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3.17 11:46최종 업데이트 25.03.17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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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극우세력이 가짜뉴스를 퍼트리면서 여론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가짜뉴스는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과 배제를 조장하고, 음모론을 확산시키면서 시민들을 불안하게 만듭니다. 더 큰 문제는 가짜뉴스로 만들어진 여론에 무분별하게 편승하는 정치권이 '혐오 정치'로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망가뜨린다는 점입니다. 세계 각국의 '극우발 가짜뉴스'를 조명하고, 이에 대한 해법과 대안을 살펴봅니다.[편집자말]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입구에 설치된 포토라인. 자료사진.연합뉴스

현대적 민주주의가 정착하면서, 언론과 시민은 정보의 생산자이자 소비자로서 사회를 지탱하는 핵심 축이 되어왔다. 그러나 가짜 뉴스의 범람 속에서, 이들은 왜곡된 정보의 피해자가 되고 있으며, 그 결과 민주주의의 근간마저 흔들린다.

허위 정보의 확산은 신뢰의 붕괴를 초래하고, 이는 다시 가짜 뉴스의 생산을 부추기며 악순환을 형성한다. 정보의 신뢰가 무너진 사회에서는 건전한 공론장이 유지될 수 없으며, 민주주의 또한 지속 가능성을 잃게 된다.


중요한 것은, 언론과 시민이 단순한 피해자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정보의 흐름을 형성하는 주체이기도 하며, 따라서 가짜 뉴스의 확산에 대한 책임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역할을 해온 언론과 시민이 오히려 그 체제를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면, 이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권력을 감시하고, 민주주의의 중심축이 돼야 할 언론과 시민은 현 위기 앞에서 책임을 통감하고, 원인과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

청구권적 자유와 참여적 자유

근대 이후 형성된 시민 계급은 인간의 자유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먼저, 타인의 강제로부터 해방되는 소극적 자유를 확보하고, 나아가 자율적으로 목적을 선택하는 적극적 자유를 실현해 왔다.

소극적 자유의 확립은 봉건적 예속과 절대 권력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개인은 신분이나 특권이 아닌 보편적 권리를 기반으로 법 앞에서 동등한 존재로 인정받게 되었으며, 국가 권력은 시민의 자율적 영역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확립되었다.

그러나 소극적 자유가 보장되었다고 해서 모든 시민이 진정으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제약은 자유의 실질적 향유를 가로막았고, 이에 따라 시민들은 보다 적극적인 자유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적극적 자유의 두 가지 측면 즉 청구권적 자유와 참여적 자유에 대한 시민들의 태도는 일관되지 않았다. 청구권적 자유는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자유로, 복지와 사회적 권리를 포함한다.

시민들은 자신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보장받기를 원했고, 이에 따라 노동권, 교육권, 의료권과 같은 권리를 확립하는 데 있어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선거 과정에서도 복지 확대와 경제적 지원을 내세우는 정치 세력이 강한 지지를 받았으며, 국가가 적극적으로 시민의 삶을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이 점차 강화되었다.

반면, 참여적 자유에 대한 태도는 달랐다. 시민들이 공동체 의사결정에 개입할 기회를 보장받고서도 정치적 무관심과 책임 회피가 만연했다. 민주적 과정에 참여하기보다 개인적 삶의 보장에 더 큰 관심을 기울였다.

그 결과, 공적 의사결정의 부담이 정치 엘리트나 대중 영합적 지도자들에게 넘어갔고, 이는 포퓰리즘 확산을 부추겼다. 포퓰리즘은 참여적 자유가 약한 시민들을 대상으로 여론을 조작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2018년 8월 2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유세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한 트럼프 지지자가 '큐어논'을 뜻하는 Q 사인을 들고 있다.연합뉴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2020년 대선과 '큐어논(QAnon)' 음모론이다. 당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 사이에서 "바이든과 민주당이 아동 인신매매 조직과 연관되어 있다"는 터무니없는 음모론이 퍼졌고, 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시민들이 행동에 나섰다.

특히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급속도로 확산된 이 음모론은 2021년 1월 6일 미국 의회 난입 사태로까지 이어졌다. 선거 결과를 부정하는 가짜 뉴스가 대중의 분노를 자극하고, 결국 민주주의의 핵심 절차인 선거 결과를 무력화하려는 폭력 사태로 발전한 것이다.

이는 시민들이 정치적 책임을 방기하고, 참여적 자유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할 때 민주주의가 직접적으로 위협받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2016년 5월 11일(현지시간) 영국 콘월의 세인트 오스텔에 세워져 있는 브렉시트 찬성 버스에 "우리는 매주 유럽연합(EU)에 3억 5000만 파운드를 보낸다. 이것을 국민보건서비스(NHS) 기금으로 사용하자"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연합뉴스

비슷한 사례는 2016년 영국 브렉시트 국민투표 과정에서도 나타났다. 당시 유권자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주장 중 하나는 "유럽연합(EU)에 남아 있으면 영국은 매주 3억 5000만 파운드(약 6000억 원)를 EU에 지불해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이 주장은 경제적 부담을 부각시켜 유권자들을 EU 탈퇴 쪽으로 유도하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으며, 이후 주요 정치인들도 이 주장이 근거 없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미 가짜 뉴스가 광범위하게 퍼진 뒤였고, 이를 믿고 투표한 시민들은 EU 탈퇴라는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내리는 데 일조했다.

