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ous 낭트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대학교 학생 식당의 모습
crous 낭트 홈페이지
프랑스 고등교육부에 따르면 2024년에 총 52만 명의 학생들이 1유로 식사 정책의 혜택을 받았다. 이는 전체 300만 명의 학생 가운데 17%, 장학생을 비롯한 수혜 대상층으로만 계산해도 절반 정도에 해당되는 수준이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학생들에겐 얼마든지 다른 선택이 있겠으나, 왜 그렇지 않은 학생들도 절반만 학생식당을 이용한 것일까?
장시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거나, 이동 거리가 멀기 때문이라는 것이 통계조사에서 제시된 이유였다. 차마 학생들이 말하지 않았거나 숨겨진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대학생들이 학생식당의 비교적 균형 잡혀 있지만 매력 없는 식사보다, 좀 더 비용이 들더라도 제 취향에 맞는 유혹적인 식사를 누리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초중고 시절, 꼼짝없이 학교 급식실에서 먹어야 했던 아이들은, 이제야 찾아온 선택의 자유를 누리고 싶어 한다. 차라리 가끔 굶을지언정.
대학들이 집중되어 있는 파리와 파리 인근 지역의 경우, CROUS(정부 산하의 대학생 생활지원센터)가 직영 혹은 위탁 운영하는 학생식당이 총 40개, 전국적으론 155개가 있다. 전체 학생들을 모두 수용하기엔 시설이 부족한 것도, 그래서 긴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파리의 대학들은 도심 내 곳곳에 캠퍼스가 흩어져 있는 경우가 많고, 학생식당들 역시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어, 경우에 따라서는 상당한 거리를 걸어야 한다.
일시적 현상이 아닌 20대의 우울·고독·
결핍
이 밖에도 해당 조사에서, 50%의 학생들은 이전보다 여가 시간과 사람들과 사귀고 만날 수 있는 외출 기회를 줄이게 되었다고 답했고, 41%의 학생들은 심리적 우울과 고독을 호소하기도 했다.
전체의 1/4에 가까운 23%의 학생들이 지난 1년간 심리 상담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각자 작은 방 속에 고립되어 인터넷을 통해 강의를 들어야 했던 시절의 심리적 불안은 경제적 어려움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흐른 후에도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는 점을 알려준다.
반면, 심리 상담을 받은 학생들 중 37%만이 정부가 학생들에게 2021년부터 제공하고 있는 심리상담 지원(연 12회에 걸쳐 무료로 지원받을 수 있다) 제도를 통해 상담했다고 답했다. 제도에 대한 인식 부족, 절차적 까다로움 등이 정부 지원을 받기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었다.
정보 접근의 확대와 절차의 간소화 필요성이 대두됨은 물론, 식사와 같은 가장 기본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절차적 걸림돌을 제거한 보편적 복지로의 이행의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된 배경이다.
정작 문제 해결의 책임을 맡고 있는 고등교육부의 수장, 필립 밥티스트는 '해당 재정을 학생식당의 질적인 향상에 투여하고, 이러한 지원이 더 필요한 학생들에게 집중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며 하원이 내놓은 해법에 부정적 견해를 펼쳤다. 어느 정도 일리있는 얘기지만, 과연 하원이 지금처럼, 수혜대상의 범위를 확대시키지 않았다면, 거기에 소요될 예산을 식당의 질적 향상에 썼을지는 미지수다. 마크롱 정부는 일찍이 그런 계획을 내놓은 적이 없었다.
"건강하고 저렴한 음식을 제공하라"
▲모든 학생들에게 1유로에 식사를 제공하는 법안의 표결을 앞두고 서명 운동을 벌여온 대학생 운동 조직 UNEF의 웹포스터
UNEF
정부와 여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하원에서 압도적으로 통과한 이번 법안의 1조는 "모든 대학생들에게, 그들이 장학제도와 관련하여 어떤 지위에 있건 건강한 음식을 1유로로 제한된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도록 제공"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가격의 하락이 식사의 질적 하락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일은 없게 하겠다는 의지의 반영이다.
"모든 학생에서 1유로 식사를"은 프랑스 대학생노조 UNEF의 투쟁 슬로건이기도 했다. 학생들의 상호부조 연대체인 COP1과는 다른, 전통적인 투쟁 방식으로 대학생들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는데 노력해 온 이들은 하원 표결에 앞서 의원들을 압박하는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매년 대학 학생식당의 식사 가격을 동결시키기 위해, 이미 낮은 수준인 등록금(175유로/1년)을 좀 더 낮추기 위해, 장학생의 비율을 늘리고, 장학금의 규모를 높이기 위해 꾸준히 집회·시위·점거 등의 방식으로 싸워온 이들도 이번 표결로 기쁨을 만끽했다. 2021년 특정 학생들에 대한 일시적 지원을 얻어낸 것에서부터, 이 지원이 모든 학생들에 대한 보편적 권리가 되도록 만든 것은 그들이 사회를 향해 문제점을 호소하고 정부를 향해 싸워온 것의 결실이다.
하지만 아직 법안은 상원 통과를 남겨두고 있다. 지금껏 그래왔듯, 학생들은 생존과 존엄을 유지하기 위해, 한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또다시 싸워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