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 부담으로 설 명절 성수품과 선물 소비심리가 위축된 19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과일을 둘러보고 있다. 정부는 설 성수기 물가 안정을 위해 할인 지원 규모를 700억원으로 확대하고 대상 품목을 31개로 늘리는 등 총력 대응에 나섰다.
연합뉴스
중소기업 직장인의 소소한 일상과 애환을 담은 유튜브 채널 '이과장'은 매년 설과 추석에 '중소기업 명절 선물 대회'라는 이벤트를 펼칩니다. 중소기업 직장인이 명절을 앞두고 회사로부터 받은 명절 선물을 구독자들에게 소개하는 내용인데요.
명절 선물은 사업장 규모와 매출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수백에서 수십만 원의 명절 상여금과 한우 선물 세트, 백화점 상품권 등 직장인이 선호하는 선물이 소개될 때 구독자들은 댓글을 통해 부러움을 표시합니다. 반면 회사로 들어온 선물 세트 물품을 직원들에게 나눠 가져가라고 하거나, 사업주의 친인척이 운영하는 식당이나 농장에서 공수한 식품을 성의 없는 포장으로 제공하는 명절 선물에는 비웃음과 분노의 댓글이 달립니다.
이처럼 '중소기업 명절 선물 대회'에 소개된 중소기업의 직원에 대한 명절 선물 실상을 보면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기업의 복지 실태가 여실히 드러납니다. 올해도 반도체나 자동차 등 수출 실적이 좋은 분야의 몇몇 기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내수 부진 등으로 경영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복지지출을 줄이려 할 것입니다.
사실 사업주라고 해서 왜 좋은 명절 선물을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없겠습니까. 어려운 가운데도 직원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함께 성장하자는 의미로 회사의 이윤을 나누는 사업주가 없지는 않겠지만 코로나19 이후 경제위기 속에서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복지가 향상되기에는 구조적 어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더해 해를 거듭할수록 규모가 큰 대기업이나 중견기업과 중소 영세 기업의 복지 격차가 벌어짐을 느낍니다. 명절이 다가오면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박탈감은 심해집니다. 상담하다 보면 사업주가 벌어들인 이익을 함께 노력한 노동자들과 공유하는 데 인색하다는 불만부터 공휴일인 명절에도 쉬지 못하고 일한다는 불만까지 다양합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전국의 5인 이상 사업장 602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5년 설 휴무 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기업 복지의 양극화 현상은 더 두드러집니다. 기업규모 별로 300인 이상 기업은 응답 기업의 약 42%가 7일 이상 휴무를 부여한다고 하였는데 비해 300인 미만 기업은 7일 이상 휴무를 한다는 응답이 약 29%에 그쳤습니다. 300인 이상 기업에서 전체 응답자의 약 31%가 9일 이상 휴무를 한다고 답했으나 300인 미만 기업에서는 21%에 그쳤습니다.
올해 설 상여금을 지급할 계획이라고 답한 기업의 비중은 전체 평균 62.4%로 지난해 64.5%에 비해 2.1% 감소했습니다. 그런데 기업 규모별 설 상여금 지급 비중의 변화를 보면 300인 이상 기업은 지난해와 변동 없이 약 79%의 비율을 유지했는데, 비해 300인 미만 기업은 지난해 62.7%에서 60.3%로 오히려 2.4% 감소했습니다. 300인 미만 기업의 경우 설 상여금 지급 계획을 밝힌 전체 기업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 겁니다.
기업 규모별로 복지 격차 발생하는 현실
충청북도 청주시에 있는 반도체 기업에서 노동하는 정아무개씨는 올 설 명절에 정부가 지정한 임시공휴일과 함께 소정근로일인 그 주 금요일도 회사가 재량휴업일로 지정하여 임금의 손실 없이 주말을 포함 9일을 쉴 예정입니다. 유급휴일이 길어 명절에 가족 친지 방문을 마치고도 가족과 나들이를 계획할 만큼 여유가 넘쳤습니다.
경기도 부천시에서 청소 업무를 위탁 운영하는 민간 청소 업체 노동자인 백아무개씨는 다가오는 설에 고작 이틀 쉽니다. 인력이 부족해 유급휴일에도 나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남들 모두 쉬는 휴일에 가족과 함께 보내지 못하고 일하다 보면 서러운 마음이 듭니다.

