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23년 11월 7일 대구 달성군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저를 방문, 박 전 대통령과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와 윤석열 탄핵 국면을 비교하는 경우가 많다. 둘에게는 대통령 재임 중의 범죄 행위로 인해 국헌 문란의 책임을 지고, 국회에 의해 탄핵 소추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그 외에 둘은 비슷한 점이 별로 없다.
박근혜는 비선 실세와 측근들의 국정농단, 부정부패, 비리 혐의가 드러나 여당까지 등 돌린 정치적 사망 선고를 받은 상태에서 탄핵 되었다. 물론 윤석열 역시 김건희 게이트, 채 상병 사망 사건, 명태균 게이트 등으로 비슷한 수순을 밟고 있었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비상계엄 선포 직전인 2024년 11월만 해도 윤석열 탄핵 여론은 생각만큼 힘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대통령 본인의 직권남용 범죄혐의, 끝도 없이 드러나는 친인척과 측근들의 비리 행각, 거부권 남발, 국회의 예산 심의권을 사실상 무력화시키는 불성실한 자료 제출 등 파행적인 국정 운영이 계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윤석열에 대한 탄핵 여론은 그것이 현실화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형성되지 못했다.
이것이 박근혜와 윤석열의 차이다. 박근혜와 달리 윤석열은 정치적 사망 선고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친위쿠데타를 일으켜,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 비판세력을 제거하고 헌정을 중단시키려다가 실패하고 탄핵되었다. 박근혜처럼 지지기반과 권력을 상실하는 과정에서 탄핵을 당한 게 아니다.
통상 쿠데타가 성공하려면 명확한 지지 세력과 대중을 설득할 명분이 있어야 한다. 혹자는 윤석열이 별다른 준비 없이 계엄을 선포했다고 하지만 동의하기 어렵다. 윤석열은 명분과 세력을 다 계산해 놓고 계엄을 선포했다. 윤석열이 마련한 명분은 '국내 정치에 깊숙하게 개입 중인 중국과 결탁한 야당의 부정선거 진상규명'이다.
이는 가짜뉴스에 절여진 윤석열의 망상에서 비롯된 결과물로만 볼 일이 아니다. 북한이 아니라 중국이 주적으로 상정되었다는 점에서 윤석열의 반공 논리는 과거의 종북몰이를 질적으로 업그레이드시킨 새로운 형태의 매카시즘이다. 내란 세력은 국민 정서 전반에 퍼져있는 반중 정서와 좀체 줄어들지 않는 야당 대표에 대한 비호감 여론을 정확히 겨냥해 '확산 가능성'을 담보한 내란의 논리를 설계했다.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는 수적으로 열세인 지지자 집단을 극단적 수단과 내란 논리에 동조하는 열성분자로 질적 변화시키기 위한 모험이었다. 그렇게 모은 지지 세력을 등에 업고 여소야대의 정국 난맥상을 타개하고 마음대로 국가를 통치하려는 목적으로 내란을 시작한 것이다.
윤석열이 박근혜와 달리 탄핵소추안 통과 상태에서도 높은 지지세를 가지고 있는 이유는 그가 민주적 질서 속에서 정치적으로 실각한 게 아니고, 질서 밖으로 나가 세력 기반을 재정비하는 정치 투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체포 거부, 헌법재판관 임명 거부, 수사기관 부정, 헌법재판소 부정, 법원 습격 등 윤석열과 내란 세력이 보여온 선을 넘는 행태도 다 같은 맥락에서 이뤄지고 있는 일들이다.
애초에 헌정질서를 무너뜨리려는 목적으로 일을 도모했는데, 무너트리려고 한 질서에 터 잡은 모든 처분을 따를 까닭이 없는 것이다. 아마 탄핵 심판에 따라 파면되더라도 그 결과 역시 부정할 가능성이 높다. 법과 제도의 장외로 나간 윤석열의 권력투쟁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광장의 동력 재정비하고 끝까지 싸워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5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무엇보다 큰 문제는 윤석열이 12.3 비상계엄을 통해 사실상 '폭력도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유효한 수단'이라 선언했다는 점이다. 민주화 이후 아무도 풀어본 적 없는 고삐를 푼 셈이다. 지금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를 지지하거나, 지지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기존의 보수정당 지지자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존재다.
사회·정치적으로 윤석열을 지지하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겠으나, 윤석열의 정치적 목표 달성을 위해 무력행사도 용인할 수 있다는 논리를 지지하는 것은 완전히 결이 다르다. 후자를 요약하면 민주공화국 체제 부정이다. 때문에 박근혜 탄핵을 기다렸던 3개월은 새로운 정치를 향한 희망의 기회로 인식되었지만, 윤석열 탄핵을 기다리는 3개월은 민주공화국의 파산을 바라는 극단주의의 씨앗이 꿈틀대는 두려운 시간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 윤석열보다 더 위협적인 건 윤석열의 행동과 주장이 집단 논리로 재생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윤석열은 탄핵할 수 있지만, 지지 집단을 탄핵할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4차 변론기일인 지난 1월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에서 지지자들이 탄핵무효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금의 광장은 12월의 여의도보다 규모가 줄었고, 남태령과 한남동보다는 열기가 덜하다. 두 달 가까이 숨 가쁘게 광장을 지켜온 데다가, 윤석열을 탄핵하고 부역자들에게 책임을 물으면 끝날 것 같았던 싸움이, 끝도 없이 계속 새로운 국면으로 이어지면서 느끼게 되는 답답함 탓도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 제도 정치의 링에서 패배한 선수를 밖으로 밀어냈더니 밀려난 선수가 경기장 밖으로 퇴장하지 않고 링을 부수고 있다. 윤석열 파면은 끝이 아닐지도 모른다. 파면과 처벌이란 제도적 수단만으로 윤석열의 내란은 종결시키기 어려울 것이다.
윤석열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직후부터 광장에서는 윤석열 파면 이후의 세상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회대개혁' 담론이 그러하다.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우리는 무정부 상태에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회대개혁은 헌정질서에 기반해 민주적으로 선출한 정부가 이끌어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대개혁에는 전제가 있다. 합법적이고 민주적인 정부 선출을 방해하고 있는 윤석열의 내란을 근본적으로 종식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탄핵과 파면은 그러한 과정 중 하나일 뿐이다. 이러한 전망으로 광장의 동력을 다시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답답한 나날이다. 이 땅에서 파시즘의 씨앗이 발아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지, 폭력을 긍정하는 사람들을 돌려세워 윤석열의 내란을 종식시킬 수 있을지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 폭력은 쉽고 간단한 문제해결 방식인 반면, 이해와 연대는 어렵고 시간과 품이 많이 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불안과 공포가 분노와 좌절로 바뀌는 일보다 두려운 것은 희망이 절망으로 변하는 것이다. 아직 절망을 논하기엔 이르지만 당면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자칫 잘못하면 우리는 더 길고 어두운 절망의 터널로 들어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란에 맞서 12월 3일, 맨몸으로 국회 앞으로 달려 나간 시민들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여의도 앞에 모였던 수백만 명의 시민들은 어디론가 사라지지 않는다. 이들과 함께 정확한 전망으로 절망을 건너갈 준비가 필요한 때다. 사람은 목표에 따라 움직이고, 그러므로 광장에는 때마다의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하며, 지금의 목표는 민주공화국을 해체하려는 모든 시도를 단호히 종식시키는 일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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