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은 단순히 노동이나 서비스에 머물지 않고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연결을 기반으로 한 연대와 협력의 상징이자 목적이다.
셔터스톡
돌봄의 사회화는 돌봄을 특정 성별이나 계층에 국한하지 않고, 모든 구성원이 참여하고 책임을 나누는 구조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단순히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공동체의 결속력을 강화하며 상호 의존적인 사회를 만든다.
그러나 한국 사회가 추구해 왔던 돌봄의 사회화는 협소해지고 왜곡되었다. 현실에서 돌봄의 사회화는 본래의 취지를 벗어나 많은 경우 "나는 하기 싫고, 저렴하게 남이 해줬으면 좋겠다"는 차원으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 성찰이 필요하다.
이런 태도는 돌봄의 본질적 가치를 훼손하고 돌봄 노동자와 수혜자가 돌봄을 통해 공존과 연대를 도모하지 못하게 하는 구조적 문제를 낳고 있다. 가정과 기업, 심지어 국가는 돌봄 노동을 최소한의 비용으로 외주화하며, 돌봄 노동의 중요성을 체계적으로 과소평가하고 있다. 따라서 돌봄의 사회화의 본질적 의미를 재정립하고 돌봄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재평가해야 한다.
가정 내 돌봄을 지원하기 위해 한국 정부는 근로시간 단축, 육아휴직, 가족 돌봄 휴가와 같은 다양한 정책을 시행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는 주로 이성애 부부로 구성된 이른바 '정상 가족'과 맞벌이 가구를 중심으로 설계되어, 돌봄의 보편적 권리를 보장하는 데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육아휴직이나 가족 돌봄 휴가는 법적 가족 관계를 기준으로 지원이 이루어지며 동성애 가족이나 비혼 근로자는 이러한 혜택에서 배제되기 쉽다. 육아휴직 제도는 안정된 일자리와 높은 소득을 가진 가구가 주로 혜택을 누리고 있다. 고용 안정성이 낮거나 비정규직인 근로자는 휴직을 사용할 여력이 없거나, 휴직 사용이 직업 안정성에 위협이 될 수 있다.
이는 돌봄 정책이 계층적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비혼 근로자 중에는 부모나 형제자매와 같은 가족 구성원을 돌봐야 하는 경우도 있으나, 기존의 정책은 이러한 요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다양한 가족, 비혼 근로자, 비전형 근로자와 같은 다양한 가족 및 개인의 돌봄 필요를 포함하도록 정책을 확장하는 것이 시급하다.
공공 돌봄 서비스와 같은 사회적 안전망을 확대하는 것은 돌봄의 공백을 메우고, 사회 구성원 모두가 최소한의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 공공 돌봄 서비스의 확대를 위해서는 돌봄 노동자에 대한 적정 임금 보장, 근로 조건 개선이 필수적이다. 국가는 고령화와 인구 감소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돌봄 예산을 확대하고, 이를 통해 양질의 공공 돌봄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지역사회 기반의 돌봄 체계를 구축해 지역 내에서의 돌봄 부담을 경감하고, 돌봄을 연대와 협력의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돌봄 체인의 악순환에 발을 내딛기보다는 더 평등하고 지속 가능한 돌봄 체계를 구축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할 때이다.
젊은 세대와 노년 세대가 서로를 지원하며, 돌봄 문제를 공동의 책임으로 여기는 문화적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특히 지역 기반 돌봄 생태계 구축은 청년층의 실업 문제와 돌봄 분야의 일자리 수요 증가를 연결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다.
돌봄은 연대와 협력의 상징이자 목적

▲지난해 유엔이 10월 29일을 ‘국제 돌봄 및 지원의 날’로 지정한 가운데, ’10.29국제돌봄의 날 주간 돌입 기자회견’이 지난 2024년 10월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앞에서 10.29국제돌봄의날조직위원회(민주노총, 전국요양보호사협회, 참여연대, 한국노총, 가사돌봄유니온, 여성노동자회 등 29개 단체) 주최로 열렸다.
권우성
청년층과 남성이 참여할 수 있는 방식으로 돌봄 일자리의 형태를 설계한다면, 돌봄 노동의 성별 고정관념을 해소하고 사회적 연대와 경제적 지속 가능성을 동시에 강화할 수 있다. 기술과 전문성, 유연성을 결합한 새로운 돌봄 일자리 모델은 청년들에게 안정적인 고용을 제공하는 동시에, 사회적 돌봄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다.
생태적 관심은 돌봄을 단지 인간 중심의 활동으로 보지 않고 지구와 생태계를 돌보는 활동으로 확장할 것을 촉구한다. 이는 기후 변화 대응, 생물 다양성 보존, 지속 가능한 자원 관리와 같은 활동을 포함하며, 모든 생명체와 생태계를 돌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지역사회의 생태 복원 활동, 재생 가능 에너지 전환, 지역 기반의 농업 확대는 모두 추가적인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러한 돌봄의 확장은 새로운 형태의 부담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돌봄 노동의 증가가 여성과 같은 특정 집단에게 집중될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이를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구현하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
돌봄의 사회화, 즉 사회 책임은 돌봄의 경제적 가치와 윤리적 책임을 조화롭게 연결하고, 성장 중심의 경제 모델을 넘어 인간과 생태 중심의 지속 가능한 발전 모델로 전환할 것을 촉진한다. 돌봄의 보편적 권리는 단지 정책의 확대가 아니라, 사회적 인식과 구조의 변화를 요구한다. 돌봄을 특정 계층이나 사회적 관계에 제한하지 않고, 모든 사람의 권리로 확장하는 것은 더 평등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데 핵심적인 과제다.
돌봄은 단순히 노동이나 서비스에 머물지 않고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연결을 기반으로 한 연대와 협력의 상징이자 목적이다. 돌봄을 중심으로 한 사회적 연대는 고립과 소외를 해소하고 개인과 집단 간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고 더 큰 공공선을 추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줄 것이다.
▲윤자영 / 충남대 경제학과 부교수(소셜 코리아 자문위원)
윤자영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윤자영은 충남대학교 경제학과에서 노동경제학과 젠더경제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소셜 코리아> 자문위원이기도 합니다. 가족과 노동시장의 성차별과 불평등, 돌봄 노동이 젠더 불평등에 갖는 함의, 돌봄 경제의 사회경제적 가치와 의의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민간위원,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 한국노동경제학회 이사, 한국사회경제학회 이사, 한국사회정책학회 이사 등을 역임했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