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2.05 20:52최종 업데이트 25.02.05 20:53
  • 본문듣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3년, 무엇이 법을 멈추는가?"

지난 1월 22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토론회의 제목이다.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졌지만, 여전히 바꿔 나가야 할 과제들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3주년을 맞아 민주노총과 중대재해감시센터, 중대재해전문가넷, 국회 생명안전포럼 등이 주최한 토론회중대재해감시센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첫해인 2022년에는 874명, 2023년에는 812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 사고로 사망했으나, 이 중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 사례는 극히 일부다. 고용노동부가 2022년 1월부터 2024년 9월까지 중대재해 사건으로 수사한 사건은 모두 866건이다. 이 중에서 160건이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되었고, 그 중에서도 검찰이 기소한 사건은 74건에 불과했다.

최소 18건은 검찰이 불기소 처분한 것으로 파악되지만, 나머지 사건들의 처리 현황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고용노동부와 검찰이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 1월부터 2024년 9월까지 중대재해 사건의 기소 현황. 토론회 자료집 내용 재구성중대재해감시센터

어느 기업에서 어떤 중대재해가 발생했는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은 무엇인지, 기소·불기소 현황과 재판 결과는 어떠한지 등 공식적인 발표로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이날 토론회에서 발표된 자료 역시 발제자인 홍준표 기자(매일노동뉴스)가 개별 사건들을 일일이 검색하고 추적하여 확인한 내용들이었다.

대기업은 면책? 알 수 없는 법 적용 기준

기소 내용을 살펴보면 특히 대기업에 대한 '선별적 면책'이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7명이 사망하고 1명이 크게 다친 2022년 대전 현대프리미엄아울렛 화재 사고의 경우 지하주차장에 폐지를 방치하고, 화재감지기 경보시설을 꺼놓은 등의 관리부실이 화재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사건이었다. 소방시설을 담당한 하청업체는 현대아울렛의 지시에 의해 화재감지기를 꺼놓은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검찰은 원청이 안전보건 의무를 이행했다고 판단하여 대표이사를 기소하지 않았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에쓰오일 공장에서 벌어진 다양한 사고들중대재해감시센터

2022년 5월 울산 에쓰오일 공장 폭발 사고(1명 사망, 9명 중상)에서도 대표이사와 CSO는 '관리책임 없음', '안전보건 의무 이행'을 이유로 불기소됐다. 그러나 에쓰오일 공장에서는 이후에도 2023년 3월 폭발 사고로 2명이 부상당하고, 각종 화재 사고가 빈발하는 등 정말로 안전보건 의무를 제대로 이행했는지 의심스러운 사고들이 연달아 발생했다.

기소 이후에도 문제는 여전하다. 중대재해 사건에 대한 법원의 처벌 수위가 미약하기 때문이다. 35건의 판결 중 원청 경영책임자에게 실형을 선고한 건은 5건에 불과하고, 대부분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법인에 대한 벌금도 대부분 법정 최고액(50억원)의 2% 수준인 1억 원 이하에 그쳤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 판결 35건 중 원청 책임자에 대한 형량 분포 현황. 토론회 자료집 내용 재구성.중대재해감시센터

더욱 심각한 것은 안전보건 관련 법규를 위반해 벌금형 전력이 있는 11개 사업장 중 8곳이 또다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는 점이다. 심지어 이전에 산업안전보건법을 18차례나 위반했던 상운건설(2023년 5월 창원 오피스텔 신축 현장 추락 사고)의 경우 대표이사와 현장소장 모두 동종 전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행유예에 그쳐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경우다.

토론자로 참석한 박다혜 변호사(법무법인 고른)는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인한 기소와 판결에 대해 "검찰의 불기소 사유나 법원의 양형 이유가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아 일관된 기준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특히 '피해자 과실'이나 '회사의 사후조치'를 감경요소로 언급하고 있는데, 동일한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반복적으로 발생했다거나, 다수의 법 위반 실태가 확인되었다는 점은 과연 양형에 충분히 고려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위험을 알 권리마저 '영업비밀'

중대재해처벌법은 단순히 기업의 책임을 처벌하라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예방하기 위한 의무를 규정한 법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일터의 위험 요인을 파악하고 이에 대한 관리 대책과 안전 규칙을 수립해야 한다. 중대재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당연하게도 기업뿐 아니라 안전보건 전문가나 노동자들 역시 함께 노력해야 한다. 문제는 노동자들의 위험에 대한 알권리와 참여권이 제대로 보장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만약 어느 기업에서 어떤 사고가 일어났는지, 무엇이 원인이고 어떻게 예방해야 하는지 등의 정보들이 제대로 공개된다면 노동조합이 기업에 예방 대책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에서조차 노동자들의 정보 접근이 차단되는 경우가 많다.

2024년 2월, 중대재해가 빈발한 한화오션을 상대로 기자회견을 연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금속노조 거통고지회

2024년 들어 5명이 사망한 한화오션이 대표적인 사례다. 거제노동안전보건활동가모임은 매년 한화오션의 원하청 통합 산업재해조사표 현황을 정보공개 청구하여, 얼마나 사고와 질병이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하고 있었지만,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원하청 산재 현황이 영업비밀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이를 비공개하고 있다. 이렇게 정보가 차단될 때마다 노동자는 위험 요인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수밖에 없고, 죽음은 반복된다.

토론자로 나선 민주노총 최명선 노동안전보건실장 역시 "이제는 제발 중대재해처벌법이 어떻게 집행되고 있는지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라며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 명단도 공개를 안하고 있는데 중대재해처벌법이 어떻게 예방효과를 낼 수 있느냐"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안전의 시작, 정보공개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재해는 노동자 개인의 과실이 아닌 기업의 조직적 범죄'라는 사회적 인식 전환을 이뤄냈다.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실질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제도로 기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고용노동부가 중대재해에 대한 정보공개 원칙을 재정립해야 한다. 언제, 어느 기업에서 어떤 사고가 발생했고, 사고가 일어난 원인과 배경은 무엇이었는지, 재발방지 대책이 무엇이었는지 제대로 공개되어야 한다.

고용노동부가 오픈채팅방을 통해 배포하는 중대재해 사이렌.고용노동부

지금도 고용노동부가 중대재해 사이렌 오픈채팅방을 운영하고 있고, 매년 10여 개의 사례를 재구성해 중대재해 사고 백서를 내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지만, 업종별로 다양한 양상의 사고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을 모두 담기 어려운 실정이다. 개별 사건마다 왜 사고가 발생했고, 무엇이 문제였는지 살피기 위해서는 현재 '수사 자료'임을 이유로 비공개되고 있는 중대재해 조사 보고서가 반드시 공개되어야 한다.

사업장의 산업재해 현황을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비공개하거나, 사고 조사 과정에서 노동조합의 참여를 제한하는 관행도 개선되어야 한다. 정보 접근과 참여가 제한될 때마다 노동자들은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정보공개와 노동자 참여는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첫걸음이며, 중대재해처벌법이 본래의 취지대로 작동하게 하는 핵심 요소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