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2.04 16:32최종 업데이트 25.02.04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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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의견을 피력할 때에는 북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혹은 '조선'으로 표현하고자 합니다. 조선에 대한 인식은 달라도 윤석열 정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화의 필요성을 말합니다. 대화는 말 그대로 상대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인데, 상대가 반감부터 갖게 되는 표현은 대화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무너진 남북관계와 위기에 처한 한반도 평화를 재설계하기 위해서는 적대성의 완화와 대화 재개가 필수적입니다. 서로 '제 이름 부르기'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독자 여러분의 이해를 구합니다.[기자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월 21일 워싱턴 DC 국립 대성당에서 열린 국가기도회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다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입에서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비핵화'라는 말이 최근 다시 나왔다. 그런데 "북한의 비핵화"나 "한반도 비핵화"가 아니었다. 그는 지난 1월 23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진행된 세계경제포럼(WEF) 화상연설에서 러시아와 중국을 거론하면서 "우리는 비핵화를 할 수 있는지 알고 싶은데, 나는 그것이 매우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미·러·중 등 강대국들이 핵군축 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취지로 나온 발언이다.

트럼프는 나흘 후인 1월 27일에는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가 추진했던 '스타워즈'를 방불케 하는 '미국을 위한 아이언 돔'을 추진하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특정 국가를 거론하지 않았지만 "경쟁자"와 "불량국가"의 탄도미사일과 극초음속 미사일 등이 미국이 직면한 최대 위협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방장관에게 미국 본토와 해외 주둔 미군 및 동맹국을 방어할 수 있는 차세대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 방안을 마련해 60일 이내에 자신에게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레이건의 후임자인 조지 H.W. 부시 행정부가 스타워즈를 공식 철회한 이후 클린턴-조지 W. 부시-오바마-트럼프 1기-바이든 행정부는 MD를 지속적으로 추구해왔다. 그런데 2기 트럼프는 이를 계승하는 수준을 넘어 새판을 짜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2002년에 탄도미사일방어(ABM) 조약에서 탈퇴해 제한적인 본토 방어용 MD를 시작한 이후 미국 MD가 단지 불량국가의 위협과 우발적·비인가된 미사일 발사에 대비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판단하에 "경쟁자" 즉 러시아와 중국의 위협에도 대처할 수 있는 MD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2기 트럼프는 탄도미사일과 극초음속 미사일을 탐지·추적할 수 있는 우주 센서 배치, 이륙 단계에 있는 적의 미사일을 파괴할 수 있는 우주 기반 요격체 개발·배치, 발사 이전 단계에 있는 적의 미사일을 파괴할 수 있는 능력 개발·배치 등을 추진할 뜻을 밝혔다. 특히 트럼프는 미국 전체를 방어할 수 있는 '미국판 아이언돔'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트럼프의 '두 얼굴'

2019년 6월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경기도 평택시 주한미군 오산공군기지에서 열린 장병 격려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연합뉴스

나흘 사이에 나온 두 가지 카드는 트럼프의 '두 얼굴'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는 한편으로는 강대국간 핵군축을 통해 '세계 비핵화'에 큰 진전을 거두고 싶은 야망을 품고 있고, 다른 한편에는 미국을 '철옹성'으로 만들어 "힘에 의한 평화"를 구현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우선 트럼프가 그토록 중시하는 '돈 문제'가 걸려 있다. 그는 비핵화가 필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로 "핵무기에 엄청난 돈이 쓰이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실제로 미국의 핵무기 현대화에는 1∼2조 달러가 소요된다. 그런데 '미국판 아이언돔'에는 더 많은 돈이 들어간다. 이스라엘보다 400배나 영토가 큰 미국 전체를 보호할 수 있는 방어망을 구축하려면 미국 전체 예산을 쏟아부어도 부족하다.

