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한 중고서점의 모습amandazi_photography on Unsplash
내란 수괴로 지칭되는 윤석열 대통령은 "2시간짜리 내란이란 것이 있느냐. 아무 일도 없었잖냐"며 당당하지만 2024년 12월 3일 이후 내 일상은 변했다. 몸은 한껏 예민해졌다. 평소에는 베개에 머리만 대면 잠들어버리는 타입인데 그날 이후 나는 한밤중에 들리는 작은 소리에도 곧바로 벌떡 일어난다. 별다른 일이 아님을 확인했다고 해도 다시 깊이 잠들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길까 봐, 자는 동안 변화를 감지하지 못했다가 이 세상에서 혼자 사라질까 봐 내 위기의식이 감각을 한껏 예민하게 다듬어놓은 것이다.
12월 3일, 인터넷 화면에 뜬 '계엄' 단어를 보며 제일 처음 한 생각은 '내일 회사에 가도 되나?'였다. 나는 출판사에서 일하는 편집자이고, 속보로 뜬 계엄 포고령 제1호 3에는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출판계 원로들이 지나가듯 이야기했던, 직접 편집한 책이 금서로 지정되고, 책 마지막 장 판권 이름이 적힌 탓에 정부에서 찾아와 하나둘 어딘가로 끌고 갔다던 그 엄혹한 시절을 나도 겪는 건가? 시민들과 국회의 빠른 조치로 비상계엄이 해제되지 않았다면 내가 몸담은 업계는 탄압당하고 나의 직업은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실질적인 위기를 느낀 이유는 간단하다. 윤석열 정부는 집권 내내 출판계 및 언론계를 찍어 누르는 태도를 고수해왔기 때문이다. 2022년부터 정부의 출판 지원사업 규모가 꾸준히 줄어든 것이 가장 대표적이다. 어쩜 이렇게 디테일한지 혀를 내두를 정도다.
국내 문학 창작도서를 지원하는 '문학나눔' 사업과 교양·학술 도서를 지원하는 '세종도서' 사업은 윤석열 정부 이후 꾸준히 지원금이 줄어들었다. 출판진흥원에 따르면 2023년 두 지원사업은 140억 원 내외 규모였으나 2024년 115억으로 대거 축소되었다. 세종도서 교양부문의 일부인 '문과 분과'를 문학나눔 도서 보급 사업과 통합시켰을 뿐 아니라 2023년 520종을 선정하던 문학나눔 도서를 2024년에는 390종만 선정했다. 이는 특히 출판 불황기에도 양서를 출간하며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교양·학술 도서 출판사들에게 실제적인 생존의 위기로 다가왔다.
책 읽는 국민을 늘리기 위해 결성된 국민독서문화증진 지원사업은 어떠한가. 2023년 59억의 예산이 편성되었으나 2024년부터 아예 폐지되었다. 또 문화 복지의 일환인 도서관의 정책개발 및 환경개선 사업은 2023년 168억에서 2024년 116억, 2025년 106억으로 급감했다.
대형 온라인 서점이 출판계의 동맥이라면, 소규모 지역 서점들은 온몸에 가늘게 퍼져 있는 모세혈관이라 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지역서점 활성화 예산마저 11억에서 4억 내외로 절반 이상 깎아버렸다(문체부는 기존의 개별 업체 지원 방식에서 업계 전반이 활용하는 디지털 구축 사업 지원으로 체계를 개편한 것이지 삭감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편집자 주). 동네서점의 축소는 문화 접근성의 문제를 불러온다. 누군가에게는 인터넷에 들어가 클릭 몇 번으로 책을 집 앞까지 배송하는 게 쉬울지 몰라도, 누군가에게는 인터넷 서점에 접속하는 일마저 큰 난관일 수 있다. 60대 중반인 우리 엄마만 해도 필요한 책이 있으면 복잡하다며 나에게 사다달라고 부탁한다.
"대통령이 문학 안 읽는다면..." 세계적 소설가의 일침

▲우리에게 문학이 필요한 이유는 상상력을 키워주기 때문이다. 내가 모든 사람의 입장이 될 수 없으니, 책을 빌어 그 사람이 되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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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평등과 공평의 문제를 운운하며 '책도 비즈니스의 일종 아니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책은 상품으로서만 존재할 수 없다. 10만 명이 넘는 독자가 찾는 책과 500명이 읽는 책이 공존해야 하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만약 삼성전자라면 고작 물건 500개 팔리는 시장을 위해 제품을 생산하지 않을 테지만, 출판계에서는 단 500명이어도 그 책에 담긴 가치가 세상에 유익하다면 출간을 결심해 인쇄기를 돌린다. 정부의 지원사업은 이런 출판의 뜻 있는 책들을 지원하기 위해 존재한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소설 <라이프 오브 파이>의 저자 얀 마텔은 지도자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책 읽는 행위는 매우 중요하다. 대통령, 총리 등 국가지도자나 기업 총수가 소설과 같은 문학 작품을 읽지 않는다면 그들이 꾸는 꿈이 최악의 악몽이 될 수도 있다." 12월 3일 그날 밤이 떠오르는 문장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걱정되는 건 그의 '상상력'이다. 우리에게 문학이 필요한 이유는 상상력을 키워주기 때문이다. 내가 모든 사람의 입장이 될 수 없으니, 책을 빌려 그 사람이 되어보는 것이다. "사이코패스는 소설을 읽지 않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이 말의 과학적 사실 여부를 떠나 그럴듯한 이야기라 생각이 든다. 상대의 고통과 아픔에 이입하고 측은지심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책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할 테니까. 거꾸로 생각하면, 이는 곧 책을 읽는 사람이 많을수록 상대의 아픔에 공감하고 서로를 위로하는 마음도 커진다는 뜻 아닐까.
책은 인류의 마음을 성장시키는 도구이고, 이 도구를 보편적으로 퍼트리기 위한 장소가 바로 '공공도서관'이다. 1994년 IFLA-유네스코 공공도서관 선언은 도서관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 아주 어릴 때부터 아이들에게 읽기 습관을 키워주고 향상시킬 것
2. 모든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개인적인 학습뿐 아니라 공식적인 교육을 지원할 것
3. 개인의 창작 욕구를 실현할 기회를 제공할 것
4.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의 상상력과 창작력을 고취시킬 것
5. 문화유산을 알리고, 예술, 과학의 성취와 발견을 존중하도록 할 것
6. 모든 공연 예술의 문화적 표현을 향유할 기회를 제공할 것
7. 문화 교류를 장려하고, 문화적 다양성에 혜택을 줄 것
8. 구술 전통을 지원할 것
9. 시민들이 모든 종류의 공동체 정보에 접근 가능하도록 할 것
10. 지역 기반의 기업들, 조합들, 단체들에 적절한 정보를 제공할 것
11. 정보와 컴퓨터 기술 개발을 촉진할 것
12. 모든 세대를 대상으로 하는 읽고 쓰기 활동과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관여하며, 필요할 경우에는 이 분야에서의 활동을 주도할 것
이후의 어떤 세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다음번에는 책 읽는 세계를 마주하고 싶다. 책이 몇몇 엘리트나 지도자를 위한 부분적인 기득권의 특권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보편 복지의 수단인 세계. 다음 대통령이 도서관에 방문해 책을 빌리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한강 작가의 노벨상 소식에 "대한민국 문학사상 위대한 업적이자 온 국민이 기뻐할 국가적 경사입니다" 숟가락 얹을 생각에 얼굴이 벌게진 대통령이 아니라, 한 책에 담긴 인간의 고통에 연민하고 기쁨에 동화되는 마음이 있는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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