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1.23 17:21최종 업데이트 25.02.05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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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 '오마이뉴스 기자 박정훈'과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박정훈', 두 사람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연대를 모색해 나갑니다.[편집자말]
서울 광화문 KT 사옥연합뉴스

"너무 힘들다, 열심히 일했을 뿐인데..."

정훈님, 설 명절을 앞둔 1월 21일 새벽 KT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죽음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시계를 2024년 10월 21일로 돌려야 합니다. 그날 공공운수노조 kt지부 (kt 새노조) 김미영 지부장이 광화문 kt 사옥 앞에서 단식을 선언하고 농성에 들어갔습니다. 10월 11일 KT가 통신 인프라 분야에서 5700여 명, 약 30%의 인력을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보통 구조조정을 하면 해고를 떠올리지만, 그건 옛날 말입니다. KT는 기존 직원들을 새롭게 설립한 자회사로 옮기는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했습니다. 사람들은 노조가 있으면 구조조정을 저지하는 투쟁을 벌이면 되는 거 아니냐고 물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KT는 복수노조 사업장으로 회사에 친화적인 노동조합이 회사와의 협상권을 독점하고 있습니다. 교섭대표노조는 KT의 구조조정안을 받아들입니다.

KT는 고인의 죽음과 관련한 MBC의 질문에 "본인의 선택으로 직무를 전환해 배치가 이뤄졌고, 새 직무를 수행하게 된 직원들의 조기 안착을 위해 교육 등을 지원하고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KT 부사장의 협박

하는 일은 똑같은데 소속만 자회사로 옮기라는 말을 쉽게 받아들일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자 경영진이 공격적으로 노동자들을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안창용 KT 부사장은 직원들을 모아놓고 구조조정을 압박했는데 이 장면이 MBC에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잔류한 직원들은 토탈영업TF로 발령낸다."
"시간이 지날수록 굉장히 모멸감과 자괴감이 있을 거다."
"스트레스 때문에 (본사 잔류가) 쉽지 않을 거다."
"(TF로 가면) 지금 근무지가 아닌 외곽으로 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자회사로 전환을 시키려는 노동자들은 기술운용노동자입니다. 이들이 자회사로 가지 않고 본사에 남으면 토탈영업TF라는 부서에 배치해 영업일을 시킬 건데 그걸 견딜 수 있겠냐고 부사장이 협박하는 겁니다.

토탈영업 TF에 한 번 배치되면 타부서로 이동이 금지되고, 1년 단위로 근무지 순환을 시킵니다. 부사장 말대로 이걸 견딜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사망한 노동자도 자회사행을 거부하고 본사에 남아 토탈영업 TF에 배치되어 직군전환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는 유서에 "이런 말도 안 되는 교육받으면서 자괴감이 든다"라고 썼습니다.

KT의 악랄한 직원 퇴출 방법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합니다. 2011년 7월 19일에 보도된 <시사포커스> 'KT직원 연이은 자살의 내막' 기사에 따르면, 2011년 7월 16일 서울북부마케팅단 은평지사에서 근무하던 강모씨가 옥상에서 몸을 던져 사망했습니다. 그는 평소 데이터나 음성을 보내고 받는 네트워크 서비스센터에서 근무하다 개통업무로 전환배치되었습니다. 익숙치 않은 일을 하던 그는 인사고과에서 F등급을 받아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2006년 봄에 도입된 비밀퇴출프로그램(CP)의 일환이었습니다. 당시 KT측은 <시사포커스>에 "사망한 강씨의 경우 전환배치 됐지만 업무에 대한 기본교육을 했다"며 "네트워크 서비스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어느 통신사나 마찬가지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해명했습니다.

CP란 C-player의 약자로 노동자를 A-player, B-player, C-player로 등급을 나누어 가장 낮은 등급을 받은 노동자들에게 경고, 감봉, 징계 등으로 압박을 가해 퇴사를 유도하였습니다. CP 프로그램은 KT 관리부서에서 일하던 반기룡씨가 양심고백을 하면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20년 전의 CP가 토탈영업 TF로 부활한 겁니다. 문제는 토탈영업 TF에 있는 노동자가 2500여 명이나 된다는 겁니다. KT의 만행을 그대로 놓아둔다면 제2, 제3의 희생자가 나올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압박을 견디지 못한 직원들은 자회사로 옮기거나 희망퇴직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려 2800여 명이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떠났고, 1700여명이 자회사로 옮겨 KT는 4500여명을 정리했습니다. 애초에 자회사 전환은 핑계이고 노동자를 쫓아내는 게 목표였던 겁니다.

1월 22일, '반복되는 낙하산, 다시 시작된 죽음의 KT'라 쓰인 플래카드를 들고 공공운수노조 KT지부가 집회를 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KT지부

KT는 민영화와 구조조정, 죽음의 역사

KT의 구조조정으로 노동자가 사망한 일은 2025년에만 벌어진 게 아닙니다. 인터넷에 KT 자살로 검색을 해보면, 2010년, 2011년, 2013년, 2015년, 2016년 2021년 관련 기사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희생자가 한두 명이 아닙니다. '올해만 22명', '올해만 24명' 이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기사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KT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돌발적 사건이 아니라 상시적인 일이 된 겁니다. 이는 KT의 구조조정이 가끔씩 벌어지는 사건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진행된다는 걸 의미합니다.

