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의 언론보도
MBC
그때 서민의 삶은 피폐했다. 길거리엔 망한 자들의 울부짖음이 널브러졌다. 내수는 곶감마냥 말라비틀어졌고, 기업은 해외기업에 싸구려로 넘겨졌다. 하루 평균 18개 법인이 도산했고 반짝 특수를 누렸던 벤처도 입에 게거품을 물고 증발했다. 환율은 2000원까지 폭등했고 주가지수와 부동산 가격도 급하향곡선을 그렸다. 금리는 연 30%대까지 치솟아 빚내서 집을 장만한 사람들은 이자폭탄을 못 이겨 집밖으로 쫓겨나고, 빚더미 기업들은 전국 7대 도시에서 하루 평균 30~40개씩 쓰러졌다. 기름 값마저 치솟아 주유소에선 사재기 현상이 벌어졌다.
당시 평생직장이라고 불린 은행은 3곳 중 한 곳(1998년 한해 17개 은행 폐업), 증권사는 6곳 중 한곳, 가장 급여가 높았던 종금사는 3곳 중 2곳이 망했다. 매일 수천 명에서 1만 명 가까이가 일자리를 잃었고, 1998년 한 해에만 100만 명 넘게 정리 해고됐다. 20대 실업자만 한해 50만 명이 넘었다. 대책이 없던 정부는 맞장구 치듯 기업의 인수나 합병 등 경영상의 필요성에 따라 정리해고를 허용하는 특별법 제정까지 추진했다. 이에 엄청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로 실직자가 쏟아졌다.
돈줄이 마르자 부부싸움이 늘었고 급기야 이혼율도 급증했다. 노숙자 1만여 명은 길거리에 이불을 깔았다. 생필품 사재기도 판을 쳤다. 라면 진열대에는 '5개 이상 안 됨'이라는 경고팻말이 세워졌고 설탕과 밀가루는 품절됐다. 죄없는 아이들이 버려졌고, 스스로 생의 끈을 놓은 이도 많았다. 6.25전쟁 이후 최악의 위기였다. 곳곳에서 '우리나라는 끝났다'고 탄식했다. 국가가 부도위기에 처했다는 건 국제망신에 가까웠다.
내 사정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하루아침에 동료들이 잘려나갔고 월급이 끊겼다. 청빈하지 않으려 했으나 청빈할 수밖에 없었고, 부자가 되려는 꿈은 더 가난해졌다. 흔히들 넋두리하듯 나 또한 분유 값 타령을 하기에 이르렀다. 삶은 갑자기 컬러에서 흑백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세상은 자꾸 인간의 남루한 본질에 대해 물어왔다.
(기자시절이었는데) 말과 글을 경멸하며 입을 닫고 글을 썼다. 말과 글을 경멸하면서 말과 글로 먹고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흔히들 얘기하는 밥벌이의 지겨움이 극심했다.
어느 쪽을 택할지 고민하지 않았다. 돈 되는 곳, 돈 버는 곳으로 보따리를 싸서 떠나야 했다. 의리든 양심이든 따지는 건 사치였다. 단지 먹고 살기 위해서, 갓 태어난 아이를 위해서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귀살스러운 삶이었지만 태연한 척했고, 애면글면 굴신도 했다. '오른쪽'이 반드시 '옳은 쪽'이 아니고, '왼쪽'이 항상 '외쪽'이 아니듯 물흐르듯 시류에 합승했다. 문객과 식객 사이에서 허랑한 주객은 허구한 날 급전을 변통해서 술청을 찾았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보다 사람으로 사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술이 필요할 만큼 외롭고 두려웠다. 술이 말이 되고 동무가 된다는 걸 알게 된 것도 이 무렵이다. 때때로 '술을 원수 삼아, 원수 갚듯이' 줄창 마셨다. 지옥의 나날이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IMF 사태는 3년여 만에 막을 내렸다. 이때 국가를 살려낸 이도 '착한 국민'이었다. 350여만 명이 자발적으로 금을 모았고, 그 돈이 죽어가던 국가의 생명줄이 됐다. 국산품 애용 운동이 일어났고 외국기업에 로열티를 주지 말자면서 패밀리 레스토랑 가는 발길을 끊었다. 뿐만 아니라 애국마케팅 일환으로 태극기를 부착한 상품들이 나오고 콜라가 국산으로 출시됐다.
하지만 이때부터 양극화가 심화됐다. 잘사는 사람은 더 잘 살고, 못사는 사람은 'X구멍 찢어지게' 더 가난해졌다. 그 당시 사람들이 힘들 때마다 왜 IMF, IMF 얘기를 꺼내드는지 아시는가. 벼랑끝에 몰렸던 서민의 삶은 아직까지도 회복되지 않고 있다. 잔혹한 낙인이 된 것이다.

