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2.18 11:21최종 업데이트 25.02.18 14:56
  • 본문듣기
최성희 평화활동가미국 유학을 한 화가였던 최씨는 관찰 기록자로 강정 해군기지 반대투쟁 현장에 왔으나 현지 상황에 대응하다 보니 단식과 투옥을 불사하는 투사가 됐다. 제주의 군사기지화와 우주산업의 위험성을 추적하고 알리는 일에 관심이 많다.황의봉

"제주를 동북아의 화약고로 만드는 기동함대사령부 창설을 중단하라."

윤석열 탄핵 심판에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사이에 제주도는 '전쟁과 평화' 이슈로 뜨겁다. 공교롭게도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공식 지정한 지 20년을 맞은 시점에서 강정 해군기지에 기동함대사령부가 지난 1일 창설된 것이다.


제주 시민사회단체들이 일제히 규탄하고 나섰다. '비무장 평화의 섬' 대신 '동북아의 화약고'로 치달을 것이라는 위기감과 함께, 한미일 대 북중러 대결구도가 더욱 첨예할 것이라는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 제주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하면 강정 해군기지에 기동함대사령부가 창설됨으로써 미국의 대중국 전초기지로서의 역할이 가속화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최성희씨는 해군기지 반대운동을 시작으로 15년째 강정마을에서 '평화'를 화두로 제주 사람들은 물론 국내외 활동가들과 연대하는 삶을 살고 있다. 제주의 군사기지화를 고발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최성희 평화활동가를 만나 평화의 섬 제주가 처한 실상을 들어보기로 했다.

먼저 강정 해군기지에서 구축함 10척과 군수지원함 4척으로 구성된 기동함대사령부 창설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북한 도발을 억제하고 해양 권익을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창설한 기동함대사령부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제주도 비무장' 원칙이 무너졌다

기동함대사령부 반대 기자회견지난 2월 3일 기동함대사령부가 창설되자 강정 해군기지 반대운동을 해온 반대주민회, 강정평화네트워크, 범도민대책위, 전국대책회의 등이 즉각 공동 기자회견 및 규탄대회를 열었다.하띠

"기동함대사령부는 강정 해군기지에 기존의 제7기동전단을 모체로 해서 창설됐습니다. 해군 관계자는 기동함대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한반도와 동북아를 벗어나 세계 곳곳으로 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런 말의 배경에는 대양해군이라는 오랜 염원과 야망이 숨어 있어요.

이 기동함대사령부의 주축은 정조대왕함으로 기존의 세종대왕 이지스 구축함보다도 규모가 클 뿐 아니라 SM3라는 미국의 주요 미사일 방어체계의 핵심 요소를 장착할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미국 미사일 방어체계의 핵심으로 패트리엇과 성주에 설치된 사드, 그리고 해상 미사일 방어수단인 SM3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 SM3는 중장거리 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우리나라처럼 좁고 작은 구역에서 기능하기보다는 일본과 괌의 미군기지를 방어하기 위한 미사일입니다. 그러니까 한국 방어에는 중요하지 않고 오히려 예산 낭비가 될 수 있는 겁니다. 이 기동함대사령부는 한반도와 동북아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 가서 위협적인 존재가 된다는 점 그리고 제주도가 가해의 섬, 전쟁의 섬으로 기능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국 기동함대사령부는 한국이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에 본격적으로 편입됨으로써, 한미일 동맹의 중심이라 할 한미일 미사일 방어망이 완성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어요. 이처럼 한미일 3각 동맹을 사실상 실현하고 제도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 윤석열입니다. 한미일 동맹의 마지막 풀리지 않았던 고리였던 한일협력을 일방적 양보로 끌어낸 것이지요. 반면 중국 혐오 정서를 부추겨 대결구도를 더욱 강화했고요. 저희는 이같은 대결구도에서 제주도가 희생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기동함대사령부 창설을 반대하고 비무장 평화의 섬 제주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강정마을은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싸고 주민들이 찬성과 반대로 나뉘면서 첨예한 갈등이 지속돼 온 아픈 상처를 지니고 있다. 해군기지가 들어선 지 9년이 지난 지금 강정마을의 상처는 아물었을까. 기동함대사령부 창설이라는 소식에 강정 사람들의 반응과 분위기가 어떨지 궁금하다.