정부가 한국전기통신공사를 민영화하면서 주주의 이익실현을 최대 가치로 삼으면서 벌어진 일입니다. 정부는 1998년 12월 한국전기통신공사 주식을 증권거래소에 상장한 데 이어 99년 뉴욕증시에 상장하였습니다. 2001년에는 KT로 사명을 바꾸고, 2002년 정부 주식 물량을 전량 매각하면서 민영화가 완료되었습니다.

2024년 11. 28일 국회에서 열린 'KT 통신인력 대규모 구조조정'토론회에 참여한 박재범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은 이 같은 구조조정의 원인을 민영화와 낙하산 사장으로 지적했습니다.

"경영진의 구조조정 근거는 '고비용 절감과 대주주 수익보장'이었다. 이런 결과는 전문경영인이아닌 정권교체기마다 낙하산식으로 선임된 경영진들이 연임을 목적으로 당장의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구조조정 만큼 확실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박재범 연구위원의 국회토론회 발표문에 따르면 민영화가 한창 추진 중이던 2000년 이계철 한국통신 사장이 1만여 명의 노동자를 명예퇴직시켰다고 합니다. 뒤이어 내려온 낙하산 사장들도 KT직원들을 줄이는데 혈안이 되었습니다. 2003년 이용경 사장은 6천여 명, 2009년 이석채 사장도 6천여 명, 2014년 황창규 사장은 8300명을 명예퇴직시켰습니다. 명예퇴직으로만 내보낸 숫자이고, 구조조정의 영향을 받아 빠져나간 직원의 숫자는 더 많습니다. 그 결과 1998년 5만 6600명이었던 KT 직원 수는 2024년 1만 4000명 수준으로 줄어들었습니다.

AI로 자살예방한다는 KT, 직원들은 죽음으로 내몰아

비단 KT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SK 브로드밴드는 자신의 통신망을 관리하는 노동자들을 2차 하청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게다가 2차 하청 업체를 1년 마다 교체시켜 소속 하청노동자들이 1년 마다 새롭게 근로계약서를 써야 합니다. SK는 하청시스템을 이용해 숙련노동자를 영원히 신입사원으로 활용하는 편법을 사용하는 겁니다. 우리의 통신산업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통신산업은 철도와 고속도로처럼 산업과 국민에게 필수적인 매우 중요한 공공재입니다. 통신이 끊기면 카톡이 안되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카드결제가 막히고 기업의 영업이 중단됩니다. 경찰 병원 등 관공서의 프로그램도 먹통이 되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습니다.

2018 11월 26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KT아현지사 화재 현장에 통신을 복구하기 위한 케이블이 설치 되어 있다.이희훈

지난 2018년 KT아현지사 화재사고나 카카오톡 데이터센터 화재 사건으로 국민들은 통신이 얼마나 중요한 산업인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2018년 아현지사 사태 당시 KT의 구조조정으로 인한 인력부족과 외주화로 통신망 유지 관리가 부실해진 것이 근본적 원인으로 지목됐습니다. 그럼에도 통신산업을 잘 모르는 낙하산 사장이 산업의 근간인 숙련노동자들을 내쫓고 입으로는 AI 혁신을 떠들고 있는 겁니다.

2021년 충청남도가 KT와 손잡고 AI 케어로봇을 활용하여 자살을 예방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혼자 사는 노인분들에게 말벗 대화기능을 제공하고 응급알림, 복약관리, 음악감상 일정알림 등을 제공한다고 합니다. 통신 3사도 자살예방을 위한 AI 프로그램 사업을 진행 중입니다. 사람의 표정을 분석하고 사람의 일기를 분석해 사람의 마음을 케어한다고 합니다. 분석결과에 따라 웹툰, 영상 등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는 맞춤형 활동 콘텐츠를 추천합니다. 그러나 통신업체들은 이 기술들을 만드는 직원들의 표정을 살피지는 않습니다. 자살을 예방하겠다는 기업이 직원들을 자살로 내몰고 있는 겁니다.

KT는 이제라도 구조조정을 거부한 직원들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인 토탈영업TF로의 차별적 인사발령을 철회해야 합니다. 토탈영업 TF로 배치된 2500명 전원에 대한 건강상태를 점검해야 합니다. 불행한 사건이 반복되지 않도록 업무스트레스를 줄이고 심리상담을 지원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KT의 반복되는 구조조정과 죽음을 막기 위해 근본적 대책을 모색해야 합니다.

우리는 통신회사를 통해 IPTV를 비롯한 디지털기기로 흥미롭고 재미있는 콘텐츠를 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행복을 전달하는 노동자들을 비극적인 소식을 담은 뉴스화면으로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통신노동자들이 단절되거나 고립되지 않도록 시민들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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