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1.23 12:05최종 업데이트 25.01.23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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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계엄 선포 뉴스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2024년 12월 3일 서울역에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다.연합뉴스

개헌 이전의 시급한 과제: 교과서에 헌법 제1조 제대로 설명하기

12.3 계엄과 탄핵사태를 보면서 절감한 사실 중 하나는 이 나라의 보수 엘리트들이 우리의 헌법 제1조 즉 민주공화국을 정면으로 배신하였다는 점이다. 계엄의 포고령에서부터 법원에서 발부한 체포 영장 거부, 서부지방법원의 폭력적 난동에 대한 옹호에 이르기까지 이번 사태가 생생하게 보여준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실질적 위협은 '광장의 촛불 시민'이 아니라 헌법과 법치를 자신의 입맛에 따라 우겨대는 대통령과 장관, 집권 여당 등 보수 엘리트 카르텔의 반헌법적 행태이다.


이렇게 된 데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민주공화국의 의미에 대한 무지와 외면 때문이다. 사실 그들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시민들이 헌법 제1조는 알아도 민주공화국의 '공화'의 의미에 대해서는 정확히 모르고 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헌법학 개론서들은 공화의 의미를 군주제가 아닌 국가형태(비 군주제)로만 해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초등은 물론 중등 사회과 교과서에 헌법 제1조는 명시하고 있지만, 공화국은 아예 설명이 없거나, 제1조 ②항의 국민주권 원리로만 약술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민주시민교육과 가장 밀접한 연관이 있는 고등학교 <정치와 법> 교과서에도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에 대해서는 풍부하고 상세한 설명이 있지만, 공화나 공화주의는 단 한 줄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민주시민과 건강한 공동체의 첫 출발점은 그 나라의 정체성과 역사성을 보여주는 헌법에 대한 교육이다. 우리는 지난 100년 동안 기본 문장과 근본 취지가 단 한 차례도 변경된 바가 없는 헌법 제1조의 공화국의 의미를 협소한 국가형태로만 이해하였다. 이제 국가형태로서의 공화국뿐만 아니라 주요 이념이자 원리로써 공화주의로 관심의 초점을 전환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사회과 특히 고등학교 <정치와 법> 교과서에 공화국을 혼합정체, 공동선, 비지배(Non-Domination) 자유, 시민참여, 법치 등 공화주의의 근본적인 구성요소로 설명하는 것이다. 공화주의적 개헌 이전에 꼭 필요한 과제가 '공화주의적 관점에서의 시민교육'이며, 이를 위해서는 교과서 개정이 필수적이다.

개헌에 대한 오해와 이해

17일 밤 속개된 국회 본회의에서 윤석열 정부의 내란·외환 행위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에 대한 수정안이 야당 주도로 통과되고 있다.연합뉴스

87년 민주화 이후 개헌 논의를 보면 일정한 패턴을 보여주고 있는데, 여기에서 중요한 교훈 몇 가지를 얻을 수 있다.

첫째, 개헌 담론은 진보와 보수 정권을 막론하고 임기 말 레임덕 현상이 불거질 때 거국중립내각과 더불어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위기 탈출구로서 급히 불거졌다는 점이다. 둘째, 가장 일관되고 적극적인 개헌 제안자는 역대 국회의장이었다. 셋째, 권력 구조와 기본권 등 개헌의 주요 내용과 방향에 대해 정치권은 물론 국민적 합의의 강도와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았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얻어야 할 교훈은 첫째, 내용만큼이나 개헌을 성사시키기 위한 시점과 방식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즉 개헌의 명분과 이유가 분명해야 여야의 합의와 국민적 지지가 뒤따를 수 있다. 2025년 시점에서 개헌의 최대 명분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극복이다. 윤석열이라는 친위 쿠데타의 주범이 대통령제의 산물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적과 동지를 둘로 가르는 그의 적대적 세계관과 무소불위 5년 단임제의 결합이 오늘날의 비극을 초래하였음은 분명하다. 특히 우리가 주목할 점은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기 위해서는 임기 안에 국정과제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조급함, 더구나 여소야대라는 불리한 국면에서 불법을 자행하더라도 꼭 역사적 과제를 완수하겠다는 강박 관념을 주는 5년 단임제의 구조적 폐해이다. 이를 고려한다면, 국민적 공감대와 여야 합의가 가능한 '4년 중임제로의 개헌'이 합리적인 방향이다.

