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발인식에서 배우 김새론의 영정과 위패가 운구차로 옮겨지고 있다.
연합뉴스
김새론의 자숙은 활동기보다 바쁘다 (<엑스포츠뉴스>)
"사과도 없이 복귀라니"...'트러블 메이커' 김새론, 자숙 끝, 복귀 향한 싸늘한 여론 (<MK스포츠>)
2024년 4월, 김새론씨가 연극 '동치미'로 활동 재개한다는 소식을 전하는 기사입니다. 당시는 법적 처벌이나 보상도 마친 상황이었고, TV 드라마나 상업영화에 나온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언론부터 그의 연극 출연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조성했고, 결국 그는 무대 위에 서지도 못한 채 연극에서 하차해야만 했습니다.
일자리를 빼앗고 인스타그램 게시물 하나하나에 대해 부정적인 기사를 쓰는 언론, 기사나 찌라시에 나온 정보를 재구성해서 만든 영상을 통해 '마녀사냥에 특화된 알고리즘'을 만드는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게시물, 그리고 그것을 SNS나 커뮤니티에 공유하고 댓글을 남기는 것을 '의미 있고 정당한 비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이것이 이 시대가 만든 '살인의 구조'입니다. '우리는 너를 싫어해'라는 메시지를 계속 내면서 철저하게 고립시키는 방식이니까요. 김새론씨의 죽음이 '타살'인 이유입니다.
정훈님, 저는 한 사람에게서 모든 기회를 빼앗는 이 처참한 구조는 역설적으로 온라인 공간에서 명확한 '옳음'의 자리에 서고 싶은 이들에 의해 확산한다고 생각합니다. 경중을 떠나 잘못을 저지른 연예인이나 유명인을 강하게 비난하면서, 자신의 도덕성을 증명해 보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비난은 사과와 반성이 이뤄진 뒤에도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과문의 내용을 물고 늘어지며, '진정성'을 보이라고 다그치죠. 한 사람이 잘못을 뉘우치고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길 바라는 게 아니라, 잘못을 박제해서 끊임없이 언급하기도 합니다. 마치 그것이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쉽게 용서하지 않는 '꿋꿋하고' '도덕적인' 태도라고 믿는 것처럼요.
용서하지 않는 태도를 취할수록 더 선명하고 명쾌해집니다. 오히려 '이제 용서할 수 있지 않나'라거나 단호한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 잘못을 옹호해 주는 것이냐며 공격받기 일쑤입니다. 한 번의 잘못으로 모든 기회를 빼앗고자 하는 엄벌주의가 득세할 수밖에 없는 환경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진심을 믿지 않고,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하는 심판과 엄벌은 결국 사회를 병들게 만듭니다. 모두가 타인이 자신을 이해해 주는 일을 기대하지 않게 되고, '흠결'을 감싸주는 연대를 하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여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누군가를 고립시키려던 자들도, 결국 고립될 것입니다.
우리는 왜 '틈'을 허용하지 않는가

▲모든 사람에게는 '다음의 삶'을 꿈꿀 수 있게 하는 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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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현재의 삶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다음의 삶'이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김새론씨는 다음을 생각하거나, 다음으로 나아갈 무렵마다 번번이 가로막혔습니다. 아마 조롱과 손가락질 속에서 그는 점점 더 움츠러들었을 것입니다.
"여성이 어떠한 사건에 휘말렸을 때에 너무 빨리 비난하지 않고 조금 기다려보면 좋겠습니다. 특히 사생활과 관련된 문제일 때에는 제3자가 알 수 없는 사정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항상 생각하면 좋겠어요. 어떤 여성을 향한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가 굉장히 가슴 아픈 결과로 이어지는 것을 우리가 여러 차례 봤잖아요. 그리고 또 여성이 잘못한 일이 있다면 그 잘못에 대해서만 비판하면 좋겠습니다." (최지은, 세바시 강연 '우리가 여성 연예인을 더 쉽게 미워하는 이유' 중)
저는 최지은 작가의 강연 중 위의 말이 유독 가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김새론씨가 뉘우치고 성장할 수 있도록 기다렸다면, 말하지 못할 어떤 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했다면, 잘못한 일에 대해서만 비판했다면 어땠을까 싶어서요. 정훈님, 우리는 대체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걸까요?
죄에 대해 비난하고, 반성을 촉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이후엔 일련의 논란에 대해 기다리거나 신중한 태도를 취하면서, 어쩌면 관심을 끄면서 김새론씨에게 '틈'을 만들어줄 수 있었습니다.
예전처럼 자유롭게 활동하기가 어려운 그에겐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틈이 필요했습니다. 숨 쉴 수 있는 틈, 고립되지 않고 움직일 수 있는 틈, 어둠 속에서 잠깐이나마 따뜻한 햇살을 받을 수 있는 틈, 그밖에 '다음의 삶'을 꿈꾸게 하는 수많은 틈, 틈, 틈. 하지만 우리 사회는 김씨에게 그 틈마저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더 이상 막말 보도를 하는 언론, 사이버 레커, 유튜브의 짜깁기 영상만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을 보고 즐기고 퍼트리는 것은 평범한 개인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고립시키고 숨 막히게 하는 '죽음의 말'이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연예인, 유명인들에게 가닿고 있습니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당신이 변하지 않으면, 비극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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