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전환 정책사업 성과 평가주요 지표
김영수
제2의 넛크래커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정부는 2025년 경제성장률이 1.8%에 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24년 11월 한국은행이 전망한 경제성장률보다 0.1%p 낮게 보고 있다. 수출이 주력업종 경쟁심화로 더 어려워지고, 미국 트럼프정부의 관세전쟁에 따른 경기침체 압력이 클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 것이다.
저성장 추세는 이미 2023년부터 본격화되었다. 2023년 경제성장률은 전년도 2.6%에서 1.4%로 급락하였고, 2024년도 기저효과에도 불구하고 2.1%밖에 성장하지 못했다.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보다 낮은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되고 있는 것이다.
AI·디지털 경제시대에 산업의 생산성 제고와 성장동력은 인공지능 기반기술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이 부문에서 미국은 압도적 우위를 보이고 있어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 국가들이 디지털 식민지로 전락할 가능성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중국은 최근 딥시크의 충격에서 보여주듯이 인공지능 및 디지털 기술에서 미국에 필적한 경쟁력을 보임과 동시에 전기자동차, 이차전지, 디스플레이, 태양광, 철강, 석유화학 등에서 한국보다 한참 우위를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메모리 반도체분야에서도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의 양대 패권국 중간에 제2의 넛크래커 상황에 빠져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은 이 상황을 극복할 잠재력이 있을까? 한국은 반도체, 자동차, 조선, 이차전지, 바이오, 가전, 기계, 철강, 화학 등 제조생산기반이 잘 갖추어져 있는 제조업 강국이다. 코로나19의 글로벌 팬데믹 당시 어느 나라보다 빨리 회복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제조생산기반 덕분이다.
인터넷 검색, SNS, 문서작성 소프트웨어에서 구글,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 플랫폼기업이 전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것은 너무 잘 알려져 있다. 이들이 완벽하게 장악하지 못하고 있는 나라가 두 군데인데, 바로 중국과 한국이다. 한국의 네이버, 카카오, 한글과컴퓨터와 같은 기업들이 아직까지는 디지털경제의 주권을 유지하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만큼 산업 포트폴리오가 잘 갖추어진 나라는 극히 드물다.
디지털경제 분야에서 일정정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된 계기는 김대중정부의 정보통신 인프라에 대한 대대적 투자에서 찾을 수 있다. 김대중 정부는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사이버 코리아 21' 계획을 추진하였다. 당시 정부 예산이 연평균 100조 원 정도였는데, 초고속 정보통신망 구축에만 정부 재정투자가 약 10조 2000억 원이었다. 예산의 2.5% 이상을 정보통신 인프라에 투자한 것이다. 미래를 내다본 전략적 투자 덕분에 IMF 경제위기 전 제1의 넛크래커 상황을 극복하고, ICT산업 중심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디지털 전환의 정책전환이 필요하다
ChatGPT(챗지피티)와 같은 대형 언어 모델(LLM, Large Language Model)의 등장은 디지털 경제의 질적 변화를 가져왔다. 디지털 자동화가 단순 반복 업무를 줄이는 수준에 머물렀다면, 최근의 인공지능은 창의적·지식 기반 업무까지 확장되고 있다.
LLM 이전의 AI는 특정 기업(구글, 아마존, IBM, MS 등)이 보유한 한정적인 기술로서 AI 서비스 제공업체들이 AI 솔루션을 개발하여 기업고객(B2B) 중심으로 제공하는 데 머물렀다. LLM 이후 AI기술은 일반 사용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형태로 변화하고 있고, 다양한 스타트업과 기업들이 AI 기반 서비스를 내재화하면서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에 따라 글로벌 정보컨설팅업체인 IDC(International Data Corporation)는 기존의 디지털 혁신(전환)과는 차별화된 인공지능 혁신(전환)의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고 본다. 디지털 전환이 기존의 프로세스와 서비스를 디지털화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면, AI 전환은 AI를 활용하여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서비스를 창출하는 데 중점을 두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AI 기술이 기업의 핵심 전략과 수익 창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무기가 되고 있다.
디지털 전환은 AI 전환이라는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고 있고, 이는 경제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1990년대 말 경제산업의 위기 상황을 정보화에 대한 국가 전략적 투자를 통해 디지털 전환을 준비해 왔던 한국이 이제 저성장의 고착화와 더불어 디지털 식민지로 전락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도약을 준비할 것인지의 갈림길에 서있다. 기존의 관성에 따라 추진하는 정책 틀로는 극복하기 어려우니 새로운 전략적 정책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AI 전환을 위한 정책전환,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딥시크 로고.
연합뉴스 = 로이터
AI 전환을 추동할 핵심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선도적으로 해야 한다. AI·디지털 경제의 가장 중요한 산업인프라는 데이터센터, 그중에서도 AI기술을 위한 고성능 컴퓨팅(HPC)과 데이터 저장·관리,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를 제공하는 AI 데이터센터이다.
2024년 3월 기준 세계 주요 국가들의 데이터센터 수는 미국 5381개, 독일 521개, 영국 514개인 반면, 한국은 188개로 세계 국가별 데이터센터 수 순위에서 10위권에 들지 못했다. AI 데이터센터는 디지털 주권을 확보하는 데 필수적임과 동시에 AI 연구자뿐만 아니라 AI 솔루션을 개발하는 중소벤처기업에 가장 중요한 기반시설이다. 2024년 9월 2조 원 규모의 '국가 AI컴퓨팅 센터'를 2030년까지 조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는데, 이 정도로 시늉만 내서는 안된다. 최소한 5배 정도의 집약적 전략적 투자가 필요하다.
AI데이터센터뿐만 아니라 시스템반도체산업 육성을 위한 공공 파운드리 구축도 핵심 인프라에 해당한다. 반도체는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자율주행차,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을 뒷받침하는 기반기술의 성격을 갖고 있고, 각 국가 간 기술패권경쟁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산업이다. 시스템반도체 설계(팹리스)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는 중소기업들이 있으나 생산을 맡길 파운드리 설비의 부족으로 성장이 제약받는 상황을 돌파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AI 경제시대 가장 중요한 산업 인프라로 부상한 전력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송배전망 투자도 정부가 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AI·디지털 경제시대에는 물적 자본을 성장산업 분야에 집중시키는 산업화시대의 성장전략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AI 전환의 핵심동력은 자본설비에 대한 투자가 아니라 인적자본에 대한 무형투자이다. AI·디지털 경제시대는 인적 자본과 사람의 가치를 높여 성장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창의적 인재양성을 위한 교육에 대한 투자와 우수한 기술인력의 양성과 유치, 기존 주력제조업이나 단순 서비스업 종사자에 대한 디지털 전환 교육을 대폭 확대하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대전환기에는 설비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나 기업에 대한 감세를 통해 민간기업 주도의 투자 활성화를 기대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전환에 필수적인 인프라에 대해서는 정부가 직접 투자를 주도하는 기업가형 국가가 불가피한데, 투자대상의 선정, 투자방식, 재원조달 방안, 자본시장 육성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김영수(사)중소기업정책개발원 원장
포럼 사의재
* 필자 소개 : 김영수는 산업연구원에서 산업정책, 지역산업 육성, 국가균형발전정책을 지속적으로 연구해 왔다. 지금은 (사)중소기업정책개발원 원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교육부의 라이즈위원회, 글로컬대학위원회, 교육발전특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대학의 인재양성과 지역산업과의 협력체계 구축에도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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