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2.02 11:49최종 업데이트 25.02.02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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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네트워크 넥스트 브릿지(Next Bridge)는 지식경제, 기후, 디지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등 전환의 시대를 직면하여 비전과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포스트 386 세대(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에서 90년대생 청년) 중심의 연구자·정책 전문가의 공공정책 네트워크다. 넥스트 브릿지는 주권자인 국민이 사회 지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이 가능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정책담론을 위한 대중적인 소통을 희망하며 다양한 분야의 정책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정책과제를 가지고 매주 정책 칼럼을 연재한다.[편집자말]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된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4차 변론에 출석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서점가에 '헌법 필사' 열풍이 분다고 한다. 12·3 비상계엄사태 이후 주요 온라인 서점 '정치/사회, 종합' 분야에서 관련 서적이 줄곧 상위권에 위치해 있다.

언론을 통해 독자들은 '무시무시한 계엄을 억제한 강력한 헌법의 내용을 알고 싶었다.' '헌법을 통해 사회 사각지대와의 깊은 연대를 할 수 있었다.' '민주주주의는 당연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되찾은 것이고, 우리가 지키지 못하면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구나' 등의 소감 등을 밝혔다. 평소에는 잘 느끼지 못하고 사는 '헌법'의 힘을 '내란사태'를 통해 많은 국민이 절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국민의 흐름과 달리, 작년 12월 3일 비상계엄선포, 12월 14일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윤석열의 체포와 구속 과정에서 정부 고위 관료와 주요보수언론들은 윤석열의 불법 계엄령 선포와 이후 무장, 사법체계 훼손 등의 행위에 대해 적극적으로 방조하고 있으며, 공동체가 떠안고 있는 유무형의 손실에 침묵하고 있다.

노사관계를 연구하는 필자가 봤을 때, 노동조합 파업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손실인데도 말이다. 이전 기획재정부·고용노동부 등의 정부부처와 주요 언론들은 헌법 및 법률로 보장된 권리 행사인 노동조합의 파업에 대해 경제적 손실이 몇 천억, 몇 조라고 늘상 주장했다. 엄정하고 신속한 법 집행을 강조했던 것과 이율배반적 모습이다.

1945년 해방부터 1987년 민주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헌법은 2024년 헌정사상 전례 없는 대통령의 국민을 향한 내란을 저지했다. 1987년 체제 이전으로의 회귀를 시도했던 12·3 비상계엄사태는 오히려 1987년 체제의 변화를 앞당기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12·3 비상계엄사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으며, 민주주의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헌법 개선 방안을 논의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이와 더불어 필자는 노동하는 대다수 국민들의 삶을 보호하는 '근로기준법' 역시 시대의 변화를 담지하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헌법이 1987년 체제에 머물러 있다고 한다면, 우리 노동법은 1997년 IMF 체제에 머물러 있다고 할 수 있다.

1996년 노동법 날치기 통과와 노동계 총파업

1996년 12월 26일 새벽 6시,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제, 변형근로시간제(탄력적 근로시간제와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포함한 노동법 개정안 등 11개 법안이 단 7분 만에 날치기 통과되었다. 이는 노동계의 강력한 총파업을 비롯한 거센 저항에 직면했다. 당시 여야는 이 날치기 노동법의 폐기 및 주요 노동법 개정안과 노조의 정치활동금지 규정 삭제, 복수노조 허용, 정리해고 시행 2년 유예 등을 합의하였다.

그 결과 1997년 3월 13일 근로기준법이 재제정되었다. 재제정 이유로는 "산업구조의 변화와 고용형태의 다양화"에 대응하기 위해 고용관계를 신축적으로 운영하고 경직적인 근로시간제도를 유연화하는 등 고용관계와 근로시간제도를 현실에 맞게 조정해야 할 필요성을 들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하고 향상시키며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도모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당시 '산업구조의 변화와 고용형태의 다양화' 변화에 대응한다는 이유가 적절했는지와 함께 현재 국민의 삶을 제대로 보호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28년 후인 2025년에도 이러한 주장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과 각 시민단체 활동가 등이 13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윤석열 정부의 노동시간 주 69시간제 안 폐지 촉구 의견서 제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자의 과로사 위험과 작업장 안전사고를 늘어나게 하는 개악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희훈

50년, 휴일 하루 얻는데 필요했던 시간들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시 근로시간은 '제42조(근로시간) ①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하고 1일에 8시간, 1주일에 48시간을 기준으로 한다. 단, 당사자의 합의에 의하여 1주일에 60시간을 한도로 근로할 수 있다'로 규정되었다. 이 규정은 1980년 12월 제3차 개정에서 ①항의 '1주일에 60시간을 한도로 근로'를 '1주일에 12시간 한도로 연장근로'로 그 표현이 명확하게 규정되었다. 즉 1일 8시간, 1주 48시간(월요일~토요일 6일*8시간)에 연장근로 최대 12시간을 더하여 1주 최대 60시간이었다. 그리고 1989년 3월 29일 제5차 개정 시에는 ①항의 '1주일에 48시간'을 '1주일에 44시간'으로 단축하였다.

