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월 19일 새벽 구속되자 대통령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침입해 난동을 부린 가운데 법원 청사가 심하게 파손돼있다.
남소연
지금부터 우리가 만들 집이 기존의 집을 다 갈아엎어야 하는 건 아니다. 꼼꼼한 진단을 통해 기둥이 멀쩡하다면 기둥은 남겨두고, 벽체부터 다시 만들 수 있다. 기둥과 지붕, 벽체도 쓸만하다면 배관공사부터 시작해야 할 수도 있다. 섣부른 진단은 금물이다.
지금 필요한 건 현재 민주정에 대해 구성원 다수가 참여해 정밀 진단을 하는 일이다. 당연히 시간이 걸릴 것이다. 각자 자신의 진단을 내놓고 경청하고 논쟁하고 안을 만들고 다수 합의안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처음부터 다시 논의를 시작해야 할 수도 있다.
국내외적으로 이 다급한 시간에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1987년 민주화 이후 우리의 민주정도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누군가 완성된 설계도를 우리 손에 쥐여준 게 아니다.
민주정에 대한 경험이라고는 거의 없던 정치인과 시민들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더듬더듬 공사를 시작했다. 때로 무너져서 다시 올렸고 때로 우리의 성취에 스스로 감탄하면서 그렇게 긴 시간에 걸쳐 만들어온 것이다. 중요한 건, 민주정을 지키고 가꾸려는 민주주의자들이 실패마저 견뎌낼 각오로 함께 노력해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 보면 민주정이란 게 원래 그렇다. 항상 '지금, 여기'가 중요한 게 민주정의 속성이다. '10년 전에, 100년 전에 잘 나갔다'는 건 의미가 없다. 지금, 이곳에 사는 사람들 다수의 의견을 모아 지금, 여기의 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해법을 찾는 과정 자체가 민주정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자 정치인과 시민들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긴 호흡을 준비하는 것, 여기에서 출발하자.
지금 이 시간을 살아내면서 새집을 위한 설계 도면을 준비하려면 당장 우리의 민주정이 더 이상 파괴되는 것을 막아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인, 언론인, 관료, 당원인 시민, 비당원인 시민민주주의자들이 함께 연합을 광범위하게 구성하고, 반(反)민주주의자의 공간이 더 이상 확장하지 않도록 튼튼한 방벽을 만들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이 겉으로만 민주주의자 혹은 절반만 민주주의자들의 위험에 대한 경계다.
200여 년에 걸친 다양한 사례를 통해 미국과 유럽, 남미와 아시아 각국 민주정의 붕괴와 회복 과정을 연구한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렛은 민주정의 붕괴에 가장 큰 기여를 하는 것은 반민주주의자 자체가 아니라 겉으로만 민주주의자인 척하는 자들이라고 단언한다.
"반민주적인 극단주의자는 건강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불가촉천민 취급을 받는다. 언론은 그들은 무시한다. 정치인과 기업가, 사회적 평판을 우려하는 제도권 인사들 모두 그들과의 접촉을 꺼린다. 하지만 유명 정치인들이 그들의 존재를 암묵적으로 인정할 때, 상황은 완전히 바뀐다. 극단주의자와 그들의 이념은 이제 정상적인 것으로 인정받는다. 주류 언론 역시 다른 정치인을 두둔하듯 그들을 두둔하기 시작한다. 그들을 인터뷰나 토론에 초대한다. 기업가들은 그들의 선거운동을 후원한다. 그들을 외면했던 정치 컨설턴트들은 이제 그들의 전화를 받는다. 개인적으로 동조했지만 감히 공식적으로 지지하지 못했던 많은 정치인과 활동가들은 이제 거리낌 없이 그렇게 한다." -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렛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민주주의자들은 긴 여정 시작해야

▲17알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대 학생회관앞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서울대인 주최로 윤석열 대통령 탄핵반대 집회가 열렸다. 이날 집회에는 서울대생이 아닌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 수백명이 참석했다.
권우성
반민주주의자보다 위선적 민주주의자들이 민주정에 더 위험한 이유는, 반민주주의자들은 어느 민주정에서나 변방에 소수로 존재하지만 이들에게 민주정의 파괴자가 될 수 있도록 영향력과 공간을 제공하는 사람들이 위선적 민주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위선적 민주주의자들이 처음부터 혹은 항상 그런 모습을 띠는 것은 아니다. 민주정의 위기의 순간은 위선적 민주주의자들의 기회주의와 함께 오며, 민주주의자인 시민들이 그들의 위험을 깨닫지 못하거나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민주정의 파괴에까지 이를 수도 있다.
위선적 민주주의자들은 말로 민주주의를 칭송하지만 민주정의 파괴행위에 대해서 묵인하거나 때로 지원한다. 자신의 사익이 민주정의 존속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극단주의자들의 정치 폭력에 대해 '문제'라고 점잖게 말하지만 돌아서서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두둔함으로써 극단주의자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해 준다. 표가 되고 돈이 되고 영향력을 얻기 때문이다.
또 이들은 민주정 안의 좌우 논쟁과 민주정 파괴자들의 언어폭력을 같은 선상에 두어 경계를 흐리게 만듦으로써 시민들이 극단주의자들의 주장에 눈을 돌리게 만든다. 나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장할 수 있다면 민주정 파괴자들과도 언제든 손을 잡을 준비가 되어 있고, 그들의 영향력 확대가 곧 나의 정치적 자산이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앞으로 한국 민주주의자들은 어떤 민주정을 어떤 경로로 재건할 것인가를 두고 긴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당장 충실한 민주주의자 연합을 구축하는 것을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 충실한 민주주의자 연합은 반민주주의자의 파괴에 대항할 뿐 아니라 위선적 민주주의자들이 반민주주의자들과 손을 잡는 그 지점을 차단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서복경 / 더가능연구소 대표
서복경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서복경은 1995년부터 정치학을 공부했고, 2003년 한국 정당과 선거를 주제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글로벌 수준에서부터 읍면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준의 당대 민주주의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5년 동안 국회 공무원을 했고, 16년째 강의를 하고 있으며, 꽤 긴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생활을 거쳐 2020년부터 더가능연구소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2008년부터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실행위원, 부소장, 소장을 거쳐 다시 실행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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