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2.27 11:42최종 업데이트 25.02.27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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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내란 사태 이후, 시민들은 무너진 세계를 구하기 위해 여의도, 광화문, 남태령으로 달려갔습니다. 어두웠던 광장을 빛으로 채운 건 형형색색의 응원봉뿐이 아니었습니다. '2024년 12월 3일 이후의 대한민국은 달라야 한다'는 외침은 광장을 넘어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가 창간 25주년을 맞아 시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전합니다.[편집자말]
비상행동, 대통령 퇴진 촉구 집회지난 1월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 윤석열 즉각 퇴진·사회 대개혁 비상행동 주최로 열린 대통령 퇴진 촉구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관련 구호를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대한민국의 광장이 눈보라를 맞으며 자랐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의 계엄 선포 이후 전국 곳곳에서 탄핵 집회가 열렸고 시민들은 자유 발언에 나섰다. 그들의 이야기는 내란 사태에 국한되지 않았다. 더 나은 대한민국을 꿈꾸며 시민들은 농민의 트랙터를 앞장서 이끌고, 아이돌 응원봉을 들었다. 사회적 약자의 현실을 청취했고, 서로 연대하며 공론장은 커졌다.

그 중심을 지킨 건 '2030 한국 여성'이다. 일각에서는 그들을 '청년 세대'라 뭉뚱그려 호명하거나 집회에 젊은 여성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며 축소하기도 한다. 하지만 남태령 대첩에서, 집회 현장에서, 장애인 이동권 시위에서 민주주의를 외친 이들은 단언컨대 '2030 여성'이었다. 그들은 어떤 대한민국을 꿈꾸며 거리로 나섰을까. 광장과 함께한 세 명의 20대 여성들을 만났다.

남태령 대첩의 주인공 "대한민국의 가능성을 보았다"

A씨가 직접 촬영한 '남태령 대첩'의 순간제보자제공

비상계엄이 벌어진 새벽, 당시 시민들은 국회로 달려가 장갑차를 막고 밤새 그곳을 지켰다. 20대 여성 A씨도 그 현장에 있었다. 직접 헬기 소리를 들으며 "이 사태가 장기전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끝까지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외면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회상했다. 그래서 남태령 대첩 때도 그는 추운 한파를 뚫고 아스팔트 도로에서 버텼다.

그는 "사람들이 뜻을 모아 거리에 나섰고, 그들의 존재를 보며 다시금 이 사태가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얻었다"며 "나에게 탄핵 시위는 '함께'의 가치를 알게 하는 곳"이었다고 했다. 이처럼 '함께'한다는 감각은 "더 나은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장"으로 확장되었고 모두가 탄핵 정국으로 좌절한 순간에 그는 집회 참여를 통해 "되레 대한민국의 가능성을 크게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A씨는 "내란 사태를 치르면서 한국 사회 속 숨은 차별이 가시화되었다"며 특히 "시민들의 자유 발언이 모두 존중받은 건 아니었다. 여성이 목소리를 내면 '여자라서 그렇게 생각한다', '어린 여자라서 아직 잘 모른다'고 깎아내리는 이들이 존재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비단 여성만이 아니라 성소수자, 농민, 청소년, 노동자의 존재도 쉽게 지워졌다. 이들을 향한 차별을 없애는 것이 대한민국의 다음 과제"라고 목소리 냈다.

무엇보다 내란 사태를 겪으며 대한민국에 '차별을 외면하지 않는' 힘이 생겼다는 게 A씨의 생각이다. 그는 "여러 시위에 나가며 시민들이 각자가 지닌 차이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았다. 차별은 타인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할 때 발생하지 않느냐. 지금처럼 우리가 달라도 서로를 포용할 수 있다면 내란 사태 이후의 대한민국은 더욱 발전할 것이다. 그런 힘이 한국 사회에 있다"고 확신했다.

'페미 낙인' 없는 대한민국을 요구한다

내란 사태 이후 "거의 모든 집회에 참여했다"는 B씨는 "윤석열을 향한 투쟁에 '페미니스트'가 있다는 걸 알리고자 페미니스트 시국발언대를 직접 진행했다"고 밝혔다. 그는 매주 페미니스트 시국 발언대를 준비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시국 발언과 함께 탄핵 집회에 참여했다. 이를 통해 "평소에 드러나지 않아도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시민들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주위에 윤석열을 지지하거나 혹은 동덕여대 시위를 비난하면서 되레 비상계엄을 감싸는 사람들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소식에 다른 사람들이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겼다"며 "성평등한 사회로 나가기 위해 실천과 행동을 도모하고 또 언제든지 서로를 위로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고 있다"고 스스로 다잡았다.