두 번째 교훈은 정치개혁의 핵심으로서 양극화 해소의 절실함인데, 이를 위해서는 개헌이 아니라 선거제도의 개편이 필수적이다. 사실, 지난 두 차례 총선에서 최대의 피해자는 현재의 집권 여당이었다. 21대 총선에서 현재의 여당과 야당의 평균 득표율(미래통합당 41.5:더불어민주당 49.9)의 차이는 불과 8%P에 불과했지만, 의석 차(180:103)는 무려 77석으로 역대 총선 사상 최대였다. 지난 22대 총선은 더욱 심했다. 양당의 평균 득표율(45.1: 50.5)은 불과 5%P 차이였으나 의석 비중(36.0: 58.3)의 격차는 22.3%P를 기록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조금이라도 합리적이라면, 선관위를 향해 부정선거 음모를 외칠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이토록 불리한 선거제도의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섰어야 했다. 이미 해답은 나와 있는데, 왜냐하면 단순 다수 소선구제의 최대 수혜자인 민주당의 이재명 대표가 지난 대선에서 정치개혁의 하나로 '비례대표 확대, 비례대표 제도를 왜곡하는 위성 정당 금지' 등을 공약한 바 있기 때문이다. 비례성이 높은 선거제도로의 개편을 통해 유권자의 다양한 선택과 연합정치를 보장하는 온건 다당제의 구축이야말로 내전 상황에 이른 정치적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세 번째 교훈은 정치권의 책임감을 높일 수 있는 개헌 과정의 제도화이다. 구체적으로는 다가올 조기 대선에 주요 정당이 개헌의 청사진을 공약으로 내걸고, 22대 국회에서 국민 의견을 광범위하게 수립할 수 있는 국회의장 산하의 중립적인 독립기구가 개헌안을 도출, 여야 합의로 통과시키고, 차기 정부의 임기 안에 국민투표를 통해 개헌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균형과 견제를 향한 공화주의적 정치개혁

우원식 국회의장과 여야 원내대표가 17일 국회 의장실에서 만나 기념촬영을 마친 뒤 자리하고 있다. 왼쪽부터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우원식 의장,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공동취재사진

공화주의적 관점에서 이번 계엄과 탄핵사태에서 주목할 점은 정부 기관 안에서 견제와 균형의 논리, 즉 수평적 책임성의 작동 여부이다. 헌법을 짓밟았던 친위 쿠데타에 맞서 견제와 균형의 추를 잡은 것은 사법부와 공수처, 경찰이었다. 반대로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무너트린 조직은 대통령과 군, 집권 여당과 관료 조직, 국가인권위원회, 검찰과 경호처 등등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나마 권력분립이 작동할 수 있었던 데는 지난 정부의 공수처 설립과 검경 분리의 긍정적 효과일 수도 있다.

민주주의와 정부의 안정적 운용을 위해서도 정부 기관의 일대 개혁이 필수적이다. 먼저, 회계감사 기능을 국회로 이관해 감사원의 헌법상 독립된 지위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검찰개혁의 하나로 수사와 기소의 분리 완성과 검사장 직선제 도입 등이 필요하다. 또한, 경제정책과 예산편성, 집행을 독점했던 기재부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정책 집행(예: 재정경제부)과 예산편성(예: 예산기획처)의 분리를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제도적으로 권한 집중을 보장하고 있는 대통령제에서 진짜로 중요한 것이 인사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결정적 기회를 제공한 것도, '감사원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지원하는 기관'이라는 발언을 해 탄핵을 초래한 감사원장(최재해)을 임명한 것도 문재인 정부였다. 이번 계엄과 탄핵사태에서 구속되거나 기소된 인물들 대부분(국방장관, 국무총리, 경찰청장 등등)이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였다는 사실도 주목할 점이다. 인사청문회 제도에 대한 일대 개편이 시급하다. 이제부터는 가족과 병력(兵曆), 재산 중심의 도덕성 검증에서 벗어나 헌법과 민주주의에 대한 소신 등 가치와 정책 역량 중심으로 인사 방식을 전환하자.

지난 12.3 계엄 선포 이후 50일 동안 대부분 국민은 의회와 헌재를 숨죽이고 지켜보거나 촛불과 태극기를 들고 광장에 나가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번 기회에 대통령뿐만 아니라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국민투표 권한(헌법 72조)을 주권자인 국민에게도 부여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고 있다.

정상호 교수사의재

* 필자 소개 : 정당과 시민사회(NGO), 민주주의를 중심으로 한국 정치의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고려대 정치학 박사. 문재인 정부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국민주권분과 부위원장을 역임하였고, 현재 서원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이자 사의재에서 정치혁신팀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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