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3.02 19:31최종 업데이트 25.03.02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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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람의 기록을 담은 책을 소개한다. 송곳이 되어 준 작가의 경험과 필자의 지금을 들여다보아 변방에서 안방으로 자리를 넓혀 먹고사는 오늘의 온도를 1℃ 올리고자 한다.[기자말]
교사라는 직업을 입체적으로 이해한 시기는 얼마 되지 않았다. 1980년대 말에 태어난 나는 촌지가 암묵적으로 오가는 초등학생 시절을 지냈다. 제자들이 갖고 온 선물을 교사가 책상에 깔아놓고 품평하는 스승의 날이 익숙했다. 중간고사 성적이 떨어지면 엎드려 뻗어 자세를 시키고 매를 내리치던 담임은 개별 학생이 처한 어려움에 관심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 교사를 만나는 직업을 가진 이후론 그들이 달리 보였다. '방과 후 직장인'이 보였다. 좋은 관리자도 더러 있었지만 교장, 교감에게 시달리는 교사가 많았고 극심해진 학부모 민원에 몸살을 앓았다.


그 와중에 주말에도 학생들을 이끌고 생태, 문학기행을 다녀오는 교사들이 있었다. 사비를 들여 타지로 작가와의 만남을 꾸려 학생들의 견문을 넓히는 데 보람을 느끼는 이도 있었다. 그건 기간제 교사, 정규 교사 직급 따위를 가리지 않았다.

교사라는 직업(자료사진).taypaigey on Unsplash

전인교육을 실천하는 교사를 보면서 뒤늦게 학창 시절 고마운 은사 두 분을 떠올렸다. 고1, 대구에서 서울까지 올라가는 백일장에 드는 교통비를 마련해 준 국어선생님. 학생이 인사하면 거의 유일하게 존댓말로 화답해 준, 바지를 고수했던 멋진 언니 같던 '숏컷'의 선생님.

당시 존댓말을 하던 그 선생님이 '전교조'라는 것, 교사들 사이에서 '은따'로 통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 소문이 학생들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한 줌 존중을 받았으므로.

<별별 교사들 1>: 학생에게서 나다움을 회복한다는 것

2025년, 교사라는 직업은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회자되고 있을까. 어느새 촌지가 없어지고 체벌도 줄었다. 그런데 어쩐지 교사가 설 자리는 더 척박해졌다. 서이초 교사 희생 사건, 학부모 민원으로 담임이 여섯 번 교체된 학교 사건 등 교사를 둘러싼 뉴스의 수위는 더 높아졌다.

그 일들이 일어나기 전에 읽은 <별별 교사들 1>은 '별별'의 사전 풀이 그대로 "보통과 다른 갖가지" 선생님들의 생활을 그린 에세이. 교사를 '교육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직군으로 납작하게 이해되는 현실 속에서 이 책은 2023년 필자가 읽은 교육 에세이 중 단연 최고였다.

<별별 교사들 1>은 으레 교사라고 하면 떠올릴 법한 이미지를 솜사탕처럼 기분 좋게 녹이는 책이다. 대학 졸업장이 없는 교사, ADHD를 겪는 교사, 퀴어 정체성을 가진 교사, 시각장애를 가진 교사 등 아홉 사람의 학교생활이 '평범하고 다양하게' 그려져 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학교에서 '나'라는 고유함을 잃지 않고 살아낼 수 있다고 믿으며 버텨온 존재들.

<별별 교사들>교육공동체벗

이 책에 수록된 김헌용의 글 <교무실의 이방인>은 독자로서 '최애'하는 에피소드다.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만연한 동료들 사이에서 중등 영어교사 김헌용은 교사를 있는 그대로 보는 학생들에게 희망을 얻어 왔음을 고백한다.

어느 날, 시각장애를 가진 저자에게 한 무리 학생들이 찾아온다. 학생들은 사회참여토론의 일환으로 인터뷰를 요청했고 김헌용은 수락한다. 시간이 흘러 한 아침, 그는 출근길에 점자유도블록이 새롭게 깔렸음을 발견한다.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인터뷰를 했던 학생들이 교사의 출근길에 점자블록을 깔아달라고 구청에 민원을 넣은 것.