"지금 비상계엄 사태 이후에 국민적 관심이 탄핵 심판에 쏠려 있다 보니 전국적으로는 크게 부각되지 않고 있지만, 이곳 강정의 주민들이나 평화활동가들은 비상한 관심을 갖고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기동함대사령부 창설 발표가 나자 곧바로 강정 해군기지 반대운동을 해온 반대주민회, 강정평화네트워크, 범도민대책위원회, 전국대책회의 등이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갖고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힌 바 있습니다. 당시 저희가 내건 구호가 '제주를 동북아의 화약고로 만드는 기동함대사령부 창설을 중단하라!, 제주 해군기지 폐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해군기지가 들어선 이후 강정마을의 분위기는 한마디로 상처가 너무 깊어서 말을 꺼내기조차 힘든 상태라고 저는 느낍니다. 예를 들어 해군기지라는 직접적인 언급이 없더라도 그와 관련된 내용이라고 느껴지면 사람들은 대화를 이어 나가고 싶어 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물론 최근까지도 공동체 식당에서 해군기지 반대투쟁에 나선 분들을 위해 밥을 해주셨던 삼촌 등 여전히 우리 지킴이들과 연대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마을 주민들도 계십니다."

지난 1월 27일로 제주는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된 지 20년을 맞았다. 제주도는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연합군에 맞서 마지막 결사항전을 준비했던 섬으로, 절멸의 위기를 아슬아슬하게 넘긴 아픈 기억을 간직한 곳이다. 또 일본군 폭격기가 알뜨르비행장을 통해 중국 남경으로 출격했던 '가해의 공간'이기도 했다. 전쟁이 일어나면 원하든 원치 않든 군사기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가 될 수도, 가해자가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 역사의 현장이 바로 제주섬이다.

따라서 '평화의 섬 제주'는 오늘날 제주도의 군사기지화를 반대하는 출발점이자 종착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20년 전 제주 '평화의 섬' 지정은 어떤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것일까.

"1991년 4월에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의 한·소 정상회담이 제주도에서 열렸습니다. 제주도가 한반도 평화 정착과 동북아 평화의 중심지라는 사실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지요. 그 이전까지 제주는 4·3의 아픔을 겪은 외곽의 섬 정도로 인식됐지만, 제주가 이제 평화의 섬으로 기능할 수 있겠다고 하는 새로운 인식이 강화된 계기였습니다.

그해 10월에 제주국제협의회 토론회가 열려 국내외 정치 전문가들이 활발한 논의를 전개한 끝에 '평화의 섬 제주'에 대한 다섯 가지의 중요한 원칙을 정립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첫 번째 원칙이 바로 '제주도는 비무장화되어야 한다'라는 것이었어요. 이외에도 제주도가 동북아 평화와 질서를 위한 지정학적 중심지임을 깨달아야 하고, 국제적 갈등과 논쟁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지역센터가 되어야 한다는 점 등의 원칙이 천명됐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원칙이 무너져버린 겁니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제주의 비무장화와 함께 '비핵' '중립화'라는 단어들이 언급됐는데, 정작 2005년 노무현 정부에서 세계평화의 섬 제주를 지정할 때 그 단어들이 다 빠져버렸어요."

제2공항은 군사공항? 의구심 갖는 이유

한화우주센터 기공식 규탄옛 탐라대학 부지에 건설되는 한화우주센터 기공식을 규탄하는 시민단체 회원들. 2024년 4월 29일.은영

제주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하면서 비무장화 등 핵심적인 조건으로 제시했던 내용이 빠진 것은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국내외적인 여건의 변화가 있었을 것 같다.

"신자유주의와 한미동맹이 작용했다고 봅니다. 평화의 섬 지정은 당시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에 따른 것으로 '개발'과 '평화'가 나란히 언급됐어요. 또한 2000년대 초에 미국에서 부시 주니어가 대통령이 되면서 새로운 미국의 세기 운운하며 네오콘이 주류세력으로 등장했거든요. 미국이 자신의 동맹국들 특히 한국과의 동맹 강화를 압박하다 보니 바로 그 시기에 나온 세계평화의 섬 지정이 많은 한계와 치명적인 오류를 노출할 수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또 평화와 군사기지가 양립한다는 궤변이 먹혀들어 갔습니다. 민군복합개발안이 나오고 2007년에 강정 해군기지를 강행한 것도 그런 배경에서 가능했어요.

