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 교사들 2: 다름으로 환대하며 존재로 가르치는>
교육공동체벗
어느 문법 시간. 채홍은 용언의 활동에서 어간은 독립적으로 쓰일 수 없고 어미가 있어야 함을 설명한다. 그러자 돌연 한 아이가 웃음을 터트린다. 이어서 몇몇 아이들이 따라 웃기 시작한다. '어미가 있어야 한다'는 말에 웃음보가 터진 것인데, 웃는 이유를 되물어도 여전한 분위기에 채홍은 말한다.
어미가 없으면 안 된다는 건 문법에서만 유효한 이야기라는 것. 실제로 어미(어머니)가 없을 수 있다는 것. 소중한 부모님을 우리 모두 언젠가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하루를 겪을 것이기에, 어미가 없으면 안 된다는 말에 장난스레 웃는 행위를 하지 말자는 것. 그 교실에 어머니가 없는 학생들이 있음을 교사는 알고 있었다.
특히 채홍은 자신이 겪어낸 가난과 우울의 경로를 세밀하게 되짚으며 흔히 교사라고 하면 떠올리는 '중산층 정상 가족, 비장애 이성애자'라는 고착화된 이미지를 허물어낸다. 모범생으로 살다가 삶의 곡절이 비교적 완만한 어른으로 자라 자신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교사들을 볼 학생들의 마음 한편을 읽어낸다.
"어떤 학생들은 바로 그 지점에서 거부감을 느끼기도 한다. 잘 가르치는 선생님, 재미있는 선생님은 많지만 정상성의 울타리를 벗어난 아이들에게 나도 너와 같다고 말해 줄 수 있는 선생님은 많지 않다. 나는 그저 부모님이 두 분 다 계신다는 걸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이성 애인이 있다는 걸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우울증이 있다는 걸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그런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 <별별 교사들 2>, "서로에게 기대어, 무너지지 않기" 채홍의 글 중에서
수치심 느끼게 하던 교육의 순간들
채홍은 질문한다. 퀴어 퍼레이드, 배리어프리 퍼레이드는 있어도 가난한 자들을 위한 퍼레이드는 왜 도무지 생겨나지 않는가. 다른 정체성과 달리 가난이라는 취약성을 매개로 연대하는 일은 왜 어려운 것인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교실에서 살아가는 어린 마음이 삶에 수치심을 느끼는 순간이 왜 존재해야 하는가.
이 대목에서 내 학창 시절 두 장면이 떠올랐다. 모든 학생이 모인 교실에서 차상위계층에 속하는 사람은 손 들어 보라고 했던 중견 교사. 급식비 무료 지원을 받는 학생의 이름을 교실에서 부르던 또 다른 교사는 무심하다 못해 지루한 얼굴이었다. 학생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최소한의 윤리를 가지고 있었다면 그렇게 행동했을까.
그것은 가난을 겪고 안 겪고의 감수성과 별개로 어른이라면 최소한 지녀야 할 도덕일 것이다. 채홍은 그 도덕이 작동하는 교실을 꿈꾸고, 학생이 수치심 대신 자기효능감을 키울 수 있도록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역량을 끊임없이 탐색하는 직업인이다.
<별별 교사들 2>에는 이방인처럼 일하면서도 학생들을 위해 주인의식을 갖고 건강한 학습 네트워크를 만들어내는 교사들의 이야기가 숨 쉰다. 성소수자 친구를 지지하도록 돕는 가이드북 <달라도 괜찮아>로 수업을 연 교사의 경험, 회식에는 정작 부르지 않았음에도 시간강사들의 머릿수만큼 식비를 거짓으로 보고해 값비싼 음식을 주문했다는 교장의 말을 아프게 기억하는 교사의 양심이 담겼다.
이 이야기들이 아프게만 다가오지 않는 것은 왜일까. 이들 교사가 나라는 존재를 학교에서 존엄하게 세우고자 애쓰는 만큼 다양한 학생의 존재 또한 존엄하고 동등하게 바라보는 연습을 애써서 해내기 때문이다. "교육이 '각자에게 고유하고, 존엄한, 일상적 돌봄 관계'로 재발명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아홉 저자는 잃지 않으려 한다.
일찍이 교육학자 프레이리는 <문해교육>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배 언어로 문해교육이 이루어질 경우 문해력이 갖는 성찰, 비판적 사고, 사회적 상호작용의 기능들은 부정되기 때문에 예속 상태에 있던 학습자들은 소외된다."
<별별 교사들>은 지배 언어가 공고한 공교육에 바른 균열을 내어 준다. 부드러우면서도 폭력적인 학교의 권위에 우리가 얼마나 잠식되었는지 섬세하게 묻고, 가려진 존재들을 세운다.
두 권의 책은 억압되었던 교사의 개별성을 살리는 처방전이 되어 줄 것이다. 그 약효는 교실을 같이 살아내는 어린이 한 명, 청소년 한 명과 맞닿을 것이다. 그다음은 각자의 외로움을 발견하게 하고, 종국엔 우리의 존재가 각각 입체적으로 이해될 수 있을 거라고 독자는 믿는다. 그런 교실은 분명히 있다.
다름으로 환대하며 존재로 가르치는
채홍, 이강희, 박병찬, 현유림, 손지은, 배성규, 구윤숙, 조윤주, 보란 (지은이), 교육공동체벗(2024)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