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2.25 15:28최종 업데이트 25.02.25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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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필자의 안전화. 4개월 정도 신고 버렸다.나재필

새벽 5시. 밥벌이를 위해 밥을 먹는 시간이다. 단지 먹고 싶어서 먹는 밥이 아니다. 그 밥이 없으면 오늘의 밥도 없다. 밥은 하루치의 힘이다. 하지만 가끔 밥알이 혼자 낄낄거린다. '산다는 게 뭔지' 자조하는 숟가락을 비웃듯 말이다.

그래도 꾸역꾸역 욱여넣는다. 눈물이 국물에 말아진다. 이것이 나만의 감성만은 아닐 게다. 밥을 벌기 위해 아침을 때우는 모든 이의 비애일 것이다. 매달 손에 남는 건 없고 빈 통장만 휑한 현실이 아릴 뿐. 돈으로 환산 못 할 나름의 일상을 자신과 세상 앞에 증명해야 하는 게 삶이자 숙명이다.


그런데 과연 정치권은 서민과 노동자들의 굽은 등을 어루만져주고 있는가. 정녕 그들의 밥을 챙겨주고 있기는 한가. 밥은 정의다. 밥벌이를 해야 세금을 낼 것 아닌가. '법'을 만드는 자들이 국민의 '밥'을 외면한다면 그야말로 직무유기다.

막노동을 하지만 일을 하고 있기에 어쩌면 지금까지 한 밥벌이 가운데 현재가 가장 아름답고 숭고한 시기로 느껴진다. 인생으로 치면 꽃으로 만개하는 화양연화(花樣年華)다.

필자가 일하는 건설 현장의 인력(속칭 노가다)은 4000명에 육박한다. 올해 여름이면 7000명쯤 된다니 가히 대규모다. 마치 열섬현상처럼 일자리가 이곳으로 쏠렸다. 전국에서 불나방처럼 모인 사람들이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어둠의 시간 속으로 뚜벅뚜벅 침잠하는 모습은 뜨겁다 못해 뭉클하기까지 하다.

모두 사정이 있을 테고 경제적 상황 또한 다를 것이다. 엄동설한에 야외 현장서 흙먼지 뒤집어쓰고 일하고 싶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출근하기 싫어도 나가야 하고 편한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으니 도망갈 구멍이 없다. 최소한 인생에서 도망자는 되기 싫으니까.

그나마 일할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가. 일하지 않고 밥상 위 젓가락 수만 멍하니 쳐다본들 눈물 밖에 무엇이 있으리. 나도, 그들도 모두 '바보 같은 정치' 탓을 안 할 수 없다. 진짜로 일자리 씨가 말랐다. 그런데 악성 기저질환을 그들만 모른다. 아니 알면서도 자기 밥그릇만 걱정하는 것 같다.

확실한 건 불확실하다는 것뿐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이 12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경제원로 초청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도 생물이고 경제도 생물이다. 정치가 꽉 막혀있으면 경제는 돈맥경화증에 걸린다. 갑자기 링거를 꽂을 수도 도려낼 수조차 없다. 그냥 끙끙 앓다가 죽을 수밖에. 이러니 경제계에서 곡소리가 나온다. 최근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경제 원로(사령탑)들이 모여 한국 경제의 위기 해법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경제 불황에 대해 '폭풍'이라고 했다.

"국제무역 질서와 게임의 룰이 바뀌면서 우리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엔 무역전쟁, 인플레이션, 인공지능(AI) 등 3개의 폭풍이 몰아친다. 여기에 좀 특수한 상황으로 또 다른 하나의 폭풍이 오고 있는데 그건 바로 정치적 불확실성이다. 정치 안정 없이 경제 발전을 기대할 수는 없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확실한 건 불확실하다는 것뿐. 작금의 엄중한 상황 속에서 정부의 해법이 보이지 않으니 나온 말이다. 여기에 정치권의 대응도 별 볼 일 없다. 4개의 폭풍 중 가장 치명적인 쓰나미급 태풍이 바로 정치다. 탄핵정국이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면서 국정을 잠식하고 있다.

