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퍼드 대학 출판부가 2024 올해의 단어를 'Brain rot'(뇌 썩음)으로 정했다.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 캡처
엎질러진 커피를 닦으며, 어쩌면 앞 혐의자의 "정신" 관련 항변이 거짓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지난해 말, 영국 옥스퍼드대 출판부가 '뇌썩음(brain rot)'을 '올해의 단어'로 선정하지 않았던가. 이 신조어가 의미하는 바는, 사람들이 소셜미디어에서 질 낮은 정보를 장기간 접하면서 정신적, 지적 능력이 저하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전통적 뉴스매체를 배제한 채 유튜브 등에서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즐겨 소비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관저를 찾아온 국민의힘 의원들에게도 "레거시 미디어는 너무 편향돼 있다"라며, "유튜브에서 잘 정리된 정보를 보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의 느닷없는 계엄 선포가 '올해의 단어'가 우려한 바로 그 이유로 발생했을 가능성을 말해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윤 대통령 구속 후 서울서부지법을 찾아가 폭동을 일으킨 지지자들을 보면서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법원청사에 난입하며 경찰을 폭행하고, 기물을 마구잡이로 파괴하고, 건물에 방화를 시도하는 용서 받지 못할 범죄를 저질렀다. 나는 이들이 법원 유리문을 거리낌 없이 부수고 들어가는 모습에 경악했지만, 이에 못지않게 충격을 받은 것은, 체포된 뒤 출근을 걱정하는 이들의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이었다.
광분해서 법원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이들과, 잠시 뒤 결근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동일인이라고 믿을 수 있는가? 이들은 행동 먼저 한 뒤 결과를 나중에 생각한 것으로 보였는데, 만일 법원에 몰려갈 때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행동'과 '고민'의 순서가 뒤바뀌었을 것이다. 그들은 다른 곳도 아닌 법원에서 난동을 부리며 "국민저항권"을 외쳤는데, 이 말이 무슨 뜻인지조차 모르는 것 같았다.
헌법재판소는 2014년에 '저항권'의 세 가지 요건을 규정했는데, 첫째는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중대한 침해나 시도가 있어야 하고, 두 번째로 다른 구제수단이 남아있지 않아야 하며, 마지막으로 그 행사의 목적이 민주적 기본질서의 유지와 회복이어야 한다. 윤 대통령이 구속된 이유는, 위헌적 계엄을 통해 민주적 기본질서를 중단시키려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국민저항권"은 내란혐의로 구속된 윤석열 대통령을 감싸는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그가 계엄을 선포한 날 국회로 달려 나가 군인들을 몸으로 막은 시민들의 행위에 부합하는 개념이다.
게다가 난동이 일어난 1월 19일, 대통령에게는 '다른 구제수단'이 여럿 남아 있는 상태였다. 예컨대 구속 취소를 요청할 수 있고, 보석도 신청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유무죄를 가릴 재판이 남아 있다. 실제로 대통령은 2월 4일 구속 취소 청구서를 제출하고 심리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며, 이것이 불허될 때 보석을 신청할 가능성이 높다. 공교롭게도, 대통령이 구제수단들을 충실히 활용하는 모습이, 법원 난동의 '저항권' 요건 미달 사실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법원에 달려가기 전에 믿을 만한 사이트에서 검색 한번 해 봤다면, "국민저항권"이라는 말 하나로 그리 쉽게 법원 유리문에 소화기를 꽂아 넣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유튜브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살포된 "국민저항권은 무죄" 따위의 근거 없는 주장을 맹목적으로 믿고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했다.
진실보다 6배나 빨리 퍼지는 가짜뉴스

▲'X' 로고가 표시된 휴대폰
EPA/연합뉴스
2018년 <사이언스> 저널에 실린 연구는 소셜미디어 시대에 정보를 소비하는 것이 얼마나 위태로운 일인지를 보여준다. 트위터(현 '엑스')에서 가짜뉴스가 사실보다 '리트윗(재전송)'될 확률이 70%나 더 높았으며, 전파속도도 무려 6배나 빨랐기 때문이다. <사이언스>는 가짜뉴스의 확산의 주된 책임이 알고리즘이나 '봇'보다 사람들에게 있다고 결론 내렸다.
물론, 소셜미디어의 다양한 기술적 장치들이 정치적 양극화를 유발하는 '필터버블(filter bubble)' 형성에 기여하는 것은 사실이다. 소셜미디어는 사람들이 많은 정보를 소비하며 오래 머물수록 수익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각 사용자들이 즐겨 찾는 정보와 유사한 내용을 권하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나와 다른 견해를 포함한 뉴스는 배제되고 동의할 만한 내용만 제시된다.
