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0일(현지시간) 윤석열 대통령이 체코 프라하 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한·체코 비즈니스포럼에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왼쪽부터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윤 대통령.
연합뉴스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가? 우선 경제정책 결정자들이 사회 후생(social welfare) 극대화를 목표로 하는 이상적인 사회제도 설계자(social planner)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동시에 이들의 사익 추구를 막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사익은 단순히 권력을 이용한 재산상 이득에 국한하지 않는다. 자신의 감정적 보복, 자신의 안위를 우선시하는 태도, 혹은 자신이 좋아하거나 자신을 지지하는 특정 집단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책을 펼치는 것도 넓은 의미의 사익 추구에 해당한다.
경제 영역에서 우선적으로 다뤄야 할 과제는 재벌의 지배구조 개선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정상적인 의사결정 체계가 붕괴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정책 결정자들이 최측근이나 소셜미디어 등 전문성이 부족하지만 지나치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에게 의존하는 경향도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더 체계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경제는 추상적인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거대한 추상 담론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태도는 약한 형태의 정책 결정자의 사익 추구로 볼 수 있다. 진보는 지적 추상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고, 보수는 지적으로 게으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결과적으로 둘 다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으로 귀결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예로 현 정권의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집착을 들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주장이 정치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공허한 논리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현 정권의 핵심 인물들은 자유시장경제라는 슬로건이 선거에 유리하다고 판단해 이를 외쳤을 뿐, 실제로 이를 구현할 구체적인 계획이나 철학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한국은 "정부의 과잉인가, 시장의 과잉인가"에 대해 한국적 현실에 기반한 진지한 고민을 해본 적이 없다. 그 결과, 감세, 재정건전성, 규제폐지와 관치(官治), 검치(檢治) 사이를 오가며 혼란스러운 정책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다.
셋째, 경제는 실증 분석에 기초한 정책 조합(policy package)으로 접근해야 한다. 정책 조합의 사례로는 바이든 플랜과 아베노믹스를 들 수 있다. 두 사례의 공통점은 경제 재건을 위해 적절한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이는 단기 경기 부양 정책(소비와 투자를 늘리기 위한 정책)과 중장기 경제 성장 정책(노동과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정책)을 조합해 구체적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다.
단기 경기부양 정책과 중장기 경제성장 정책의 모든 분야를 논하는 것은 필자의 역량을 넘어서는 일이니, 핵심적인 몇 가지 지점만 짚어보려고 한다. 먼저, 단기 경기부양정책과 관련해서는 한국이 '건전재정'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태도를 바꿀 필요가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재정정책이 주목받은 이유는 이자율이 매우 낮아지면서 통화정책의 유효성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연구에 따르면 확장적 재정정책 중 인프라 지출은 장기적 투자 효과와 고용 창출 면에서 특히 효과적이다. 반면, 세금 감면은 소비와 투자 증가로 바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긴축적 재정정책은 국내총생산(GDP)에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더 크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지금 한국 경제가 경기 침체 상태라는 전제하에 단기적으로는 확장적 재정정책이 필요하다. 반면, 재정 긴축정책은 경제가 완전히 회복된 뒤에 시행하거나, 점진적으로 진행하는 게 바람직하다.
중장기 경제성장정책에서 최근 주목받고 있는 중요한 주제는 산업정책이다. 과거에는 산업정책이 주로 개발도상국의 전유물로 여겨졌지만, 최근 들어 경제 성장 정체, 생산성 정체, 그리고 신(新)보호무역주의와 같은 문제들이 대두되면서 선진국에서도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실증 연구에 따르면 산업정책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핵심적인 점이 강조된다.
첫째, 기술 투자는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을 동반하기 때문에 정부의 산업정책은 이 불확실성을 완화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둘째, 경쟁이 높은 부문에서 보조금이나 세금 감면 같은 산업정책은 생산성 향상에 효과적이다. 셋째, 보조금이나 세금 감면을 균등하게 배분할수록 기업 생산성이 더 증가한다. 넷째, 대출이나 관세 같은 정책은 생산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거나 효과가 미미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마지막으로, 젊은 기업에 대한 지원이 특히 중요하다. 설립연도가 짧은 기업에 집중할 때 생산성 증가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난다.
유럽의 최근 산업정책도 참고할 만한 점이 많다. 유럽은 미국이나 중국에 비해 GDP 성장률이 낮고, 노동 생산성도 미국의 80% 수준에 그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디지털화, 탈탄소화, 방위산업 강화를 중심으로 산업정책을 추진 중이다.
한국이 유럽의 산업정책을 그대로 따라야 할 필요는 없지만, 한국 역시 생산성 정체와 경제 성장 둔화라는 유사한 문제를 겪고 있기 때문에 유럽의 산업정책 프레임워크는 참고할 가치가 있다. 특히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투자와 함께 특정 산업 분야에서 장기적인 비전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
이창민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이창민 한양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는 미국 인디애나대(Indiana University at Bloomington)에서 경제학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현재 경제개혁연구소 부소장을 맡고 있고 주요 연구 분야는 금융, 기업재무, 지배구조, 규제 및 정치경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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