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1.28 11:55최종 업데이트 25.01.28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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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해 기념 촬영하고 있는 조정훈, 김대식, 나경원,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왼쪽부터)나경원 의원 페이스북

지난 20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의회 의사당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했다. 우리 언론은 한국에서 누가 참석했는지 앞다투어 보도하고 있다. 현재 한국의 대통령이 탄핵 소추로 직무가 정지된 상황에서 누가 그 자리를 대표하는지 관심이 있을 수 있다.

정치권에서는 단연 나경원 의원과 홍준표 시장이 눈에 띈다. 나경원 의원은 취임식 참석 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트럼프의 취임식이 '법치주의 회복의 절박성을 일깨웠다'며 자신의 감동을 공유했고, 홍준표 시장은 "내가 차기 대선후보 자격으로 참석했는데 ··· 추운 날씨에 쪽팔리게 벌벌 줄 서야 하냐"며 차기 대선후보 이미지를 피력했다.


재계에서는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의 행보가 매우 적극적이다. 신세계는 그룹 차원에서 다양한 사진을 배포했다. 그런데 한 사진은 너무 없어 보인다. 기사에서는 정용진 회장이 씨티그룹 임원이었던 마이클 클라인과 트럼프 행정부의 연방거래 위원장으로 지명된 앤드류 퍼거슨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하는데,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이런 헛웃음 나오는 기사들을 보며 그래도 트럼프의 취임식이 반가웠다. 그 이유는 이 행사 때문에 전 세계 유력 언론사들에서 한국 관련, 정확히 말하면 윤석열 관련 뉴스가 뒷전으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지난 12월 3일 윤석열의 비상계엄 이후 미국의 뉴욕타임스, 영국의 BBC, 독일의 DW News 등 전 세계 언론에서 윤석열 관련 뉴스가 지속적으로 메인을 장식하고 있다. 심지어 지난 1차 체포영장 집행 당시 BBC 코리아가 아닌 영국 BBC에서 생중계를 하는데 동시 접속자가 3000명을 훌쩍 넘기도 했다.

민주적 절차와 무정부 상태 사이의 좁아지는 선

지난 20일 자 <가디언> 기사 "‘한국은 1월 6일의 순간을 목격한 것일까?"가디언

그런 가운데 지난 20일 영국 <가디언> 기사를 접했다. 2021년 1월 16일 트럼프 지지자들의 미 의사당 난입 사건과 2024년 1월 19일 윤석열 지지자들의 서울서부지방법원 난입 사건을 비교한 기사다. 2021년 1월 6일 폭동은 트럼프 추종 세력이 지난 2020년 미국 대선 결과가 '부정 선거'에 의해 조작됐다며 미국 의사당에 난입한 충격적인 사건이다. 당시 이 폭동으로 트럼프 지지자 4명과 경찰 1명이 목숨을 잃었고 180여 명의 경찰관이 부상을 당했다.

<가디언>은 '한국은 1월 6일의 순간을 목격한 것일까?'라는 제목으로 서울서부지방법원 폭동 사태를 보도했다. 기사는 그날 폭도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법원을 무력으로 난입하는 동영상을 보여준다. 기사는 마치 그 폭도들이 '혼란을 일으키려고 법원에 도착'한 것 같았지만, 윤석열의 극렬 지지자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기득권에 의해 심각한 불의를 당하고 있다'고 주장한다고 전했다.

이 기사를 보면 외신이 윤석열 지지자들과 지난 한 달의 한국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먼저, 지난 서부지방법원에 난입한 사람들을 분명하게 '폭도'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그 폭도들이 법원에 난입해 윤석열의 구속영장을 발부한 판사를 찾기 위해 7층을 올라가는 모습을 두고 '사냥하고 있다'고 보았다.

또한 외신은 지난 12.3 계엄 이후 긴장감이 고조된 시기가 있었고 이를 '민주적 절차와 무정부 상태 사이의 좁아지는 선을 밟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분석한다. 계엄 당일 밤 무장한 군인과 국회의원들이 국회에서 마주한 날, 1차 체포영장 집행 당시 초법적인 경호처 직원들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검사들과 경찰들을 무력으로 막은 날을 되돌아보면 이 표현은 매우 적절하다.

윤석열과 국민의힘, 그리고 극렬 지지자들에 의한 무정부 상태를 시민들과 야당 의원들이 민주주의로 회복시키고자 하는 전쟁이 무려 50여 일 넘게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과 한국에서 각각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근간을 파괴한 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미국의 경우 2021년 1월 6일 폭동으로 1500명 이상이 기소됐고 이 가운데 1200여 명에게 유죄 확정판결이 내려졌으며 645명은 실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폭동을 주도한 혐의를 받은 극우단체 '프라우드 보이스'의 전 대표인 엔리케 타리오와 '오스키퍼스' 창립자 스튜어트 로스는 각각 징역 22년과 18년을 선고받았다.

한국의 경우, 지난 19일 새벽 경찰은 서부지법과 헌법재판소에서 발생한 난동 사태와 관련해 폭도 90명을 체포하고 66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속하게 신청했다. 당시 현행범으로 체포된 90명은 10대에서 70대까지 연령대가 다양했으며, 20·30대가 51%(46명)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22일 기준 서울서부지법은 총 56명에게 "도주의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후 경찰의 추가적인 수사를 통해 구속영장을 받을 폭도들이 늘어날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

트럼프의 행정명령

지난 2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에서 2021년 1월 의사당 폭동 사태로 기소된 사람들을 사면하는 행정명령을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일,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50여 개에 달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그 가운데 하나가 2021년 '1·6 미 의회의사당 폭동' 가담자 1500여 명을 사면·감형하는 것이다. 이 사태를 주도한 혐의로 22년과 18년형을 선고받은 주범도 바로 석방됐다. 이 행정명령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행정명령은 지난 4년간 미국 국민에게 가해진 심각한 국가적 불의를 종식시키고 국가적 화해의 과정을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미 행정부는 2021년 1월 6일 미국 국회의사당 또는 그 근처에서 발생한 사건과 관련된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 중인 개인들도 석방했다.

어떻게 총기를 들고 국회의사당에 난입해 시민과 경찰의 목숨을 앗아간 자들에게 사법부가 내린 결정을 '국가적 불의'라고 하고, 이 폭도들을 사면하는 것을 '국가적 화해 과정'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가. 그것도 취임식 날에. 과연, 이 행정명령을 통해 사면된 가해자들에 의해 희생된 가족들은 누가 치유할 것이며, 그들에게 정의는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인가.

이번 행정명령을 보며 윤석열과 그의 극렬 지지자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할 것인가. 그들에게 트럼프의 재등장과 트럼프의 행보는 한 줄기 빛처럼 보이지 않을까. 이번에 구속기소 된 폭도들과 향후 경찰 수사를 받을 가능성을 안고 있는 윤석열의 극렬 지지자들은 이번 트럼프의 결정을 보고 기대할 가능성이 있다. 윤석열이 돌아와야 자신들에게도 미래가 있다는 것을. 이에 더욱 극렬하게,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물리적 폭력을 사용할 가능성이 더 커진 것이다.

<가디언>이 말한 '민주적 절차와 무정부 상태 사이의 좁아지는 선'은 너무 고상한 표현이다. 지금 한국은 사실상 물리적 폭력이 난무하는 전쟁을 겪고 있다. 트럼프의 빨간 모자를 쓰고, 성조기를 흔들며, 'STOP THE STEAL'을 들고 거리에 나와 있는 그들이 이번 트럼프의 행정명령을 듣고 어떤 행동을 할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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