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2.13 17:48최종 업데이트 25.02.13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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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서울 남부지검에서 이영림 검사가 신라젠 수사 중간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검찰은 "정·관계 로비 의혹은 실체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2020.6.8연합뉴스

이영림 춘천지방검찰청장이 안중근 의사 재판을 거론하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을 비판했다. 일제 재판부는 안중근에게 1시간 30분 정도의 최후진술 기회를 줬다며 "헌법재판소 문형배 재판관은 지난 6차 변론에서 증인신문 이후 3분의 발언 기회를 요청한 대통령의 요구를 '아닙니다. 돌아가십시오'라고 묵살했다"라고 12일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쓴 것으로 알려졌다. 또 "절차에 대한 존중이나 심적 여유가 없는 헌재 재판관의 태도는 일제 치하 일본인 재판관보다 못하다"라고 비판한 것도 보도됐다.

윤 대통령은 2년 반 동안의 대일 굴욕외교를 통해 스스로 증명했듯이 안중근 정신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윤석열 탄핵심판을 안중근 재판과 대등한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영림 지검장의 주장은 사실관계와도 부합하지 않는다. 탄핵심판 제6차 변론에 대한 그의 사실관계 파악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12일 오후 <오마이뉴스> 보도는 이 지검장이 말한 상황이 지난 6일의 제6차 변론 때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오마이뉴스> 기사는 이 지검장이 말한 것과 비슷한 상황은 4일의 제5차 변론 때 있었으며, 이는 피청구인과 재판부 간이 아니라 피청구인의 법률대리인과 재판부 사이의 일이었다고 지적한다.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제1차장의 증인신문 뒤에 윤 대통령이 8분 넘게 의견을 진술했는데도 윤갑근 변호사가 증인신문 시간 3분을 추가로 요구했기 때문에 재판부가 제지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일제 재판부가 차라리 낫다? 안중근의 최후진술 내용에 주목해야

이영림 지검장의 글은 현재의 사실관계뿐 아니라 안중근 재판의 실상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일제 법정에서 안중근의 최후진술이 있었다는 데만 주목하고 그 진술의 내용은 고려하지 않은 결과다.

안중근 재판에 관한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독립운동사자료> 제6권에 따르면, 안중근은 최후진술의 기회를 어느 정도 제공받았다. 일본 측이 작성한 '안중근 등 살인피고 공판기록'에 근거한 이 자료집은 뤼순(여순) 관동도독부지방법원 형사법정에서 열린 제5회 공판 때 미나베 주조 재판장이 했던 말을 들려준다.

미나베 재판장은 "최종으로 공술할 것은 없는가?"라고 물었다. 그런 뒤 "중복되지 않게 순서 있게 말해보라"라고 주의를 주기도 하고, "그만하면 되지 않았는가?"라고 제지하기도 했다. 최후진술 시간이 어느 정도 주어졌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2019년 5월 28일 자 YTN '안중근, 기독교 묘지에 매장, 러시아 신문 첫 공개'는 재판 상황을 상세히 다룬 당시의 러시아 신문들이 발굴된 사실을 보도하면서, 이 신문들의 내용을 근거로 "(안중근이) 사형선고 재판에서 1시간 동안 정당성을 주장"했다고 전한다.

이처럼 진술 시간이 어느 정도 주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 재판이 공정했던 것은 아니다. 당시 재판부의 절차 진행에 대해 평점을 매기려면, '최후진술 기회가 어느 정도 제공됐는가'뿐만 아니라 '그 최후진술에서 안중근이 재판절차에 대해 뭐라고 말했는가'도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확인을 충분히 했다면 이프로스에 그런 글을 올리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2015년 3월 26일 안중근 의사 순국 105주기를 맞아 중국 랴오닝성 다롄시 뤼순구 소재 일제 관동주 법원 유적에서 다롄 한국국제학교 학생들이 안 의사 재판 과정을 재현하고 있다.연합뉴스

최후진술 시간에 안중근이 맨 먼저 거론한 것은 검찰 조사 및 재판 절차의 불공정성이다. 이토 히로부미를 응징하는 1909년 10·26 거사 뒤에 일제 검찰은 안중근의 아들을 불러 조사했다. 검찰은 안중근 사진을 보여주며 아버지가 맞느냐고 물어봤다. 이 부분에 관해 안중근은 최후진술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틀 전에 그 심리한 결과를 들으니, 내 사진을 아들에게 보이면서 '이게 내 아버지이지' 하고 물으니 '바로 내 아버지다' 하고 그 애가 대답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내가 고향을 떠난 때가 3년 전이니, 바로 내 아들이 두 살 때였다. 그 후 전혀 만나본 일이 없으니 그 애가 나를 알아볼 리가 없다. 이 일례를 보더라도 그 심리가 얼마나 거칠고 엉성하며 또한 착오가 많았는가를 입증할 수 있으리라 본다."

