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2.13 12:14최종 업데이트 25.02.13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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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오후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 입구.국회사진취재단

옥에 갇혔으나 입은 닫지 않았다? 구치소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이 옥중정치를 하고 있어 논란이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감방에 있으면서도 정치를 조종하고 민심을 회유하는 건 아직도 내려놓지 못하고 군림하려는 의지다. 이름하여 리모컨 정치요, 오더 정치다.

구치소를 찾는 이들은 국민의힘 지도부와 대통령실 참모들, 당내 친윤계 의원들이다. 조기 대선 가능성이 높은데도 중도층 민심과는 거리가 먼 행보를 이어가는 것은 대선 이후 치러질 전당대회와 지방선거, 차기 총선 등에 포석을 둔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문제는 대통령의 옥중 메시지가 그들의 입을 통해 구술된다는 점이다. 이는 강성 지지층들에게 일종의 좌표 찍기, 지시사항이 돼 보수 집회의 강력한 동력이 되고 있다.

윤 대통령이 배워야 할 리영희 선생의 겸양

지난 11일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된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 심판 7차 변론에서 발언하고 있다.헌법재판소 제공

국민의힘 의원들이 전한 윤 대통령의 옥중 메시지는 거의 망상에 가깝다.

"과거 나치도 선거에 의해서 정권을 잡았는데 어떻게 보면 민주당의 독재가 그런 형태가 되는 게 아닐지 걱정된다."

"(비상계엄 이유에 대해) 줄 탄핵, 예산 삭감 등 의회독재로 국정이 마비되는 것을 그냥 바라만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는 궤변에 가깝다. 원내 제1정당을 '나치'에 비유하며 계엄의 당위성을 설명할 땐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맞나 싶을 정도다. 국민과 국회를 장기판의 졸로 보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600만 명의 유대인 등을 학살한 히틀러와 나치 독일을 소환할 만큼 정적이 두려웠던 것인가. 아니면 민주당의 독주가 자신의 독재에 강력한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 것인가.

그가 언급한 히틀러는 1923년 바이마르 공화국 체제를 전복하려고 뮌헨폭동을 일으켰다가 교도소 독방에 감금됐다. 금고 5년 형을 받은 그는 감옥에서 <나의 투쟁>(Mein Kampf)을 펴냈는데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궤변들로 가득하다.

"페스트균을 없애버리기 위해선 용서 없이 군대의 모든 무력을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당은 해산시켜야 했다. 의회는 필요할 땐 총검으로 다스리되, 가장 좋은 방법은 당장 폐지시키는 일이었다."

윤 대통령과 100년 전 히틀러의 정적 제거 계획은 묘하게도 닮아있다. 민주당을 비판하기 위해 나치를 꺼내 든 것이 참으로 이율배반적인 이유다.

지금 윤 대통령이 할 일은 옥중정치가 아니라 침묵과 반성을 동반한 수양이다. 오랜 기간 피의자들을 감방에 보내는 삶을 살았던 그이기에 독방에서 지내다보면 (불같은 성격에) 화가 치밀어오를 것이다. 하지만 어느 목사가 넣어준 성경도 읽고, 여느 수감자들처럼 자기가 먹은 밥그릇은 자기가 닦아야 한다. 연일 TV 톱뉴스를 장식하고 있는 자신을 보며 땅을 치지 말아야 한다. 소맥을 할 수 없는 처지이니 맨정신에라도 국민의 뜻을 생각해야 한다. 아직도 자신을 지지하는 맹종주의자들을 향해 억울함을 호소하는 건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아니다.

폭압과 압제, 권력에 굴하지 않고 평생을 언론과 민주주의에 투신한 진보적 사상가이자 언론학자였던 리영희 선생의 감옥생활은 시사 하는 바가 크다. 선생은 서대문형무소 0.9평의 감방 안에서 겨울엔 동상에 짓무른 발 때문에 고통을 받고, 여름엔 구더기와 함께 밥을 먹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현실을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식인이 지닌 먹물 기질을 벗겨내기 위해 옥방의 변기를 열심히 닦기 시작했다. 그는 저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에서 자신의 감옥 생활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날부터 정치범, 사상범을 잡아넣은 특사의 독방 '칙간'(변소)을 윤기 나게 닦았다. 나는 그때까지 밤이나 낮이나 때를 가릴 것 없이 구더기가 줄을 지어 나와 좁고 어두운 감방을 어지럽히는 그 구역질 나는 변소를 닦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마음의 눈에 티가 있으면 변기에 그 티가 투영돼 보였다. 밖에 있는 티를 못 보는 것은 마음의 눈에 티가 끼어 있기 때문이다. 변기의 티를 닦는 일은 곧 마음의 눈, 마음의 거울에 남은 티를 닦는 일이었다."

