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3.14 16:19최종 업데이트 25.03.14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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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내란 사태 이후, 시민들은 무너진 세계를 구하기 위해 여의도, 광화문, 남태령으로 달려갔습니다. 어두웠던 광장을 빛으로 채운 건 형형색색의 응원봉뿐이 아니었습니다. '2024년 12월 3일 이후의 대한민국은 달라야 한다'는 외침은 광장을 넘어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가 창간 25주년을 맞아 시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전합니다.[편집자말]
"윤석열 내란 사태를 초래한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일까?"

요즘 헌법재판소에서 진행되는 대통령 탄핵 심판을 보며 이런 질문을 자주 던진다. 이 질문은 곧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못하다'는 말로 바꿀 수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곧 민주주의가 원활하게 작동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왜 이렇게 취약할까?성찰과성장(AI생성)

시민단체 '성찰과 성장'은 민주주의 질적 향상을 고민하며 경제 권력, 불평등, 시민참여 제도와 같은 주제에 대해 시민들과 함께 공부해 오고 있다. 하지만 고백하자면, 민주주의를 배우고 실천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그저 책을 읽고 끝나는 일이 아니라, 깊은 고민과 성찰 그리고 실천까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민주주의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민주주의는 단순히 제도에 그치는 게 아니라, 내가 그리고 여러분이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만드는 기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것은 바로 시민의 참여와 노력이다.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계속해서 학습하고 성찰하며, 제도를 이해하고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있어야 유지된다. 만약 이러한 노력이 없다면, 우리 사회는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리는 갈대처럼, 힘 있는 소수가 쥐락펴락하는 사회가 되어버릴 것이다.

공론장, 민주주의를 공고히 하는 비법

2025년 2월, 대한민국은 윤석열의 비상계엄 사태를 계기로 극심한 대립 상태에 놓였다. 윤석열 탄핵을 둘러싼 찬반 대립은 정치적 견해 차이를 넘어, 사상적 내란 상태에 가까운 양상을 보인다. 어떤 상황에서도 배움은 남는다고 했던가. 이 혼란 속에서 우리가 확인한 것은, 공론장이 부족한 사회에서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공론장이 사라진 민주주의는 허상일 뿐성찰과성장(AI생성)

공론장은 시민들이 이성적으로 다양한 의견을 교환하고, 합의를 이루며, 보다 나은 사회를 설계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공론장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 결과, 사회 문제에 대한 논의는 감정적 충돌로만 흐르고, 비판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토론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한나 아렌트는 <공화국의 위기>에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필요한 시민의 역할을 설명하며, '선한 인간'과 '좋은 시민'은 결코 같지 않다고 말한다. 양심에 따라 움직이는 '선한 인간'은 위급한 상황과 예상치 못한 곳에서 등장한다. 즉 사적인 영역에서 나타난다. 하지만 '좋은 시민'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의무를 다하며 공적인 영역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문제는 '좋은 시민'은 언제나 소수라는 것이다.

아렌트의 지적처럼, 위기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등장하는 '선한 인간'만으로는 민주주의를 유지할 수 없다. 민주주의 사회가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꾸준히 공적 삶에 참여하고 토론을 통해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좋은 시민'이 많아져야 한다. 하지만 좋은 시민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민들이 상대를 존중하며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고, 토론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공론장이 있어야만 시민으로서의 자질을 키울 수 있다.

'여러분은 기린 같아요'

'성찰과 성장'은 공론장을 조성하며, 시민들과 함께 민주주의를 배우고 실천하는 장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중 하나가 2024년 12월 진행된 '경제 권력'을 주제로 한 학습 모임이었다.

<경제 권력> 세션 모습성찰과성장

우리는 마이클 샌델의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를 세 차례에 걸쳐 읽고, 각자의 생각을 나누었다. 마지막 모임에서 소감을 나누는 순간, 한 참여자는 상기된 얼굴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는 이번 세션에서 특별한 경험을 했어요. 마치 전설 속의 기린을 만난 것 같아요."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참여자의 말을 듣고 나서 따듯한 미소를 지었다.

"동양 전설에서 기린은 성인이 등장하기 전 나타나는 상징적인 존재라고 하잖아요. 이 모임에서 민주주의와 사회 변화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천하려는 분들을 보면서, 현실 속에서 그런 기린을 만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러분도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기린'이 될 수 있다.성찰과성장(AI생성)

이 말을 들으며 다시금 확신했다. 우리가 사람답게 살기 위한 기반, 즉 민주주의를 누리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계속 배우고 토론하는 공론장이 많아져야 한다. 그리고 이처럼 작은 독서 모임도 민주주의를 만나고 실천하는 중요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공론장이 많아질수록, 민주주의는 단단해진다

뉴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정보만 소비하게 되었고, 알고리즘에 의해 강화된 SNS 피드는 우리의 생각을 더욱 좁히고 있다. 또한 경제적 어려움이 깊어지면서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것'을 추구하기보다는 '내가 먹고 사는 것'이 우선이 되는 현실도 공론장의 부재를 심화하고 있다. 결국, 사회적 의사결정은 소수의 권력층이나 직업 운동가에게 맡겨지고, 대다수 시민은 민주주의의 주권을 잃어가고 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우리는 알고리즘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성찰과성장(AI생성)

아직 희망은 있다. 지금부터 공론장을 만들고, 우리가 공론장에 참여한다면 우리는 다르게 살아갈 수 있다. 정부, 시민사회, 기업 등 사회 각 영역에서 공론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공론장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 정부 주도의 토론회 외에도 시민이 모여 의견을 합리적으로 의견을 나누는 자리라면 모든 공간이 공론장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지역 주민이 운영하는 마을 회의는 지역 사회 문제를 논의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공론장이 된다. 서울시의 주민참여예산제처럼 시민들이 직접 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과정도 공론장의 한 형태다.

또한, 온라인에서도 공론장이 형성될 수 있다. 시민단체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토론 커뮤니티나 공익 언론에서 제공하는 열린 토론 플랫폼도 현대적인 공론장의 예시다.

교육 현장에서도 공론장은 만들어진다. 고등학생들이 직접 사회적 이슈를 토론하는 모의 유엔(모의 UN 회의)이나 대학에서 진행하는 정책 제안 경진대회, 노회찬 재단에서 운영하는 '정치학교' 같은 프로그램도 공론장의 중요한 사례가 될 수 있다.

나아가, 문화예술을 통한 공론장도 존재한다. 연극이나 다큐멘터리 상영 후 진행되는 관객과의 대화, 거리에서 펼쳐지는 퍼포먼스와 집회,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공유하는 시민 영화제와 북토크도 공론장이라 볼 수 있다.

이처럼 공론장은 특정한 형식에 국한되지 않고, 오프라인과 온라인, 공식적이고 비공식적인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다. 핵심은 시민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며, 함께 더 나은 사회를 고민하는 공간이 마련되는 것이다.

1,000명이 한 걸음을 내딛는 변화는 느리지만 거대한 변화를 만들어 낸다.성찰과성장(AI생성)

'공론장이 많아져야 한다, 공론장에 참여해야 한다'는 말이 막막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거대한 변화는 나부터 시작해,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변화에서 시작된다는 걸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해낼 수 있다. 한 사람이 1000걸음을 걷는 것보다 1000명이 한 걸음을 내디딜 때 진정 큰 변화를 불러올 것이다.

결국, 민주주의는 시민 한 명 한 명의 참여와 노력으로 유지된다. 노무현 대통령이 강조한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은 바로 공론장이 활성화될 때 실현될 수 있다. 우리가 함께 공론장을 만들고 참여할 때,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데 드는 품을 줄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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