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1월 모스크바 원동민족혁명단체대표회에 참석한 홍범도 장군(왼쪽)과 최진동 장군의 모습
반병률
윤석열 시대는 역사학계에 있어서도 '암흑기'로 기록될 것이다. 독재자 이승만·박정희에 대한 찬양, 친일반민족행위자 백선엽에 대한 미화 등 역사를 거꾸로 쓰려는 윤석열 정권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육군사관학교의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시도는 윤석열 정권발 역사쿠데타의 절정이었다.
국토 방위를 책임져야 할 최고기관인 국방부가,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홍범도 장군의 과거를 트집잡아 흉상 철거의 정당성을 설파하고 기자들과 설전을 벌이는 장면은 그야말로 한편의 코미디쇼를 보는 듯했다.
다음으로 든 감정은 절망감이었다. 그동안 홍범도를 비롯한 독립군의 노력과 헌신을 선양하기 위해 노력해왔던 역사학계의 노력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평생 홍범도를 연구한 한 역사학자는 자괴감을 느낀다고까지 했을까.
다행히 홍범도 흉상 철거 시도는 시민사회의 반발과 윤석열 탄핵 사태로 백지화 수순을 밟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안도하기엔 이르다. 이번 논란으로 우리는 다음에 또 어떤 지도자가 집권하느냐에 따라 역사를 뒤집으려는 시도가 재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정치가 학문의 영역에 개입하는 일은 지양돼야만 한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에 어긋나는 주장으로 누군가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과 우리의 헌법 가치를 배반하는 주장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배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러한 역사왜곡 시도를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이에 따라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제안①] 국군조직법 개정과 국군의 날 변경
먼저 홍범도 흉상 철거 시도와 같은 소모적인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우리 국군의 뿌리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마침 국회에는 더불어민주당 부승찬 의원의 대표 발의로 '국군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제출된 상황이다. 해당 법률안은 대한민국 국군의 조직과 편성을 규정한 '국군조직법'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독립군, 한국광복군의 역사를 반영하여 우리의 뿌리를 분명히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국군조직법에서 우리 군이 독립군의 후예임을 명확히 한다면, 우리 군이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독립영웅들을 홀대하는 일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한 발 더 나아가 늘 논란이 되어왔던 '국군의 날' 변경 역시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현재 국군의 날은 10월 1일이다. 6·25전쟁 당시 육군 제3사단이 최초로 38선을 돌파한 1950년 10월 1일을 기념하기 위해 정해진 것이다.
그러나 현행 국군의 날은 우리 군의 뿌리와 정통성을 기념하기 위한 의미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 아래 임시정부의 한국광복군 창설기념일인 9월 17일로 변경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노무현 정권 당시 두 번, 문재인 정권 당시 두 번 총 4번이나 관련 법률안이 제출됐으나 모두 임기만료 폐기됐다.
우리 군의 뿌리인 독립군 관련 기념일로 국군의 날을 변경함으로써 군의 역사적 정통성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일각의 주장처럼 광복군 창설일로 하기보다는, 봉오동 전투 승전기념일인 6월 7일을 국군의 날로 삼는 것은 어떨까?
봉오동 전투는 1920년 6월 7일 홍범도, 최진동, 안무, 박승길 등이 이끄는 대한북로독군부, 신민단 등 우리 독립군 연합부대가 일본 정규군을 상대로 거둔 첫 승리이다. 임시정부는 봉오동 전투를 '독립전쟁의 제1회전'으로 기록하며 그 의미를 높이 평가했다. 대한민국의 첫 군대로서 일본군과 싸워 승전보를 울렸던 봉오동 전투 승전기념일이야말로 우리 군의 뿌리와 자긍심을 기념하기에 적절한 날이 아닐까 한다.
[제안②] 친일파 파묘법

▲2024년 11월 17일 오전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 내 무후(無後) 독립유공자 추모시설인 '독립의 염원이 모이는 길'에서 제85회 순국선열의 날 기념식이 열리고 있다. 사진은 독립의 염원이 모이는 길에서 바람이 펄럭이는 태극기들. 이곳에는 묘소 없는 무후 독립유공자 6478명의 이름을 새긴 추모 명비가 있다.
연합뉴스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유해를 국가가 강제 이장할 수 있도록 규정한 '친일파 파묘법'은 독립운동가 후손과 관련 단체들의 오랜 숙원이었다.
이미 여러 차례 입법 시도가 있었지만, 여야를 막론하고 해당 법안에 소극적이었던 탓에 번번이 좌초되고 말았다. 이런 와중에 윤석열 정권에서는 백선엽의 현충원 안장자 정보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기록마저 삭제해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현재 국회에는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김용만의원 대표발의)'이 제출되어 있다. 해당 법률안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에 의거하여 친일반민족행위를 한 것으로 결정된 사람 중 안장대상심의위원회가 국립묘지의 영예성을 훼손한다고 인정한 사람을 국립묘지 안장 대상에서 제외하고, 국가보훈부장관이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유골이나 시신을 국립묘지 외의 장소로 이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립현충원에는 아직도 일제강점기 당시 독립운동가 탄압과 침략전쟁 수행에 앞장섰던 친일파들과 가짜 독립운동가들이 버젓이 잠들어 있다. 대체 언제까지 독립운동가들이 친일파들의 군홧발 아래 잠들어 있는 형국을 방치하고만 있을 것인가.
[제안③] 역사기관장 임명시 국회 동의 의무화
윤석열 내란사태를 계기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에 따라 대통령의 권력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개헌해야 한다는 데에 여야 모두 공감하고 있는 듯하다. 역사기관장 임명에 있어서도 대통령의 자의적 임명을 방지할 최소한의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대표적인 역사기관이라 할 수 있는 국사편찬위원회, 한국학중앙연구원, 독립기념관 등의 기관장들이 윤석열 정권 들어 모두 뉴라이트 혹은 친일·독재 미화 발언 등으로 논란이 된 인사들로 채워진 바 있다.
문제의 역사기관장들에 대한 임명을 당장 철회하라는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이처럼 대통령의 역사기관장 임명에 있어 견제 장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역사는 한 나라의 뿌리와 정신을 담고 있다. 그런데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비뚤어진 이들이 기관장에 임명될 경우, 시민들의 역사교육과 인식에 크나큰 혼란을 초래할 우려가 크다.
그러므로 역사기관장을 임명함에 있어서는 학문적 성과와 역사관이 검증된 인물로 대통령이 임명하되 반드시 국회의 동의를 거쳐 임명할 수 있게끔 최소한의 견제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제2의 역사쿠데타'를 막아야만 한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당시의 '건국절' 논란부터 윤석열 정권의 역사쿠데타에 이르기까지 보수 정권이 집권할 때마다 우리 역사를 뒤집으려는 시도는 끊임없이 획책되어 왔다.
앞으로도 윤석열보다 더한 지도자가 등장하지 말란 법이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다시는 이런 역사쿠데타가 벌어지지 않도록 방지책을 세워야야만 한다. 학계와 정치권, 시민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제2의 역사쿠데타를 막을 수 있는 방안을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대한민국호를 책임질 지도자는 부디 역사의 엄중함을 아는 사람이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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