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2.03 17:55최종 업데이트 25.02.03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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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네트워크 넥스트 브릿지(Next Bridge)는 지식경제, 기후, 디지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등 전환의 시대를 직면하여 비전과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포스트 386 세대(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에서 90년대생 청년) 중심의 연구자·정책 전문가의 공공정책 네트워크다. 넥스트 브릿지는 주권자인 국민이 사회 지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이 가능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정책담론을 위한 대중적인 소통을 희망하며 다양한 분야의 정책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정책과제를 가지고 매주 정책 칼럼을 연재한다.[편집자말]
윤석열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되자 일부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방법원 내부로 난입해 불법폭력사태를 일으킨 19일 오후 서부지법 내부가 파손돼 있다. 연합뉴스

지난 1월 19일 벌어져서는 안 될 일이 발생했다. 윤석열의 구속영장 발부에 흥분한 폭도들이 서부지방법원을 침입해 공공재산을 파괴하고, 법관의 생명을 위협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보수정치권은 침묵하거나 두둔 심지어 선동의 목소리를 낸다. 노동자들이 파업이나 거리시위때 '법치'를 그리 강조하던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72년 동안 변화하지 않은 근로자 정의

개별 노동관계를 규제하는 제도들에서도 선택적 침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개별 사안으로 취급되어 그 영향이 과소평가 되지만, 실상 이득은 개별 기업이 가져가고, 손실은 다수의 흩어져 있는 노동자에게 감당케 함으로써 공동체가 유무형의 손실을 떠안는다. 그럼에도 단 하나의 법률 문구가 초래할 수 있는 공동체의 손실에 대해 노동자를 제외한 이들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 정의'가 그렇다.


앞선 글에서 이야기했듯, 1997년 근로기준법의 재제정 이유로 '산업구조의 변화와 고용형태의 다양화'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고용관계를 신축적으로 운영하고 경직적인 근로시간제도를 유연화하는 등 고용관계와 근로시간제도를 현실에 맞게 조정해야 할 필요성을 들고 있다.

근로시간, 고용조정, 변화하는 고용형태 등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온 근로기준법에서 근로자의 정의는 어떻게 변화했을까? 지난 72년 동안 한자를 한글로 바꾸고 어순을 수정하고, 불필요한 단어만 삭제했을 뿐, 근로자의 정의는 변화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1953년 근로기준법 제14조(근로자의 정의)에서 근로자는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사업 또는 사업장(이하 '사업'이라 한다)에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자"이다.

2025년 근로기준법 제2조(정의)의 ①의1에서 근로자는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이다. 근로기준법 적용 여부를 결정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 및 최대 근로조건을 규정하는 이 법의 근로자 정의는 1953년 이후 변화하지 않았고 '근로자로 인정받기'는 하나의 자격시험처럼 더 어려워지고 있다.

판례의 변화, 그러나 자의적인 적용

그렇다고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 정의가 72년 동안 동일하게 적용되었던 것은 아니다. 개별 판례들은 "사용종속관계의 구체적 판단기준"을 발전시켜 왔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인적 종속성과 경제적 종속성에 대한 가중치가 변화해 왔다. 문제는 개별 사건에서는 판사들의 개인적 판단에 따라 그 적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실제 2020년 4월 29일 대법원 3부는 신용회사 A의 채권추심원들이 회사의 내부 전산시스템에 매일 실적을 입력해야 했다는 점에서 업무의 종속성을 인정했다. 회사가 지점장이나 팀장을 통해 업무지침을 전달했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지휘·감독 관계도 있었다고 판단했다. 또한 실적이 부진한 채권추심원들에 대한 계약해지 검토나 정기적인 교육 진행, 교육 불참시 불이익 부과 등도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근거가 되었다.

