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2.20 10:08최종 업데이트 25.02.26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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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 '오마이뉴스 기자 박정훈'과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박정훈', 두 사람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연대를 모색해 나갑니다.[편집자말]
고 김새론씨가 지난 1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고 김새론씨 인스타그램

지난 16일 세상을 떠난 배우 김새론씨의 인스타그램에 들어갔습니다. 검은 상의를 입고 찍은 셀카 한 장에 파란색 하트 이모티콘을 남긴, 지난 1월에 올린 게시물이 최상단에 떴습니다. 그가 올린 셀카는 별다른 감상을 남기기가 어려울 정도로 정말 평범한 사진이었습니다.

반성없는 김새론, 셀프 결혼설 후 근황 (<뉴시스>)
김새론 음주운전 후 3년…이젠 얼굴로 무력 시위, 반성 없는 자숙 (<OSEN>)
SNS 못 끊는 김새론, 반성 따위 없다..댓글창 막고 '얼빡샷' 박제 (<헤럴드POP>)

놀랍게도 셀카 한 장을 두고 쓴 기사들의 제목입니다. 이밖에 다른 언론들도 김새론씨가 올린 사진을 기사화하는 방식은 대동소이했습니다. 인스타그램 댓글 창을 닫았다는 사실을 언급하는 동시에, 자숙을 해야 할 기간인데 왜 SNS를 하느냐며 비난하고 있었습니다.

설리(고 최진리씨)의 죽음 이후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와 '연예 뉴스'난의 댓글이 사라졌습니다. 저는 그쯤이면 악플을 줄일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기자들이 직접 악플러가 됐습니다. 누리꾼들이 댓글을 못 달게 해놓으니 오히려 마음 놓고 막말을 퍼붓습니다. 예전 기사를 살펴보면, 김새론의 인스타 게시물이 올라올 때마다 연예/온라인 기자들이 총출동해서 "SNS병", "밉상" "또 술 취했나"와 같은 말을 쏟아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김새론에게 유독 잔인했다

2021년 7월 29일 비대면으로 열린 카카오TV 오리지널 미스터리 판타지 드라마 <우수무당 가두심> 온라인 제작발표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김새론씨.카카오TV

김새론씨는 2022년 5월 18일 오전 8시경 만취 상태에서 운전하다가 강남구 학동사거리에서 가드레일과 변압기 등을 들이받는 사고를 냈습니다. 언론과 대중의 관심도 유독 높았던 사건입니다.

이후 그에 대한 비난은 음주운전에 관한 것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음주운전을 한 이후에 왜 '논란을 만들고 다니냐'가 비난의 핵심이었습니다. 생활고 주장, 아르바이트, 홀덤바에서의 목격담, 나아가 일이 끊긴 상태에서 그의 소통 창구였던 SNS 게시물 하나하나가 '자숙하지 않는 증거'가 됐습니다.


정훈님도 아시다시피 우리 사회는 여성 연예인에게 상대적으로 더 엄격한 윤리적 잣대를 들이댑니다. 김씨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대중문화 기자로 10여 년간 일해온 최지은 작가는 '우리가 여성 연예인을 더 쉽게 미워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세바시 강연 영상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5년 전에) '왜 예능에서 여성을 보는 게 이렇게 어려웁니까?' 그랬더니 어떤 PD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시청자들이 여자와 남자에게 허용하는 범위가 다릅니다'라고 하셨어요."

"한국 사회는 여성의 외모, 표정, 말투, 행동, 취향 모든 것을 정말 세세하게 평가하고 좁은 틀에서 벗어나면 그걸 다 비난하는 사회이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사회에서 미디어에 비추어지고 대중 앞에 서는 여성 연예인들은 언제나 가장 쉽게 평가받고 또 가장 크게 비난받는 존재입니다."

'음주 운전'이라는 꼬리표는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김씨에겐 루머나 오해에서 생긴 '방탕하다'거나 '관심을 즐긴다'라는 이미지까지 덧붙여졌습니다. 앞서 말했듯 이는 여성 연예인에게 유독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한국 사회에서는 치명적인 일이었고, 비난과 조롱은 도무지 멈출 줄을 몰랐습니다.

또한 그는 '만만한 대상'으로 여겨졌습니다. 젊은 여성 배우인 데다가 2023년부터 소속사가 없으니 저주와 모욕을 퍼붓는 기사들에 이렇다 할 대응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걸 언론과 대중이 모두 알았으니, '음주운전'을 빌미로 마구 공격한 것입니다.

이것은 구조적 살인이다

지난 19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발인식에서 배우 김새론의 영정과 위패가 운구차로 옮겨지고 있다.연합뉴스

김새론의 자숙은 활동기보다 바쁘다 (<엑스포츠뉴스>)
"사과도 없이 복귀라니"...'트러블 메이커' 김새론, 자숙 끝, 복귀 향한 싸늘한 여론 (<MK스포츠>)

2024년 4월, 김새론씨가 연극 '동치미'로 활동 재개한다는 소식을 전하는 기사입니다. 당시는 법적 처벌이나 보상도 마친 상황이었고, TV 드라마나 상업영화에 나온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언론부터 그의 연극 출연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조성했고, 결국 그는 무대 위에 서지도 못한 채 연극에서 하차해야만 했습니다.

