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2.04 11:45최종 업데이트 25.02.04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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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에 투표하고 있다.국가기록원

1950년대 부정선거는 한 편의 '종합 범죄'였다. 선거의 알파에서 오메가에 관련된 거의 모든 부문에 범법 행위가 개입됐다. 자유당 정권은 부정선거를 위해 헌법부터 뜯어고쳤다. 불법적으로 이뤄진 1952년의 직선제 개헌(발췌개헌)과 1954년의 3선 개헌(사사오입개헌)은 부정선거를 향한 시동이었다.

1952년에는 비상계엄을 선포해 놓고 폭력적으로 개헌을 강행했다. 이승만의 1956년 출마를 위한 3선 개헌 때는 국회 의결정족수 3분의 2에 1표 미달한 135표가 나왔다. 그러자 '재적의원 203명의 3분의 2는 135.33이므로 사사오입 원칙에 따라 의결정족수는 135명'이라는 반(反)수학적 논리가 동원됐다. 비웃음을 자초하는 것도 불사하는 진지한 자세로 부정선거에 임했던 것이다.


입후보 단계에서는 야당 후보의 등록을 훼방하는 일들이 있었다. 다음 단계에서는 상대 후보의 유세를 방해하고 흑색선전을 벌였다. 이런 일에 경찰과 공무원도 과감히 동원했다. 또 유권자들에게도 겁을 줬다. 백골단·땃벌떼·민중자결단 같은 극우단체를 동원해 공포심을 일으켰다.

야당에 부정선거 책임 떠넘긴 자유당

개표 단계에서도 부정이 자행됐다. 1958년 5월 2일의 제4대 총선 때는 야당 쪽의 선거위원에게 수면제를 먹인 뒤 투표용지 약 8000매를 바꿔치기하는 일이 전남 보성에서 벌어졌다. 그 뒤 개표 종사원들은 잘못했다며 자수하고, 현장을 목격한 형사는 대검찰청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다음 달 11일의 <동아일보> 1면 사설은 "기상천외한 사건이 발생하였다"라며 "자수한 사람은 군청 행정계 보조로 있던 양(梁) 및 김 양(兩)씨이고, 고발자는 보성서 사찰계 형사였던 최씨"라고 보도했다.

선거철이 되면 국민들의 기가 살아나야 하는데도, 1950년대에는 도리어 기가 꺾일 때가 많았다. 경찰과 깡패들이 곤봉이나 몽둥이를 들고 다니며 대중을 위협하고 구타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래서 선거는 유권자의 신상에 위험을 주는 일이었다. 총선 이틀 전에 발행된 1958년 4월 30일 자 <경향신문>은 '몽둥이 선거는 지금 재연되고 있다'는 제목의 사설을 내보냈다.

1950년대에 이승만의 3대 대권 라이벌은 신익희·조봉암·조병옥이었다. 공교롭게도, 이 셋은 이승만 집권기 내에 유명을 달리했다. 제3대 대선 열흘 전인 1956년 5월 5일에는 민주당 후보 신익희가 급서했다. 심장마비사로 발표됐지만, 대중은 사인을 믿지 않았다.

진보당 조봉암은 부정선거가 극심한 속에서도, 또 신익희를 잃은 민주당마저 협조하지 않는 가운데서도 그 선거에서 30.01%를 득표했다. 실질적 승리를 거둔 그는 1958년에 국가보안법 및 간첩죄 혐의로 체포돼 이듬해에 형장의 이슬이 됐다. 이 사례는 투표일 훨씬 뒤에도 부정선거의 유령이 활개를 치고 다녔음을 보여준다.

민주당 후보 조병옥은 미국 월터리드육군병원에서 복부 수술을 받은 뒤에 죽었다. 세상을 떠난 날은 3·15 대선 1개월 전인 1960년 2월 15일이다. 사인이 무엇이든, 이 때문에 이 대선은 이승만의 단독 무대가 됐다.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에서 화룡점정이라 할 만한 것이 있었다. 선거의 각 단계마다 철저하고 집요하게 부정을 일삼은 뒤, 막판에 가서 부정선거 책임을 야당에 떠넘긴 것이다.

제4대 총선 1개월 뒤에 발행된 1958년 6월 13일 자 <경향신문> 1면 상단에 따르면, 자유당은 <선거 자유 분위기 파괴 상황>이라는 90쪽짜리 유인물을 제작했다. 야권의 선거부정 실태를 조목조목 고발하는 책자였다. 온 나라가 자신들의 선거부정을 맹렬히 비판하는 상황에서 이런 문건을 버젓이 내놓은 뻔뻔함을 보여줬던 것이다.

이 유인물은 야당 측이 투표소에 침입했다느니, 전화 도청을 했다느니, 대구 불법시위를 조종했다느니, 투표함 보관소를 포위하고 집단 폭행을 벌였다느니, 그래서 이번 선거의 자유가 파괴됐다느니 하는 주장들을 담았다. 피해자 코스프레를 보여주는 문건이었다.

