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새벽 인력사무소가 밀집한 서울 남구로역 인근 횡단보도에 일감을 구하려는 일용직 구직자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건설업 취업자 수는 약 192만1천명으로, 1년 전보다 16만8천명이 줄었다. 이는 2017년 1월(188만9천명) 이후 가장 적은 수치이다.
연합뉴스
2025년 한국경제는 안팎으로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생산가능인구의 감소, 투자 증가세의 둔화, 생산성의 저하 등으로 성장잠재력이 약해지고, 소득과 자산의 양극화는 자원의 효율적 이용과 계층이동의 기회를 제약할 뿐만 아니라 내수기반을 침식하여 민생경제를 나락으로 밀어내고 있다. 더구나 트럼프 2.0 시대의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국내의 정치 불안으로 경기 하방압력이 더해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 약 5%에 달했던 잠재성장률이 2024~2026년에 2%, 2040년대 후반에는 0.6%까지 낮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최근에 IMF는 한국의 2025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022년 10월 전망치보다 0.6% 포인트 낮은 2.0%로 제시했고, KDI는 지난 2월 11일 1.6%로 하향 조정했다.
경제성장률의 하락으로 고용과 분배도 우울하다. 2024년 취업자는 전년 대비 15.9만 명이 증가했지만, 60세 이상 여성이 압도적 비중을 차지했고, 15~29세 청년층과 40~49세 장년층 취업자는 각각 14.4만 명과 8.1만 명이 감소했다.
고용탄성치(취업자증가율/경제성장률)는 2022년 4분기 1.922에서 2024년 4분기 0.152로 낮아져 경제의 고용창출력이 둔화되고, 2024년 한시 근로의 비중은 26.7%를 기록하여 OECD 회원국 중 네덜란드 다음으로 고용이 불안정하다. KDI에 따르면, 올해 취업자 증가 폭은 전년 대비 6만 명이 감소하고, 실업률은 0.1%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지만, 국내 정치 상황과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전쟁 추이에 따라 더 나빠질 수 있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3분기 근로소득 5분위배율은 2022년 16.0배에서 2024년 19.6배로 증가하여 시장소득의 양극화를 주도했고, 2016년 이후 순자산의 불평등도가 증가하면서 재산소득의 양극화도 확대되었다. 성장과 분배, 고용 실적이 부실하여 2024년 한국의 행복지수는 OECD 38개 회원국 중 최하위권(33위)을 기록했다.
자멸적 긴축재정의 우를 범하다
최근 한국경제의 성장률 하락은 구조적 요인과 대내외 경제여건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지만, 부적절한 정책 대응의 탓이기도 하다. 주기적으로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시장경제에서 경제주체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는 경기대응적으로 재정을 운용해야 한다.
특히 수출의존도와 민간부채비율이 높은 경제에서는 재정정책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부자 감세와 건전재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으면서 경기의 하방압력이 거세지는 시기에도 재정을 긴축적으로 운용하였고, 그 결과 경기침체의 골이 깊어지고 재정적자와 국가채무가 큰 폭으로 증가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일부 유럽국가들이 경험했던 '자멸적 긴축재정'의 우를 범한 것이다.
더욱이 낙수효과가 작동하지 않는 현실에서 부자 감세와 긴축재정으로 내수기반이 위축되고, 그 피해는 서민 중산층,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 집중되었다. 사업 부진으로 폐업하는 사업자가 늘어나면서 마침내 폐업자가 2023년 100만 명에 육박했다. 이러한 현실을 인지하여 정부도 2025년 예산편성 목표를 '민생안정과 역동경제'로 서민 중산층 중심시대를 구현'하는 데 두었지만, 2025년 정부의 총지출과 재량지출은 전년 대비 각각 3.2%와 0.8%의 증가에 그쳤고, 물가상승률 전망치 2.0%를 고려하면, 재량지출의 실질 규모는 오히려 감축되었다.
더욱이 예산불용액은 2023년 45조7000억 원에서 2024년 20조1000억 원으로 하락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윤 정부의 소극적인 재정 운용으로 정부 부문의 성장기여도는 2021년 0.7% 포인트에서 2024년 0.4% 포인트로 줄어들었다.