별로 놀랄 일도 아니다. 정치판이 한두 해 그렇게 보내왔던가. 오랫동안 이념대립, 감방 보내기 경쟁에 매진해 온 그들이다. 민생은 매몰돼버렸다. 말로만 외치다 보니 헛껍데기 국회다.

22대 국회의 법안 처리율은 15% 수준이라고 한다. 개원 후 8개월 동안 7600여 건의 법안이 발의됐는데 이중 처리된 법안은 1100여 건이다. 또 지난해 11월 민생 법안 63개를 합의 처리하기로 뜻을 모았지만 현재까지 20여 개 법안만 처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허구한 날 싸움질만 해대니 법안만 내놓고 헛발질만 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비상계엄 사태 이후엔 '감방 간 사람'과 '감방 보낼 사람'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가히 활극 수준이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인가. 칼은 칼집에 있을 때가 더 무서운 법이다.

당장 트럼프 2기 미 행정부의 관세 및 무역 정책에 따라 미국 우선주의, 노골적 거래주의가 세계무역질서를 대혼돈으로 몰아가고 있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정치적으로 안정된 리더십을 활용해 동맹과의 관계 유지, 국익 확보, 군사적 리스크 억제, 지역 안보 등 손쓸 일들이 산더미다.

서민들의 관심은 밥벌이

18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송언석 위원장, 박수영 여당 간사, 정태호 야당 간사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여야 모두 정치적 당리당략만 따지지 말고 민생 현장으로 뛰쳐나와야 한다. 국회의원 개개인이 자기 지역구만이라도 수시로 순회하면서 그들의 고충을 듣고 해법을 찾아 즉각적인 정책 반영에 힘을 쏟아야 한다.

지역구는 선거철에만 낯짝 내밀고, 손 붙잡고, 민원을 다 해결해 줄 듯 사기를 치는 곳이 아니다. 진심을 다해 지역을 잘 돌아가게 하겠다고 맹약을 한 곳이다. 그럼에도 표 구할 때만 읍소하고, 배지 달고 나면 상전 노릇에 패거리 정치하는 건 국민 모독이다.

시간 날 때마다 동네 한 바퀴 돌면서 얘기를 들어보라. 왜 소상공인이 죽어가고 있는지, 장바구니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지, 어떤 일자리가 필요한지, 어느 곳이 사는데 불편한지 들여다보라. 한 바퀴만 돌아도 '이래서 서민들이 정치를 혐오하는구나'를 깨닫게 될 것이다.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를 추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현행법상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은 국민소환제 적용을 받지만, 국회의원은 제외돼 국민이 직접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소환 청구 결과에 따라 세비 반납, 감봉, 의원직 박탈까지 함으로써 일하는 국회, 국민만을 위한 국회, 공부하는 국회를 만들 수 있다.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이 국민의 신뢰를 잃었을 때, 직접 해임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수시로 입방아에 오르는 국회의원 세비를 보라. 국회는 지난해 1억 5690만 원인 의원 연봉을 1억 5996만 원으로 1.9% 올렸다. 명절 휴가비만 850만 원(설날·추석 약 425만 원씩)이다. 국민은 뼈 빠지게 일해 세금을 내고 국회는 사골 국물 우리듯 세비를 탕진하는 꼴이다. 그만큼 받을 자격이 있나 묻고 싶다.

경제 살리기, 민생 살리기엔 여야, 보수와 진보가 따로 없다. 선거 표를 좌우하는 무당(無黨)·중도층은 대략 20% 정도다. 그렇다고 다른 80%가 모두 정치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주변에서 정치 얘기하는 사람은 손에 꼽는다.

서민들의 관심은 밥벌이다. 밥이 곧 법이다. 얼마나 잘 먹고 잘살게 해줄지가 궁금할 뿐이다. '밥벌이'란 단어는 상당히 엄중하고 처량하기까지 하다. 그래도 우리에겐 '먹고 살기 위해서'라는 중압만으로는 결코 담을 수 없는 절박함이 있다.

'정치야, 너만 정신 차리면 돼. 제발 좀 먹고 살게 해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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