제주 출신으로 참여정부 시절 제주 평화의 섬 정책의 최초 입안자였던 문정인 교수도 2001년 4월 제주도를 '평화지대'로 선포할 것을 제안하면서, 비무장화와 중립화를 언급하였거든요. 그리고 장기적으로 군사 목적의 선박 및 항공기의 기항과 기착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분마저도 나중에 이 평화의 섬 비무장화라는 논거를 끝까지 고수하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제주의 불행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근민 전 도지사도 '평화의 섬에 이제 군사기지나 시설이 없어야 한다'라는 논리를 펼쳤지만 결국은 제주 해군기지를 허용했지요. 이런 것들이 오늘의 결과를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20년을 되돌아보면 제주가 비무장 평화의 섬을 추구한다는 명분과는 반대로 오히려 군사기지화가 가속화돼 왔다는 생각이 든다. 20년간 제주는 실제로 평화로워졌을까 아니면 위태로워졌을까?

"저는 새해가 시작되는 게 두려울 정도로 제주도 곳곳에서 난개발이 진행되고, 군사기지화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평화의 섬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전쟁의 섬으로 치닫고 있는 게 아닌가 우려하고 있어요. 해군기지가 2016년에 완공되자 그와 관련된 시설들이 계속 들어오고, 기동함대사령부마저 창설되지 않았습니까.

또 제주도 곳곳에 레이더 시설이라든가 국가 위성통합운영센터나 한화우주센터 같은 시설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군대와 무관한 것 같지만 커다란 맥락에서 볼 때는 군사적인 기능과 연결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당초 염원했던 비무장화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셈이고, 그만큼 제주는 위태로워진 게 아닐까 합니다."

화제를 돌려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제주의 군사기지화가 가속화되는 주요한 사례로 제2공항과 한화우주센터가 거론되고 있다. 우선 제2공항이 군사공항으로 전용될 것이라는 의구심의 근거를 들어보았다.

"현재 제2공항 기본계획이 고시된 상태인데요, 제 기억에 2017년에 당시 정경두 공군 참모총장이 제주 항공우주박물관에 들른 적이 있는데, 그때 제2공항이 건설되면 남부탐색구조부대 설치를 고려할 수 있다고 말해서 크게 보도된 적이 있었어요.

2022년도 겨울에는 국민의힘 북핵위기대응특위 보고서에서 '제주도 전략 도서화 검토 필요성'을 언급해 제주 도민사회가 굉장히 시끄러웠죠. 당시 제2공항 건설과 관련해 미국의 전략 폭격기가 이착륙 가능한 활주로 건설이 언급되기도 했어요. 이런 일련의 과정을 보면 저희가 해군기지 세워질 때부터 이러다가 공군기지까지 들어오는 것 아닌가 했던 우려가 현실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성산의 제2공항 부지가 170만 평으로 현 제주공항보다 훨씬 규모가 큰 사실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사실 제주도에 공군기지를 만들려는 시도는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1987년에도 국방부가 대정읍 송악산 일대 197만 평을 군사시설보호지역으로 확정했다가 주민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3년 만에 전면 백지화를 발표한 적이 있거든요. 지금 알뜨르 비행장으로 불리는 그 지역입니다. 제2공항을 군사공항으로 전용하려는 속내를 쉽게 포기할 수 있을까요?"

"우주산업, 환경에 미치는 영향 고려해야"

해상 위성발사 규탄2023년 12월 4일 서귀포 중문 앞바다에서 한화시스템이 만든 위성이 발사되자 이를 규탄하는 대회가 열렸다. 해상에 설치된 발사대를 볼 수 있다.황용운

평화활동가로서 최성희씨가 최근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사안이 한화우주센터로 상징되는 우주산업이다. 제주도 당국은 한라산 남쪽 기슭의 옛 탐라대학 부지에 한화우주센터 등을 건설해 제주를 우주산업의 중심지로 발전시키겠다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반면 이러한 움직임이 제주도를 평화의 섬에서 더욱 멀어지게 하는 우주 군사기지화 프로젝트로 보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 제주 우주산업의 배경과 진척 상황부터 들어보자.

