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에서 사용되는 일회용품들.
허승은
종이 빨대는 안 되는데 플라스틱 빨대는 써도 된다?
많은 사람들이 일회용품을 쓰지 말자는 말에 동의한다. 일회용품 사용이 급격히 늘어 지구 환경에 많은 오염을 유발하고 있다는 내용은 더 이상 새로운 정보가 아니다. 특히 과도하게 사용한 일회용 플라스틱이 인간 건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쏟아지고 있다.
시민들은 행동한다. 시민 개개인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실천한다. 장바구니, 텀블러를 챙기는 일은 이제 익숙하다. 기업들도 나섰다. ESG(Environmental, Social and Corporate Governance) 경영의 일환으로 플로깅(달리기를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운동)을 하고 사내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기업 대표자가 일회용품 줄이기 캠페인에 적극 참여하자고 하는 홍보물도 쉽게 볼 수 있다.
주무 부처인 환경부는 어떠할까. 물론 환경부도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자고 나선다. 정부는 일회용품 관리에 대해 과태료 부과로 규제하기보다 자발적 실천을 권고하고 지원해 일회용품을 줄이겠다는 방침이다.
이와 같은 전방위적인 노력과 달리 일회용품 사용량은 크게 줄었다고 체감하기 어렵다. 우리 일상에서 손만 뻗으면 일회용품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배달 음식이 담긴 일회용기, 카페 음료가 담긴 일회용 컵, 겹겹이 포장된 택배 상자는 우리 일상과 떼기 어렵다. 시스템에서 일회용품을 거부할 수 없어 시민 개개인의 실천에 기댄 상황이다.
윤석열 정부는 지속적으로 일회용품 규제를 완화해 왔다. 일회용 컵 보증금제 유예와 축소(2022년)를 시작으로 식품 접객업의 플라스틱 빨대 사용 금지 유예(2022년), 편의점 등 종합소매업체와 제과점 비닐봉지 등 사용금지 계도 기간 무기한 연장(2023년), 식품접객업 매장 내 종이컵 사용 허용(2023년), 택배 과대포장 규제를 계도로 전환(2024년) 등 일회용품과 일회용 포장재 사용을 지속적으로 허용해 왔다. 일회용품 사용 제한과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정책을 강화하는 세계적 흐름과 정반대로 가고 있다는 비판이 잇달았다.
문제는 이와 같은 결정이 졸속으로 진행되면서 변경된 정책에 대한 근거가 부족하고, 이해 관계자를 충분히 설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식품접객업의 매장 내 일회용 플라스틱 컵은 사용을 금지했지만, 종이컵은 허용했다. 플라스틱 빨대 규제를 유예해 사용을 허용함으로써 종이 빨대 산업은 도산할 위기에 처했다.
윤석열 정부는 폐기물 정책, 탈 플라스틱 정책, 순환경제 정책에 있어 방향도, 기준도, 원칙도 없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다. 또 규제 관련 내용을 제도 시행 3~4주 전에 발표해 사회에 큰 혼란을 일으켰다. 관련 산업과 이해 관계자들은 대응하거나 준비할 수 없었고, 결국 관련 업계에는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야구장에서 음료를 다회용 컵에 받을 수 있다.
허승은
다회용기 정책도 오락가락
지난해 11월,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국제협약 논의를 위해 전 세계 170여 유엔 회원국 정부 대표단과 국제기구, 산업계·시민단체·학계 등 이해관계자 4천여 명이 부산에 모였다. 국제회의 협상장 내 카페에 플라스틱이 코팅된 일회용품이 사용된 것에 대해 비판이 일자 외교부 관계자는 '플라스틱 없는 회의'를 위해 '플라스틱 다회용기'(여러 번 쓰고 버리는 컵)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식이라면 지금 확대하는 다회 용품 재사용 정책을 재고해야 한다. 플라스틱 재질이 문제라면 플라스틱이 코팅된 종이컵을 사용할 것이 아니라 다른 재질의 다회용기를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국제회의 부대 행사가 열린 벡스코 제2전시장에는 국제회의 기간 내내 플라스틱 다회용 컵을 대여하는 시스템을 운영했다.
환경부는 올해도 다중이용시설에서 다회용기 사용을 촉진하기 위한 예산을 지원한다. 2023년 3월, 자원재활용법이 개정되어 다회용기 회수, 세척, 공급 사업에 재정을 지원할 수 있게 되었다. 최근 수년간 관련 예산은 꾸준히 증가했다. 2021년과 2022년 54억 4000만 원, 2023년 69억 3500만 원, 2024년 88억 8800만 원으로 꾸준히 늘었다. 2025년에는 전국 127개 지자체에 100억 원의 예산이 지원될 예정이다.
지자체는 국고 보조를 받아 카페·배달 음식·장례식장·축제·공공기관 등에서 다회용컵과 다회용기를 대여, 세척하는 사업을 진행한다. 이와 같은 지자체 사업에 예산을 지원하는 것은 수년째 반복되고 있지만 일회용품 감량 모델을 만들지 못하고 시범 사업에 그치고 있다.
