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월, 김영삼 대통령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전국에 TV와 라디오를 생중계 된 가운데 내외신 연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분노와 저항의 시대는 갔으며, 투쟁이 영웅시되던 시대도 갔다." 김영삼 대통령이 1994학년도 서울대학교 졸업식 치사에서 했던 말이다. "로마 제국은 외침이 아니라 내부 부패로 망했다." 이 또한 1994년 인천 북구청 세무 비리 사건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지시하며 김영삼 대통령이 했던 말이다.
한 세대가 지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분노와 저항의 시대를 살고 있고, 내부 문제로 나라가 망할 것 같은 위기의식을 경험하고 있다. 해방 이후 80년 동안 이룩한 정치 민주화, 사회 안정, 경제 성장이라는 탑들이 한꺼번에 무너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느껴지는 하루하루다.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 지 80년이다.
식민 지배를 받았던 나라가 식민 지배를 했던 제국주의 국가를 경제적으로 넘어선 사례는 많지 않다. 미국의 국민소득이 영국을 넘어선 것은 독립 1세기 후인 19세기 말이었다. 이어서 20세기에는 캐나다, 호주, 아일랜드 등이 식민 모국 영국을 넘어섰다. 영국 이외의 제국주의 국가 중 지배했던 식민 국가에 경제적으로 추월 당한 사례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대부분 영국보다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성장한 나라들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었다.
21세기에 새로운 사례가 등장했다. 2023년 1인당 국민소득(GNI)에서 우리나라가 일본을 앞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 후 78년 걸렸다. 이런 징조가 가시화되면서 일본에 의한 무역 보복이 시작되었던 사례가 2019년 갑작스런 '소재·부품·장비' 수출 규제였다. 그런 규제를 넘어서서 이룩한 것이 1인당 국민소득 일본 추월이다.
그렇다면 우리 국민이 경제적으로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였을까? 과학적인 증거는 없지만 역사적 흐름을 보면 1994년이 아니었을까? 김영삼 집권 두 번째 해였던 이 해에 국민소득이 처음으로 1만 달러를 넘어섰다. 그러자 극일을 외치는 소리가 넘치기 시작하였다.
김영삼 대통령은 중국 국가주석 장쩌민과의 정상회담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번 기회에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일본의 식민통치가 조선에 좋은 측면도 있었다는 일본 총무청 장관 에토의 발언이 나온 직후였다. 이듬해 8.15를 기해 식민 통치의 상징이었던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를 시작했다. 국민은 열광했다.
그러나 식민 지배국 일본을 넘어서는 일은 구호나 열광으로 될 일은 아니었다. 하나둘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1993년 12월 타결된 다자간무역협상, 이른바 우루과이라운드로 인해 쌀을 제외한 외국의 농산물 수입이 자유화되었다.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대부분의 농산물 재배 농민들의 반대가 극심하였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해 7월 8일 사망한 김일성에 대한 조문을 거부한 남을 향해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북의 엄포가 있었고, 김영삼 대통령은 이에 대응하여 주사파 척결 의지를 선언하였다. 공산주의를 맹종하는 반국가 세력을 척결하겠다는 각오였고, 실제로 700명 이상의 반정부 인사들에 국가보안법 등을 적용하여 구속하였다.
'국민 커피'처럼 유행하게 된 아메리카노
1994년 초부터 벌어진 이런 혼란과 불안 속에서도 멈추지 않은 것은 과소비였다. 수입이 자유화된 오렌지를 마음 편히 먹을 수 있는 사람들과 가격이 떨어진 감귤을 먹어야 하는 사람들이 나누어지는 양극화가 본격화되었다.
수입 오렌지를 편하게 먹을 수 있는 부유층 젊은 세대에게 '오렌지족'이라는 명칭이 붙여진 것은 1992년쯤이었지만, 오렌지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확대된 것은 1994년이었다. 커피전문점이 많은 압구정동과 방배동이 이들의 주무대였다. 오렌지를 들고 다니다 맘에 맞는 이성을 만나면 오렌지를 주고, 그를 위해 돈을 물 쓰듯 하는 문화가 만들어졌다.
오렌지족 중의 오렌지족은 '수입 오렌지족'이었다. 부모의 도움으로 조기유학을 떠나 미국에서 살다, 방학이 되면 귀국하여 미국식 소비문화를 뽐내는 젊은 세대를 이르는 말이었다.
수입 오렌지족이었던 20대 초반 P모씨의 패륜 사건이 세상에 알려져 국민적 분노를 자아낸 것이 1994년 5월 27일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고급 승용차를 사주지도 않고, 자신의 빚도 갚아주지 않고, 자신을 꾸중한다는 이유로 부모를 잔인하게 살인한 사건이었다. '썩은 오렌지족'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수입 오렌지족들은 고급 커피전문점에서 모여 시중 가격의 서너 배쯤 되는 커피를 마시는 것이 보통이었다. 수입 오렌지족에도 등급이 있었다. 프랑스어를 사용하면 상류층, 영어나 일본어를 사용하면 중류층, 우리말을 쓰면 하류층이었다. 해외 유학 경험이 없는 토종 오렌지족이 주로 하류층에 속했다.
