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를 밝힌 C씨의 촛불
제보자제공
퀴어 퍼레이드, 장애인 이동권 시위,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에 모두 참여한 C씨는 탄핵 집회에서 처음으로 "환대와 환영"을 경험했다. 그는 "다른 시위에서는 주변 사람들에게 참여 자체를 숨겨야 했고 일상에서 시위에 관한 혐오 발언을 듣곤 했다. 심지어 신상에 위협을 입을 수 있다는 각오까지 하고 나섰다. 하지만 탄핵 집회는 참여자끼리 서로를 최대한 존중하며 사회 전반적으로 시위를 용인하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그는 "대규모 시위에서 시민들이 내 삶의 중심에 있는 가치를 함께 연호하고, 시민 발언자의 목소리에 주변 연대자들이 소리 내어 환호할 때 희열감을 느꼈다"며 "그곳에서 도시빈민의 목소리를, 성 노동자의 목소리를, 내가 살아가는 시대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C씨에게 그 목소리는 시민들의 투쟁이 끌어낸 거대한 '함성'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광장에 나서지 못한 이들의 존재를 떠올렸다. 그는 "어느 때보다 광장이 열린 공간이 되었지만, 여전히 생업, 지병, 장애, 정체성을 이유로 나서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이 속한 사각지대를 생각하고 또 광장에서 사회적 소수자들이 발화한 목소리를 고려하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소망했다.
그는 내란 사태 이후 대한민국이 "어떠한 정체성이라도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며 "정치색에 따라 사람이 죽지 않고, 정책에 따라 사람이 도구처럼 희생되지 않고, 선입견이란 날카로운 칼로 약자를 도륙 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바라는 사회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저 "타인의 기본적인 선의에 기대어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꿈꿀 뿐이다.
왜 한국 여성들은 하필 '광장'을 골랐나
탄핵 집회에서 주목해야 하는 건 참여자가 주로 '여성'이란 점과 그들이 선택한 공간이 '광장'이란 것이다. 왜 그들은 매서운 겨울에 광장으로 나섰고, 자유 발언으로 자신에 대해 발화했을까. <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의 저자 주디스 버틀러에 따르면 정치 행위가 벌어지는 공간에 누구나 입장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정치적 주체의 지위에서 배제된 여성, 성소수자, 노동자는 정치 행위가 벌어지는 공간에서도 역시 배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거리에 나서 '나'의 존재를 출현시키고, '나'와 '너'의 취약성을 인정하며, '우리'가 함께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고 연대하게 된다. 버틀러가 설명한 개념은 탄핵 정국 속 한국 여성들의 상황과도 들어맞는다.
한국 여성들은 오랫동안 정치 공간에서 배제되었다. 그들은 시위에 나서도 '촛불소녀'라 불리며 광장의 마스코트가 되어야 했고, "시위에 젊은 여성들이 많으니, 남자들도 오라" 혹은 "젊은 여자들이 뭣 모르고 행동한다"는 말 속에서 그들의 정치적 힘은 과소평가 되었다. 그럼에도 여성들은 다시 광장으로 향했다. 이번 정국 때 2030 여성들이 조명을 받은 건 그들이 '이제서야' 시위에 참여했기 때문이 아니다. 사회가 이제서야 발견했을 뿐이다.
내란 사태를 목격하고 직접 광장으로 나선 세 명의 여성은 단순히 '내란 수괴가 없는' 대한민국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차별이 없고, 여성 혐오가 없고, 모두가 고유한 정체성을 지닌 한 사람으로서 존중받는 한국 사회를 꿈꾼다. 그 여정에 이들이 앞장섰고 더 많은 여성들과 시민들이 뒤따르고 있다. 드디어 새로운 민주주의의 첫 장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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