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상담센터 모습. 2025.1.31
연합뉴스
일상에서 경험하는 원리는 이해하기 쉽다. 보통 사람들은 이런 경험칙으로 세상만사를 이해하려 한다. 때로는, 특정 세력이 사람들의 이 성향을 이용해 여론을 원하는 방향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어떤 문제를 다룰 때, 진실은 그 경험칙과 다른데 그것을 당연한 것처럼 끼워 넣고 설명하는 사례가 많다. 국민연금 재정에 대한 관점이 이 사례 중 하나이다.
재정에 관한 경험칙은, 개인이든 기업이든 적자는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보수 언론과 정책 결정자들, 심지어 전문가들도 정부나 국민연금도 이 경험칙이 당연히 적용되는 것처럼 말한다. 인구 고령화로 국민연금은 적자로 돌아설 것이고, 그렇게 되면 미래 국민연금 지급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단순한 논리가 국민연금 개혁에서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최상목 장관도 이를 해결하기 위해 '더 내고 덜 받는 방향으로의 개혁'을 주문하는 것 아닌가.
국민연금의 재정은 가계나 기업의 재정과는 전혀 다르다. 그래서 그 경험칙을 기준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국민연금은 정부 재정의 일부이기 때문이다(이에 대한 자세하고 전문적인 설명은 졸고[전용복, 2024] 참고). 국민연금이 정부 일반회계와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일반적인 정부 재정의 일부란 말이다. 정부가 운영 주체인 한, 원리적으로 양자를 분리할 수 없다.
그렇다면, 정부의 재정은 가계나 기업의 재정 원리와 다른가? 당연히 다르다! (졸저 전용복(2020)이 이를 자세히 설명한다) 가계나 기업은 '돈'을 발행할 수 없지만, 정부(행정부와 한국은행)는 돈을 발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차이는 근본적인 차이이다. 돈을 발행할 수 있다면 절대 파산할 수 없다. 개인이나 기업은 돈을 발행할 수 없으므로 재정 적자가 누적되면 파산할 수 있지만, 정부는 그렇지 않다.
우리가 관찰하는 모든 정부 재정 위기는 '외환위기'이다. 정부가 발행할 수 없는 돈(외환, 금 등)으로 빚을 지면 정부도 파산할 수 있다. 그러나 국내 통화(법정 통화)로 빌린 돈을 못 갚는 일은 없다. 국민연금의 재정, 즉 정부의 재정 적자는 외환 부채가 아니라, 국내 통화로 표시된 부채일 뿐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국민연금의 적자, 다른 말로 정부의 부채를 무한히 늘려도 된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세금(국민연금 보험료)은 꼭 필요하다. 다만, 세금은 재정 조달 목적이 아니라, 불평등 감소, 올바른 경제활동 유도 등의 이유로 반드시 필요하다.
국민연금이 정부 재정의 일부란 사실이 중요한 이유는, 국민연금의 조달 범위를 달리 생각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정부는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정책(세입과 세출)을 집행한다. 특정 정책의 수혜 정도를 따져서, 더 많은 수혜를 입는 집단에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는 일은 없다. 예를 들어, 국방력이 강화되면 휴전선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가장 직접적으로 더 큰 수혜를 입으므로 그들에게 '국방비로 쓸 세금'을 따로 더 많이 부과하지 않는다. 또한 국민 누구도 '나는 힘이 세서 경찰이 필요 없으니, 치안에 드는 세금을 내지 않겠다'고 주장할 수도 없다. 이것이 정부 재정의 일반적 속성이다.
그런데, 유독 국민연금에 대해서는 수익자 부담원리를 강요한다. 국민연금 재정은 오직 가입자가 낸 세금(보험료)으로만 해결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예를 들어, 양도세는 절대로 국민연금 지급에 사용할 수 없다는 전제가 그것이다. 국민연금이 정부 재정의 일부라면 이런 주장을 할 수 없다. 이런 태도의 저변에는 '노후 준비는 개인적인 일'이란 전제가 깔려있다. 비슷한 예가 출산이다. 지금까지 출산과 양육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로 간주했다. 정부가 지원하더라도, 마치 시혜를 베푸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만약 출산과 양육이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라면, 왜 출산율 하락에는 호들갑을 떠는가?
출산이 사회적 성격을 갖는 것처럼, 고령화도 국가 전체가 공동으로 대응해야 하는 사회적인 문제이다. 치안과 국방도 그러하다. 그 수혜자를 선별하여 개인별로 세금을 차등 부과할 수 없다. 이는 국가 전체가 공동으로 대응해야 할 '사회적 과제'이다. 따라서, 노후소득보장을 위한 국민연금 제도 또한 수익자 부담원칙을 강요할 수 없다.
현재 국민연금 보험료는 근로소득에만 부과한다. 한 나라의 모든 소득을 합한 것이 GDP인데, 근로소득은 GDP의 30%도 되지 않는다. 이들에게 더 내고 덜 받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당신은 치안유지의 혜택을 많이 받으니, 세금을 더 내라'는 말과 같다. 온 나라 전체가 공동으로 대응해야 할 과제를 개인적 문제인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만일 사회 전체가 국민연금을 분담한다면, 국민연금 지급이 국가 전체에 얼마나 큰 부담이 될까? 국민연금 재정추계 위원회의 추산(제5차)에 따르면, 현 지급 수준을 유지할 때, 65세 노인인구 비중이 48%에 이르는 시기에도 국민연금 지급액은 GDP의 약 10% 정도에 불과하다. 유럽의 주요 국가들은 노령연금으로 이미 이보다 더 많이 지출하고 있다. 즉, 우리나라 경제 전체로 봤을 때, 국민연금 지급 여력은 충분하다.
현재 국민연금 개혁 논의는 얼마나 더 내고 얼마나 덜 받을 것인가에만 매몰되어 있다. 올바른 국민연금 개혁 논의는 사회 전체가 공동으로 부담하는 제도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예컨대, 나는 GDP 대비 연금 지급 총액의 비율(=총지급액/GDP)을 노인인구 비중과 연동하는 개혁안을 제안한다. 국민연금 불신을 조장하고, 더 내고 덜 받는 방법을 당연한 것처럼 몰아가서는 안 된다.
[참고문헌]
전용복, 2020. 『나라가 빚을 져야 국민이 산다: 포스트 코로나 사회를 위한 경제학』, 진인진출판사
전용복, 2024. "국민연금 재정은 정부 재정과 분리되어 있나?", 사회복지정책과 실천, 제10권 제2호, 99~1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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