토종 오렌지족 아래에는 낑깡족이 있었다. 가짜 명품을 걸치고, 카드 빚을 내서 커피전문점 주변이나 클럽 주변을 서성이며 오렌지족을 흉내 내는 젊은 층이었다. 돈 많은 부모를 만나는 것도 능력이라는 의식으로 무장된 신인류가 오렌지족이었다.
오렌지족들이 드나드는 커피전문점에 미국식 커피가 새로 등장하였다. 아메리칸 커피(American coffee)라는 음료가 메뉴에 등장한 것인데, 이것이 요즘의 아메리카노다. 당시 미국에서는 새로 등장한 묽은 커피를 개숫물을 의미하는 디쉬 워터(Dish water)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는 정통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묽은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표현이었다.
수입 오렌지족들은 미국에서 배운 이런 묽은 커피를 마시며 미국식 소비문화에 익숙함을 자랑하기도 하였다. 아메리카노가 '국민 커피'처럼 유행하게 된 것은 수입 오렌지족의 여파였을지도 모른다.
폭풍 성장하던 커피전문점의 위기

▲1994년 4월 20일 자 <매일경제> 기사 "커피전문점 난립 한파…매물 쏟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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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프레소 머신이 신문 광고에 처음 등장한 것이 1994년 1월이었고, 낯선 이름 카푸치노가 신문 광고에 처음 등장한 것도 같은 해 2월이었다. 1999년 여름, 이대 앞에 스타벅스 1호점이 문을 열고 아메리카노와 카푸치노가 주요 메뉴로 등장하기 이전에 미국식 커피 문화는 수입 오렌지족에 의해 이미 유입되고 있었다.
1994년 시점에서 원두커피 소비 가구가 3년 사이에 3.5배 증가하였고, 커피 수입량도 급증하였다. 커피 원료 수입은 1994년에 7만 톤을 넘어섰다. 수입량의 95% 이상이 볶지 않은 커피 생두였다. 이미 국내에 대형 커피 로스팅 업체가 다수 존재하고 있었다는 의미다.
커피전문점 유행과 함께 대중가요, 영화, 출판 분야에서도 커피는 매우 매력적인 주제로 등장하였다. '커피 한잔과 당신'이라는 노래가 수록된 함영재의 첫 앨범이 발매되었고, 김성호의 '당신은 천사와 커피를 마셔본 적이 있습니까'도 발표되었다. <커피 카피 코피>라는 로맨스 영화가 개봉되었고 <막걸리에서 모닝커피까지>(최남진), <커피의 세계>(정홍식) 등 커피를 주제로 한 책도 간행되었다.
그런데 수입 오렌지족의 등장과 함께 폭풍 성장하던 커피전문점의 위기가 시작되었다. 1994년 4월이었다. 특별한 계기나 예비 징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난립이 문제였다. <매일경제>는 1994년 4월 20일 자 '커피전문점 난립 한파, 매물 쏟아져'라는 기사를 실었다.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던 커피전문점들이 최근의 경기 부진과 업체들의 난립으로 팔려고 내놓은 업소가 속출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한국외식산업연구소가 1992년 12월부터 1994년 3월 말까지 일간지에 가맹점 모집 광고를 냈던 커피전문점 체인 본부들의 폐업률을 조사한 결과 47개의 가맹점 업체 중 53.2퍼센트에 해당하는 25개가 도산한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일보>도 1994년 4월 22일 자에서 '외식체인점 가맹 신중해야'라는 기사를 통해 커피전문점의 실패 확률이 50퍼센트 이상이라고 경고하였다. 과소비와 거품 경제, 외환위기로 가는 징후였을 수도 있으나 누구도 주의 깊게 대처하지 않았다.
부유층의 과소비, 정부의 반국가 세력 척결 움직임이 한창이던 1994년 10월 21일 아침 성수대교가 무너져 32명의 시민이 목숨을 잃는 참사가 벌어졌다.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는 대통령의 호언장담은 서서히 실언으로 변하고 있었다.
외환위기를 남기고 퇴임한 김영삼 대통령은 1999년 한 보수 정치인 모임에서 "국민들을 잠시 속일 수는 있어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고 조언했다. 25년이 지난 지금도 국민들을 영원히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썩은 오렌지'만도 못한 보수를 참칭하는 정치인들이 많다는 것은 비극이다.
(<커피가 묻고 역사가 답하다>의 저자, 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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