혁신과 포용의 재정정책이 필요하다
한국경제는 1970년대 이후 여러 차례의 글로벌 경제위기에 대응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돌파구를 모색하였지만, 재정의 역할은 정권에 따라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보수 정권은 대체로 성장우선주의에 기반하여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를 정책 기조로 채택하고 정부개입을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했지만, 진보정권은 시장실패를 교정하고 분배구조를 개선하며 경제의 안정과 성장을 위해 재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정부의 크기가 아니라 해야 할 일을 제 때에 하는가의 여부이고, 경제성장은 지속가능한 복지국가를 위한 필요조건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라는 것이다. 재정은 국민의 집합적 욕구와 사회권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하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비용은 구성원들에게 공평하게 분담되어야 한다.
현재 한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복합위기를 고려할 때,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미래의 복지국가는 혁신을 통해 성장동력을 회복하고, 분배구조의 개선으로 사회발전을 견인하는 '혁신적 포용 국가'이다. 혁신적 포용 국가는 사회정책과 경제정책의 유기적 연계를 통해 지속가능한 복지국가를 모색하는 국가발전 전략이다. 이런 맥락에서 조세·재정정책의 핵심 과제는 경제주체의 생산적 역량을 높이는 활동을 지원하되 양극화와 불평등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성장과 분배가 선순환하는 경제구조를 구축하는 것이다.
무엇을 해야 하나

▲단기적으로는 추경예산을 편성하여 추락하는 경제를 정상상태로 되돌리고, 중장기적으로는 성장잠재력을 약화시키는 구조적 요인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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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한국경제가 처한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단기적으로는 추경예산을 편성하여 추락하는 경제를 정상상태로 되돌리고, 중장기적으로는 성장잠재력을 약화시키는 구조적 요인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잠재성장률(2.0%)을 밑도는 경제성장률(1.6%)과 재정지출승수(0.20~0.85)를 고려할 때 산출 갭(0.4%)을 줄이기 위해서는 최대 50조 원의 추경예산이 필요하지만, 소비활성화 쿠폰, 소비촉진지원금,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등 소비지출과 연계된 이전지출 프로그램을 활용하고 기업투자를 지원할 경우 산출 갭 해소에 필요한 추경예산 규모는 줄어들 것이다.
추경예산은 국채발행을 통해 조달하고 향후 세수확충으로 충당해야 한다. 최근 국가채무가 큰 폭으로 증가했지만, 2023년 기준 한국의 총부채와 순부채는 선진국 평균보다 각각 GDP 대비 18.4%와 22.7% 작다. 경제안정화정책의 미래성장 효과를 고려할 때, 국채상환의 부담이 미래 세대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자 감세 기조를 철회하고 '누진적 보편과세'의 방식으로 세수를 확충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부자 감세로 조세부담률은 2022년 22.1%에서 2023년 19.0%로 크게 하락했다.
잠재성장률 하락을 막기 위해서는 구조적 요인의 해소에 정책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일가정 양립과 양성평등을 위한 정책지원을 넘어 지역균형발전과 분배구조의 개선으로 출산의 사회경제적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수도권에 집중된 경제𐩐사회𐩐문화𐩐교육 인프라를 지역으로 분산하고, 기본 생활의 보장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과 불확실성을 줄여야 한다.
기술발전에 따른 고용 감소와 불안정,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에 대응하여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고용친화적 방식으로 세제를 개편해야 한다. 기후위기에 대응한 탄소세의 도입과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구조의 개편도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의 미래를 위해 시급한 정책과제이다. 남북한 평화체제의 구축과 다자주의 원칙에 기반한 국제협력은 정치경제적 불확실성을 줄여 경제의 안정과 성장에 기여할 것이다.
정책은 예산이다. 예산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정책은 정치적 레토릭에 불과하다. 대내외 경제여건의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고, 구조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개혁과제가 예산편성에 제대로 반영되는 재정 운용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대통령실의 기획예산기능을 강화하고 국회의 예산심의 기능을 확대해야 한다. 참여예산제도와 총액배분자율편성 예산제도를 활성화하여 재정지출의 효과성과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강병구교수
포럼사의재
*필자 소개 : 강병구는 인하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인하대학교 사회과학대학장, 한국재정정책학회 회장, 국세행정 개혁TF 단장, 재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 세제발전심의위원회 위원장,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 역임했다.
주요 논저: 「불평등 해소를 위한 재정정책」, 「사회지출의 자동안정화기능에 대한 연구」, 「세제개혁의 방향과 과제」, 「법인세의 경제적 효과 분석」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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