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공화당 경선주자 시절 트럼프 가족 사진이다. 트럼프를 기준으로 오른쪽이 딸 이방카 가족이고, 왼쪽이 아들 트럼프 주니어 가족이다.
EPA/연합뉴스
다음은 외교권이다. 학자들은 강력한 외교권을 행사한 미국 대통령으로 매킨리와 시어도어 루스벨트를 꼽는다. 매킨리가 대통령 선거에서 시어도어 루스벨트를 부통령으로 선택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킨리가 강력한 대통령상을 확립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매킨리를 이렇게 평가하는 이유는 1898년 스페인과의 전쟁을 수행하면서 의회를 거치지 않거나 선전포고 없이 해외에 파병한 선례를 남겼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 헌법에 규정된 연방 의회의 외교권에 제동을 건 정치적 행위이며, 동시에 대통령의 외교권을 확대하기 위한 일종의 정치적 실험이었다.
실제 매킨리 전후로 대통령의 외교에 대한 의원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매킨리 이전 의원들은 대통령에게 자신들의 의견을 '전하기 위해' 백악관을 방문했다면, 1898년부터는 대통령의 의견을 '듣기 위해' 백악관을 방문했다. 이에 매킨리는 적어도 외교에 있어서 대통령을 '선출직 왕'(Elective Monarchy)의 지위로 스스로 격상시켰다고 분석된다.
매킨리가 인사권과 외교권에 있어 제왕적 대통령이 되어 추구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미국의 영토 확장이었다. 매킨리는 인사권을 활용해 영토 확장이라는 정치적 메시지를 분명히 했고, 외교권을 활용해 실제 영토 확장을 이뤘다.
인사권을 활용해 영토 야욕을 드러낸 것은 1900년 재선 당시 제국주의를 미국의 가치로 주장하던 시어도어 루스벨트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한 것이다. 1899년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자신이 집필한 <분투하는 삶>에서 외교의 바탕은 군사력이며, 이에 기반한 팽창주의 외교가 미국의 안정과 평화를 보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아시아 및 중남미 국가들과의 전쟁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다음으로 외교권, 즉 전쟁을 통해 미국의 영토를 태평양 너머까지 확대했다. 1896년 첫 번째 대통령 선거에서 매킨리는 하와이 병합, 해군력 증강, 니카라과 운하의 건설, 서인도제도에 해군기지 건설 등을 자신의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럼에도 1898년 초기 당시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쿠바 문제로 스페인과의 전쟁에 개입하는 것을 주저했다. 그러나 1898년 7월 하와이를 병합하면서 카리브해만이 아니라 태평양 너머 아시아까지 세력을 확장하기로 계획한다. 결국 1898년 스페인과의 전쟁을 결정했고, 예상했던 것보다 손쉽게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한다.
미국은 스페인과의 전쟁을 마무리하는 파리조약에서 2000만 달러를 지불하고 필리핀을 양도받고, 스페인으로부터 쿠바에 대한 영유권 포기도 얻어낸다. 또한, 패전국인 스페인은 푸에르토리코와 괌까지 미국에 헌납하기에 이른다. 1898년 전쟁으로 미국은 강대국으로 급부상하고 스페인은 지는 해가 됐다. 전쟁이라는 수단으로 중남미, 태평양, 그리고 아시아 지역의 영토를 확보한 매킨리의 미국은 미주 대륙을 넘어 미국 외교의 원칙을 세계 무대에 적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반 대중들과 언론들은 매킨리의 관세 정치를 트럼프와 연결시키고 있다. 실제 매킨리의 관세왕 이미지는 트럼프의 정치적 의도를 숨기는 도구로는 유용하다. 그러나 막상 매킨리의 정책과 시대적 맥락을 살펴보면, 트럼프가 매킨리를 언급한 진짜 이유는 매킨리의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과 그 권한을 활용한 영토 확장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영토를 확장하겠다며 그린란드, 멕시코만, 캐나다, 파나마 운하, 심지어 화성까지 언급하는 것은 결코 그냥 하는 말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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