"정부가 2022년 우주산업 클러스터 삼각 체제를 지정했어요. 기존의 항공우주연구원이나 국방과학연구소가 있는 대전, 위성조립으로 특화하겠다는 사천 등 경남, 그리고 발사대가 있는 고흥 등 전남을 클러스터로 만들겠다는 구상인데 여기에 제주는 빠져 있습니다. 오영훈 제주지사가 제주도 우주산업 클러스터로 지정받고 싶다며 그 준비작업으로 용역을 실시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022년 완공된 국가 위성통합운영센터와 현재 건설 중인 한화 우주센터를 바탕으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2023년 12월 4일에 서귀포 중문 앞바다에서 국방과학연구소의 해상발사대로 한화시스템이 만든 위성이 발사됐습니다. 그때 한화시스템이 발사 성공을 자축하면서 제주를 우주산업의 전초기지로 만들겠다고 했어요. 저희가 해상발사대 부근에 가서 기자회견도 하고 시위도 했는데, 결국 작년 4월 29일 한화 우주센터 기공식을 했습니다. 보도에 의하면 올해 10월에 완공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약 10만 평 부지에 기존의 천문과학연구소, 전파망원경 외에 한화우주센터와 페리지 에어로 스페이스라는 발사체 만드는 기업 등이 들어서게 된다는 것이에요."

제주도가 우주산업을 유치해 클러스터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도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우주개발에 뛰어들고 있는데 우리만 뒤처질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생각들이 적지 않을 듯싶다. 평화활동가는 이 사안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을까.

"제가 얼마 전 도의원 한 분을 만나 얘기한 적이 있는데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자기는 제2공항이 들어서는 것은 문제라고 보기 때문에 도의회에서 이를 반대해 막아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우주산업은 미래의 먹거리 산업이므로 유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마 제주도의회 의원뿐 아니라 많은 제주도민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저는 이와 관련해 어떤 균형과 규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우주에 대한 인간의 탐구심은 당연히 인정하지만, 탐구욕만으로 우주를 바라본다면 인류가 지구에서 했던 것처럼 끝없는 개발과 착취 수탈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따라서 윤리적인 입장에서 이 우주가 인류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하고, 우주 역시 우리가 보존해야 할 하나의 커다란 환경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주산업과 우주개발에도 규제와 제약이 필요한 것이겠지요.

그런데 국가적으로나 제주도 차원에서나 이런 책임의식과 윤리의식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으면서 오직 미래의 먹거리 산업이라는 점만 강조하면서 우주를 어떤 도구와 대상으로만 여긴다면 엄청난 비극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최성희 평화활동가는 우주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직은 우주산업이 다소 낯선 분야여서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알고 보면 상당히 위험하다는 것이다.

"제가 보기에 한화우주센터에서 가장 위험한 시설은 액체엔진 연소시험장과 고체엔진 연소시험장입니다. 이런 엔진 연소시험장이 중산간에 들어선다는 것인데, 이 지역이 지하수 특별관리구역입니다. 또한 부지의 옆은 절대보존지역으로, 서귀포 시민의 식수로 이용되는 하천이 흐르고 있거든요. 폭발 가능성이 매우 큰 시험장이라는 점에서 크게 우려가 됩니다. 유사한 시험장이 있었던 대전에서도 폭발사고로 노동자 5명이 사망했던 선례가 있습니다.

우주산업이 제주에 미치는 환경오염 가능성에 대해서도 주목해야 합니다만,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도 정말 문제가 심각합니다. 예를 들어 세계 최초로 상용 우주선을 발사하는 등 우주개발을 주도하는 미국 스페이스X사의 로켓인 팰컨9는 우리나라 군 정찰위성도 발사하는데, 한번 발사할 때마다 보잉747 비행기 395대가 대서양을 건널 때와 맞먹는 양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합니다. 즉 지구온난화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에요."
제주 군사화 관련시설 현황최성희 평화활동가가 임의로 지도에 표시해본 것으로, 참고용으로만 볼 필요가 있다. 2025년 2월 15일 기준. 검은 색은 기존의 또는 완공된 시설, 붉은 색은 건설 중인 시설, 보라색은 계획 중인 시설이다. ①모슬봉 레이더(대정읍) ②제주항공우주박물관(안덕면) ③제주해군기지(강정마을) ④국가위성통합운영센터(구좌읍 덕천리) ⑤컨텍 민간우주지상국 (구좌읍 용암해수단지) ⑥제주남부항공로레이더(1100고지 인근) ⑦국방과학연구소 이동식 해상발사장(화순항 관리) ⑧기상청 레이더(애월읍 수산봉) ⑨컨텍 민간우주지상국(한림읍 상대리) ⑩페리지 에어로스페이스 이동식 해상발사장(한림읍 용수리. 2024년 풍랑으로 좌초됨) ⑪ 제2공항(성산) ⑫한화우주센터(옛 탐라대학 부지)최성희