그동안 장애 교사를 짐처럼 취급하며 은근한 차별을 가해 온 교육현장에서, 김헌용은 가슴이 벅차오른다. '자신의 일부'를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학생들에게 큰 배움을 얻는다. 그는 학생들의 목소리로 세워진 점자블록을 밟으며 기쁘게 출근한다.

다른 요일, 그는 눈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파서 홍채 렌즈를 빼고 교실에 도착한다. 교사는 학생들이 하얗게 변해버린 오른쪽 눈동자를 보고 놀라진 않을지 가슴을 졸인다. 고민 끝에 교실에서 가장 반항적인 한 아이에게 자기 눈이 이상하지 않냐고 묻고 뜻밖의 대답을 얻는다.

"에이, 뭘 그런 걸 신경 쓰세요? 그게 선생님 매력이죠."

김헌용은 자신을 키운 것이 오히려 '장애'임을, 이를 존중하는 교실에서 살아낸 하루들을 보여준다. '별의별 교사의 사투'를 통해 정상성에 대한 족쇄를 풀고, 어쩌면 남들과 다른 자신을 비슷하게 감추고 살아가는 학생들의 상처를 끌어안는다. 우리 사회가 '별별 시민'으로 이뤄져 있다는 잊기 쉬운 자명한 사실을 기억하게 한다.

<별별 교사들 2>: 함부로 상처 내지 않는 교실 만들기

2024년 겨울, <별별 교사들 2>가 출간되었다. 기간제 교사, 장애 교사, 아픈 가족을 돌보거나 가난에 관한 트라우마를 앓은 교사 등 여전히 다양한 층위의 교사가 등장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근하는' 생활을 진솔하게 전한다. 이들은 다양성을 고려하자는 교육목표와 그렇지 못한 교육현장 사이를 유영하며 때론 위태롭고 당당하게 뻗어나간 삶의 사유를 상세히 밝힌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중등 국어교사 채홍의 이야기. 채홍은 중국 집에서 배달하는 아버지와 대인기피증과 망상 장애를 가진 어머니 사이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그는 보일러가 들어오지 않는 방 안에서 드라이기로 뜨거운 바람을 쐬며 한겨울을 나고, 교사가 되고자 주야장천 공부한다. 채홍은 부모의 사랑을 먹고 자라 마침내 임용고시에 합격한다.

교사가 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그의 어머니는 암 투병을 하다가 돌아가신다. 저자는 자신이 "사람들의 어떤 말들을 그냥 웃어넘기지 못하는" 성격이 형성된 배경을 담담하게 회고한다. 가난한 학생이었던 채홍은 이제 교사가 되어 교실로 출근해 학급 내 학생이 또 다른 학생에게 상처를 주는 장면을 기민하게 감지할 수 있게 된다.

<별별 교사들 2: 다름으로 환대하며 존재로 가르치는>교육공동체벗

어느 문법 시간. 채홍은 용언의 활동에서 어간은 독립적으로 쓰일 수 없고 어미가 있어야 함을 설명한다. 그러자 돌연 한 아이가 웃음을 터트린다. 이어서 몇몇 아이들이 따라 웃기 시작한다. '어미가 있어야 한다'는 말에 웃음보가 터진 것인데, 웃는 이유를 되물어도 여전한 분위기에 채홍은 말한다.

어미가 없으면 안 된다는 건 문법에서만 유효한 이야기라는 것. 실제로 어미(어머니)가 없을 수 있다는 것. 소중한 부모님을 우리 모두 언젠가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하루를 겪을 것이기에, 어미가 없으면 안 된다는 말에 장난스레 웃는 행위를 하지 말자는 것. 그 교실에 어머니가 없는 학생들이 있음을 교사는 알고 있었다.

특히 채홍은 자신이 겪어낸 가난과 우울의 경로를 세밀하게 되짚으며 흔히 교사라고 하면 떠올리는 '중산층 정상 가족, 비장애 이성애자'라는 고착화된 이미지를 허물어낸다. 모범생으로 살다가 삶의 곡절이 비교적 완만한 어른으로 자라 자신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교사들을 볼 학생들의 마음 한편을 읽어낸다.