또 트럼프가 실제로 '미국판 아이언돔'에 박차를 가하면, 핵보유국 사이에 핵군축은 고사하고 군비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이는 트럼프가 '롤모델'로 삼고 있는 레이건의 스타워즈를 복기해봐도 알 수 있다. '스타워즈'라는 찬사와 조롱을 동시에 받았던 레이건의 전략방위구상(SDI)은 소련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요격할 수 있는 레이저 기지를 우주에 만들겠다는 것을 골자로 했고, 이는 소련의 극심한 반발을 불러와 미소 핵군비경쟁을 격화시킨 바 있다. 양국의 핵무기 보유량을 합쳐 7만 개까지 치솟았을 정도로 말이다.

이러한 전례와 최근 지정학적 대결을 감안할 때, '미국판 아이언돔'이 가시화될수록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이고 조선도 미국 주도의 MD를 뚫을 수 있는 전략 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조선의 외무성 군축 및 평화연구소가 2월 2일 공보문을 통해 트럼프의 MD 계획을 강력히 비난하면서 미국의 군사패권주의에 대응해 "핵억제력을 중추로 하는 자위적 국방력을 끊임없이 발전시켜 나갈 것을 절박하게 요구하고 있다"고 밝힌 것도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해 준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THAAD) 문제로 홍역을 치렀던 한국도 더욱 난처하고 위험한 상황에 몰릴 수 있다. 미국은 MD의 잠재적·명시적 적대국인 북중러와 가장 가까이 있는 동맹국인 한국을 MD의 전초기지로 삼고자 해왔다. 트럼프의 행정명령에도 동맹국과의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트럼프의 기질상 한국에 미국제 MD 구매 압력이나 미국 MD 자산의 한국 배치를 타진하면서 그 비용을 한국이 내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 스타워즈 부활과 핵보유국들 사이의 군비경쟁이 맞물릴 경우 러시아가 조선에 전략 무기 개발을 지원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진짜 '피스메이커'를 꿈꾼다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월 20일 워싱턴의 백악관 집무실에서 행정 명령에 서명하고 있다.AP/연합뉴스

이렇듯 의도적으로 좌충우돌을 거듭하고 있는 트럼프의 본심이 어디에 있는지는 예단키 어렵다. 다만 트럼프가 유념해야 할 대목들은 많다. 실제로 스타워즈를 부활시킬 경우 강대국 간 핵군축 회담이 있어야 할 자리엔 첨예한 군비경쟁과 핵전쟁 위험이 똬리를 틀게 될 것이다. 트럼프가 또 하나의 우선 과제로 제시하고 있는 조선과의 군비통제 및 한반도 긴장 완화도 요원해지고, 이란의 핵무장 예방도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천문학적 예산이 스타워즈 환상에 소비되면서 미국인의 민생에도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다. 이 와중에 트럼프가 경계해 온 '딥스테이트'의 핵심 세력인 군산복합체의 영향력도 커질 것이다. 이게 트럼프가 취임 일성으로 다짐한 "피스메이커"의 길인지 자문해 보길 바란다.

트럼프는 자신이 '롤모델'로 삼고 있는 레이건의 유산으로부터 교훈을 제대로 추출해야 한다. 레이건이 핵군축 및 냉전 종식에 크게 기여할 수 있었던 데에는 핵전쟁에서 이기겠다는 야심을 품고 추진했던 스타워즈를 사실상 접었던 것에 힘입은 바가 크다.

또 트럼프는 ABM 조약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이후에 벌어진 일들도 복기해야 한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미국과 동맹국의 안보를 위해 ABM 조약에서 탈퇴한다고 했는데, 그 이후 모든 행정부가 미국 및 동맹국이 직면한 미사일 위협이 커졌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해온 이유를 말이다.

결론적으로 트럼프가 가야 할 길은 핵군축 추진과 스타워즈 부활이 양립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닫고 핵군축과 더불어 ABM 조약을 창의적으로 부활하는 데에 있다. 이게 스스로 다짐한 '피스메이커' 다운 행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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