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2.20 10:54최종 업데이트 25.02.20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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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대한민국의 가임기 여성이 생애 기간 출산할 것으로 기대하는 자녀 수를 의미하는 '합계출산율'은 가임기 여성 1명당 0.72명이었습니다. 조사 이래 가장 낮은 수치였습니다.

대한민국 사회가 난리가 났습니다. 언론 인터뷰에서 외국의 유명 학자가 대한민국의 2022년 합계출산율 0.78명을 접하고는 "대한민국은 완전히 망했다"라며 자기 머리를 싸쥐고 절망했던 모습을 기억하실 텐데, 심지어 이보다 더 떨어진 수치였으니까요.


현재 대한민국의 노동시장에선 정부와 민간기업 할 것 없이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을 쏟아냅니다. 물론 초저출산 사회로 진입한 2010년대 이후 많은 정책이 쏟아졌습니다만, 특히 2023년 이후엔 정말 좋은 정책, 나쁜 정책, 이상한 정책들이 뒤섞여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책들은 노동시장에서 결혼한 노동자나 결혼하지 않은 노동자, 결혼할 마음이 없는 노동자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만큼 그 효과를 제대로 살펴봐야 합니다.

저소득 노동자는 서러운 저출산 지원 정책

2024년 2월 5일 부영그룹이 서울시 중구 부영태평빌딩 컨벤션홀에서 ‘2024년 시무식’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부영그룹 제공

최근 노동시장에 나타난 저출산 정책의 대표적인 특징은 부익부 빈익빈입니다. 일부 대기업과 공공 부문에서는 획기적인 출산 양육 정책이 쏟아지지만, 다수 민간 중소사업장에서는 여전히 육아휴직조차 쓰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건설회사로 이름이 잘 알려진 부영그룹은 소속 노동자가 자녀를 출산하면 1억 원의 출산지원금을 줍니다. 이중근 회장의 강력한 의지로 시행된 부영그룹의 자녀 출산지원금 1억 원 소식을 접하고 많은 직장인들이 놀라고 부러워했습니다.

부영그룹처럼 이름이 알려진 대기업·중견기업들은 소속 노동자의 출산에 아낌없는 지원을 합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삼성전자와 LG전자, SK 등은 자체적으로 2년의 육아휴직을 보장합니다. 삼성전자의 2024년 지속 가능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도 삼성전자 임직원 중 남성 육아휴직자는 1034명으로 사용률이 30.5%였습니다.

LG전자 역시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3년간 남성 육아휴직 사용자가 42.5%에 달합니다. 저출산고령사회 위원회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2022년 기준 대한민국의 남성 노동자 육아휴직 비율 6.8%에 비하면 대기업의 남성 노동자 육아 휴직률은 굉장히 높습니다.

중앙정부의 기관이나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에서 일하는 지방공무원들은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가 있는 경우 36개월의 범위에서 자녀 돌봄, 육아 등을 위한 1일 최대 2시간의 육아시간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1일 2시간씩 자녀 돌봄과 육아를 이유로 일찍 퇴근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물론 2시간에 대해서는 유급이 보장됩니다.

여기에 더해 전국에서 가장 큰 지방자치단체인 서울특별시 공무원들은 '서울특별시 공무원 복무조례'에 따라 9세 이상 10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3~4학년까지 자녀가 있는 경우 1년간 자녀 초등학교 학습 지도, 학교 적응 등을 위해 1일 최대 2시간의 교육지도 시간을 쓸 수도 있습니다.

연간 600 만 원의 가치가 있는 공무원 자녀돌봄 유급휴가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등이 지난 2020년 11월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공무원/비공무원의 육아휴직 차별에 대한 평등권·양육권 침해 헌법소원심판청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연합뉴스

서울특별시 공무원들은 자녀가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는 육아와 돌봄, 자녀의 학습 지도 등을 이유로 2시간씩 일찍 퇴근해 임금의 감액 없이 자녀를 돌볼 수 있는 겁니다. 1일 2시간씩 한주 10시간, 한 달이면 평균 4.34주를 곱하여 약 43.4시간, 연간 약 520시간의 유급휴가가 주어지는데 2025년 서울특별시 생활임금 1만 1779원을 기준으로 연간 612만 5080원을 보전받고 육아에 전념할 수 있는 셈입니다.

이처럼 대기업과 정부기관은 자녀들이 부모의 손길이 특별히 더 필요한 생애주기별 시점을 정확하게 포착하여 해당 시기 부모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효과적인 정책을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돌봄이 필요한 시기에 충분히 돌봄을 받는 자녀들과 그렇지 못한 민간 사업장 노동자의 자녀들과 성장 과정에서 발생하는 격차가 우려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정부는 올해 초 육아휴직 급여를 인상하고 육아휴직의 사용기간도 늘리는 등 노동자의 육아 지원을 위한 강력한 의지를 내보였습니다. 기존 월 150만 원을 상한으로 하던 육아휴직 급여를 인상했습니다. 1년을 기준으로 매월 150만 원씩 1800만 원을 받을 수 있었다면, 올해부터는 250만 원(1~3월), 200만 원(4~6월), 나머지 기간은 매월 160만 원 등 연간 2310만 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연간을 단위로 보면 약 500만 원이 오른 겁니다. 육아휴직 기간 역시 부부가 같은 자녀에 대해 3개월 이상 육아휴직을 사용하면 기존 1년에서 1년 6개월로 늘어납니다.

