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2.24 09:45최종 업데이트 25.02.24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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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 여의도 국회에 투입된 무장 군인들.연합뉴스/로이터

"예전보다 무기력한 마음이 들고 머리가 멍해지는 때가 많지 않나요?" 얼마 전 머리를 자르다 미용사와 나눈 이야기다. 그랬더니 박수 소리와 함께 나만 그런 게 아니었냐는 답이 돌아왔다.

예전의 기준이 언제일까. 바로 '내란의 밤'으로 불리는 지난해 12월 3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한국 사회는 전례 없는 상황을 맞이했다. 특히 나와 비슷한 또래에게는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는 것도 국회에 군대가 들이닥치는 것도 모두 낯선 광경이었다.


첫 탄핵 가결 불발로 시한폭탄 수준의 불안정한 인물을 대통령으로 둔 채 초조한 시간을 보냈던 것도, 결국 직무가 정지된 대통령이 수사기관 조사에 협조하지 않다가 체포영장을 피해 숨어버리는 걸 목격하는 것도 모두 처음 겪는 일이었다. 이로 인해 일상이 변한 사람들이 생기는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종종 "작년 12월 3일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라고 질문한다. 그리고 어떤 마음이었는지도 묻는다. 개인적으로 역사적인 순간에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지 듣는 걸 좋아한다. 역사적 사건만큼이나 기록해 둘 가치가 있는 소중한 경험이라 생각한다.

나의 경우 잠시 휴가를 위해 서울을 떠나 부모님 집에 있었다. 그날 저녁 가족들과 와인을 마시고 일찍 잠에 들려다 온갖 단톡방에 난리가 난 걸 봤다. 그리고 뉴스를 틀었던 기억이 있다.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가 생중계되고 있었다. 약간의 술기운 때문인지 처음에는 그저 어안이 벙벙했다.

내란의 밤과 그 이후

사실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나의 첫 반응은 웃음이었다. 아마 술을 마시지 않은 상태라도 반응은 똑같았을 것이다. 윤석열이 너무나 평소의 윤석열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계엄 선포라는 무시무시한 일을 저지른다면 평소보다 더 비장하고 진중한 모습을 보일 법한데 그런 면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계엄 포고령을 듣는 순간 마음이 달라졌다. 정치 활동은 물론 시민사회 활동과 언론 활동을 모두 금지하며 이를 어길 경우 영장 없이 체포와 압수 수색을 진행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직업이 인권단체 활동가이고 칼럼을 기고하는 나로서는 실질적인 위협이 느껴지는 이야기였다.

하필 다음날 다시 서울로 돌아가 사무실로 복귀할 예정이었다. 평소에는 그런 이야기를 잘 하지 않던 부모님이 내 팔을 붙들고 하루만 더 늦게 돌아가면 안 되겠냐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다행히도 국회는 신속히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가결되었고 심판이 진행 중이니 당장의 큰 위험은 일단 봉쇄된 셈이다. 물론 이후에도 법원 습격같이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긴 했지만 어쨌든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은 일상으로 복귀했다.

어느 정도 거리가 생기니 사람들과 이 일을 놓고 농담하기도 했다. 설마 나 같이 눈에 안 띄는 사람도 잡아가려 했을까? 그랬다 해도 내 순서는 한참 뒤였을 걸. 앞사람들 다 잡혀가는 동안 난 얼른 도망가야지.

진심은 아니고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었으니 할 수 있는 농담이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무력감과 자괴감이 들었다. 지금 이 시대에 이런 농담을 하고 있으리라고 예전에는 상상이나 했을까.

시국이 마음에 준 영향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대표자들이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파면과 내란종식을 촉구하고 있다.권우성

시간이 흘러 탄핵 국면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어마어마하게 말도 안 되는 일이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버렸다. 그리고 이런 일이 개인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탄핵 이후 당시 정황과 일의 경과를 다룬 뉴스들이 쏟아졌지만 나는 대부분 읽지 않았다. 그냥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너무나 많은 기사가 쏟아지니 피로감이 들었던 걸까. 아니면 좋은 소식이라곤 하나 없는 뉴스를 보고 듣게 될 부정적 감정을 회피하려고 그랬을까.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글도 잘 쓰지 않았고 한동안은 일을 포함해 생활 전반에 열정이 식은 기분이었다. 활기가 사라지니 무기력하고 머리가 멍한 건 당연했다.

개인적으로 필요 없는 소비는 지양하고 가계를 알뜰히 꾸리려 노력하는 편이다. 그래서 평소라면 큰 규모의 소비를 잘 하지 않고 해도 이게 정말 필요한지 꼼꼼히 따져본다. 그런데 하루는 별로 필요도 없는 비싼 가전제품을 구경하다 그런 생각을 했다. 그냥 사자, 세상이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인데.

무심결에 그런 생각을 한 후 깨달았다. 마음에 상처를 입은 것이었구나. 세상이 아무리 나빠져도 일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한 사건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는 걸 보았으니. 절대 훼손될 리 없으리라 생각한 원칙과 합의가 손쉽게 위협받는 상황을 목격했으니.

세상이 앞으로도 이런 식이라면 무엇도 열심히 할 필요가 없어진다. 사회가 어떻게 무너질지 아무도 모르니까. 그러니 사람이 무기력해지고 침울해질 수밖에 없다.

혼란한 세상 속 중심을 잡으려면

우리가 스스로의 마음에 대해 질문해 볼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내란과 탄핵의 국면을 지나가는 요즘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한가. 혹시 나와 비슷하게 이유를 알 수 없는 침울함과 무기력함을 느끼는가. 평소보다 머리가 멍한 기분이 드는가. 그렇다면 원인도 비슷할지 모른다. 당신은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비록 원인은 예상해 볼 수 있을지라도 해결책을 이야기 해줄 순 없다. 나는 의사도 상담사도 아니니까. 다만 개인적인 일화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윤석열이 체포영장 집행을 거부하고 칩거했다는 뉴스를 보던 날, 나는 함께 있던 일행에게 어마어마한 분량의 욕설을 쏟아냈다. 정말 원색적인 수준의, 오로지 윤석열에 대한 비난만이 담긴 욕이었다.

하지만 이후 깨달은 건 내 말 속에 그래서 윤석열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윤석열이 하고 있는 잘못이 무엇인지 말해보려 하니 제대로 말을 만드는 게 어려웠다. 아찔한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되는구나. 아무것도 알려고 하지 않으면.

이것이 생활 습관처럼 일부러 뉴스를 보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다. 그렇게 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많이 나아졌다. 어떤 종류의 부정이 저질러졌고 상황이 얼마나 나쁜지를 명확하게 알고 나니 막연한 불안과 무기력이 잠재워졌다. 글을 쓰며 나의 말로 이것을 다시 정리하는 것도 도움이 되었다.

모두에게 이 방법이 해결책일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상황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무엇이라도 계속해 보는 게 중심을 되찾는 방법일 수 있다. 혼란한 세상 가운데 있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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