▲'2023년도 기업체 노동비용 조사 결과'
고용노동부
기업이 노동자를 채용해 법에 따라 의무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비용 외에 복지비용이 있는데 이를 '법정 외 복지비용'이라 합니다. 고용노동부가 조사한 '2023년도 기업체 노동비용 조사 결과'는 기업이 노동자의 주택, 식사, 교통과 통신, 보육 지원, 보험료 지원 및 자녀에 대한 학비 보조, 휴양과 문화에 대해 얼마나 지원하는지 판단해 볼 수 있는 통계입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10인 이상 기업의 상용근로자 1인당 월평균 법정 외 복지비용은 약 27만 원입니다. 기업 규모별로 보면 복지 격차가 발생하는 현실이 잘 드러납니다. 대기업이라 볼 수 있는 1000명 이상 기업의 경우 월평균 법정 외 복지비용은 약 52만 원에 달합니다. 300인 미만 기업은 월평균 약 18만 원으로 조사 평균인 약 27만 원 에도 못 미칩니다. 30인 미만 기업으로 가면 월평균 약 13만 원으로 쪼그라듭니다.
국내 대표적인 구인·구직 플랫폼인 '사람인'이 470여 개 기업을 상대로 지난 2024년 추석 명절 선물 지급 비용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평균 선물 비용은 약 8만 원이었습니다. 올해 명절을 앞두고 농협이 운영하는 마트에서 명절 선물용 5kg 사과의 가격은 약 6만 9천 원, 배의 가격은 7만 9천 원입니다.
법정 외 복지비용의 대부분은 식비에 충당됩니다. 소득세법상 월 20만 원까지의 식대는 비과세 소득으로 인정되기 때문입니다. 식대에 법정 외 복지비용을 지출하면 설과 명절 상여금이나 선물에 충당한 비용은 거의 고려되고 있지 못한 현실입니다. 영세한 중소기업에서 하다못해 1만 원짜리 온누리 상품권도 아니고 선물 세트를 나누어 가져가라는 웃지 못할 명절 선물 에피소드는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그냥 어쩔 수 없는 일로 놔둘 수는 없습니다. 기업별 복지 격차를 계속 두고 본다면 우리 사회 고용의 다수를 차지하는 중소 영세 기업의 일자리 질은 개선되지 않은 채 구인난의 악순환은 반복될 겁니다.
노동자 삶이 더 나아지는 해가 되었으면
앞서 언급한 중소기업의 현실을 조명한 각종 유튜브 사례를 보면 경제적 사정으로 불가피하게 중소기업에 입사한 노동자들도 자신의 회사에 전혀 자부심을 품지 못하고 언제든지 회사를 떠날 생각을 합니다. 열악한 근로조건을 버티지 못하고 미련 없이 퇴사하는 것을 '추노'라고 비꼬는 대목에서는 우리 노동시장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정부와 기업, 그리고 시민사회 모두가 노력해야 합니다. 정부와 기업은 최소한 적정 복지비용의 기준을 합의해 노동자의 노동력 재생산을 위한 식사, 교통, 주거 복지의 비용을 분담하여 보장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임금에 최저임금이 있다면 이제 복지비용의 최저 수준을 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천지역노동공제회 활동 모습
부천지역노동공제회-일하는사람들과 '함께'
기업과 정부가 해결할 수 없는 영역에서는 일하는 시민들의 연대가 필요합니다. 최근 지역에서 시도되는 노동자 공제 모임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경기도 부천시 비정규직근로자 지원센터 최영진 센터장은 지난해부터 지역의 노동자들을 모아 노동공제회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가 사는 부천시는 50인 미만 사업장이 전체 사업장의 약 99% 차지합니다. 최저임금을 간신히 넘기는 근로조건, 잔업을 하지 않으면 한 달 생활이 빠듯한 노동자들의 현실만큼이나 기업의 임금 지급 여력도 열악합니다. 영세 사업장 노동자의 권리는 쉽게 무시되고 중견기업 정도의 번듯한 복지도 그림의 떡인 현실이지요. 일하다 다치기라도 하면 유급 병휴가를 보장하는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달리 무임금으로 경제위기에 직면합니다.
'부천지역 노동공제회-일하는 사람들과 함께'는 이러한 현실에서 60여 명의 지역 노동자들이 모여 상호 부조 형태로 서로의 어려움에 대해 부조합니다. 매월 일정액을 회비로 내고 질병 등으로 경제적 위기가 발생하면 소액 대출로 긴급하게 돕습니다. 설과 추석 명절에 회원들에게 명절 선물도 지급합니다.
이러한 노동자들의 자발적 상호 부조 활동을 제도적으로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정부와 시민사회가 노력해 중소 영세 기업 노동자들의 삶이 더 나아지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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