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매가 붙은 적산가옥
윤한샘
이야깃거리를 풀어낼 공간이 넘쳐남에도 채워줄 콘텐츠가 부족해 보였다. 근대화 거리는 '근대 목포'에 관련된 콘텐츠가 가득해야 하는데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어떤 콘텐츠가 어울릴까? 그 답은 화신 연쇄점에서 느꼈던 판타지에 있었다.
100년 전 사람들이 했을 법한 것들을 입고 먹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한복을 빌려 입고 경복궁에 가는 이유는 판타지를 즐기기 위해서다. 누구나 그 경험이 가짜인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무슨 상관인가? 그렇게 여행에서 체험한 공감각은 영원히 기억된다.
근대 역사관은 중요한 장소지만 개항장 목포의 판타지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은 아니다. 공감각적 체험은 거리에서, 적산가옥에서, 화신 연쇄점에서, 오래된 사진관에서 가능하다. 개화기 사람들의 옷을 입고 인력거를 탈 수도 있고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화신 연쇄점에서 가배를 홀짝일 수도 있고 심지어 선술집에서 맥주도 마실 수 있다.
맥주를 업으로 하는 사람으로서 상상을 해봤다. 19세기 목포에 맥주가 있었을까? 화장품, 양복, 서양 악기를 파는 화신 연쇄점이 있었는데, 맥주라고 없었겠는가. 100년 전 목포에서 마셨던 맥주는 어떠했을까?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하지만 재현할 수는 있다. 가짜인 것을 누구나 안다. 무슨 상관인가?
'목포 상회', 목포 거리 구석, 적산가옥에 차린 맥줏집을 그려보자. 일본 색이 잔뜩 묻어있지만 괜찮다. 여긴 개화기 목포니까. 항구 노동자와 외국인들로 북적이는 선술집이지만 의열단이 비밀 회동을 하는 아지트기도 하다. 축음기에는 '목포의 눈물'이 울려 퍼지고, 낡은 괘종시계는 시간에 맞춰 종을 치고 있다. 진짜 같은 가짜지만 그 속에 '근대 목포'라는 진정성이 들어있다면 상관없다.
맥주는 직접 양조해야 한다. 그래야 진정성이 생긴다. 평범한 맥주는 재미없다. 항구도시라는 정체성을 살려보자. 포터, 인디아 페일 에일(IPA), 배럴 숙성 맥주면 좋을 것 같다. 포터는 산업혁명 시기 런던 템스강 하역 노동자들이 사랑한 어두운 맥주였다. 목포에도 분명 노동의 갈증을 맥주로 채우는 항만노동자들이 있었을 것이다. 이 맥주 이름은 '목포는 항구다'
IPA는 18세기 영국에서 인도로 수출하던 맥주에서 태어난 스타일이다. 일제 폭압에도 굴하지 않던 목포 사람들에 헌정하려면 높은 쓴맛과 진한 홉 향을 가진 웨스트 코스트 IPA가 좋겠다. 이 맥주의 이름은 '소년 김대중'
마지막으로 항구도시의 문화적 다양성은 배럴 숙성 맥주로 풀어보자. 럼, 와인, 위스키 모두 뱃사람들이 사랑한 술들이었다. 이런 술을 담갔던 배럴에 맥주를 숙성시켜 항구와 배에 얽힌 사람들을 이야기하면 어떨까. 맥주 이름은 '목포와 함께 춤을'
▲목포진에서 바라본 목포시내
윤한샘
목포를 거닐며 이런 상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일본의 교토나 독일의 밤베르크처럼 목포는 오랜 역사가 풍기는 매력을 간직한 도시였다. 다만 그 매력을 드러낼 방법을 못 찾고 있을 뿐.
목포 맥주가 있다고 사람들이 올 거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맥주는 '근대 목포'라는 판타지를 형성하는 멋진 아이템이 될 수 있을 뿐이다. 목포 맥주가 있다면 그건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되어야 한다. 지역 활성화 사업의 단초가 바로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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