근로시간과 관련한 근로기준법 기반은 1996년 12월 26일 날치기 통과되었던 11개 법안 중 하나였던 근로기준법 6차 개정에서 크게 변화하였다. 제42조는 '①1주간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하고 44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와 '②1일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하고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그리고 42조의4(연장근로의 제한) '①당사자간의 합의가 있는 경우에는 1주간에 12시간을 한도로 제42조의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를 신설하였다. 이렇게 1주 단위 최대 근로시간 규정이 삭제되고 1일 최대 근로시간을 명시적으로 규정하였으며, 연장근로시간은 별도의 조항으로 분리되었다.

이 개정안은 탄력적근로시간제(제42조의2)와 선택적근로시간제(제42조의 3),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제27조의2) 등을 포함하고 있어 노동계의 총파업을 포함한 거센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그 결과 당시 여야는 1997년 3월 기존 근로기준법을 폐지하는 동시에 새롭게 근로기준법을 제정하였는데, 위 조항들은 조항의 번호들은 바뀌었지만 그대로 살아남았다. 이후 2003년 9월 제5차 개정에서 ①항의 '44시간'이 '40시간'으로 1주 법정근로시간이 단축되었다.

한국은 1953년 국내총생산 13억 달러로 세계 경제순위 109위의 나라에서 2023년 국내총생산 1조 7128억 달러로 세계경제순위 14위의 국가로 성장했다. 이에 반해 주당노동시간은 법정시간 48시간(연장근로 포함 60시간), 40시간(연장근로 포함 52시간)으로 줄었다. 하루의 휴일을 얻는데 50년이 걸린 것이다. 이 순간에도 한국의 임금노동자들은 2022년 기준 연 1904시간의 노동을 제공하고 있다. OECD 회원국 중 한국보다 근로시간이 많은 국가는 콜롬비아, 멕시코, 코스타리카, 칠레, 이스라엘 5개국뿐이다. 여전히 한국은 '장시간 근로 국가'이다.

1주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1주 법정근로시간이 1953년 48시간에서, 1989년 44시간, 그리고 2003년 40시간으로 감소하면서, 이전에는 없던 상식에도 맞지 않는 논리가 나타났다. 1주의 범위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로 토요일과 일요일은 휴일로 1주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해괴한 논리이다. 따라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법정 근로시간 40시간과 최대 연장근로 12시간을 합친 52시간과, 토·일요일 이틀 8시간씩 휴일근로 16시간을 더해서 1주 최대 68시간 근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은 1주 최대 근로시간과 관련하여 1주 범위에 휴일이 포함되는지 여부와 연장 및 휴일근로의 할증 등 현장의 혼란, 사회적 갈등, 법적 분쟁, 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과 비용을 초래하였다. 특히 이 해석은 우리사회의 장시간 노동 관행을 지탱하게 한 근거였으며, 산업재해 등 측정하기 어려운 사회경제적 손실을 유발하였다.

이에 2018년 7월 근로기준법 제2조(정의)의 ①의7에 ''1주'란 휴일을 포함한 7일을 말한다'로 1주 범위를 명확하게 규정함으로써 '휴일포함' 최대 근로시간을 주 52시간으로 제한하게 되었다.

윤석열 정부 초기 노동개혁이란 명목으로 주단위 연장근로 상한을 월단위 이상으로 가능하도록 하여 최대근로시간을 주 69시간까지 늘리는 개편안을 추진하였으나, 여론의 거센 비판에 부딪히며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내란사태로 대통령의 권한이 정지된 이 정부는 다시 주69시간제를 재추진하려 한다. 지난 10일 고용노동부 김문수 장관은 업무추진계획 보고에서 근로시간 제도개편를 다시 추진하겠다 밝혔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남소연

대부분의 선진국은 근로시간 단축으로 나아가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확대, 기술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 저출생 위기의 극복, 노동자와 공동체의 건강 증진 등을 위해 한국 역시 가야할 길이다. 기업의 단기이익을 위해 노동자의 장시간 근로를 허용하는 개편은 노동자를 향한 또 하나의 쿠데타에 다름 아니다.

근로시간 단축이 한국사회의 방향성으로 자리 잡은 것 같지만, 1주 최대근로시간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 노동법이 형성해온 '노동시간 단축'의 의미를 지키고, 시대의 변화에 따른 일하는 국민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한 개편방향이 어떤 방향인지 관심을 가질 일이다. '헌법'이 내란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킨 것처럼, '노동법'은 일하는 국민의 권리와 건강을 지키는 최후 보루다.

* 필자소개 :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서 석사를 받은 후 미네소타대학교에서 HRIR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한양대학교 에리카캠퍼스 경영학부에서 조직행동과 고용관계를 가르치고 있다. 앞으로 2~3년 동안 공공 부문의 고용 관계를 집중적으로 공부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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