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18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금리 인하 발표 후 뉴욕증권거래소(NYSE) 트레이딩 플로어에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모자가 전시되어 있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는 기존 미국 예외주의와 일정 부분 궤를 달리한다. 전통적으로 미국 예외주의는 국제적 리더십을 기반으로 한 반면, 트럼프는 민족주의적 배타주의를 내세워 미국의 예외주의를 재정의했다.
국제 협력보다는 개별적인 국가 이익을 우선하는 정책을 추진한다. 이는 전통적인 동맹 관계에도 변화를 가져왔으며, 미국의 리더십을 재조정하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적대적 경쟁 관계를 노골화하며 정면충돌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전통적으로 우방국들에게 일정한 경제적 유연성을 제공했던 미국의 방식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이념적, 문화적 동맹관계인 서유럽 국가들 역시 트럼프 행정부 아래에서는 동맹국이라기보다 경제적 경쟁자로 간주되고 있다.
그는 독일, 프랑스와의 무역 불균형 문제를 공격하며, 과거 미국이 서방 동맹을 유지하며 유럽과 협력했던 방식과는 아주 다른 접근을 택하고 있다. 트럼프의 보호무역 기반의 미국 우선주의는 예외주의가 배타적 형태로 변형된 사례라 볼 수 있다.
그는 미국이 특별한 나라라고 인식하지만, 그 의미를 '미국이 다른 국가들에게 더 이상 양보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로 재해석했다. 이는 미국 예외주의가 기존의 도덕적 책임과 글로벌 리더십이 아닌, 철저히 자국의 실리와 경쟁 우위를 확보하는 도구로 변질되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우리는 트럼프식 예외주의의 이면을 봐야 한다. 이미 미국은 세계를 지배하는 주도적 입장이 아닌 자국의 이익을 방어해야 하는 수세적 입장으로 전락했으며, 스스로 그것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글로벌 질서 속에서 미국의 역할에 대한 일종의 피해의식과 피로감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한 피해의식은 결국 미국인들로 하여금, 사법적 판단까지 받은 범법자를 대통령으로 선택하게 만들었고, 그 대통령은 1500명 규모의 민주주의 파괴자들에 대해 전격적 사면 조치를 단행했다. 민주당도, 공화당의 기존 주류 세력도 이러한 민주주의위기를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이 현재 미국의 모습이다.
이러한 흐름은 미국 예외주의가 단순히 트럼프 개인의 정책이 아니라, 미국 외교정책의 새로운 방향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다만 그 흐름이 미국을 이롭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전문가들이 회의적 답을 내놓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미 트럼프 1기 당시 추진했던 고관세의 피해는 고스란히 미국 소비자들에게 전가되고 있다. 미국 시카고 대학이 지난해 9월 저명한 경제학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98%가 관세 인상으로 인한 부담이 소비자에게 돌아간다고 대답했다.
문제는 정책 오류로 야기된 국민들의 피해가 그들에게 오히려 미국의 역할이 부당하다는 피해의식으로 둔갑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다수 국민들의 저변에 깔린 이러한 정서는 지난 대선의 향방을 결정하는 수준에 이르렀고, 트럼프는 이를 성공적으로 이용했다.
예외주의는 미국의 미래일까

▲2020년 10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발코니에 서서 마스크를 벗고 있는 모습.
연합/EPA
트럼프식 미국 예외주의는 역설적으로 미국을 다른 나라와 다를 바 없는 "모두가 모두와 싸우는 전쟁(bellum omnium contra omnes)" 속의 하나로 전락시키고 있다. 전혀 예외적이지 않은, 그저 하나의 국가의 모습을 향하고 있다는 의미다.
홉스가 주장할 법한 강력한 리더십의 미국도 아니고, 하물며 다자주의와 국제 협력을 주도하는 도덕적 리더십의 미국은 더더욱 아니다. 트럼프는 미국을 수세기의 정치학 담론을 거꾸로 거슬러, 한낱 원시 상태의 최강 생존자로 만들려 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 국제사회에서 그러한 무질서 속의 최강자가 지속성을 가질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국제사회의 역동성은 이미 상당히 성장했으며, 그 속에서 미국이 기존의 예외적 위상을 유지할 가능성은 더욱 낮아지고 있다.
물론 미국이 당장 '원 오브 뎀(One of them)'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 국민들의 피해의식과 경제적 피로감이 예외주의를 약화시키고 있지만, 국제사회는 여전히 미국의 리더십을 기대하고 있다.
미국은 여전히 어느 나라도 범접할 수 없는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여전히 미 달러는 막강한 기축통화 지위를 가지고 있다. 가까운 미래의 경제를 이끌어갈 정보통신산업의 압도적인 선도 역할을 하고 있다. 트럼프의 일방주의는 이러한 힘을 배경으로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일방주의는 미국의 우월성을 과시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 그 우월성의 이면에는 스스로를 약화시키는 역설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국제적 신뢰와 협력을 희생시키는 우월주의는 미국의 예외적 지위를 손상시키며, 스스로 구축한 세계 질서에서 점차 밀려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