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2.19 06:52최종 업데이트 25.05.21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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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플로리다주 팜비치국제공항에 도착해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연합뉴스

3년째를 맞이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중대 분수령에 접어들고 있다. 조속한 종전을 호언장담해온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본격적인 행보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및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연이어 전화 통화를 갖는 한편, 미국의 고위 관료들에게 러시아 파트너들과 협상에 나설 것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미러는 금주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고위급 회담을 가질 예정이고, 2월 말에는 트럼프-푸틴의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러한 행보에서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트럼프는 전쟁의 원인에 대해 기존의 서방 진영 담론을 완전히 뒤집고 있다. 전임자인 바이든 행정부를 비롯해 서방은 푸틴의 제국주의적 야심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강행한 원인이라고 봤다. 그래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대대적인 군사 지원과 강력한 대러 경제 제재를 통해 러시아를 격퇴하고 약화시키는 것에 목적을 뒀다.

하지만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 시도가 러시아의 침공 원인으로 작용했다며, 휴전이나 종전의 조건으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제외하려 한다. 심지어 그는 주요 8개국(G8)에서 러시아를 축출한 것을 비판하면서 재가입이 필요하다는 입장도 밝혔다. 이로 인해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이후 지속적으로 강화되어 온 서방 진영의 반러 연대는 뿌리부터 흔들릴 조짐을 보인다.

트럼프는 또한 동맹이나 우방은 호구로 취급하면서 푸틴과 같은 '스트롱맨'과는 거래 유혹을 강하게 표출했다. 휴전 협상 초기에 우크라이나와 유럽의 주요 국가들은 배제하고 러시아와 직접 담판을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나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트럼프 특유의 자아실현 욕구가 강하게 투영되어 있다.

이에 대한 우려와 비판이 쏟아지자 트럼프 행정부는 미러가 먼저 협상을 하고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유럽은 추후 협상에 참여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지만, 유럽에서 '패싱'당할 수 있다는 우려는 가시지 않는다.

트럼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거래주의적 시각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젤렌스키 정부에 휴전 후 미군 주둔뿐 아니라 미국이 지금까지 제공한 군사 지원의 대가로 우크라이나의 희토류를 비롯한 광물자원 50%를 내 달라고 요구했다. 젤렌스키는 일단 이를 거부했지만, 트럼프가 순순히 물러설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딜레마에 빠진 유럽과 우크라이나

14일(현지시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왼쪽에서 세번째)과 JD 밴스 미국 부통령(오른쪽에서 두번째)이 뮌헨안보회의가 열린 독일 뮌헨에서 양자 회담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우크라이나와 유럽은 미러의 야합 가능성을 경계하면서 휴전이나 종전 조건이 러시아에 유리하게 나오면 수용할 수 없다는 뜻을 비치고 있다. 하지만 고민이 있을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와 유럽이 미러 협상 결과를 거부하면 트럼프의 다음 행보에 불안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를 거야'라며 상대를 압박하는 전술은 트럼프가 가장 즐겨 사용하는 수법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선택지는 다양하게 펼쳐져 있다.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엄포를 놓거나 실제로 그럴 수도 있고, 나토에서 탈퇴하겠다고 압박할 수도 있다. 휴전이나 종전 논의가 트럼프가 예고한 '관세 폭탄'과 조우하고 있다는 것도 유럽으로서는 고민거리가 될 것이다. 만약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중단하면, 한때 미국을 제외한 최대 포탄 지원국이었던 한국도 미국의 뒤를 따를 가능성이 높다.

유럽의 미러 협상 결과 거부와 미국의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중단이 맞물리면 유럽으로서도 최악의 시나리오를 만날 수 있다. 미국의 군사 지원이 존재하는 상태에서도 러-우 전쟁은 러시아의 우세 속에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발을 빼면, 전황은 우크라이나와 유럽에 더더욱 불리하게 전개될 것이다.

유럽의 군비 부담이 커질수록 정치사회적 혼란은 가속화되고 이 와중에 극우의 득세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다. 또 유럽의 극우가 강해질수록 트럼프 행정부와 연대도 강해져 '대서양의 정체성'이 대혼란을 맞이할 수도 있다.

이처럼 '공동의 가치와 이익'에 기반을 둬왔다는 나토는 트럼프의 귀환을 계기로 중대 고비를 맞이하게 되었다. 유럽 내에선 '유럽 안보의 자주화'를 주창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이게 자충수가 될 가능성도 경계해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문제들을 재촉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여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유럽은 현실 가능한 러-우 전쟁의 종결 방안 마련에 몰두하는 한편, 전후 유럽의 안보 구상도 새롭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 유럽이 악화일로를 걸어온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통한 안보 증진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는 것이다. 트럼프의 발언 속에도 힌트가 있다. 그는 미·러·중 중심의 핵 군축과 군사비 감축, 그리고 러시아의 G8 재가입 등을 화두로 던졌다.

여기에는 유럽이 새로운 안보 구조를 모색하는 데에 유망한 요소가 있다. 군축 협상이 성과를 거두면 러시아의 군사적 능력과 위협, 그리고 유럽의 군비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 또 G8의 부활은 서방과 러시아의 관계 개선에 디딤돌이 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정욱식 : 평화네트워크 대표이자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최근에 쓴 책으로는 <청소년에게 전하는 기후위기와 신냉전 이야기>,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북한이 온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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