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대표자들이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파면과 내란종식을 촉구하고 있다.
권우성
시간이 흘러 탄핵 국면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어마어마하게 말도 안 되는 일이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버렸다. 그리고 이런 일이 개인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탄핵 이후 당시 정황과 일의 경과를 다룬 뉴스들이 쏟아졌지만 나는 대부분 읽지 않았다. 그냥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너무나 많은 기사가 쏟아지니 피로감이 들었던 걸까. 아니면 좋은 소식이라곤 하나 없는 뉴스를 보고 듣게 될 부정적 감정을 회피하려고 그랬을까.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글도 잘 쓰지 않았고 한동안은 일을 포함해 생활 전반에 열정이 식은 기분이었다. 활기가 사라지니 무기력하고 머리가 멍한 건 당연했다.
개인적으로 필요 없는 소비는 지양하고 가계를 알뜰히 꾸리려 노력하는 편이다. 그래서 평소라면 큰 규모의 소비를 잘 하지 않고 해도 이게 정말 필요한지 꼼꼼히 따져본다. 그런데 하루는 별로 필요도 없는 비싼 가전제품을 구경하다 그런 생각을 했다. 그냥 사자, 세상이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인데.
무심결에 그런 생각을 한 후 깨달았다. 마음에 상처를 입은 것이었구나. 세상이 아무리 나빠져도 일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한 사건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는 걸 보았으니. 절대 훼손될 리 없으리라 생각한 원칙과 합의가 손쉽게 위협받는 상황을 목격했으니.
세상이 앞으로도 이런 식이라면 무엇도 열심히 할 필요가 없어진다. 사회가 어떻게 무너질지 아무도 모르니까. 그러니 사람이 무기력해지고 침울해질 수밖에 없다.
혼란한 세상 속 중심을 잡으려면
우리가 스스로의 마음에 대해 질문해 볼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내란과 탄핵의 국면을 지나가는 요즘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한가. 혹시 나와 비슷하게 이유를 알 수 없는 침울함과 무기력함을 느끼는가. 평소보다 머리가 멍한 기분이 드는가. 그렇다면 원인도 비슷할지 모른다. 당신은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비록 원인은 예상해 볼 수 있을지라도 해결책을 이야기 해줄 순 없다. 나는 의사도 상담사도 아니니까. 다만 개인적인 일화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윤석열이 체포영장 집행을 거부하고 칩거했다는 뉴스를 보던 날, 나는 함께 있던 일행에게 어마어마한 분량의 욕설을 쏟아냈다. 정말 원색적인 수준의, 오로지 윤석열에 대한 비난만이 담긴 욕이었다.
하지만 이후 깨달은 건 내 말 속에 그래서 윤석열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윤석열이 하고 있는 잘못이 무엇인지 말해보려 하니 제대로 말을 만드는 게 어려웠다. 아찔한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되는구나. 아무것도 알려고 하지 않으면.
이것이 생활 습관처럼 일부러 뉴스를 보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다. 그렇게 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많이 나아졌다. 어떤 종류의 부정이 저질러졌고 상황이 얼마나 나쁜지를 명확하게 알고 나니 막연한 불안과 무기력이 잠재워졌다. 글을 쓰며 나의 말로 이것을 다시 정리하는 것도 도움이 되었다.
모두에게 이 방법이 해결책일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상황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무엇이라도 계속해 보는 게 중심을 되찾는 방법일 수 있다. 혼란한 세상 가운데 있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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