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행복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반도체특별법 노동시간법 적용제외 어떻게?'라는 주제로 열린 정책 디베이트를 주재하고 있다.
남소연
지난 2월 3일 더불어민주당 정책 토론 <행복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반도체 특별법 노동시간 법 적용 제외 어떻게?>에서 예상대로 노동계와 반도체 기업은 주 52시간 근로 시간 상한제를 두고 치열하게 대립했습니다.
노동계는 현행 근로기준법에서 주 52시간제를 웃도는 각종 특례 조항으로 충분히 반도체 기업들이 탄력적으로 근로 시간을 운영할 수 있다는 견해입니다.
가령 6개월 단위 탄력 근로시간제를 활용하면 26주(6개월*평균 4.34주) 가운데 20주 이상을 1주 52시간을 넘어 63시간까지 연속하여 노동자에게 일을 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고용노동부가 과로사에 따른 산업재해를 인정하는 기준에 따르면 발병 전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1주 평균 60시간을 초과하는 경우 만성 과로로 인정됩니다. 역설적으로 지금도 기업으로서는 노동부가 만성 과로라 판단하는 근로 시간 운용이 가능합니다.
기업들은 3개월을 초과하는 탄력근로 시간제 시행 때에는 연속휴식 시간 11시간을 줘야 하고,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 등 절차가 까다로워 활용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합니다. 만성 과로에 해당하는 근로 시간 운용을 계획하며 노동자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동시에, 건강 유지를 위한 휴식 시간을 설정해야 할 의무를 '불편한 규제'로 인식하고 있는 걸까요? 반도체 기업이 노동자 보호의 기본 원칙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게 아닌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토론회를 주도한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고소득 연구개발 직종 노동자의 경우 소득 등 일정 요건을 정해 현행 근로기준법의 주 52시간 상한 근로 시간과 연장근로 가산 등을 적용 제외하는, 이른바 한국판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의 도입에 대해 노동계가 왜 반대하는지를 물었습니다.
자발적 동의 요건을 강화하고, 반도체 위기 극복을 위해 일정 기간을 정해 시행하면 가능하지 않겠느냐며 재계의 입장에서 노동조합 측에 수용 여부를 물었는데요. 이 대목에서 저는 과거 윤석열의 주 120시간 노동 발언이 떠올랐습니다. 당시 윤석열은 "바짝 일하고 쉬기를 원한다"라는 게임 스타트업 관계자의 말을 빌려 문재인 정부의 근로 시간 상한제를 비판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영세 중소기업 노동자 사업주들이 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단체를 통해 근로 시간 규제 완화 요구를 봇물 터지듯 쏟아 냈습니다. 주 52시간 상한 근로시간제로 임금 총액이 줄어든 저임금 노동자를 앞세워서 말입니다.
이재명 대표는 반도체라는 특수한 산업에 한정해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일정 기간 도입을 전제로 가능성을 타진했으나 그렇게 되면 게임업계와 IT업계등 다른 첨단업계에서는 '우리도 도입해 달라'라고 요구할 것은 자명합니다. 산업계가 저마다 각자의 이유로 근로 시간 상한제 적용 제외를 요구하면 과연 그때 가서는 더불어민주당이 재계의 압박을 이겨 낼 수 있을까요? 적절한 휴식을 통해 노동자를 보호하며 노동력 재생산을 꾀하는 근로기준법의 원칙이 필요한 때입니다.
근로 시간의 총량을 늘려달라는 것인지를 묻는 이재명 대표의 질문에 마지못해 반도체 기업들은 근로 시간의 총량을 허물지는 않겠다고 했지만, 사실 재계의 바람은 근로기준법을 통한 노동시간의 규제를 철폐하는 것입니다.
지난해 11월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이재명 대표 초청 간담회에서 주요하게 입법 요구한 것은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를 위해 근로 시간을 유연화해 달라는 겁니다. 단순히 반도체산업에 대해서만이 아니었습니다.
삼성전자 사장 출신 국회의원이 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2024년 9월 11일 오후 서울 여의 국회 본회의에서 열린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질의하고 있다.
유성호
아니나 다를까 삼성전자 대표이사 출신 국민의힘 고동진 의원은 지난해 11월 10명의 여당 의원과 함께 근로기준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습니다. 주요 내용은 국가 첨단산업 분야 근로 시간의 특례 조항으로 반도체와 이차전지, 디스플레이, 바이오 등의 국가 첨단전략산업의 업종 중 연구개발 업무 종사자에 대해 근로기준법상 1주 최대 52시간 상한제의 적용을 제외한다는 것입니다.
기업들은 우리나라와 경쟁하는 대만의 반도체 기술기업 TSMC를 예로 들며 근로 시간 규제의 완화를 주장합니다. TSMC의 창업자 모리스 창은 삼성전자가 한창 TSMC를 추격하던 2014년 차세대 기술개발을 위해 소속 엔지니어 수백 명을 모집해 24시간 3교대 체제로 가동하며 신기술 개발에 전념케 합니다. 대만의 반도체 전문가 린홍원의 책 <TSMC, 세계 1위의 비밀>에서 소개되어, 반도체 업계에서 대만 반도체 기술의 경쟁력 사례로 제시되는 TSMC의 '나이트 호크'라는 프로젝트입니다. 기업들은 한국 근로기준법의 근로 시간 규제로 이런 혁신적 인력 운용이 불가능하다고 하소연합니다.
과연 사실일까요? 핵심은 노동시간을 늘리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족한 인력을 확충하는 데 있습니다.
"주 52시간으로 업무량이 소화가 안 되는 조직이 있다면 그 조직은 인력 자체가 부족한 것이다. 여기에 예외를 적용하겠다는 것은 채용을 굳혀 인건비를 아끼고 기존의 인력을 소모 시키는 것을 장려하는 의도로밖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삼성전자의 회로설계 사업부에서 일하는 한 노동자가 노조와의 인터뷰에서 반도체 특별법을 통한 주 52시간 근로 시간 상한제 적용 제외 시도를 비판하며 한 말입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2031년에 5만 4000명의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내다봅니다. 노동시간을 늘려 기존 인력을 쥐어짜 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요? 현장의 노동자들이 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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