과거 신문과 방송을 통해서 뉴스를 접할 때에는 '가짜뉴스'나 '필터버블'에 대한 우려가 크지 않았다. 전통매체도 정치적 지향성을 갖지만, 기사는 모두 일정한 훈련을 받은 기자들이 생산했고, 내가 원하는 소식만 전달받을 통로도 없었기에 다른 견해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는 오래전에 지났다.
이제 더 많은 뉴스가 비전문가에 의해서 생산된다. 엉터리 뉴스라고 규제받는 경우는 거의 없고, 문제가 될 경우도 이미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 뒤다. 구독자에게는 플랫폼이 취향에 맞는 내용을 알아서 자동으로 틀어주니, 고르는 수고를 할 필요도 없다. 다시 말해, 우리는 '뇌 썩기'에 최적화된 환경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용자들이 가짜뉴스 확산의 책임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사이언스>가 말하듯, 오히려 가장 큰 책임은 사람들에게 있다. 자신이 받은 뉴스의 진위를 확인하기도 전에 타인에게 재전송부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허위정보의 확산을 막을 방법이 있을까?
'가짜뉴스'에 뇌가 썩는 것을 막으려면

▲교육자 앨런 밀러가 설립한 '뉴스 리터러시 프로젝트(News Literacy Project)' 홈페이지.
뉴스 리터러시 프로젝트 홈페이지 캡처
"가짜뉴스"라는 말은 2016년 미국 대선 후보였던 트럼프의 입을 통해 전 세계로 확산됐다. 하지만 그가 이 말을 정확히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싫어하는 모든 보도를 그렇게 불렀을 뿐이다. 하지만 미국의 언론과 교육계는 "가짜뉴스"라는 말을 "의도적으로 사실을 날조하거나 왜곡하는 정보"에 한정해 사용하고 있다.
허위정보의 위험과 파급력이 날로 커지는 만큼, 미국의 시민사회에서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펜실베이니아대학 애넨버그 공공정책센터가 개설한 '팩트체크(FactCheck)' 사이트나, 공영방송 피비에스(PBS)가 운영해 온 "뉴스와 매체 리터러시," 교육자 앨런 밀러가 설립한 "뉴스 리터러시 프로젝트(News Literacy Project)" 등이 그것이다.
이 기관들이 일관되게 강조하는 것은 "출처를 확인하라"는 것이다. 유튜브나 온라인커뮤니티에 오른 '뉴스' 가운데는 출처가 없거나 불분명한 것들이 대다수다. 쉽고 재미있다는 이유로 유튜브에서 "잘 정리된 뉴스"를 믿지 말고, 뉴스의 출처가 어디이며 신뢰할 만한 것인지 살펴야 한다. 다시 말해, 윤석열 대통령의 조언과는 반대로 행동해야 뇌를 무사히 유지할 수 있다.
나는 미국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가르치고 있으며, 공교롭게도 이번주 다룬 주제가 "가짜뉴스"였다. 내가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점은, 내용을 읽기 전에는 재전송하지 말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제목만 읽고 다른 사람에게 유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앞서 소개한 '아이유' 비디오처럼, 끝까지 보기만 해도 허위를 의심할 수 있는데도, 많은 이들이 제목만 보고 가짜뉴스의 살포에 동참한다.
정보의 질과 관계없이 시선만 끌면 수익이 극대화되는 플랫폼의 기괴한 보상체계와, 가짜정보와 사진을 대량생산할 수 있는 생성형 인공지능의 발달은 정보 소비의 미래를 더욱 어둡게 만든다. 따라서 개개인이 뉴스의 신뢰성을 판단하고 차단하는 '수문장'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짜뉴스는 정치, 경제,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우리 사회를 좀먹어 갈 것이고, 우리는 점점 더 고통스러운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다. 공동체의 문제에 정확하고 객관적인 정보가 없다면, 도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
'그놈'과 작별을 고하며
가짜 '아이유' 뉴스를 유포한 문제의 채널로 되돌아와, 개설자에 대한 정보를 확인한다. 개설자 프로파일을 클릭하니 "정치 문화 사회 전문 채널"이라며 신나는 톤으로 이렇게 마무리한다. "구독 좋아요는 큰 힘이 됩니다!" 요청대로 클릭 두 번하는 건 쉬운 일이겠지만, 나는 좀더 귀찮은 일을 하기로 한다. 먼저, 채널이 사칭한 방송사 사이트를 찾아가 제보 페이지에서 링크와 캡처한 화면을 첨부해 신고했다. 그리고 (별 희망은 갖지 않지만) 유튜브측에도 '허위정보 유포'로 채널을 신고한다.
이제 다시 그 놈을 만나지 않기 바라며, 나는 잠자리에 든다. 아이유 소식은 그 채널이 아니어도 들을 수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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