B씨는 내란 사태 이후 대한민국이 "일터와 삶터를 포함한 모든 공간에서 성평등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며 "아직도 성평등을 외치면 '페미 낙인'이 찍힐까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공간에서도 성평등을 외칠 수 있고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우리 사회의 성차별을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페미니즘 강연 홍보에 나선 B씨의 모습제보자제공

탄핵 정국은 길어지고 있지만, B씨의 투쟁은 지치지 않았다. 그는 "시국 선언에 참여했던 예일여고, 송곡여고 앞에서 '미리대학(페미니즘 강의)' 홍보 캠페인을 진행했다. 그들이 대학 생활을 하면서 성차별적 상황을 마주해도 지금처럼 용기를 내어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다음 세대의 여성들을 독려했다.

'정치색'으로 사람이 죽지 않는 나라

집회를 밝힌 C씨의 촛불제보자제공

퀴어 퍼레이드, 장애인 이동권 시위,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에 모두 참여한 C씨는 탄핵 집회에서 처음으로 "환대와 환영"을 경험했다. 그는 "다른 시위에서는 주변 사람들에게 참여 자체를 숨겨야 했고 일상에서 시위에 관한 혐오 발언을 듣곤 했다. 심지어 신상에 위협을 입을 수 있다는 각오까지 하고 나섰다. 하지만 탄핵 집회는 참여자끼리 서로를 최대한 존중하며 사회 전반적으로 시위를 용인하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그는 "대규모 시위에서 시민들이 내 삶의 중심에 있는 가치를 함께 연호하고, 시민 발언자의 목소리에 주변 연대자들이 소리 내어 환호할 때 희열감을 느꼈다"며 "그곳에서 도시빈민의 목소리를, 성 노동자의 목소리를, 내가 살아가는 시대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C씨에게 그 목소리는 시민들의 투쟁이 끌어낸 거대한 '함성'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광장에 나서지 못한 이들의 존재를 떠올렸다. 그는 "어느 때보다 광장이 열린 공간이 되었지만, 여전히 생업, 지병, 장애, 정체성을 이유로 나서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이 속한 사각지대를 생각하고 또 광장에서 사회적 소수자들이 발화한 목소리를 고려하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소망했다.

그는 내란 사태 이후 대한민국이 "어떠한 정체성이라도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며 "정치색에 따라 사람이 죽지 않고, 정책에 따라 사람이 도구처럼 희생되지 않고, 선입견이란 날카로운 칼로 약자를 도륙 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바라는 사회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저 "타인의 기본적인 선의에 기대어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꿈꿀 뿐이다.

왜 한국 여성들은 하필 '광장'을 골랐나

탄핵 집회에서 주목해야 하는 건 참여자가 주로 '여성'이란 점과 그들이 선택한 공간이 '광장'이란 것이다. 왜 그들은 매서운 겨울에 광장으로 나섰고, 자유 발언으로 자신에 대해 발화했을까. <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의 저자 주디스 버틀러에 따르면 정치 행위가 벌어지는 공간에 누구나 입장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정치적 주체의 지위에서 배제된 여성, 성소수자, 노동자는 정치 행위가 벌어지는 공간에서도 역시 배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거리에 나서 '나'의 존재를 출현시키고, '나'와 '너'의 취약성을 인정하며, '우리'가 함께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고 연대하게 된다. 버틀러가 설명한 개념은 탄핵 정국 속 한국 여성들의 상황과도 들어맞는다.

한국 여성들은 오랫동안 정치 공간에서 배제되었다. 그들은 시위에 나서도 '촛불소녀'라 불리며 광장의 마스코트가 되어야 했고, "시위에 젊은 여성들이 많으니, 남자들도 오라" 혹은 "젊은 여자들이 뭣 모르고 행동한다"는 말 속에서 그들의 정치적 힘은 과소평가 되었다. 그럼에도 여성들은 다시 광장으로 향했다. 이번 정국 때 2030 여성들이 조명을 받은 건 그들이 '이제서야' 시위에 참여했기 때문이 아니다. 사회가 이제서야 발견했을 뿐이다.

내란 사태를 목격하고 직접 광장으로 나선 세 명의 여성은 단순히 '내란 수괴가 없는' 대한민국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차별이 없고, 여성 혐오가 없고, 모두가 고유한 정체성을 지닌 한 사람으로서 존중받는 한국 사회를 꿈꾼다. 그 여정에 이들이 앞장섰고 더 많은 여성들과 시민들이 뒤따르고 있다. 드디어 새로운 민주주의의 첫 장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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