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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크고 대단한 사람들이 바꾸는 게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행동으로 바뀌기도 한다. 다채로움을 가지고 다양성을 옹호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다양성에 대한 책이나 제품을 소개하며 그들이 '요만큼' 바꿔놓은 세상을 소개한다.[기자말] |

▲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대표
김형수
"목발 짚어서 가장 힘든 건 식판 드는 거였어요. 그래서 교장선생님이랑 항상 밥을 같이 먹었어요. 좋았을까요? 장애인인 건 힘들지 않았어요. 난 장애가 없었던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뭐가 힘들었냐? 난 돈가스 먹고 싶은 초등학생인데 왜 난 교장선생님이 떠다 준 두릅나물을 먹어야 돼?(폭소)"
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대표를 처음 만난 건 2018년이었다. 네트워크 모임이 있다기에 서울 여의도 약속 장소로 무조건 찾아갔다. 휠체어를 탄 내 딸이 초등학생이던 시절이다.
비교적 학교에 잘 다니던 아이는 어느 날 체육대회에서 충격적인 사건을 겪었다. 계주 선수로 나섰던 아이는 "휠체어를 탄 너 때문에 졌다"며 한 친구가 아이 얼굴을 종이에 그려 찢었던 사건 이후 체육 시간을 두려워했다. '장애 선배의 목소리'가 절실히 필요했다. 목발을 짚고 맞이해주던 김 대표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한다.
2022년에는 아이가 입학하고 싶어 했던 사립고가 '휠체어로 학교에서 다니기 불편할 것'이라며 입학을 간접적으로 거부한 사건이 있었다. 내가 운영하는 사단법인
무의는 김 대표와 뜻을 모아 2022년 전국 일부 사립고 학생들과 함께 '모이자: 모든 학생의 이동의 자유'라는 제목의 공동 성명을 냈다.
사립고 학생들이 직접 학교 내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율이 낮다는 통계를 내고 일부 학교에서는 교육감 설득을 통해 엘리베이터 설치 약속을 받아내기도 했다. 11월에는 국회에서 간담회도 가졌다.
김 대표는 1995년 특수교육대상자 특별전형으로 연세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한 후 국내 최초 장애인권동아리 게르니카를 결성했다. 김 대표가 최근 출간한 에세이 <목발과 오븐>(한뼘책방)은 게르니카를 비롯해 성소수자, 여학생회 등 다양한 소수자들이 연대해 온 이야기다.
김 대표는 장애학생 인권운동뿐 아니라 학교 바깥의 세상으로 연대를 넓혀 갔다. 비리로 점철되어 있던 장애인 시설인 에바다복지회의 진실을 세상에 알렸다. 장애인권 현수막과 대자보를 써줬던 총여학생회와는 합심해 군 가산점 제도의 위헌결정을 끌어내기도 했다.
'다채로운 세상' 시리즈의 첫 타자로 김 대표를 소개하게 된 이유다. 인터뷰는 지난 5일 수요일 화상으로 진행했다.
장애 대학생 인권 증진과 네트워크 확대 위해 다양한 활동

