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2.10 06:56최종 업데이트 25.02.10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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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있는 기숙사촌 시테 유니베르시테의 학생 식당 모습citeuniversite

지난 1월 23일 프랑스 하원은 금년 하반기부터 전체 대학생에게 학생식당에서 1유로(약 1500원)에 식사를 제공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사회당에서 발의한 이 법안은 좌파, 중도, 극우 진영의 지지 속에서 찬성 149, 반대 5의 압도적 표차로 통과되었다. 정부가 지게 될 재정적 부담(연간 약 9천만 유로)이 큰 데다가, 각 가정의 재정적 차이를 고려치 않는 보편적 복지를 실시해야 할 이유가 없다며 법안을 반대해 온 집권당 르네상스의 의원들은 전원 표결에 불참하거나 기권표를 던졌다. 하원을 통과한 법안은 상원에서의 논의와 표결을 앞두고 있다.

코로나로 시작된 1유로 식사

학생 식당의 1유로 식사가 시작된 것은 코로나 팬데믹 장기화로 학생들이 고립과 빈곤에 처했던 2021년 1월부터다. 당시 학생들이 무료 급식소 앞에 길게 줄 서서 기다리는 광경들이 언론에 보도되는 등, 정신적·경제적으로 급격히 불안정한 상황에 놓인 학생들의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됐다. 이에 대한 제도적 해결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이어지자 정부가 내놓은 지원책 중 하나가 '1유로 식사'다.


당시엔 장학생들(*프랑스에서 장학생은 부모의 경제적 수준에 따라 결정됨)에 한하여 학생식당 식사를 1유로에 제공하게 된 것이다. 일반적인 학생 식당의 식사료 3.3유로의 1/3에도 미치지 않는 저렴한 가격은 특정한 상황을 고려해 제공된 일시적 지원이었다.

프랑스의 대학 장학금 제도
*프랑스는 부모의 재정 상황에 따라 7단계로 차등 적용되는 장학금을 국가에서 일률적으로 지급한다. 장학생으로 선발되면 등록금도 면제되기 때문에, 이 금액은 생활과 학업을 위한 비용으로 충당된다. 2024년 고등교육연구부 통계에 따르면 전체 학생 중 장학금을 지급받는 학생은 37.1%에 이르며, 이 학생들은 매달 최저 145유로에서 최대 633유로까지 지급받는다. 이중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은 추가로 더 100유로씩을 더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해당 정책이 시행된 이듬해에도 학생들의 경제적 불안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따라서 장학생은 아니지만, 일시적으로 힘든 상황에 처한 학생들을 위해 추가로 수혜 대상이 확대된 채로 오늘까지 이어져 왔다. 이렇게 이미 학생들의 생활을 지원하는 정책들이 마련된 상황에서, 한 차원 더 높은 수준의 보편적 정책이 하원 차원에서 나오게 된 데에는 지난해 10월 진행된 여론조사 결과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 대학생 36%, 돈 없어 밥 거른 적 있다."

학생연대단체 COP1(의식주는 물론, 문화생활, 스포츠, 여가, 고용 등에 있어서 학생들의 독립적인 삶을 위해 상호부조/연대하는 학생들의 사회단체로 2020년 발족)이 여론조사기관 IFOP에 의뢰해 진행한 여론 조사에서, 2024년에도 여전히 약 36%의 학생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종종 식사를 거른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또한 18%의 학생들은 구호 단체로부터 식료품을 제공받은 바 있으며, 이들 중 일부는 정기적으로 식료품 바구니를 제공받는다고 답했다. 팬데믹 위기는 물러갔으나, 이후 이어진 전쟁 등이 고물가 시대를 열었던 탓이다.

이같은 통계는 이미 2023년에 해당 법안을 발의했던 바 있던 사회당의 파티마 켈루아 하시 의원의 귀에 다시 한번 경종을 울렸다.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 대학생 중 1/3이 돈이 없어서 종종 끼니를 거른다는 상황이 말이 되는가? 우린 당장 뭐라도 해야 한다." 방송 인터뷰에서 하시 의원이 한 말이다. 통계가 준 쇼크는 2023년에 부결되었던 법안이 이번엔 큰 표차로 하원 문턱을 가볍게 넘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이용률 떨어지는 차별적 복지

crous 낭트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대학교 학생 식당의 모습crous 낭트 홈페이지

프랑스 고등교육부에 따르면 2024년에 총 52만 명의 학생들이 1유로 식사 정책의 혜택을 받았다. 이는 전체 300만 명의 학생 가운데 17%, 장학생을 비롯한 수혜 대상층으로만 계산해도 절반 정도에 해당되는 수준이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학생들에겐 얼마든지 다른 선택이 있겠으나, 왜 그렇지 않은 학생들도 절반만 학생식당을 이용한 것일까?