반면 불과 2주 후인 2020년 5월 14일 대법원 1부는 신용회사 B의 채권추심원들에 대해서 정반대의 판결을 내렸다. 내부 전산시스템 사용은 '단순한 업무 진행 확인 수단'으로, 실적 목표 부여와 실적 집계는 '수수료 정산을 위한 절차'로 보았다. 실적에 따른 수수료 차등 지급도 그 불이익의 정도가 크지 않다고 판단하여 근로자성을 부정했다. 이처럼 유사한 사실관계에도 불구하고 법원의 판단이 엇갈리는 것은 근로자성 판단기준의 모호성을 잘 보여준다.

동등하지 않은 사용자와 근로자

근로기준법은 근로자성과 관련하여 근로자'이다', '아니다'로 판단하고, 소송 당사자들의 주장에 대한 증거 제시 능력과 판사들의 법 및 증거 해석이 다르기 때문에, 법원 판결이 갈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당연함은 현실에서는 법적 판단을 기다리는 기간 동안 개별 고용관계의 불확실성으로, 그리고 당사자들의 경제적 불확실성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사용자인 신용회사 A와 B가 경험하는 불확실성과 퇴직 근로자들의 그것은 결코 동등하지 않다.

2020년 6월 1일 자 <법률신문>에 따르면, 위 두 판례에 대해 대법원 관계자는 "단순히 같은 직종이라는 이유만으로 일률적으로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것은 오히려 더 큰 문제"라면서, "이 두 사건 외에도 대법원에 채권추심원의 근로자성을 판단해야 하는 사건이 수십 건이 남아있고, 각 사건들 역시 사안에 따라 각각 판단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고 한다.

현재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는 수십 건의 사례들은 이러한 차별적 불확실성을 견뎌내고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하지만 더 주목해야 할 것은, 대법원까지 가기도 전에 1심과 2심 단계에서 이러한 법적 불확실성으로 인해 포기한 사건들이 훨씬 더 많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채권추심원이 상대적으로 취업자 수가 많지 않은 직종임에도 이렇게 많은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전체 노동시장에서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한 채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규모는 상당할 것이다.

2024년 7월 2일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제7차 전원회의에서 사용자위원 측은 '최저임금의 구분적용 시행'을 요구하고 있고 근로자위원 측은 '최저임금의 적용대상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연합뉴스

정보통신기술 발전에 따른 근로형태 다양화?

정보통신기술이라는 용어는 우리가 반드시 적응해야 하거나 최소한 도태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인상을 준다. 마찬가지로 정보통신기술 발전에 따른 근로형태의 다양화라는 추세를 언급할 때면, 마치 새롭고 혁신적인 일자리가 만들어지며 이렇게 다양화되는 근로형태는 이 시대의 거스를 수 없는 추세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정말 그런가?

정보통신기술 발전에 따른 소위 '플랫폼'은 그 잠재성이 온전히 발현되었다기보다는 이제 시작 단계라고 볼 수 있다. 고용관계만을 고려하면, 플랫폼의 소프트웨어적 측면, 즉 사업 아이디어와 이를 구현하는 프로그래밍 능력을 보유한 사람들의 직무 내용과 수행방식 등 근로형태는 여전히 정규직과 비정규직, 또는 용역이나 도급과 같은 기존의 범주 안에 있다. 그리고 이를 벗어난 새로운 유형의 고용형태가 적어도 상당 기간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반면 플랫폼의 노무제공자의 경우, 사용자와 근로자의 전통적인 1:1 근로계약에서 n:1의 소위 위·수탁 계약으로 변화하였다. 노무 제공자를 개인 사업자로 간주하여 사업 계약을 맺는 형태인데, 이는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 정의에 해당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배달 라이더들을 고려해 보자. 먼저 직고용 라이더는 예외로 하면, 대부분의 라이더는 개인사업자로서 '주문중개회사-배달중개회사-배달대행사-라이더'의 계약들의 연쇄 안에 속한다. 현재의 근로자성 판단 방식을 따른다면, 이 계약의 연쇄를 통해 운영되는 과정에서 사용종속관계 판단을 위한 요소들의 수많은 조합들이 개별 배달 라이더 별로 고려되어야 한다. 그리고 정보기술의 발전 덕택에 이 사용종속관계는 훨씬 용이하게 모호하게 만들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주문중개회사를 2개로 늘리기만 해도 된다.