우주산업이 군사적 목적과 긴밀해 연결돼 있다는 점은 이제 하나의 상식일 정도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현대식 군사전략에서 위성시스템을 활용하는 것은 당연시되고 있고, 이는 곧 우주산업이 미래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핵심 요소로 부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성희 평화활동가도 이 문제를 가장 관심 깊게 보고 있는 사람이다.

"이 우주산업이라는 용어는 아직은 우리에게 낯선 단어이고, 또 미래를 바라보는 긍정적인 의미로 들릴 수도 있지만, 저는 이것이 군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 '산업'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군사적 이슈와 무관할 수 없고, 궁극적으로는 한미동맹과도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우주는 2차대전 이후 미국의 지속적인 패권 유지를 위해 선점하고 지배해야 할 공간이었어요. 소련이 1957년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1호를 쏘아 올리고, 2년 후 미국이 달착륙 우주선을 보내면서 미·소간 우주에서의 경쟁이 첨예해졌는데, 그 배경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있었습니다. 달이나 우주 행성에서의 자원 확보 문제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군사적 지배의 필요성인 것이지요. 그래서 미국은 오래전부터 우주사령부가 있었고, 2019년에는 트럼프가 우주군을 창설하기도 했습니다.

2024년 5월 미 우주군 참모총장 챈스 솔츠먼은 "미국 군대는 혼자 갈 수 없다. 상업적 협력자들과 동맹국들의 협력이 필수적이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미국의 우주 패권을 위해서는 동맹국과 산업, 두 가지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2023년 11월, 처음으로 한미 우주포럼이 열렸고 이어서 한미 우주산업 포럼이라는 게 열린 바 있습니다. 현재 한국의 기업과 미국 공군, 우주군 등 미국 군대와의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어요. 이런 배경에서 한화나 KAI(한국항공우주산업(주)) 같은 기업들이 우주산업에 뛰어들고 있고, 스타트업 기업들도 늘어난 것이지요. 그러니까 우주산업의 본질은 군사적으로 미국의 패권을 위한 것으로 한미동맹과 무관할 수 없게 되는 겁니다."

기동함대사령부 창설도 그렇고 우주산업에서도 한미동맹과 연결돼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 사회에 미국 없이 한국의 안보가 가능하겠냐는 정서가 퍼져있는 현실에서 평화활동가가 바라보는 한미동맹은 어떤 것일까.

"한미동맹하면 저는 2003년인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떠오릅니다. 당시 미국이 파키스탄에 협력을 구하면서 자신들에게 협력하지 않으면 초토화해 구석기 시대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고 했다는 겁니다. 이 한마디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범죄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로 잊히지 않습니다. 최근엔 트럼프가 가자지구에서 주민들을 다 내보내고 휴양지로 개발하겠다고 말했잖아요. 파키스탄 사례와 같은 맥락으로 미국의 민낯을 보여준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저는 사람들에게 한미동맹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자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당장은 현실적으로 어렵더라도 궁극적으로는 폐기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동맹이라는 건 사실 굉장히 배제적이고 비윤리적인 단어입니다. 한미동맹이 한국의 이익과 안전을 위한 것인지도 깊이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지더라도 미국은 끄떡없을 거라는 말을 트럼프가 하지 않았습니까.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한반도이지 미국이 아니니까 괜찮다는 이야기입니다. 한미동맹의 실체가 사실은 한국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음을 드러낸 셈입니다."