장시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거나, 이동 거리가 멀기 때문이라는 것이 통계조사에서 제시된 이유였다. 차마 학생들이 말하지 않았거나 숨겨진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대학생들이 학생식당의 비교적 균형 잡혀 있지만 매력 없는 식사보다, 좀 더 비용이 들더라도 제 취향에 맞는 유혹적인 식사를 누리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초중고 시절, 꼼짝없이 학교 급식실에서 먹어야 했던 아이들은, 이제야 찾아온 선택의 자유를 누리고 싶어 한다. 차라리 가끔 굶을지언정.

대학들이 집중되어 있는 파리와 파리 인근 지역의 경우, CROUS(정부 산하의 대학생 생활지원센터)가 직영 혹은 위탁 운영하는 학생식당이 총 40개, 전국적으론 155개가 있다. 전체 학생들을 모두 수용하기엔 시설이 부족한 것도, 그래서 긴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파리의 대학들은 도심 내 곳곳에 캠퍼스가 흩어져 있는 경우가 많고, 학생식당들 역시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어, 경우에 따라서는 상당한 거리를 걸어야 한다.

일시적 현상이 아닌 20대의 우울·고독·결핍

이 밖에도 해당 조사에서, 50%의 학생들은 이전보다 여가 시간과 사람들과 사귀고 만날 수 있는 외출 기회를 줄이게 되었다고 답했고, 41%의 학생들은 심리적 우울과 고독을 호소하기도 했다.

전체의 1/4에 가까운 23%의 학생들이 지난 1년간 심리 상담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각자 작은 방 속에 고립되어 인터넷을 통해 강의를 들어야 했던 시절의 심리적 불안은 경제적 어려움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흐른 후에도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는 점을 알려준다.

반면, 심리 상담을 받은 학생들 중 37%만이 정부가 학생들에게 2021년부터 제공하고 있는 심리상담 지원(연 12회에 걸쳐 무료로 지원받을 수 있다) 제도를 통해 상담했다고 답했다. 제도에 대한 인식 부족, 절차적 까다로움 등이 정부 지원을 받기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었다.

정보 접근의 확대와 절차의 간소화 필요성이 대두됨은 물론, 식사와 같은 가장 기본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절차적 걸림돌을 제거한 보편적 복지로의 이행의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된 배경이다.

정작 문제 해결의 책임을 맡고 있는 고등교육부의 수장, 필립 밥티스트는 '해당 재정을 학생식당의 질적인 향상에 투여하고, 이러한 지원이 더 필요한 학생들에게 집중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며 하원이 내놓은 해법에 부정적 견해를 펼쳤다. 어느 정도 일리있는 얘기지만, 과연 하원이 지금처럼, 수혜대상의 범위를 확대시키지 않았다면, 거기에 소요될 예산을 식당의 질적 향상에 썼을지는 미지수다. 마크롱 정부는 일찍이 그런 계획을 내놓은 적이 없었다.

"건강하고 저렴한 음식을 제공하라"

모든 학생들에게 1유로에 식사를 제공하는 법안의 표결을 앞두고 서명 운동을 벌여온 대학생 운동 조직 UNEF의 웹포스터UNEF

정부와 여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하원에서 압도적으로 통과한 이번 법안의 1조는 "모든 대학생들에게, 그들이 장학제도와 관련하여 어떤 지위에 있건 건강한 음식을 1유로로 제한된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도록 제공"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가격의 하락이 식사의 질적 하락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일은 없게 하겠다는 의지의 반영이다.

"모든 학생에서 1유로 식사를"은 프랑스 대학생노조 UNEF의 투쟁 슬로건이기도 했다. 학생들의 상호부조 연대체인 COP1과는 다른, 전통적인 투쟁 방식으로 대학생들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는데 노력해 온 이들은 하원 표결에 앞서 의원들을 압박하는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매년 대학 학생식당의 식사 가격을 동결시키기 위해, 이미 낮은 수준인 등록금(175유로/1년)을 좀 더 낮추기 위해, 장학생의 비율을 늘리고, 장학금의 규모를 높이기 위해 꾸준히 집회·시위·점거 등의 방식으로 싸워온 이들도 이번 표결로 기쁨을 만끽했다. 2021년 특정 학생들에 대한 일시적 지원을 얻어낸 것에서부터, 이 지원이 모든 학생들에 대한 보편적 권리가 되도록 만든 것은 그들이 사회를 향해 문제점을 호소하고 정부를 향해 싸워온 것의 결실이다.

하지만 아직 법안은 상원 통과를 남겨두고 있다. 지금껏 그래왔듯, 학생들은 생존과 존엄을 유지하기 위해, 한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또다시 싸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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