다회용품 사용을 확대하기 위해 국가 재정이 지원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아직 관련 산업의 기반이 다져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다회용기 사용에 따른 비용이 더 발생할 수밖에 없다. 예산 지원보다 중요한 것은 대체 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법률적 기반을 만드는 것과 일관성 있는 정책을 이행하는 것이다. 일회용품 사용을 규제하는 제도적 기반이 없다면 다회용기 예산 지원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야구장에서 음식을 주문하면 다회용기에 담아준다
허승은
다회용 컵 대신 일회용 컵을 쓰라고요?
지난해 천만 관중을 돌파해 출범 이후 최대 인기 실감한 프로야구. 한 연예인이 야구장을 거대한 식당이라 표현할 만큼 야구장에서의 음식 소비량은 상당하다. 관람객이 많아질수록 쓰레기도 많아지는데 문제는 대부분 일회 용기라는 것이다. 일회용기가 아닌 다회용기로 전환한다면 쓰레기를 현저하게 줄일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전국 프로야구장 9개 구장 중 3개 구장에서는 음료를 다회용 컵에, 음식을 다회용기에 받을 수 있다. 올해는 다회용기를 사용하는 야구장이 확대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얼마 전 발표된 환경부 자료에서 이런 기대는 큰 우려로 바뀌었다. 환경부의 일회용 컵 보증금제 개선방안 논의자료(24.12.17)에 따르면 대형 시설·일정 구역에 일회용 컵 보증금제를 점진적으로 확대하겠다며 야구장, 놀이공원, 공항, 대학 등을 제시했다. 이런 곳들은 공간의 특성상 일회용 컵의 반납·회수가 쉽다는 이유다. 그렇다면 굳이 일회용 컵 보증금제를 할 것이 아니라 다회용 컵 보증금제를 적용하면 된다. 이미 위 대상들은 지자체가 정부의 예산 지원을 받아 다회용기 회수, 세척, 공급 사업을 추진하는 곳이다.
최우선으로 사용을 제한해야 하는 것은 일회용품
규제는 규칙이나 법령 등으로 일정한 행위를 하지 못 하게 금지하는 정책이다. 폐기물 정책은 과거에는 처리에 초점을 뒀다. 이제는 생산과 소비 단계부터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정책으로 바뀌고 있다. 환경 오염이 발생하지 않도록 특정 물질 사용을 제한(오존층 파괴의 주범인 CFCs 사용 금지 등)하거나 일부 업종 등에서 특정 품목 사용을 금지(식당 내에서 일회용기 사용 금지)한다.
유럽연합의 충전기 단자를 통일한 정책은 불필요한 폐기물이 발생하지 않도록 생산 단계에 적용한 규제의 사례다. 유럽연합(EU)은 2009년부터 휴대전화 등의 전자기기에 대해 업계의 자발적 합의를 통한 공통 충전기 사용을 권고했다. 그러나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결국 통일된 공용 충전기 지침(DIRECTIVE (EU) 2022/2380)을 통해 휴대전화 및 기타 휴대용 전자 기기에 대한 충전 포트를 표준화 했다. 2024년 12월 28일부터 EU에서 판매되는 해당 제품은 USB-C 충전을 지원해야 한다. 제품 설계 시 통일된 충전단자를 반영하도록 생산자를 강제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폐기되는 충전기 11,000톤을 줄이고, 충전기 재사용을 늘려 충전기 구매에 쓰인 연간 2억 5천만 유로를 절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EU는 밝혔다.
소비자에게 실천을 요구하기보다 생산 단계에서 제도적 기반을 만들었을 때 관련 산업계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대표적인 사례다. 원료 및 제품 전 주기에 걸쳐 자원이 순환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기에 한 번 사용하고 폐기되는 제품, 즉 일회용품은 가장 최우선으로 사용을 제한해야 한다.
▲유럽연합은 역내에서 판매하는 휴대전화 및 휴대용 전자기기의 충전단자를 UBS-C 타입으로 표준화했다.
이재구
정책 신뢰도 회복이 급선무
많은 전문가와 환경단체는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부터 환경 정책이 거꾸로 간다고 우려했다. 일회용품 규제 정책은 3년 전으로 후퇴한 것이 아니다. 20년 전으로 후퇴했다.
무엇보다 일회용품 사용 규제에 대한 원칙을 명확히 하고 일관성 있는 정책을 펼치도록 해야 한다. 자발적 실천, 단계적 시행, 규제의 합리화 등을 내세우며 꼼수를 부려서는 안 된다. 정책의 후퇴뿐 아니라 정책의 신뢰도까지 떨어졌다. '환경부가 무슨 말을 해도, 어떤 정책을 내놔도 믿지 않겠다, 법과 제도를 잘 지키면 피해를 본다'는 의견이 쏟아져 나온다. 지난 3년간 반복적으로 혼란을 일으켜 왔기에 정책의 신뢰를 찾는 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환경부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시민의 감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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