"상황이 나를 투사로 만들었다"

제2공항 반대 1인 시위2020년 6월 최성희씨가 제주도청 앞에서 제2공항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최씨는 당시 도청앞 천막에서 24일간 단식을 하기도 했다.도청앞 천막촌 사람들

제주도의 군사기지화와 우주산업을 비판하고, 한미동맹의 문제점을 들춰내는 최성희씨는 뜻밖에도 미국 유학까지 한 촉망받는 화가였다. 예술가의 길에서 나와 어떻게 평화활동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는지 사연이 궁금하다.

"어려서부터 미술을 좋아해서 화가가 되고 싶었어요. 미술대학에 진학해 서양화를 전공한 후 미국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뉴욕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작품전시회도 했어요. 미국에서 10여 년 활동하다가 2008년도에 귀국했습니다.

유학 시절 사회학 수업을 들으면서 탈식민주의라는 주제를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사전에서 di.vi.sion이라는 단어의 어원을 접했습니다. 2개의 시점이라는 뜻입니다. 이 어원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 저는 한국의 분단 상황을 떠올렸어요. 제국주의의 기본적인 두 가지 도구가 분할과 통치, 즉 '디바이드 앤 룰(divide and rule)'이라고 하는데, 한국이 바로 그런 경우잖아요. 이때부터 저는 시각 예술가로서 제국주의의 분할적 시점을 어떻게 평화의 관점에서 극복할 수 있는가에 관심을 갖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저의 석사학위 작품도 di.vi.sion과 관련된 설치작업이었습니다. 브루스 커밍스 교수의 <한국전쟁의 기원>이라는 책을 보면, 해방 직후 2명의 미군 장교가 벽에 걸린 조그만 한반도 지도를 보고 38선을 그었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30분이었다는 것이지요. 이 부분을 인용해서 저의 퍼포먼스 시간도 '30분'이었습니다.

미국에 체류하고 있을 당시 저의 예술 작품 주제는 평화와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핵무기라든지 미사일 방어망, 분단 같은 용어들을 자주 접하게 되었고, 관련한 자료와 지식을 소화하기 위해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노력해 오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제 예술 작품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고, 자연스럽게 평화운동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어요. 사람들이 저에게 왜 미술을 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미술을 열심히 하다 보니 이렇게 평화운동으로 오게 되었다'라고 말하는데 저에게는 예술과 평화운동이 하나로 연결된 셈입니다."

평화를 예술의 주제로 삼았다는 그가 강정마을로 들어오게 된 데에도 어떤 필연적인 계기가 있을 것 같다.

"미국에 있을 때인 2007년 민주노동당 현애자 의원이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며 27일간 단식을 하셨을 때 이 이슈를 처음으로 접했고, 그때부터 강정에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귀국한 다음 해인 2009년에 처음 강정에 왔는데, 그때는 국제 평화활동가의 통역자 역할로 온 것이고, 제주도로 주소를 옮겨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게 2010년도였으니까 이제 15년이 지났네요.

처음 제주에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은 데에는 앞에서 말한 저의 예술적 관점에서 볼 때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었어요. 당시 시민단체에서 나온 성명서들을 보면 미사일 방어망이라는 용어가 자주 나왔는데, 이게 제가 관심이 있던 주제였으니까요.

부시가 대통령이 되던 무렵 저는 미국에 있으면서 예술작업을 위해 신문스크랩을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2001년도에 부시가 미국 미사일 방어망에 대해 선포했을 때 나온 신문스크랩을 아직도 갖고 있어요. 이처럼 관심이 컸기 때문에 강정 해군기지 이슈가 미사일 방어망과 관련돼 있다고 하니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최성희씨는 해군기지 반대운동 과정에서 단식투쟁도 하고 감옥에 3개월이나 갇히기도 했다. 공사 트럭을 막기 위해 목숨을 걸고 바퀴 앞에 드러눕는 위험천만한 순간도 있었다. 또 제2공항 반대투쟁 과정에서도 24일간 도청 앞에서 단식을 했다. '상황'이 자신을 투사로 만들었다는 고백이다.

공사 트럭을 막다해군기지 건설을 막기 위해 최성희씨가 구럼비로 오는 공사 차량 앞에 드러누워 몸으로 막고 있다. 2011년 봄.조성봉

"2009년 강정에 처음 왔을 때는 사실 평화운동가보다는 관찰 기록자로 왔어요. 그때만 해도 저는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당시 제가 카메라를 갖고 있었고, 미국 유학을 한 사람이니까 강정의 상황을 해외에 알려야 한다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문 블로그도 짧은 기간이지만 운영했던 것이고요. 평화운동에 투신했다기보다는 주민들의 연대자로서 강정 해군기지 상황을 국내외에 알리는 메신저 역할을 하게 된 셈입니다.