특별히 돌봄의 손길이 더 필요한 생후 18개월 자녀 양육을 위해 부부가 동시에 육아휴직을 사용하거나 순차적으로 육아휴직을 사용할 경우 첫 6개월은 (1달) 250만 원, (2달) 250만 원, (3달) 300만 원, (4달) 350만 원, (5달) 400만 원, (6달) 450만 원으로 육아휴직 급여가 대폭 인상됩니다. 부부가 각자 매월 450만 원의 통상임금을 받는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부부가 모두 각자 육아휴직을 1년 사용하면 연간 부부 합산 5920만 원의 육아휴직 급여를 받을 수 있습니다. 낮은 소득대체율 때문에 육아휴직을 주저하던 노동자들이 육아휴직을 기꺼이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매월 지급되는 육아휴직 급여를 150만 원에서 250만 원으로 인상 시킨 것은 획기적입니다만 육아휴직 초기 3달에 그치는 점은 아쉽습니다. 또한 부부가 동시에 혹은 순차적으로 6개월의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 중소 영세사업장 노동자가 몇이나 될까요? 육아휴직 급여는 연장근로수당처럼 초과수당이 제외된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받게 되는 만큼, 적은 기본급에 연장수당이 높은 중소 영세기업 노동자들로서는 육아휴직 수당액이 높아진들 내 임금이 오르지 않으니 그 효과가 제한적입니다.

업무능력과 무관한 출산을 이유로 한 승진 가점 타당한가?

2024년 3월 21일 당시 김태규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공무원 육아휴직·양육제도 실효성 강화를 위한 제도개선안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연합뉴스

"자녀를 출산하면 승진에 가점을 준다고 합니다. 자녀가 많을수록 가점이 높아집니다. 저는 결혼할 생각이 아직 없는데요. 불합리한 차별 아닌가요?"

자녀가 있는 경우 승진에 가점을 주는 인사제도에 대한 불만인데요. 저출산 극복 의지만 너무 과하여 정교하게 그 효과를 고민하지 못한 정책도 눈에 띕니다. 정부 기관에서 시행되는 '자녀 출산에 따른 승진 가점 제도'가 대표적입니다.

경기도의 어느 기초지방자치단체는 인사위원회를 통해 첫째 자녀 출산 때 0.7점, 둘째 자녀 1.5점, 셋째 자녀 2점, 넷째 자녀 이상 3점 등의 가산점을 부여하는 인사 규칙 개정안을 2026년부터 시행하기로 했습니다. 대통령 표창에 따른 승진 때 가점이 1.5점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둘째 자녀를 출산한 공무원의 경우 승진 때 그만큼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됩니다.

울산광역시의 어느 기초지방자치단체 역시 육아휴직 기간의 승진을 위한 업무 평가 때 상위 평가 기준에 배치하는 형태로 자녀가 있는 공무원을 우대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지난해 초부터 '공무원임용령'을 통해 자녀 인원에 따라 가점을 부여하여 승진 때 우대하는 방식으로 '다자녀 양육 공무원 승진 우대 정책'의 근거를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노동현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작지 않습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지난해 8월에 전국 공무원 약 1400명을 대상으로 다자녀 승진 가점제에 대하여 찬반을 묻는 조사를 시행한 결과 응답자의 약 59%가 반대의견을 나타냈습니다. 찬성 의견은 약 40%에 그쳤습니다.

비혼과 1인 가구가 확산하는 사회현실에서 자녀 유무로 승진에 가점을 부여하는 제도는 출산 계획이 없는 노동자에 대한 역차별이 될 수 있습니다. 능력과 무관한 출산을 이유로 업무능력과 근속에 대한 평가인 승진이라는 보상을 지급하는 것이 과연 타당할까요?

비혼 노동자에 대한 적절한 보상으로 출산 장려 정책과 균형을 맞추지 않으면, 비혼 노동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해 노동시장에서 정부와 기업의 출산 장려 정책은 큰 반발에 처할 수도 있음을 고민해야 합니다.

노동시장에서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와 기업이 펼치는 정책들은 나름의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대기업 노동자와 공무원들처럼 직업 안정성이 보장되는 중산층 이상 가구의 출산율을 높여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정부의 저출산 대책이 노동시장에서 차별적 효과를 가져온다는 점은 우리가 모두 고민해 봐야 할 대목입니다.

지불능력이 풍부한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법이 보장한 최저선을 넘어 현금성 지원은 물론 육아시간을 보장하여 일가정의 양립을 지원하는데 반해, 대다수 중소영세 기업에서는 법으로 보장된 육아제도를 활용하기도 어려운 실정입니다.

육아휴직 대체인력을 정부가 지원하여 육아제도 사용을 주저하게 만드는 중소영세 기업의 구조적 환경을 개선해야 합니다. 육아휴직 급여의 기준 임금을 평균임금으로 전환하여 소득대체율을 높여야 할 필요성도 제기됩니다. 출산이 승진에 가점이 되는 공공부문의 적극적 출산 장려 정책과 육아휴직을 하면 승진평가나 상여금 지급에서 아예 제외되는 민간의 현실을 제도적으로 적절하게 조정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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