▲눈 감은 윤석열 대통령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탄핵심판 4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눈을 감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윤석열 비상계엄과 함께 다시 찾아온 IMF 악몽
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민주화 이래 45년 만에 첫 발동한 비상계엄 사태였다. 비록 6시간 만에 물거품이 됐지만, 원·달러 환율은 순식간에 1400원대를 넘겼고, 며칠 동안 시가총액은 100조원 이상 사라졌다. K열풍(한류)에 나팔을 불던 우리나라가 국제적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원/달러 환율이 장중 1,480원대를 돌파한 지난해 12월 27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원/달러 환율 등 지수들이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이뿐인가. 연말 특수를 기대하던 기업과 자영업자들은 먼산만 쳐다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어둠은 더 짙어졌다. 우리나라 주력 산업인 자동차, 전자, 철강 등의 업황이 먹구름이다. 고환율에 소비자물가 상승이 겹쳐 수출과 내수 모두 침체할 수 있다. 이러다가 IMF 외환위기가 다시 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모양새다.
옛날 시베리아 강제수용소에서 가장 가혹했던 형벌은 벽돌 나르기였다. 하루는 산처럼 쌓인 벽돌을 반대편으로 옮기고, 다음날은 다시 그 전날 있던 쪽으로 옮기는 것을 끝없이 반복하는 형벌이다. 아무리 뼈 빠지게 일을 해도 결과가 없는 단순노동이었다. 지금이라고 사정이 나아지진 않았다. 이쪽으로 옮기고 저쪽으로 옮기고, 그냥 입에 풀칠하기 바쁘다.
지금 우리사회는 불안, 불만, 불확실이라는 소위 '삼불(三不)에 시달리고 있다. 불안하고 불확실하니까, 불만을 참고 더 열심히 일한다. 그런데도 부(富)의 약 35%는 최상위 1%가 소유한다. 결국 1%는 의욕이 넘쳐나고 99%는 무력감에 시달린다. 안 될 놈은 안 되고 될 놈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분명 슬픈 시대에 살고 있다. 누가 이렇게 만든 것인가. 가령, 한 노인이 폐지 실은 리어카를 끌고 힘겹게 고갯길을 오르고 있다고 치자. 당신은 자신의 처지가 저 정도는 아니니까 행복한가. 아니면 언젠가는 저런 처지가 될까봐 두려운가. 이도저도 아니라면 너무 안녕해서 미안한가. 폐지, 리어카, 노인, 고갯길의 공통점은 글자 자체에 눈물이 흐른다는 것이다. 아무리 행복하게 읽으려 해도 행복보다는 불행에 가깝다. 그 슬픔의 화력은 십구공탄 연탄에 비견할 만하다. 더더욱 아린 것은 시궁창 현실을 보면서 안녕한 척 하는 민낯들이다. 세상은 민낯을 가리고 화장발로 덧칠하고 있다. 육신은 고치는데 마음의 성형이 없다.
2025년 1월의 설날.
사람들은 밥상에 둘러앉아 정치 얘기를 할 것이다. 설 민심이 무서운 건 그것이 바로 여론의 바로미터이고, 현실 반영이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기차역·버스터미널에서 귀성객들에게 손 흔들며 퍼포먼스 하는 건 알량한 표심 얻기다. 그런 가식적인 행위에 민심은 혹하지 않는다.
▲국민의힘 설인사, 항의받는 권성동 원내대표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설 연휴를 하루 앞둔 24일 오전 서울역에서 시민들에게 귀성인사를 하던 중 항의를 받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하도록 공적으로 돕는 게 정치다. 고로 우리가 지금 행복하지 않은 것은 정치가 바보짓을 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정치적 중력은 '오른쪽'과 '왼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 '좌심방, 우심방'에 있다. 정치는 권력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고된 직업이어야 한다. 절망이 지배하는 정치는 불행하다. 낭떠러지에도 끝이 있는 법이고, 어둠이 아무리 깊어도 햇살은 스며든다. 최선을 다한 다음에도 희망의 길이 보이지 않으면, 그건 정치가 잘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국민은 자신의 어려움을 잘 살펴주고 공감해 주는 지도자를 원한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도 형편이 나아지지 않고, 더욱 더 궁핍해진다면 국가는 신뢰를 잃게 된다. 더구나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자신의 안위를 위해 국민을 이용하는 행태는 치졸함의 끝판왕이다.
결국 민생이 해답이다. 저녁 뉴스에 등장하는 정치권 밥그릇 싸움보다 따뜻한 민생 한그릇이 더욱 절실하다. 그래서 이번 설 민심밥상은 어느 때보다도 슬프고 애틋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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