"어떤 학생들은 바로 그 지점에서 거부감을 느끼기도 한다. 잘 가르치는 선생님, 재미있는 선생님은 많지만 정상성의 울타리를 벗어난 아이들에게 나도 너와 같다고 말해 줄 수 있는 선생님은 많지 않다. 나는 그저 부모님이 두 분 다 계신다는 걸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이성 애인이 있다는 걸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우울증이 있다는 걸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그런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 <별별 교사들 2>, "서로에게 기대어, 무너지지 않기" 채홍의 글 중에서

수치심 느끼게 하던 교육의 순간들

채홍은 질문한다. 퀴어 퍼레이드, 배리어프리 퍼레이드는 있어도 가난한 자들을 위한 퍼레이드는 왜 도무지 생겨나지 않는가. 다른 정체성과 달리 가난이라는 취약성을 매개로 연대하는 일은 왜 어려운 것인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교실에서 살아가는 어린 마음이 삶에 수치심을 느끼는 순간이 왜 존재해야 하는가.

이 대목에서 내 학창 시절 두 장면이 떠올랐다. 모든 학생이 모인 교실에서 차상위계층에 속하는 사람은 손 들어 보라고 했던 중견 교사. 급식비 무료 지원을 받는 학생의 이름을 교실에서 부르던 또 다른 교사는 무심하다 못해 지루한 얼굴이었다. 학생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최소한의 윤리를 가지고 있었다면 그렇게 행동했을까.

그것은 가난을 겪고 안 겪고의 감수성과 별개로 어른이라면 최소한 지녀야 할 도덕일 것이다. 채홍은 그 도덕이 작동하는 교실을 꿈꾸고, 학생이 수치심 대신 자기효능감을 키울 수 있도록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역량을 끊임없이 탐색하는 직업인이다.

<별별 교사들 2>에는 이방인처럼 일하면서도 학생들을 위해 주인의식을 갖고 건강한 학습 네트워크를 만들어내는 교사들의 이야기가 숨 쉰다. 성소수자 친구를 지지하도록 돕는 가이드북 <달라도 괜찮아>로 수업을 연 교사의 경험, 회식에는 정작 부르지 않았음에도 시간강사들의 머릿수만큼 식비를 거짓으로 보고해 값비싼 음식을 주문했다는 교장의 말을 아프게 기억하는 교사의 양심이 담겼다.

이 이야기들이 아프게만 다가오지 않는 것은 왜일까. 이들 교사가 나라는 존재를 학교에서 존엄하게 세우고자 애쓰는 만큼 다양한 학생의 존재 또한 존엄하고 동등하게 바라보는 연습을 애써서 해내기 때문이다. "교육이 '각자에게 고유하고, 존엄한, 일상적 돌봄 관계'로 재발명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아홉 저자는 잃지 않으려 한다.

일찍이 교육학자 프레이리는 <문해교육>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배 언어로 문해교육이 이루어질 경우 문해력이 갖는 성찰, 비판적 사고, 사회적 상호작용의 기능들은 부정되기 때문에 예속 상태에 있던 학습자들은 소외된다."

<별별 교사들>은 지배 언어가 공고한 공교육에 바른 균열을 내어 준다. 부드러우면서도 폭력적인 학교의 권위에 우리가 얼마나 잠식되었는지 섬세하게 묻고, 가려진 존재들을 세운다.

두 권의 책은 억압되었던 교사의 개별성을 살리는 처방전이 되어 줄 것이다. 그 약효는 교실을 같이 살아내는 어린이 한 명, 청소년 한 명과 맞닿을 것이다. 그다음은 각자의 외로움을 발견하게 하고, 종국엔 우리의 존재가 각각 입체적으로 이해될 수 있을 거라고 독자는 믿는다. 그런 교실은 분명히 있다.


다름으로 환대하며 존재로 가르치는

채홍, 이강희, 박병찬, 현유림, 손지은, 배성규, 구윤숙, 조윤주, 보란 (지은이), 교육공동체벗(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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