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3.05 10:44최종 업데이트 25.03.05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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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내란 사태 이후, 시민들은 무너진 세계를 구하기 위해 여의도, 광화문, 남태령으로 달려갔습니다. 어두웠던 광장을 빛으로 채운 건 형형색색의 응원봉뿐이 아니었습니다. '2024년 12월 3일 이후의 대한민국은 달라야 한다'는 외침은 광장을 넘어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가 창간 25주년을 맞아 시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전합니다.[편집자말]
나는 발달 장애 아이의 엄마다. 처음엔 아들의 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받고 울기도 많이 울었으나 지금은 조금씩 현실을 받아들이며, 고군분투 중인 엄마로 성장하고 있다. 마치 아들의 자폐 스펙트럼 진단 결과를 보던 날이 나도 발달 장애 아이의 엄마로 다시 태어난 날 같달까?

얼마 전의 일이다. 명절 연휴가 끝날 무렵 전라도에서 인천으로 역귀성을 가는 길이었다. 우리 가족은 장거리 운전을 지루해 하는 아들을 위해 일부러 중간 지점 어딘가에서 공원 놀이터를 간다든지, 키즈 카페를 간다든지 해서 아들의 지겨움을 달래주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하나의 루틴이 되었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천안 어디쯤에서 운전을 한 남편도 쉴 겸, 아들의 지겨움도 해소할 겸 공원 놀이터에 들렀다.

신도시에 새롭게 생긴 공원과 놀이터였는지, 시설도 관리가 잘 되어있었고 공원의 산책길이 한적하고 좋아서, 고향으로 내려가는 길에도 또 들러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리고 잠시 후 용변이 급해진 내가 화장실에 들렀는데, 이럴 수가! 공원 화장실이 호텔 화장실처럼 좋아서, 순간 넋을 잃었다.

호텔처럼 좋았던 공원 화장실... 넋을 잃었다

정말 공공 화장실에 대한 감탄에서 우러나온 행동이었다. 국가 경제 수준이 향상된 만큼 공공 화장실의 청결도나 이용 접근성 등이 많이 좋아진 상태였지만, 그래도 정말 호텔처럼 아늑하다! 라는 느낌까지는 무리였는데, 그 공원 화장실이 그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있었다.

특히 겨울철 공공 화장실은 아무리 난방을 한다고 해도 히터의 열기가 터무니없이 약해서 '춥다!'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인데,이곳은 입구에서부터 따뜻했다. 또한 바닥과 고급스러운 벽 자재 마감은 어떻고? 게다가 벽에 걸린 액자들이 화장실의 품격을 한껏 끌어올렸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도시에서, 쾌적한 화장실을 이용했다는 사실만으로 고급 호텔에 들른 기분이 들었다. 감격스러운 화장실 투어를 마친 후 아빠와 함께 놀다가 용변이 마렵다는 아들과 장애인 화장실을 이용해보았다.

장애인 화장실얼핏 보면 비교적 시설이 잘 구비되어 있는 장애인 화장실의 모습오선정

일반 화장실이 너무 좋아서였는지 순간적으로 장애인 화장실에도 작은 액자 하나 있지 않을까 싶어 슬쩍 주위를 한 바퀴 살폈다. 벽에 걸린 액자가 의무도 아니련만, 텅 빈 벽이 뭔가 섭섭했다. 하지만 장애인 화장실 역시 쾌적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으므로, '그래, 이만하면 되었지 뭐' 하고 마음을 내려놓았다. 실제로 장애인 화장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공공기관도 있다고 하니까.

그러나 이왕이면 비슷한 환경을 조성하는 게 좋았을 걸 하는 발달 장애 아동 엄마스러운 생각을 하던 찰나에, 천장에 핀 곰팡이 친구들이 보였다. 물론 곰팡이 친구들을 일부러 만든 건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장애인 화장실에 옥에 티처럼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오선정

차라리 일반인 화장실이 아늑하지 않았더라면 아쉬운 마음이 덜했을까?

장애인 화장실 곰팡이를 일부러 키운 것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시설 관리에 아쉬움이 들어서 속이 상했다. 과연 장애인 화장실이 아니라 일반 화장실 천장에 저렇게 곰팡이가 피었다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용한다는 이유로 진작부터 보수공사나 시설관리가 들어가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쉽기만 한 장애인 화장실 관리... 약자 배려하는 대한민국으로 거듭나길

헬조선이다 뭐다 말 많고 탈 많은 대한민국이지만, GDP 같은 가시적인 국가 경쟁력도 올라가고, K-POP이나 <오징어게임> 등 콘텐츠를 수출하는 문화 강국이 되면서 선진국 반열에 우뚝 섰다. 우리나라는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고 그에 따라 장애인 인권이랄지, 시설 및 제도도 과거에 비해 확충된 것이 사실이다.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장애인 콜택시,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저상형 버스 도입, 공공 기관 점자 블록 등 분명히 끊임없이 개선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선진국 반열에 제대로 오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에게도 충분한 편의 시설이 필요하고 더욱 확충되어야 한다'는 시민의식과 함께 각종 기관들의 끊임없는 제도 개선 및 꾸준한 관리 아닐까?

실제로 아들과 함께 이용하는 다양한 장애인 화장실에선 아쉽게도 청소 용품이 목격되는 등 장애인 화장실을 비품실처럼 사용하고 있는 경우도 흔했다.

장애인 화장실에 있는 비품함장애인 화장실에는 청소용품이나 비품들을 넣어두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었다.오선정

지하철에 임산부 배려석이 생기고, 그것이 자리를 잡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장애인 화장실도 마찬가지다. 사람에겐 필수인 생리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서 장애인의 특성에 맞는 화장실 및 각종 편의시설이 필요하고, 그에 걸맞은 관리가 지속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이제 더 이상 숫자로만 생색낼 수 있는 선진국이 아니라 세계 여러나라에서 우리의 문화를 배우고 즐기러 오는 문화 선진국이 되었다. K팝, 드라마, 각종 예능 프로그램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그리고 우리의 문화를 제대로 공부하는 외국인들은 과거 우리나라가 '예절' 을 중요시하는 '동방예의지국'으로 불렸음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단순한 예의뿐만 아니라 장애인, 여성, 아동, 각종 사회적 약자를 위하고 배려하는 대한민국의 문화로 세계를 리드하는 것은 어떨까?

비록 아직은 갈 길이 멀어보일지라도, 언젠가는 사랑하는 내 나라가 성숙된 시민의식과 각종 제도의 확충으로 사회적 약자를 위하는 나라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약자에게 너그러운 나라는 모두에게 좋은 나라가 될 것이므로.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SNS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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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발달 장애 아들과 함께 삽니다.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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