변기 같은 세상에서, 변기의 티를 닦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에게 묻은 티는 보지 않고, 남의 티만 골라보는 게 벌레 같은 권력 아니던가. 윤 대통령이 배워야 할 감방생활의 겸양일 수도 있다.

'깨달음' 얻는 옥중생활 돼야

충주 석종사 금봉선원에서 동안거에 참가한 재가 불자들이 참선을 하고 있다. 2016.2.18연합뉴스

어쩌면 윤 대통령의 옥중 생활은 일종의 동안거(冬安居, 불교에서 스님들의 겨울철 수행 기간)로서, 삶을 되새기는 기회다. 동안거의 화두는 '이 뭣고(이것은 무엇인가)'를 비롯해 '무(無)' '나는 어디서 왔는가' '사는 의미는 뭔가' 같은 것들이다.

실제 스님들이 3개월 동안의 동안거에 들면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어떤 곳은 문을 자물쇠로 걸어 잠그기까지 한다(폐문정진). 콧구멍만한 방안엔 햇볕 한 줌 들어오지 않는다. 공양(밥)은 하루에 단 한 번(오전 11시), 개구멍 같은 문으로 소량을 넣어준다. 달콤한 음식 냄새, 달콤한 세상 냄새를 단칼에 없애기 위함이다. 방안에는 몸을 씻기 위한 물, 요강, 흰 벽이 있을 뿐이다.

번뇌와의 싸움은 육신을 박제하듯 고통스럽다. 졸음이 온몸의 땀구멍으로 쳐들어오고 1000여 개의 근육은 마디마디 저리다. 화두는 언제나 여우처럼 놀리며 달아난다. 산문(山門)밖의 일을 끊는 것이 쉬울 리 없다. 하지만 3개월간 산사와 선방, 토굴에 머물던 납자(스님)들은 세상의 평화로운 큰 뜻을 깨닫고 겨울 밖으로 나온다.

윤 대통령은 최소한 주린 자의 배고픔을 알 만큼 적은 공양에 감사하고, 만남은 최대한 줄여 '민심의 참뜻은 뭣고?', '내가 무슨 짓을 했는가', '앞으로 어떻게 반성하나' 같은 화두를 잡아야 한다. 국민이 원하는, 국민이 던져준 민의를 제대로, 똑바로 되새기는 동안거가 돼야만 동안거에서 해제될 수 있다. 좋은 음식에 넘치는 술을 마셨던, 세상을 호령했던 과거를 붙잡아봤자 공염불이다.

그의 메시지가 끊이지 않으면 세상은 계속 시끄러울 것이다. 주변을 맴도는 메신저들도 입을 닫아야 세상이 조용할 것이다. 노태우, 전두환, 박근혜, 이명박, 윤석열…. 국민들은 언제까지 감옥 가는 대통령을 바라봐야만 하는가.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일개 잡범처럼 옥에 갇혀 비운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는 건 비극이다. 심지어 권력을 무기 삼아 군주정치를 하려는 간악한 모리배 정치집단이 아직도 있다는 건 참담한 일이다. 권력이 무능하면 불행한 이는 항상 죄 없는 국민들이다.

지난 10일 국민의힘 의원들이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윤석열 대통령 면회를 마친 뒤 츨구로 나오고있다. 앞부터 김기현 전 대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이철규, 정점식, 박성민 의원.연합뉴스

이미 저지른, 벌어진 죄나 실수는 돌이킬 수 없다. 없던 것으로 칠 수도 없다. 탄핵을 막기 위해 온갖 거짓말과 선전선동, 악의적 공격을 지속한다면 국민의 심판을 넘어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된다. 지금 중요한 것은 탄핵의 유무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탄핵할 수 있는 용기다. 지금의 감방생활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독방이 아니라 어둠의 경고를 받아들이는 고해성사의 방이어야 하는 이유다.

감방을 서성이는 국민의힘도 환골탈태 해야 한다. 지금 이대로라면 국민의 힘이 국민의힘으로 모이지 않는다. 옥중정치를 부추기지 말고 대통령과 함께 사과부터 하는 게 우선이다. 사과도 그나마 받아줄 마음이 남았을 때 가능하다. 때를 놓치면 사과도 원망과 비난의 대상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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