어느 토론회에서 경총 담당자는 기본적으로 "플랫폼종사업무는 1) 노동관계가 아닌 거래관계이며, 2) 노무제공 여부에 대한 자기결정성이 크고, 3) 노무제공의 유형에 대한 특정 불가능성이 높으며, 4) 수요자-사업주-공급자간 관계에서 사용자 특정 불가능성도 높다"고 주장하면서 플랫폼 노동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부정하였다.

그러나 이 특성들은 플랫폼종사업무의 근로자성을 부정하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1)과 2)와 관련해서, 모든 노동관계는 본질적으로 노동력의 제공과 임금의 지급이라는 교환 또는 거래관계이기 때문이며, 자기결정성은 모든 자유노동의 기본 전제이며, 오히려 자기결정성이 없다면 그것은 강제노동이기 때문이다.

3)과 관련해서는 노무제공 유형의 특정 가능 여부는 노동관계 판단의 본질적 기준이 아니다. 경영학에서는 이미 1960년 중후반부터 직무수행에 있어 관리자에 의한 감시와 통제 모델에서 근로자 자신의 자율성과 이를 기반으로 한 유연적 직무 수행 모델을 강조해왔다. 게다가 관리자에 의한 '과정 통제' 없이 '결과 통제'도 증가해 왔다. 정보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이러한 경향성을 더욱더 확대될 것이다. 그 결과 전통적인 인적 종속성 기준만으로는 현대적 노동관계를 포착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 어려움은 앞으로 더 커질 것이라는 점이다.

4) "사용자 특정 불가능성"과 관련하여, 계약을 통한 거래관계가 존재한다고 인정하면서 동시에 당사자 특정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모순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계약의 연쇄들로 당사자들은 이미 특정되어 있으나, 이들 간 사용종속관계의 비중 및 이에 따른 경제적 부담의 분담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에 있다. 이 판단이 어렵다고 해서 근로자성을 부정하는 것은 전통적인 1:1 근로계약 방식에서 벗어날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경영자의 전략적 선택이라는 사회적 구성물

그렇다면 배달 라이더의 근로형태는 정보기술 발전의 결과일까? 먼저 개인사업자 등록증을 요구하는 '특수형태종사자'는 정보기술발전의 결과가 아니었다. 정보기술발전의 결과는 n:1의 위·수탁 계약의 용이함이며, '플랫폼종사자'라는 범주는 '특수형태종사자'와 같이 사회적 구성물이라 할 수 있다.

배달 라이더는 처음부터 직고용으로 시작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플랫폼 기업들이 직고용에 따른 근로기준법 적용에 대한 경제적 부담으로 라이더를 '개인사업자'로 고용하여 근로기준법 적용을 회피하기 위한 사업모델을 전략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필자는 소위 '플랫폼'의 잠재성을, 특히 프로그래밍 등을 통해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가능성과 이에 따른 새로운 비즈니스의 영역의 창출 가능성을 높게 평가한다. 그러나 이 플랫폼은 어떤 식으로든 노동을 매개로 현실에서 실현될 수밖에 없다.