▲ 2022년 11월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모든 학생의 이동의 자유를 위한 실태조사 결과발표 간담회'에서 김형수 대표(앞쪽 맨 오른쪽), 홍윤희 무의 이사장(뒷줄 왼쪽 두 번째) 등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홍윤희
-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소개해 달라.
"열정에 지쳐버린 활동가? 장애 학생 진로상담과 인권 강사 일을 한다.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는 2003년에 처음 만들어졌고 회원은 370명가량이다. 장애 학생 캠프, 장애 학생 동아리 교류, 해외 장애 학생 교류 등 장애 대학생 인권 증진과 네트워크 확대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한다.
대학생뿐 아니라 초·중·고등학생들도 문의해 온다. 학교에서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 간에 문제가 발생했거나 교사와 마찰이 생겼을 때 누구를 찾아가야 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등도 상담해 온다."
- 구체적으로 어떤 성과가 있었는가?
"우리 때는 편의시설이 미비해 장애 학생이 굴러떨어져 죽거나 장애인 화장실이 학교에 없어 자퇴하곤 했다. 지금은 '대학이 (편의시설 설치는) 해 줘야지'란 법적 근거도, 공감대도 생겼다.
2010년에 장애인교육법에 대학 관련 법령이 들어가면서 장애 대학생 지원 근거가 생겼다. 가장 가시적인 결과물은 각 대학에 설치되어 있는 장애 학생들의 학업 편의를 돕는 장애학생지원센터다. 이후 2023년에는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이 개정되면서 학부 이상 대학원, 박사과정 등 장애 학생이 고등교육을 받을 때 지원할 수 있게 됐다. 이에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전담하여 운영하는 장애인고등교육지원센터가 의무화됐다."
- 장애 학생과 학부모 상담을 많이 받을 텐데 사례는 받지 않는가?
"사례는 받지 않는다. 대신 학생이 대학에 입학하면 네트워크 회원으로 등록하길 권한다. 네트워크 회원의 회비로 운영하고 있다. 회비는 월 5000원~ 3만 원 사이다.
네트워크 회원끼리 선후배 코칭과 진학 상담을 해 준다. 장애 학생들은 인원도 소수인 데다가 장애 유형도 제각각이라서 친구나 선후배를 만나는 데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다. 특히 공부를 더 하고 싶어 하는 장애 학생들의 학문공동체를 만드는 목적이 있다."
대학에 장애 학생이 다니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대표
김형수
- 김 대표님이 학교 다닐 때와 비교해 지금 장애 학생들의 진로는 어떻게 바뀌었나?
"장애인이라고 하면 사회복지나 특수교육을 진로로 생각하던 시기에서 벗어나 생물학과, 약학과, 화학공학과 등 이과 진학 장애 학생이 늘었다. 졸업 후 진로는 30년 전에 비해 선택의 폭이 더 넓진 않고 여전히 공무원을 많이 선호하는 편이다. 그래도 기술기업, 글로벌 제약사 등에서 장애인 채용이 늘어난 추세다.
요즘은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일찍부터 고민하는 청소년, 청년들이 늘고 있다. 유튜버 롤모델도 꽤 많고(유튜버 굴러라구르님 김지우씨도 김 대표가 오랫동안 진로 상담을 해줬다고). 나와 동시대에 공부했던 장애 당사자들이 주요 기업에 가거나 교수가 되는 경우도 늘었다. 장애 학생 고등교육 지원도 강화되니 10년 후엔 장애를 가진 교수 선배가 더 생길 것이다."
- 요즘 장애 청소년, 청년들의 고민은 무엇인가? 어떻게 진로 조언을 해주고 있는가?
"예전과 비슷하다. 취업이나 의욕이 있어도 사회적 한계가 있을까 봐 당사자들은 걱정한다. 부모가 원하는 방향과 본인의 욕구가 다른 경우도 있는데. 이렇게 자신이 원하는 방향이 아니면 진학해도 공부 동기부여가 잘 안되니까 쉽게 방황한다. 그래서 부모님보다 자기 자아실현 욕구를 발견하고 거기에 맞춰 진학하라고 권하는 편이다."
- 사실 이렇게 장애 학생 상담하는 건 교육청이 해야 하는 일 아닌가?
"맞다. 교육청에 '장애 학생들 진학 상담은 왜 안 하느냐'고 줄기차게 요구한 끝에 2023년부터 교육청 '장애학생 진학상담 연수'가 생겼다. 또한 몇몇 대학은 장애 학생 진학 설명회를 열기도 한다. 아직 교육청에서 해주는 것은 기본 상담 수준에 불과하다. 진학 외에도 해외 유학, 중도 장애, 학교 밖 청소년 검정고시 진학 상담 등 사실 교육청이 챙기기 어려운 사각지대가 많다."
- 어떤 성과가 가장 뿌듯한가?
"대학에 장애 학생이 다니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인식도 많이 변화했다. 학기 초 대학에서 입학 거부를 해서 인권위에 고발하고 1인 시위를 하던 시대는 지났다. 대학 사회의 의식도 조금은 바뀌었다. 예전엔 장애 학생은 무조건 '도움의 대상', '베풀어준다'는 사고방식이 강했다면 이젠 비장애 학생들과 대등한 관계가 됐다."
함께 연대해야 살아갈 수 있다

▲김형수 대표가 연세대 장애인권동아리 게르니카를 이끌던 시절
김형수
- 그런 인식 인프라를 많이 만들어 놓았으니 요즘 장애 대학생들은 장애 인권에 예전보다 덜 민감하다고 느끼지는 않는가?
"내가 게르니카 운영할 때만 해도 장애 학생들은 매사 심각했다. 근데 요즘 후배들은 주로 일상 고민이나 연애 고민이 더 많다.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하지만 대학 사회 바깥엔 여전히 여러 다양한 소수자들, 장애인 중에서도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들이 있다. 그들에게 연대 의식 가지길 바란다. 아. 노는 건 포기하지 말고!"
- 기업에서 장애인에 대한 문호를 더 넓히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중고등학교 때부터 장애인 청소년 캠프, 대학에서는 대기업 인사 담당자 등이 함께 하는 취업캠프가 필요하다. 기업들은 '장애인 중 뽑을 만한 인력이 없다'는 핑계를 대는 경우가 많은데 기존 일자리만 공급한다면 장애 인력 전반의 능력이 오히려 떨어지게 된다. 예를 들어 대학을 나와도 장애인 일자리가 콜센터밖에 없다고 하면 누가 다른 일자리를 위해 공부하겠는가?"
- 세바시 강연에서 '두릅나물' 이야기 들었을 때 모두가 폭소를 터뜨렸다. 사실 사회적 차별에 대한 슬픈 우화인데 말이다. 말도 안 되는 차별도 많이 당했을 텐데 어떤 생각이 그런 유쾌함을 만든 건가?
"목발 짚고 다니면 99번 거부당해도 좋은 경험 한 번은 하게 되더라. 그걸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 에세이 제목이 <목발과 오븐>이다. 항상 집에서 사람들에게 음식을 만들어 주는데 오븐은 무얼 상징하는가?
"함께 음식을 해서 나누는 건 함께 연대해야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목발을 짚고, 휠체어를 타고, 흰 지팡이를 짚고, 그렇지 않더라도 다양한 우리 모두는 상호 의존하고 있으니까."
목발과 오븐
김형수 (지은이), 한뼘책방(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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