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경기도 평택시 주한미군 오산공군기지에서 열린 장병 격려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나흘 사이에 나온 두 가지 카드는 트럼프의 '두 얼굴'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는 한편으로는 강대국간 핵군축을 통해 '세계 비핵화'에 큰 진전을 거두고 싶은 야망을 품고 있고, 다른 한편에는 미국을 '철옹성'으로 만들어 "힘에 의한 평화"를 구현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우선 트럼프가 그토록 중시하는 '돈 문제'가 걸려 있다. 그는 비핵화가 필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로 "핵무기에 엄청난 돈이 쓰이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실제로 미국의 핵무기 현대화에는 1∼2조 달러가 소요된다. 그런데 '미국판 아이언돔'에는 더 많은 돈이 들어간다. 이스라엘보다 400배나 영토가 큰 미국 전체를 보호할 수 있는 방어망을 구축하려면 미국 전체 예산을 쏟아부어도 부족하다.
또 트럼프가 실제로 '미국판 아이언돔'에 박차를 가하면, 핵보유국 사이에 핵군축은 고사하고 군비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이는 트럼프가 '롤모델'로 삼고 있는 레이건의 스타워즈를 복기해봐도 알 수 있다. '스타워즈'라는 찬사와 조롱을 동시에 받았던 레이건의 전략방위구상(SDI)은 소련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요격할 수 있는 레이저 기지를 우주에 만들겠다는 것을 골자로 했고, 이는 소련의 극심한 반발을 불러와 미소 핵군비경쟁을 격화시킨 바 있다. 양국의 핵무기 보유량을 합쳐 7만 개까지 치솟았을 정도로 말이다.
이러한 전례와 최근 지정학적 대결을 감안할 때, '미국판 아이언돔'이 가시화될수록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이고 조선도 미국 주도의 MD를 뚫을 수 있는 전략 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조선의 외무성 군축 및 평화연구소가 2월 2일 공보문을 통해 트럼프의 MD 계획을 강력히 비난하면서 미국의 군사패권주의에 대응해 "핵억제력을 중추로 하는 자위적 국방력을 끊임없이 발전시켜 나갈 것을 절박하게 요구하고 있다"고 밝힌 것도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해 준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THAAD) 문제로 홍역을 치렀던 한국도 더욱 난처하고 위험한 상황에 몰릴 수 있다. 미국은 MD의 잠재적·명시적 적대국인 북중러와 가장 가까이 있는 동맹국인 한국을 MD의 전초기지로 삼고자 해왔다. 트럼프의 행정명령에도 동맹국과의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트럼프의 기질상 한국에 미국제 MD 구매 압력이나 미국 MD 자산의 한국 배치를 타진하면서 그 비용을 한국이 내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 스타워즈 부활과 핵보유국들 사이의 군비경쟁이 맞물릴 경우 러시아가 조선에 전략 무기 개발을 지원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진짜 '피스메이커'를 꿈꾼다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월 20일 워싱턴의 백악관 집무실에서 행정 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렇듯 의도적으로 좌충우돌을 거듭하고 있는 트럼프의 본심이 어디에 있는지는 예단키 어렵다. 다만 트럼프가 유념해야 할 대목들은 많다. 실제로 스타워즈를 부활시킬 경우 강대국 간 핵군축 회담이 있어야 할 자리엔 첨예한 군비경쟁과 핵전쟁 위험이 똬리를 틀게 될 것이다. 트럼프가 또 하나의 우선 과제로 제시하고 있는 조선과의 군비통제 및 한반도 긴장 완화도 요원해지고, 이란의 핵무장 예방도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천문학적 예산이 스타워즈 환상에 소비되면서 미국인의 민생에도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다. 이 와중에 트럼프가 경계해 온 '딥스테이트'의 핵심 세력인 군산복합체의 영향력도 커질 것이다. 이게 트럼프가 취임 일성으로 다짐한 "피스메이커"의 길인지 자문해 보길 바란다.
트럼프는 자신이 '롤모델'로 삼고 있는 레이건의 유산으로부터 교훈을 제대로 추출해야 한다. 레이건이 핵군축 및 냉전 종식에 크게 기여할 수 있었던 데에는 핵전쟁에서 이기겠다는 야심을 품고 추진했던 스타워즈를 사실상 접었던 것에 힘입은 바가 크다.
또 트럼프는 ABM 조약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이후에 벌어진 일들도 복기해야 한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미국과 동맹국의 안보를 위해 ABM 조약에서 탈퇴한다고 했는데, 그 이후 모든 행정부가 미국 및 동맹국이 직면한 미사일 위협이 커졌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해온 이유를 말이다.
결론적으로 트럼프가 가야 할 길은 핵군축 추진과 스타워즈 부활이 양립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닫고 핵군축과 더불어 ABM 조약을 창의적으로 부활하는 데에 있다. 이게 스스로 다짐한 '피스메이커' 다운 행보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