과 올림픽이 따로 열리는 이유

종목이 다르면 이에 따라 시설과 장비가 달라지면서 시설 운영에 차이가 있지 않을까? 결론적으로 종목의 문제는 아니다. 역사적 유래나 주관 단체가 다르지만 패럴림픽 종목과 올림픽 종목은 매우 유사하다. 올림픽에 없는 종목은 보치아와 골볼뿐이다.

보치아는 컬링과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공을 굴려 표적구에 가까이 보내 점수를 얻는 스포츠다. 중증장애인이 참여할 수 있는 종목이다. 뇌성마비 혹은 이에 준하는 신경질환 장애가 있어 휠체어를 이용하는 선수에게 참가 자격을 부여한다. 골볼은 핸드볼과 유사하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종목이다. 소리가 나는 공을 핸드볼처럼 상대 골대에 넣는 스포츠다. 보치아와 골볼만의 경기장 규격과 장비가 있지만 특별한 시설이 필요할 정도는 아니다.

나머지 종목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양궁, 육상, 유도, 사격, 수영, 축구, 농구 등 올림픽 종목과 유사하다. 눈에 띄는 차이점은 휠체어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종목별로 규격과 장비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패럴림픽과 올림픽은 시설 면에서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시설이나 종목 때문에 올림픽과 패럴림픽을 따로 여는 건 아니다.

패럴림픽과 올림픽의 개최, 통합해야 하는 이유

2024년 8월 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콩코드 광장에서 열린 2024 파리 패럴림픽 개막식에서 대한민국 선수단이 입장하고 있다.연합뉴스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더니. 통합 개최에 관한 의문을 가진 이는 나뿐만이 아니었다. <패러렐>(Parallel)은 2018년에 제작된 최창현 감독의 다큐멘터리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패럴림픽계 관계자의 다양한 인터뷰가 담겨 있다.

패럴림픽과 올림픽이 함께 열리지 않는 이유에 관해 자세한 내막이 나오진 않지만,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는 유추할 수 있다.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 미디어 매니저 크레이그 스펜스는 100년 후라면 패럴림픽과 올림픽 통합 개최 가능성이 있지만, 20년 후라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했다.

일본 패럴림픽 센터에 근무했던 남인모씨는 "패럴림픽 쪽에서 종사하는 입장으로서 정말 시스템적으로 통합되기에는 힘들다"라고 했다. 올림픽과 패럴림픽을 주관하는 단체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IPC로 구분되어 있기 때문에 행정적, 운영적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우사인 볼트가 100m 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날에 패럴림픽 경기 중 가장 큰 경기를 개최할 수도 있겠죠. 그다음 날 신문의 첫 번째 면을 장식하는 뉴스는 무엇일까요?"

다큐멘터리에서 스펜스가 던진 질문이 상징적이다. 이는 패럴림픽이 중계되지 않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지 않을까?

장애인 스포츠 중계를 지상파 채널에서 거의 본 적이 없다. 검색해 보니 중계가 아예 안 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전국장애인동계체전은 휠체어컬링 경기만 새벽 시간대에 방송되었다. 나머지는 인터넷으로 온라인 중계만 이뤄졌다. 패럴림픽도 마찬가지다. 올림픽 기간에 올림픽 경기 중계와 내용으로 방송이 도배되다시피 하지만, 패럴림픽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방송 중계 여부는 시청률이 결정하고, 시청률은 광고와 직결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기가 중계 여부의 열쇠다. 최근 이노우에 나오야와 김예준의 세계 4대 기구 복싱 챔피언전이 열린 바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복싱은 이미 비주류 종목이 된 지 오래다. 결국 세계 4대 기구 통합 챔피언전은 생중계되지 않고 녹화중계로 방송되었다. 패럴림픽과 복싱은 비인기 종목이기 때문에 생중계되지 않는다.

올림픽은 전 세계인의 축제 아닌가. 누군가를 배제한 축제가 있을 수 있는가. 현실적인 문제에도 패럴림픽은 지금보다 더 많이 중계되고, 더 나아가 올림픽과 통합 개최되어야 한다. 인식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대중교통을 비롯한 도시 환경이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함께 마주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패럴림픽 중계는 장애인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고 이는 결과적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는 사회에 이바지할 것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즐기고 경쟁하는 스포츠

현실이 너무 절망적이지만은 않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2023년에는 KBS배 '어울림픽'이 열렸다. 어울림픽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한 팀을 이뤄 양궁 대회를 치렀는데, 어울림과 패럴림픽의 합성어다. 장애인의 날을 맞아 이벤트성으로 열렸지만, 양궁이란 종목 특성상 충분히 함께 팀을 이루거나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독일 하노버 사격월드컵의 모습다큐멘터리 <패러렐> 유튜브 갈무리

나아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경기를 치르는 종목도 있다. 독일 하노버 사격 월드컵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사격으로 경쟁한다. 함께 시합장에서 팀을 이루거나 경쟁하는 것도 아예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새로운 종목을 발굴하고 생활체육 문화나 교육 현장에 자연스레 깃들도록 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류은숙의 책 <아무튼, 피트니스>에는 '역통합'이라는 특수교육학 용어가 나온다. 역통합은 장애인을 위한 교육 환경에 비장애인을 배치하는 교육활동 모형이다. 예를 들면 휠체어 농구가 있다.

휠체어는 다리가 부자유해서 앉는 도구가 아니라 자유롭기 위해 쓰는 도구가 된다. 그렇게 휠체어 농구는 휠체어를 역동적으로 다루는 능력과 슛을 넣는 능력이 어우러진 운동이 된다. 이를 역통합이라 한다. - <아무튼, 피트니스> 139쪽

일본 장애인배구협회 회장인 마노 요사히사는 "좌식 배구 같은 경우, 비장애인이 함께해도 된다"라고 말한 바 있다. 배구, 사격, 양궁, 휠체어농구 등은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할 수 있는 종목이다. 교육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도입해서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올림픽이 '모두의 축제'가 되려면

패럴림픽은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지향하고 올림픽은 평화를 상징한다. 갈수록 갈등하고 분열하는 사회에서 '함께'라는 가치가 더욱 절실해진다. 스포츠에 힘이 있다고 믿는다. 복싱만 하더라도 링 위에서는 치열하게 싸우지만, 종이 울리면 포옹하며 인사를 나눈다. 누구보다 서로가 흘린 땀의 고통과 진실함을 알기 때문이다. 이 공감대는 링 위에 서는 둘뿐만 아니라 경기를 지켜보던 관객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우리가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 아닐까.

1896년 제1회 아테네올림픽에서는 단 한 명의 여자 선수도 없었다. 2024년 제33회 파리올림픽 여성의 비율은 정확히 50%가 되었다. 인종차별정책 철폐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넬슨 만델라는 1995년에 열린 럭비 월드컵을 통해 흑인과 백인의 화합을 도모했다.

인종 간 평등, 성평등 영역이 진보해 온 것처럼 올림픽과 스포츠 영역의 모습도 달라지고 있다. 당장 통합 개최가 되지 않더라도 패럴림픽 방송 중계를 통해 장애인 스포츠가 우리에게 조금 더 친숙하게 다가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결국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성화를 봉송하길 바란다. 시상대에 장애인 선수와 비장애인 선수가 함께 오르는 장면도 상상해 본다. 그때의 올림픽은 '모두의 축제'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brunch.co.kr/@rulerstic에도 실립니다.단편 다큐멘터리 <패러렐>은 유튜브에 공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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