재판부가 검찰 조사의 문제점을 제대로 지적했다면, 안중근이 최후진술 때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안중근에 대한 사법 처리가 전반적으로 불공정했음을 알 수 있다.

재판이 불공정하며 엉터리라는 점을 지적하고자 안중근이 제기한 또 다른 문제점은 재판 과정이 온통 '왜색'이라는 것이었다. 한일 두 민족이 관련된 재판에서 한국인 변호사가 발언 기회를 얻지 못한 것 등을 그는 비판했다.

"또 재판 자체에 관해서 한 가지를 말하겠는데, 대체로 나의 이번 거사는 나 개인의 자격으로 한 것이 아님을 재삼 말하였으니 양해해 주었을 줄로 믿는다. 또 국제관계를 심리함에 있어서 재판관을 비롯하여 통역·변호사에 이르기까지 모두 일본인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한국의 변호사도 와 있고 나의 동생도 와 있는데, 왜 그들에게는 말할 기회를 주지 않고 있는가?

변호사의 변론이나 검찰관의 논고는 모두 통역을 통해서 다만 요지만을 들려주었으나, 그 점도 나의 견해로서는 매우 미심쩍을 뿐만 아니라 객관적으로 그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한다 하더라도 편벽된 취급이라는 인상을 면치 못하리라고 생각한다."

이 발언에서 드러나듯이, 최후진술에서 안중근은 재판 과정이 편벽돼 공정성이 떨어진다고 항변했다. 최후진술에서 다른 것도 아니고 이 부분을 강조했으니, 그의 최후진술을 근거로 일제 재판부의 공정성을 따지려면 최후진술에 제공된 시간뿐 아니라 최후진술에서 언급된 내용도 당연히 다뤄야 한다.

안중근의 최후진술이 재판 과정의 불공정성을 증명하는데도, 진술 시간만을 근거로 '헌재 재판관의 태도는 일제 치하 일본인 재판관보다 못하다'라고 비판하는 것은 성급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안중근 자신이 이 재판이 불공정하다고 최후진술에서 항변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안중근 재판의 실체... 출발부터 불공정했다

안중근 재판은 지금은 물론이고 그 당시도 재판관할권 문제로 논란을 일으켰다. 대한제국 국민이 대한제국이나 일본제국이 아닌 제3국에서 벌인 행위를 일본 법원이 관할할 수 있는가가 문제가 됐다.

일본 측은 자신들에게 관할권이 있다고 우겼지만, 객관적 지표로 보면 부당한 주장이었다. 2009년도 <외법논집> 제33권 제2호에 수록된 이장희 한국외대 교수의 논문 '안중근 재판에 대한 국제법적 평가'는 관할권 문제를 이렇게 정리한다.

"하얼빈은 청국 영토로서 러시아가 조차를 하고 있는 동청철도 부속지인 동시에 모든 나라에 (대해) 자유지역이었다. 청국에 대해 치외법권을 갖는 각국은 이 지역에서 자국의 국민에 대해 법적 권리를 가진다."

이런 이유로 "러시아 또는 청국에 본 사건에 대한 재판권은 없다"고 논문은 말한다. 뒤이어 이렇게 설명한다.

"하얼빈 주재 일본총영사는 명치 32년(1899) 3월 법률 제70호와 명치 33년(1900) 4월 칙령 제153조에 의하여 일본 국민을 관할한다. 그런데 피고 안중근의 국적은 일본이 아닌 한국이었다."

일본이 하얼빈에서 갖는 권리는 자국 국민에 대한 관할권이었다. 안중근은 일본인이 아니므로 일본 법원이 그를 재판할 수 없었다는 지적이다. 이런 사건을 일본 법원이 다뤘으니, 이 재판은 출발점에서부터 불공정 논란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가 안중근의 최후진술에도 언급됐듯이, 이 재판의 진행 과정에서도 불공정한 점들이 많이 나타났다. 그래서 안중근 재판은 국제적인 정치범 재판의 모범 사례가 될 수 없다. 이런 재판을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지향해야 할 사례처럼 거론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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