일자리를 빼앗고 인스타그램 게시물 하나하나에 대해 부정적인 기사를 쓰는 언론, 기사나 찌라시에 나온 정보를 재구성해서 만든 영상을 통해 '마녀사냥에 특화된 알고리즘'을 만드는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게시물, 그리고 그것을 SNS나 커뮤니티에 공유하고 댓글을 남기는 것을 '의미 있고 정당한 비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이것이 이 시대가 만든 '살인의 구조'입니다. '우리는 너를 싫어해'라는 메시지를 계속 내면서 철저하게 고립시키는 방식이니까요. 김새론씨의 죽음이 '타살'인 이유입니다.

정훈님, 저는 한 사람에게서 모든 기회를 빼앗는 이 처참한 구조는 역설적으로 온라인 공간에서 명확한 '옳음'의 자리에 서고 싶은 이들에 의해 확산한다고 생각합니다. 경중을 떠나 잘못을 저지른 연예인이나 유명인을 강하게 비난하면서, 자신의 도덕성을 증명해 보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비난은 사과와 반성이 이뤄진 뒤에도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과문의 내용을 물고 늘어지며, '진정성'을 보이라고 다그치죠. 한 사람이 잘못을 뉘우치고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길 바라는 게 아니라, 잘못을 박제해서 끊임없이 언급하기도 합니다. 마치 그것이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쉽게 용서하지 않는 '꿋꿋하고' '도덕적인' 태도라고 믿는 것처럼요.

용서하지 않는 태도를 취할수록 더 선명하고 명쾌해집니다. 오히려 '이제 용서할 수 있지 않나'라거나 단호한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 잘못을 옹호해 주는 것이냐며 공격받기 일쑤입니다. 한 번의 잘못으로 모든 기회를 빼앗고자 하는 엄벌주의가 득세할 수밖에 없는 환경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진심을 믿지 않고,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하는 심판과 엄벌은 결국 사회를 병들게 만듭니다. 모두가 타인이 자신을 이해해 주는 일을 기대하지 않게 되고, '흠결'을 감싸주는 연대를 하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여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누군가를 고립시키려던 자들도, 결국 고립될 것입니다.

우리는 왜 '틈'을 허용하지 않는가

모든 사람에게는 '다음의 삶'을 꿈꿀 수 있게 하는 틈이 필요하다pexels

인간은 현재의 삶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다음의 삶'이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김새론씨는 다음을 생각하거나, 다음으로 나아갈 무렵마다 번번이 가로막혔습니다. 아마 조롱과 손가락질 속에서 그는 점점 더 움츠러들었을 것입니다.

"여성이 어떠한 사건에 휘말렸을 때에 너무 빨리 비난하지 않고 조금 기다려보면 좋겠습니다. 특히 사생활과 관련된 문제일 때에는 제3자가 알 수 없는 사정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항상 생각하면 좋겠어요. 어떤 여성을 향한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가 굉장히 가슴 아픈 결과로 이어지는 것을 우리가 여러 차례 봤잖아요. 그리고 또 여성이 잘못한 일이 있다면 그 잘못에 대해서만 비판하면 좋겠습니다." (최지은, 세바시 강연 '우리가 여성 연예인을 더 쉽게 미워하는 이유' 중)

저는 최지은 작가의 강연 중 위의 말이 유독 가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김새론씨가 뉘우치고 성장할 수 있도록 기다렸다면, 말하지 못할 어떤 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했다면, 잘못한 일에 대해서만 비판했다면 어땠을까 싶어서요. 정훈님, 우리는 대체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걸까요?

죄에 대해 비난하고, 반성을 촉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이후엔 일련의 논란에 대해 기다리거나 신중한 태도를 취하면서, 어쩌면 관심을 끄면서 김새론씨에게 '틈'을 만들어줄 수 있었습니다.

예전처럼 자유롭게 활동하기가 어려운 그에겐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틈이 필요했습니다. 숨 쉴 수 있는 틈, 고립되지 않고 움직일 수 있는 틈, 어둠 속에서 잠깐이나마 따뜻한 햇살을 받을 수 있는 틈, 그밖에 '다음의 삶'을 꿈꾸게 하는 수많은 틈, 틈, 틈. 하지만 우리 사회는 김씨에게 그 틈마저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더 이상 막말 보도를 하는 언론, 사이버 레커, 유튜브의 짜깁기 영상만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을 보고 즐기고 퍼트리는 것은 평범한 개인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고립시키고 숨 막히게 하는 '죽음의 말'이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연예인, 유명인들에게 가닿고 있습니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당신이 변하지 않으면, 비극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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