자유당은 자신들이 부정선거 때문에 당했다는 입장도 취했다. 그해 6월 13일 자 <조선일보> '자유당 역습 준비'는 "자유당이 야당으로부터 당한 일련의 선거 불상사도 규명한다"는 방침이 자유당 내에서 정해졌다고 보도했다. 또 야당이 주장하는 부정선거는 "행정부와 자유당의 계획에 의한 소행이 아님을 밝힐 필요가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고도 전했다.

다음날 <경향신문>은 '졸렬한 자유당의 역습 작전'이라는 사설을 통해 이를 비판했다. 이런 비판이 나오리라는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는데도, 자유당은 그런 유치한 방법을 선택했다. 부정선거에 관한 한, 뻔뻔해질 결심을 해두었다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 파괴하고도 부끄러움 몰랐다

1956년 실시된 제3대 대통령선거 자유당 이승만 대통령 후보와 이기붕 부통령 후보 선거홍보물이 동대문에 붙어 있다. 연합뉴스

위 유인물에서 자유당이 제시한 또 다른 사례는 '서울 서대문구 성암동의 유령 유권자 사건'이다. 존재하지도 않은 유권자 2789명을 만들어내 민주당이 자신들을 음해했다고 자유당은 주장했다.

오늘날의 마포구 성산동·상암동 일원인 서대문구 성암동의 선거인 명부에 유령 유권자들이 있다는 고발장이 서울지검에 접수됐다. 투표 13일 전인 그해 4월 19일의 일이다. 다음날 <경향신문> 3면 우상단에 따르면, 유령 유권자들의 정체는 외지에 사는 반공 극우청년들이었다.

서울시의회 구철회 의원의 현지답사를 인용한 7월 4일 자 <경향신문> 3면 좌중간에 따르면, 성암동의 실제 거주자는 148명뿐이었다. 이런 작은 동네의 선거인 명부에 2789명이나 등재됐다. 이를 무효화시켜야 하는데도, 4월 30일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들의 투표권을 인정하는 예외적 조치를 내렸다(<조선일보>5.1).

반공청년들이 성암동에 위장전입한 이유는 그곳이 이승만 후계자인 이기붕의 지역구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무투표 당선을 희망하던 이기붕은 입후보 마감일인 4월 10일에 서대문을구를 포기하고 경기도 이천에서 단독 출마했다. 이기붕이 서대문을구를 포기한 뒤에 유령 유권자들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

이기붕은 떠났지만, 극우 청년들은 '사명'을 다했다. 5월 3일 자 <경향신문> 3면 우상단에 따르면, 투표 전날에 민주당 운동원들을 폭행하는 것은 물론이고, 취재하러 간 기자들도 폭행했다. 취재 차량을 제지하고 돌과 곤봉 등으로 기자를 때리고 카메라도 빼앗았다. "성암동 일대는 완전한 무법지대로 화하여 공명선거를 위한 자유 분위기는 서울에서 파괴"됐다고 이 신문은 탄식했다.

다음날 투표에서 자유당은 전국 233곳에서 127명을 당선시켰지만, 서울 선거구 16곳에서는 1명밖에 당선시키지 못했다. 그 한 곳이 서대문을구다. 반공청년들이 유난히 극성을 부린 곳에서 이겼던 것이다. 애초부터 서울 민심이 불리했음을 알 수 있다. 이기붕이 유령 유권자들을 필요로 했던 이유도 짐작할 수 있다.

그해 7월 5일, 서울지방법원이 조봉암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하면서 국가보안법 위반만 인정하고 간첩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그러자 극우 청년들이 '간첩죄를 적용하라', '공산판사 유병진을 타도하자'라며 대법원에까지 난입해 폭동을 일으켰다.

7월 12일 자 <조선일보> 3면 좌중간에 따르면, 폭동 배후에 국가기관이 있다고 민주당 김상돈 의원에게 제보한 인물은 성암동의 반공청년이었다. 이곳 청년이 그런 제보를 한 사실은 성암동의 극우청년들이 법원 폭동에도 개입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검찰은 기소하지 않았다. 8월 2일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민주당 엄상섭 의원이 성암동 사건을 기소하지 않는 이유가 무어냐고 따지자, 홍진기 법무부 장관은 "개개의 선거사건에 대해서 검사에게 기소 여부를 지시한 일은 없다"는 당연한 답변만 내놓았다. 가해자가 공식적으로 확정되지 않으니, 자유당이 성암동 사건을 자신들의 피해 사례로 내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선거의 공정은 민주주의의 생명이다. 이승만은 민주주의의 생명을 집요하고도 철두철미하게 파괴했다. 이를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시종일관 뻔뻔함을 유지하며, 책임도 전가하고 피해자 행세도 했다. 그런 모습에 질린 국민들은 1960년 4월에 이승만을 경무대에서 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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