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잡채.
차유진
모처럼 가족들이 모이는 날이면, 엄마는 아침 일찍부터 잡채를 만드신다. 탱글탱글하게 잘 삶아진 당면 색깔은 시중에 파는 갈색 당면에 반해 투명하다. 비결을 세세히 알 수는 없지만, 덕분에 나머지 야채들의 빨노초 색감들이 선명하게 시선을 사로잡는다. 단짠하기보다 새콤한 간이 더욱 매혹적이라 자식 손주들까지 앞다투어 젓가락으로 길쭉이 잡아올려 입에 넣기 바쁘다.
구운 고기와 와인을 곁들인 후엔 "비빔국수 해줄까?" 하고 엄마가 운을 띄운다. 배는 불러도 비빔국수 들어갈 공간은 항상 남아있다. 면의 쫄깃한 식감과 달달하면서도 맵지 않은 고추장 양념에 계란 고명까지 얹어, 단순한 음식에도 허투루 대하지 않는 신념이 전해진다.
음식을 하는 동안 엄마는 종종 말씀하신다. "너도 배워라. 이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정작 가르쳐 주진 않으신다. 엄마의 수많은 요리를 다 배울 순 없어도 하나하나 알아가고픈 마음이 왜 없겠는가. 당신의 입맛을 계속 간직하고 싶어서라도 하루 빨리 레시피를 전수받고 싶지만, 정작 나중에를 반복하시며 한사코 주변을 물리신다.
오늘도 요리 인증샷
오늘은 기어코 배우리라 어깨 너머로 서성거리면, 맛의 비법을 부리는 결정적인 순간에 "저기 베란다 가서 대야 하나 갖고 온나" 하며 심부름을 시키신다. 부리나케 달려온 뒤엔, 이미 음식은 완성되어 한껏 자태를 뽐내고 있다. 큰 딸, 며느리 또한 각종 그릇, 야채, 과일 등의 자잘한 심부름으로 매번 타이밍을 놓쳐왔다. 고로, 집에서 엄마의 음식 레시피를 전수받은 이는 단 한 명도 배출해내지 못했다.
'흐르는 시간 속에 당신의 기력 또한 점점 쇠잔해져 가건만, 그럼에도 어미로서의 소임을 놓지 않겠다는 마음 또한 어찌 모르겠습니까. 훗날 곁에 계시지 않을 때, 그때 가선 저도 저만의 레시피로 만들어 먹게 되겠지요. 그러나, 한평생 길들여져 온 입맛이 어디 하루 아침에 바뀌겠습니까.
언제, 어디선가, 우연히 무언가를 먹다가 익숙한 손맛을 희미하게 느꼈을 때, 제 입 안에 넣어주며 짓던 미소가 떠올랐을 때, 얼마나 하염없이 눈물을 쏟게 하려고 그러시는 건가요. 얼마나 사무치게 그리워하라 그러시는 건가요,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어느 순간부터 엄마의 음식을 하나 둘, 핸드폰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밖에서 흔히들 찍는다는 음식 인증샷도 잘 찍지 않는 편인데, 엄마의 음식만큼은 저장해 놓고 싶어졌다. 엄마의 손맛을 다 알 순 없어도 기억하고 싶어서, 성심으로 만든 음식들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 새로운 습관을 만든다.
▲엄마의 배추찜.
차유진
오늘 점심은 고기배추찜이다. 저린 알배추에 간한 소돼지를 싸서 찜통에 찐 후, 그 위에 알큰하고 담백한 소스를 뿌린다. 한 잎 베어물면 촉촉한 육즙이 터짐과 동시에, 감동의 미간이 움푹 패인다. 물론, 조카와 치과 갔다 온 사이에 이미 다 만들어 놓으신 결과물이다. 언니에게 보낼 것 역시 따로 넉넉히 마련해 놓았단다.
"소스 어떻게 만드는 거야?" "고기 잡내를 어떻게 잡은 거야?" 속사포 같은 질문에도 "걍 무라~ (그냥 먹어)"를 연발하시며 한사코 입을 닫으신다. 엄마는 오늘도 당신의 레시피를 알려주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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