플랫폼 경영자들은 이 매개 역할을 수행하는 노동을 정규직 일자리에서 '개인사업자' 일자리로 전환하여 노동비용을 절감해 왔다. 그 경로의존성으로 한번 변화된 고용형태는 되돌리기 어려울 뿐 아니라 더 열악한 고용형태로 전이될 것이다. 따라서 '플랫폼' 관련 노동은 첨단 정보기술의 이미지와는 상반된 '괜찮지 않은' 일자리들로 채워질 것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2024년 6월 21일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가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6.21 배민항의행동, 배달라이더 X 배달상점주 플랫폼 갑질 규탄대회'를 열었다.이정민

미래지향적 근로자 정의

1953년 한국전쟁으로 산업시설 2/3가 황폐화되었던 근로기준법 제정 당시를 생각해 보자. 통계청의 '통계로 본 한국의 발자취'(1995)에 따르면, 전체 산업에서 농업을 중심으로 1차산업 비중이 47.3%로 제조업 9%, 광업 1% 등 2차 산업 비중은 12.7%, 서비스업 40%를 차지하였다.

인구의 60% 이상이 1차산업에 종사하던 시기에 1일 8시간, 1주 48시간 등 법 취지에 맞게 근로자라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 및 최대 노동조건 등 보편적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는 현재의 근로기준법이 마치 자격고시화되어가는 것과 같이 근로자로 인정받기는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과 대비된다.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의 근로자 정의는 70년이 지난 현재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며, 판례를 통한 근로자성 판단은 당사자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이미 그 한계에 도달했다. 근로기준법의 근로자 정의를 현실의 필요에 맞게 개정해야 할 시점이며, 단순히 현실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1953년 법 제정 당시와 같이 미래지향적으로 재정립되어야 한다.

이 '미래지향적' 근로자 정의는 다양한 고용형태의 핵심인 '개인사업자' 형식에 대한 정의와 범주를 근로기준법에 포함하는 방식으로 재정립되어야 한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근로자 정의에서 '단시간근로자'만을 별도로 정의하고 있으며, 특수고용업무종사자, 플랫폼종사자, 프리랜서 등 '개인사업자' 형식의 노무제공 근로자에 대한 언급은 전무하다. 이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해외 사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국은 전통적인 '근로자(employee)'와 별도로 '노무제공자(worker)'라는 중간 범주를 도입했고, 프랑스는 '임금근로자(salarié)' 외에 '독립자영노동자(travailleur indépendant)'라는 중간 범주를 설정하여 새로운 형태의 노동을 제도적으로 포섭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처럼 중간 범주가 없는 미국에서는 근로자성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지속되고 있으나, 캘리포니아주를 중심으로 'ABC 기준'을 적용하여 근로자성을 확대 해석하는 판례들이 등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플랫폼노동자의 보호와 관련해서 근로기준법 외 (가칭) 플랫폼종사자법 도입을 주장하는 의견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과거 기간제법, 파견법 등 고용형태별 개별법의 도입은 근로기준법을 '정규직 보호법'으로 축소시켜왔다. 이는 노동법의 근본 취지인 보편적 노동권 보장과 배치될 뿐만 아니라, 근로자 간 차별을 제도적으로 고착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또한 이러한 방식의 보호 체계는 또 다른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새로운 고용형태가 등장할 때마다 개별법을 제정해야 하는데, 이는 법 제정의 시차로 인한 보호의 공백을 발생시키고 법 적용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실제로 플랫폼 노동과 같은 새로운 노동형태가 확산되고 있음에도 이를 규율할 법제가 마련되지 않아 근로자 보호의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로기준법의 보편성을 회복하고 강화하는 방향으로 근로기준법을 재정비해야 한다. 개별법의 핵심적인 보호조항들을 근로기준법에 편입하여 통합적 보호체계를 구축하고, 가능한 한 고용형태와 관계없이 모든 근로자에게 동일한 기본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는 단순히 법체계의 정비 차원을 넘어, 노동법의 본질적 가치인 근로자 보호의 보편성을 회복하고 실질적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핵심 과제라 할 수 있다.

* 필자 소개 :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서 석사를 받은 후 미네소타대학교에서 HRIR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한양대학교 에리카캠퍼스 경영학부에서 조직행동과 고용관계를 가르치고 있다. 앞으로 2~3년 동안 공공 부문의 고용 관계를 집중적으로 공부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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