당시만 해도 저 같은 연대자가 많지 않았는데, 2011년에 벌써 공사가 시작이 되는 겁니다. 어떻게든 이 공사를 막아야 하겠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제가 공사 트럭 밑에 드러눕는 사건까지 생겼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평화활동가로 변이가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원해서라기보다도 당시 상황이 필요로 했던 것 같아요.

제가 체포됐던 날이 2011년 5월 19일이에요. 구럼비 바위 앞에 쳤던 천막들을 철거한다고 해서 이른 새벽부터 현장에 나가 지키고 있었습니다. 현수막을 다른 분과 함께 들고 있었는데 저를 체포하더라고요. 나중에 경찰 기록을 보니까 제가 19차례에 걸쳐 공사를 행동으로 막았다고 돼 있더군요. 이후 구속돼 제주구치소에 갇혔는데 영화평론가 양윤모 선생이 옥중 단식을 하고 있어서 저도 15일간 옥중 연대 단식을 했습니다."

평화활동가 최성희씨는 주로 국제적인 연대활동이나 평화와 관련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국제 연대활동은 강정 해군기지 반대투쟁의 성격과도 관련된 굉장히 중요한 대목이라고 강조한다.

"해군기지 반대투쟁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의 하나는 이것이 국제 평화운동이었다는 점입니다. 2011년 무렵부터 해외의 평화활동가나 영화제작자 예술가들이 강정으로 많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입국 거부된 외국인만 해도 23명이나 된다는 기록만 보아도 이곳에서의 싸움이 국제적인 평화운동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 오키나와에서, 미국에서, 그밖에 곳곳에서 달려왔거든요.

프랑스에서 온 청년은 비폭력 직접행동으로 강제 출국당했고, 앤지 젤터라는 노벨 평화상 후보로 올랐던 영국의 유명한 평화활동가도 2012년에 강정에 왔다가 출국명령을 받기도 했어요. 이 앤지 젤터가 경찰에 체포됐을 때 제가 통역으로 갔었는데 경찰이 국적을 묻자 이분이 '나는 구럼비에서 왔다'라고 말한 게 기억이 납니다. 국적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지구를 구하러 왔다는 뜻이었지요. 세계적 석학인 놈 촘스키 MIT 교수도 해군기지 반대투쟁을 펼치고 있는 이들에게 격려 서신을 보내고 연대성명을 발표했을 정도로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최근 제주의 또 다른 뜨거운 이슈가 대정읍 알뜨르 비행장 부지에 조성하게 될 평화대공원이다. 일제가 감행했던 전쟁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땅에 제주도 당국이 스포츠 시설을 짓겠다는 의중을 드러내면서 제주 시민사회가 일제히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 마지막으로 평화대공원에 대한 평화활동가의 시각을 들어봤다.

"일제가 중국 남경을 향해 폭격기를 발진했던 알뜨르 비행장을 평화대공원으로 조성한다면 당연히 전쟁의 기억과 흔적, 참상을 드러내 사람들이 자각하고 각성하게 함으로써 다시는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먼저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요. 다시는 제주가 가해의 섬, 침공의 섬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불러일으키는 개념으로 조성하는 것이 평화대공원의 취지에도 부합한다고 봅니다.

저도 평화대공원 설명회에 참석했습니다만, 어떤 분이 올림픽이 평화인 것처럼 스포츠가 바로 평화 아니냐고 해서 웃음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스포츠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우리가 요즘 우크라이나나 가자지구에서 보는 그런 전쟁의 참상이 되풀이하지 않도록 모두가 공감하는 이야기들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알뜨르 비행장에 가보면 그 풍경 자체만으로도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않습니까. 저는 알뜨르 황량한 들판에 바람이 불어오면 무언가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너무 많은 건물을 지을 게 아니라 어느 정도 원형을 보존하면서 사람들이 전쟁의 참상을 공감할 수 있는 전시공간을 가미하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거기에 스포츠 시설을 만들어 사람들을 많이 끌어들이려는 것은 관료적 발상인 것 같아요."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