이처럼 시민들이 정치적 책임을 적극적으로 행사하지 않고, 비판적 사고 없이 정보를 소비할 때 민주주의는 극단적인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 지도자의 일방적 메시지를 검증하고 토론을 통해 비판할 수 있어야 하지만, 시민들이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는 순간 정보의 흐름은 일방적으로 변하고,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리게 된다.

민주주의가 직면한 위기

민주주의에서 권력은 원칙적으로 대중에게서 비롯되지만, 참여적 자유가 약화될수록 그 권력은 다시 특정 지도자나 정치 세력에 집중된다. 이는 오늘날 민주주의가 직면한 위기의 핵심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 정보를 왜곡하는 전략을 사용한다. 대중이 정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숙의하는 것이 아니라 직관적인 메시지에 반응할 경우, 사실 여부보다 감정적 호소력이 강한 정보가 더 큰 힘을 갖게 된다.

지도자들은 이러한 환경을 활용하여 자신의 정치적 목표에 유리한 정보만을 퍼뜨리고, 반대되는 정보는 가짜뉴스로 몰아간다. 동시에, 대중 역시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듣고 싶은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소비하게 된다.

결국, 진실 여부와 관계없이 가장 선동적인 메시지가 여론을 주도하는 환경이 조성된다. 사실보다는 대중이 원하는 이야기, 논리보다는 감정을 자극하는 이야기가 우위를 점하게 된다. 이는 공적 토론과 비판적 사고를 약화시키며, 나아가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렇게 형성된 가짜뉴스의 생태계는 단순한 정보 조작을 넘어, 시민들이 민주적 절차를 신뢰하지 않도록 만들고, 나아가 민주주의적 정당성 자체를 무너뜨리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자본과 권력에 종속되는 언론

시민계급과 함께 언론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핵심 기둥 중 하나다. 언론이 권력을 감시하고, 사실에 기반한 정보를 제공하며, 시민들이 숙의할 수 있는 공론장을 형성하는 역할을 수행할 때 민주주의는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언론은 이러한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기보다 자본과 권력에 종속되며,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특히, 언론이 소수의 대기업 및 개인 소유 형태로 운영될 때, 정치권력과 결탁하여 여론을 조작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가장 큰 문제는 언론이 자본과 권력에 종속되는 구조적 한계를 지닌다는 점이다. 원칙적으로 언론은 독립성을 유지하며 권력을 감시해야 하지만, 오늘날 많은 언론이 대기업이나 특정 정치 세력과 밀착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1월 2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의 한 지하철역에 폭스 뉴스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식 광고가 게재돼 있다.연합뉴스

미국의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폭스(FOX) 뉴스는 공화당과 강한 유착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극우 성향의 가짜뉴스를 대대적으로 보도해 왔다. 한국 역시 일부 보수 언론들이 특정 정권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때로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보도를 조작해 왔다.

이러한 언론 구조는 결국 공론장의 왜곡과 여론 조작으로 이어진다. 언론은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는 핵심 매개체이지만, 특정 정치·경제 세력과 결탁할 경우 공정한 보도 대신 편향된 정보를 제공하는 도구로 변질된다.

FOX 뉴스가 2020년 미국 대선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도난(Stop the Steal)' 주장을 확산하며 민주적 절차를 위협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언론이 공정성을 잃고 특정 세력의 선전 도구로 전락할 경우, 시민들은 정확한 정보를 접할 기회를 잃고 민주주의의 근간인 숙의 과정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현대 언론은 시장 논리에 종속된 저널리즘을 추구하면서 점점 더 선정적인 방식으로 보도를 생산하고 있다. 광고 수익 극대화를 목표로 삼는 미디어 환경에서, 언론은 사실 전달보다는 대중의 감정을 자극하는 보도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정치적 논란을 부추기거나 가짜뉴스를 적극적으로 확산시키는 것은 이러한 시장 논리에 부합하는 전략이다. 클릭 수와 조회 수가 중요해지면서, 신중한 분석보다는 자극적이고 감정적인 보도가 범람하게 되었고, 이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시민과 언론 모두 변화 모색해야

지금 전 세계에 만연한 정보 왜곡과 그에 따른 민주주의 위기는 시민의 기본권과 언론의 생태계를 근본적으로 위협한다. 허위 정보는 정치적,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키고, 거짓된 담론이 공론장을 잠식하면서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숙의와 합의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시민과 언론 모두 현실적인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시민들이 정치적 책임을 하루아침에 받아들이기는 어렵지만, 최소한 정보 소비 방식에서 더 신중한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미국 의회 난입 사태와 브렉시트 국민투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가짜 뉴스와 선동적 정보가 확산될 때 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확인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자신이 선호하는 정치적 입장이 있다면 더욱 교차 검증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언론 역시 정치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되기는 어렵지만, 내부적으로 자율성과 윤리의식을 강화해야 한다. 소유권과 편집권의 분리는 필수이며, 언론 존재의 근간이다.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법적 장치 보완이 시급하며, 대형 미디어 기업의 소유 구조를 견제할 공적 감시 기구 확대와 같은 제도적 접근이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민주주의가 지속되려면 시민과 언론이 최소한의 역할부터 다시 회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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